설탕에서 김영란 세트까지, 추석 선물 변천사

[추석, 그땐 그랬지②] 추석 떡값은 왜 그리 불리게 됐을까?

등록 2016.09.15 20:21수정 2016.09.1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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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967년 설탕 광고.

1967년 설탕 광고. ⓒ 제일제당


모두가 어려울 때도,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추석은 추석이었죠. 1950년대 우리네 추석 선물은 농산물이 많았습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는 있었죠.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 4일 추석을 앞두고 <경향신문>은 "(청과시장의) 가격은 평시의 배를 받았는데 이 과일 상자의 태반은 고관 댁과 권력층 저택에 운반되어 갔다"는 씁쓸한 소식을 전합니다.

그 해 <동아일보>는 "우리의 형제자매가 일선에서 추석이라는 구별 없이 오늘 이 시간에도 귀중한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명기하고 쓸데없는 유흥에도 취하지 말 것을 각자가 맹세하여 일선 장병들에게 보답하자"고 호소하기도 했죠.

차츰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나가던 1960년대부터 추석 선물이란 개념도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갑니다. 이때부터는 상품화된 추석 선물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역시나 소박한 형태였죠. 신세계백화점이 지난 1996년 펴낸 '광복 50년, 추석선물 50년' 자료를 보면 1965년 최고의 인기 선물은 다름 아닌 6kg짜리 설탕 봉지(780원)였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는 소비자들의 눈도 조금 높아진 게 느껴집니다. 910원 했던 콜라 24병 한 박스를 선물로 받아든 사람들이 이때는 횡재한 경우였습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식료품 위주였던 선물이 화장품 같은 공산품으로 점차 바뀌어 갑니다.   

1980년대부터는 와이셔츠, 넥타이, 지갑, 벨트 같은 패션용품이 등장합니다. 식료품도 설탕 같은 건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됐고, 정육이나 과일세트같이 고급화됩니다. 1990년대는 통조림 식품세트가 등장하고 지금도 인기인 상품권이 사랑받게 되죠.

한 시대의 바로미터 대통령의 추석 선물

a  지난 2015년 청와대 추석 선물 세트. 여주햅쌀과 진도흑미, 홍천 잣 등 각 지역의 특산물로 선물 세트를 구성했다.

지난 2015년 청와대 추석 선물 세트. 여주햅쌀과 진도흑미, 홍천 잣 등 각 지역의 특산물로 선물 세트를 구성했다. ⓒ 진도군


이맘때면 관심을 끄는 대통령의 올해 추석 선물은 여주 햅쌀과 경산 대추, 장흥 육포 세 가지로 결정됐습니다. 대통령의 추석 선물은 한 시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습니다. 때론 받는 사람을 권력의 달콤함에 취하게 했고, 대통령에게는 이미지 만들기와 정치력을 선보일 기회였습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대통령들은 인삼을 사랑했습니다. 나무상자에 봉황이 아로새겨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삼 선물은 권력의 상징으로 통했습니다. 뒤를 이은 전두환 전 대통령도 인삼 선물을 애용했던 것으로 알려졌죠.   

문민정부 들어서는 멸치가 그 자리를 꿰찹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아버지가 직접 보내온 멸치를 수천 상자씩 주변에 돌렸는데 이를 'YS멸치'라고 불렀답니다. 당시 정가에서는 "YS멸치를 못 받은 사람은 정치인이라 말할 자격이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고 하네요.


대통령 선물이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기 시작한 건 참여정부부터입니다. 각 지역의 특산주를 뽑아 전달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석 선물은 지역 통합을 상징했죠. 이후 이러한 '지역 안배'는 선물의 형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전국 각지의 농산물을 세트로 만들어 전달하고 있습니다.

명절 뇌물의 고유 명사 '떡값'은 억울하다

a  1975년 추석 맞이 백화점 신문광고

1975년 추석 맞이 백화점 신문광고 ⓒ 미도파


추석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떡이죠. 국어사전에서 떡값을 찾아보면 "업자 등이 공무원이나 관리들에게 명절 인사 따위의 명목으로 상납하는 돈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소개합니다. 하지만 떡값의 등장은 본래 이리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떡값은 1960년대 명절을 앞두고 정말 떡이나 쪄먹으라는 의미에서 회사가 주던 특별 상여금의 한 형태였죠.

1963년 10월 1일 <경향신문>에는 "추석을 맞아 회사원들과 은행원들은 상여금 또는 떡값을 받아 연휴의 플랜을 짜고 있다"는 내용과 "직원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연휴수당 보너스, 떡값 등의 명목으로 웬만한 업체는 모두 섭섭지 않을 정도로 지급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소식이 실렸습니다.

하지만 이후 떡값은 뇌물의 성격으로 받아들여집니다. 1965년 1월 11일 신문에는 군납업계의 비리 소식이 전해지는데 기사에는 "군납업계에서는 담합하여 입찰을 성공시키는 것을 '떡을 친다'는 말로 그리고 낙찰된 회사를 '신랑'이라는 은어로써 표현하고 있다"면서 "담합에 가담하면 떡값이라는 이름으로 사례금을 받고…"라는 설명이 붙어있습니다.

올해 추석 선물에서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화제입니다. 추석 선물은 다가오는 법 시행과 맞물려 새로운 갈림길에 서 있죠. 시중에서는 5만 원 미만의 이른바 '김영란 세트'도 발 빠르게 등장했다고 하네요. 설탕 한 봉지의 정으로 시작했던 추석 선물의 변천사, 과연 후손들은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요?
#추석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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