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들이닥칠까 조마조마... '메뚜기족' 된 청소노동자

[광운대 청소노동자 체험기 20] '노조 사무실' 없는 노조의 현실

등록 2017.01.10 10:03수정 2017.01.1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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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조합원들이 노조 출범 3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조합원들이 노조 출범 3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 김동수


지난해 11월 1일 정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조합원들이 하나둘 광운스퀘어에 왔다. 초록 잔디가 깔린 광운스퀘어가 주황 빛깔로 물들었다. 주황색 근무복을 입은 조합원들이 모두 모인 결과였다.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졌다. 광운스퀘어가 떠들썩한 가운데, 최수연 분회장님이 조합원들 앞에 섰다. 한참을 머뭇하다 대학 구성원이 모두 들으라는 듯 굉장히 크게 소리쳤다.


"조합원 여러분, 오늘 우리 노조가 출범한 지 3주년이 됐습니다. 벌써 3년이 후딱 지나갔어요. 우리가 정말 열악한 가운데서도 하나로 똘똘 뭉쳐왔습니다. 이게 단합의 힘이 아닌가 싶어요. 조합원 여러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앞으로 더 힘을 냅시다."

조합원들은 한창 광운대분회 출범 3주년 행사를 하는 중이었다. 그렇다. '3년 전의 오늘'은 조합원들 사이에서 잊지 못할 하루였다.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 나선 첫날이었으니까.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의 인간 선언일'이나 다름없었다.

곧 현수막이 펼쳐졌다. "노동조합 창6립 3주년 기념"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조합원들이 현수막 주변에서 단체사진 대형으로 섰다. 단체사진 찍기가 행사의 마지막 순서였다. "하나, 둘, 셋!" 소리와 함께 해맑은 미소를 짓는 조합원들의 모습이 하나의 장면으로 기록됐다. 기념사진을 다 찍은 다음, 분회장님이 한마디 하셨다.

"사진은 잘 나왔죠? 처음 단체사진을 찍는 거라 설레네요. 다른 대학 노조 사무실을 가면은요. 조합원들끼리 찍은 사진이 걸려 있더라고요. 그게 제일 먼저 눈에 띄어요. 그때 사진들 보면 참 부럽더라고요. 우리도 이제야 찍네요. 아직 단체사진을 붙일 데가 없어서 문제지만요."

a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조합원들이 노조 출범 3주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조합원들이 노조 출범 3주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김동수


분회장님은 조합원들과의 단체사진을 노조 사무실에 걸어놓고 싶어 했다. 노조 출범 3년 만에 처음 찍은 단체사진이었다. 그런데도 분회장님은 아직까지 단체사진을 인화하지 않고 있다. 단체사진을 걸어놓을 노조 사무실이 없기 때문이리라.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다

"회사(용역업체)는 광운대학교의 운동장 공사가 완료되는 시점에 분회 사무실을 제공한다." - 2015년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광운대학교분회 사업장 보충협약 합의서(합의서) 제3조 제2항


80주년기념관(신축 건물)이 준공된 지 꽤 됐다. 작년 10월 17일, 준공식까지 했다. 준공식 현장에 대학 구성원들은 물론이고, 지역 내의 외빈들까지 빠짐없이 참석했다. 물론 청소노동자들은 제외된 채였다. 대학 구성원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은 먼발치에 서서 준공식을 바라보는 자체로 만족해야 했다. 준공식은 청소노동자 없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a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은 광운스퀘어 및 80주년기념관 준공식 행사에 초대받지 못했다. 대학 구성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은 먼발치에 서서 애처롭게 준공식을 바라봤다.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은 광운스퀘어 및 80주년기념관 준공식 행사에 초대받지 못했다. 대학 구성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은 먼발치에 서서 애처롭게 준공식을 바라봤다. ⓒ 김동수


신축 건물의 준공에도, 용역업체는 분회 사무실 제공에 뜨뜻미지근했다. 지금도 여전히 합의안을 이행할 움직임조차 없다. 용역업체의 합의 불이행에 조합원들의 '마지막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합의서 제3조 제2항'은 노조 사무실을 제공받을 '마지막 희망'이었으니까(관련 기사: 사무실이 자동차 안, 왜 그런가 살펴봤더니).

애초에 흘러가는 모양새를 봤을 때부터 기분이 께름칙했다. 노조 사무실을 절대로 제공하지 않을 느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한 번은 조합원들이 노조 사무실로 사용할 만한 공간이 학내에 있는지를 찾아봤다. 딱 한 곳이 있었다. 비마관 7층 물탱크실이었다. 비마관 청소노동자들이 예전에 휴게실로 사용한 공간이었다. 학교나 용역업체에서 어느 곳도 사무실로 내주지 않는 상황에서 물탱크실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하지만 물탱크실은 노조 사무실로 쓰기에 부적절했다. 결국 물탱크실 사용안은 철회해야 했다.

철회 이후에 조합원들은 속절없이 노조 사무실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현재는 언제쯤 사무실이 제공될지 기약조차 없다. 조합원들과 함께 노조 사무실의 제공을 주장해온 나는 지금 상황에 화딱지가 난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나는 화를 억누르면서 용역업체를 이해해보려고 애썼다. 용역업체도 나름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까? 이유 하나가 떠올랐다. 사실상 원청인 광운대의 협조 없이 신축 건물의 공간 하나 내어주기 힘들기 때문이리라. 학내의 다른 건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역업체는 분회 사무실 제공에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말을 해도 씨알이 안 먹혀요. 회사는 노조 사무실 제공할 권한이 없다, 그러고. 그건 원청에 물어보라, 그러죠. 그래서 가면 학교는 노력하겠다고 말만 하지. 지난번 원청 면담 때도요. 전형적인 시간 끌기용 화법이에요. 나중에 '왜 노조 사무실 제공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력했으나 공간이 없다'고 말할 걸요?"(광운대분회 최수연 분회장)

노조 사무실 없는 현실

얼마 전이었다. 분회장님과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 관련 문제로 만난 적이 있다. 대화할 조용한 곳이 필요했다. 그런데 빈 강의실이 잘 안 보였다. 그러다 운 좋게 빈 세미나실 하나를 찾아냈다. 그곳에서 대화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세미나실의 문틈이 살짝 벌어졌다. 한 학생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저기..."

남학생은 말을 머뭇했다. 분회장님이 이야기했다.

"지금 여기 쓰셔야 되는 건가요?"
"네."
"죄송합니다. 얼른 자리 비우겠습니다."

우리는 분주히 세미나실에서 나갔다. 대화한 지 5분도 안 지난 상황이었다. 허탈한 기분으로 다시 장소를 물색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또 다른 공간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냥 복도에서 이야기해야 했다. 그때 문득 나는 '노조 사무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했다.

a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조합원들이 건물 옥상의 야외공원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조합원들이 건물 옥상의 야외공원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 김동수


그렇다. 매번 회의 때마다 장소 물색부터 해야 했다. 전날까지 어디서 회의할지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부지기수였다. 내가 회의 참석차 장소를 여쭤보면, 항상 당일에야 문자가 왔다. 당일 아침에 부랴부랴 빈 공간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학내 공간을 써야 하는 만큼, 학생들의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장소를 찾았다고, 온전한 회의가 이뤄지는 걸까. 아니었다. 언제든 학생들이 들이닥칠 위험이 도사렸으니까. 학생들이 오면 곧바로 자리를 피해 줘야 했다. 그때부터 또다시 회의 장소를 물색해야 했다. 그야말로 '메뚜기족'이나 다름없었다. 한 번은 옥상 야외공원에서 회의를 진행한 적도 있다. 다행히 중간에 쫓겨나지 않고 회의를 마무리하면 조합원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앞으로가 또 문제다. 곧 업체와 임금·단체협상을 해야 한다. 올해 1월 10일이 첫 상견례 자리다. 불과 며칠 안 남았다. 임·단협 대책 세우기도 빠듯한 상황이다. 임·단협의 경우 수개월이 지속될 사안이다. 하지만 간부들은 대책 세울 공간조차 마땅치 않다. 어김없이 학내에서 '빈 공간 찾기'에 나서야 한다. 노조 사무실이 없는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의 설움은 날로 커진다

단체 사진 걸어 놓을 공간, 생길까

a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조합원들은 노조 사무실이 없는 탓에 매번 빈 공간을 찾아야 한다. 최수연 분회장과 박순옥 부분회장이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조합원들은 노조 사무실이 없는 탓에 매번 빈 공간을 찾아야 한다. 최수연 분회장과 박순옥 부분회장이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하고 있다. ⓒ 김동수


"자리 잡는 게 일이지. 내 자리가 없으니까, 돌아다닐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딱히 있을 데도 없고. 그래서 저는 조합원들이 있는 휴게실로 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조합원들이) 일하고, 쉬고 있을 때 들어가는 것도 좀 미안하고... 방해되잖아요.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광운대분회 최수연 분회장)

분회장님은 외부 일정이 없을 때면 주로 학내에 있다. 그때마다 당장의 업무 처리도 언감생심이다. 사무실이 없는 상황인데, 어디서 노조 관련 일을 하겠는가. 분회장님은 매번 학내에서 노조 업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다. 그래서일까. 길바닥에서 자주 업무를 본다. 서 있는 곳이 곧 노조 사무실이다. '길바닥 사무'에도 철칙은 있다. 급하거나 간단한 업무에 한정한다. 복잡한 일은 관련 서류가 비치된 자가용이나 집에서 처리한다.

"교직원 노조는 (노조) 사무실이 있더라고요. 정말 부러워요. 우리는 언제 받을 수 있을까요? 노조에 노조 사무실이 없는 게 이상하잖아요. 꼭 필요한 건데... 같은 학내에서 일을 해도 누구는 (노조) 사무실을 받고. 고용 형태에 따라서 차별을 받는 건가 싶어요. 이게 바로 간접 고용 노동자의 비애일까요? 우리도 이제 좀 노조 사무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원청이 노력하겠다는 말만 실천으로 옮겨주면 될 텐데..."(광운대분회 최수연 분회장)

분회장님은 종종 조합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찾아본다. 노조 사무실에 단체사진을 걸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지금도 조합원들은 '합의서 제3조 제2항'에 작으나마 희망을 건다.
#광운대 청소노동자 #민주노총 서경지부 #노조 사무실 #광운대 #청소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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