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갈래의 길이 별빛처럼 사면팔방으로 뻗은 에투알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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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광객들이 웅성거리는 샹젤리제대로를 건너다보며 딸에게 물었다.
"샹젤리제(Champs-Élysées)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니?"
"엘리제 밭?"
아주 틀린 답은 아니다. 영어로 일리지언 필드(Elysian Fields)라고 하는 샹젤리제는 선량하고 덕 있는 사람들이 사후에 간다는 그리스신화 속의 극락세계, 곧 엘리시움(Elysium)에서 온 말이다. 그러나 당초 샹젤리제는 사람이 살지 않는 늪지대였다. 이 늪지대를 메꿔 느릅나무와 린덴나무가 심어진 차도로 만들도록 지시한 것은 앙리4세의 왕비였던 마리 드 메디시스였다. 피렌체 출신이었던 그녀는 자신의 고향인 피렌체의 카시네 산책길에서 영감을 얻어 이 길을 만들게 했다고 한다.
"예술은 진공 속에서 태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샹젤리제도 진공 속에서 태어난 게 아니었던 거야. 길 이름도 처음엔 샹젤리제가 아니었다."
초기엔 그랑쿠르(Grand-Cours), 그리유 루아얄거리(Avenue de la Grille Royale), 튈르리궁거리(Avenue of the Palais des Tuileries) 등으로 불리다가 1694년부터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샹젤리제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그 이유는 본래 늪지대였던 이곳에 매춘하는 여자들이 꼬인다는 보고가 잇달자 이 지역의 불건전한 이미지를 상쇄시키기 위해 붙인 이름이었다고 한다. 그 뒤 샹젤리제 이름이 확고히 정착된 것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다.
대혁명 이후 프랑스 근대사는 혁명과 반동의 되풀이다. 개선문을 착공한 것은 나폴레옹이었고, 이를 완성한 것은 7월혁명으로 왕위에 오른 루이필리프였다. 그러나 그는 2월혁명에 의해 쫓겨난다. 이렇게 해서 들어선 제2공화정의 대통령에 당선된 자가 누구였느냐 하면 나폴레옹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였는데,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다음 해 쿠데타를 일으켜 4년 단임제인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황제 자리에 오른다.
황제가 된 그는 오스만 남작을 파리 시장에 발탁한 뒤 파리를 재정비해 경쟁국인 영국의 런던보다 더 멋진 수도를 만들라는 명을 내린다. 전권을 위임받은 오스만 시장은 복잡하고 비위생적인 파리 도심을 전면 재정비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생겨난 것이 우리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답사했던 몽마르트르의 예술촌인데, 이 개선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샹젤리제대로에 이어 개선문 광장에서 시작되는 방사선 모양의 길들이 생겨나는 건 나폴레옹 3세 때의 일이다. 재미있는 건 12개의 길 중의 하나인 델로대로(avenue d'Eylau)는 나중에 <레미제라블>의 작가 이름이 들어간 빅토르위고대로(avenue Victor-Hugo)로 바뀐다는 점이다. 프랑스인들이 빅토르 위고를 얼마만큼 높이 평가하느냐는 반증이기도 하다.
"방사선 도로만 보아도 책상 위에서 자대고 그은 설계도를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 것 같아요. 개발연대의 서울처럼."
그랬다. 그 때문에 오스만 남작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같은 과감한 정비작업이 없었다면 난마처럼 얽힌 뒷골목이나 냄새나는 빈민가, 그리고 게딱지같은 점포들을 획기적인 도시공간으로 탈바꿈할 수는 없었을 거란 주장도 있다. 특히 굽은 길을 곧게 펴서 대로로 만든 것은 다가올 자동차 시대를 미리 예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파리는 명실상부한 세계의 수도로 부상한다.
"세계의 수도라구요?"
"그래, 이제부터 개선문과 샹젤리제를 완성한 나폴레옹 3세 이후의 파리가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현장을 좀 가보기로 할까?"
"네, 좋아요."
딸은 개선문 둘레를 끊임없이 도는 자동차 물결을 바라보며 벤치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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