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승호 이과두주 양조장
민영인
또 건륭제가 간판을 써줬다는 베이징 음식점 뚜이추(都一处)도 있다. 청 건륭3년(1738년)에 술과 몇 가지 음식을 파는 주막집 비슷한 작은 식당으로 시작했다. 1752년 건륭제가 암행순찰을 나갔다 환궁하며 배가 출출하여 요기할 만한 곳을 찾았지만 섣달그믐이라 모든 점포들이 일찍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
그런데 불빛이 새어나오는 유독 한 집이 있어 들어갔더니 주인이 아주 정성껏 맞이해 건륭제가 매우 흡족해했다. 궁으로 돌아와서는 오직 한 곳이란 의미의 뚜이추(都一处)라는 편액을 써서 보냈다. 이 사액 현판을 달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며 뚜이추는 유명해지기 시작하였고 술과 요리도 다양해져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짜랄(大栅栏儿) 거리로 들어서면, 중의약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동인당(同仁堂)이 있다. 해외여행자유화와 1992년 한중수교가 이루어지며 초기 여행객들은 중국에 왔다갈 때 우황청심환을 비롯한 이 동인당 제품 한두 가지 안 사가지고 간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연행단이 경비로 가져간 물품 중에 비단, 은, 인삼과 함께 우황청심환이 있었다.
연암도 중국인과 교류를 할 때나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곧잘 우황청심환을 그들에게 줬으며, 심지어 중국인들이 요구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 우리 조선의 우황청심환 품질이 더 뛰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동인당은 강희8년(1669년)에 창업하여 옹정원년(1723년)부터 황실에 약을 제공하기 시작해 무려 8명의 황제, 188년간 황실에서 사용하며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중의약의 대표가 되었다. "동수인덕 제세양생(同修仁德 濟世養生)", 인과 덕을 함께 배양하여, 세상을 질병에서 구하고 건강을 지킨다는 것이 동인당의 이념이다.
지인들에게 선물도 살 겸해서 동인당에 들어갔다. 구역별로 나뉘어져 있는 진열대를 둘러보다 제일 만만한 우황청심환을 사기로 했다. 30년 전 중국에 처음 갔을 때 샀던 익숙한 그 디자인의 6알들이 한 통은 60위엔인데, 그 후 새로 나온 10알들이 한 통의 가격은 180위엔이다. 대답이야 뻔하겠지만 그래도 물었다. 역시 대답은 10알들이는 품질이 훨씬 좋다고 한다.
▲뚜이추 입구에 1738년 개업이라고 새겨놓았다. 거의 300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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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물건 사듯이 바로 구입할 수가 없다. 구매의향서를 주면서 옆 건물 5번 방에 갔다 오라고 한다. 커튼을 젖히고 들어가니 흰색가운을 입은 60대 초반의 의사(?)가 맞은편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그리고는 누가, 왜, 나이는 등 간단한 질문을 하고 처방전을 적어준다. 그 종이를 들고 다시 돌아와 판매대 아가씨에게 건네면 이제는 계산서를 주면서 뒤쪽 한 편에 있는 창구에 가서 돈을 지불하고 영수증을 가져오면 그제야 약을 받을 수가 있다.
▲동인당 중의약의 대명사로 우황청심환의 원조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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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당 우측에 있는 건물은 따관러우잉청(大观楼影城) 1905년 '펑타이(丰泰)'사진관을 운영하던 임경태(任庆泰)가 중국인이 만든 최초의 영화 <딩쥔샨>(定军山)을 상영하여 '중국영화 발상지'로 알려진 곳이다. 또 맞은편에는 톈진만두점 꼬우부리(狗不理)가 있고, 그 외에도 장이위엔찻집(张一元茶庄), 치엔먼 큰 길가의 라오서찻집(老舍茶馆儿)에서는 경극과 만담을 즐길 수 있다.
여기를 돌아다니다 좀 고풍스럽다싶어 들어가면 몇 백 년이다. 왜 우리는 50년 된 집을 찾기도 어려울까? 부럽기도 하지만 괜히 샘이 난다. 오래 되면 문화도 되지만 그것이 바로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따짜랄 골목에서 서쪽으로 관통하면 연행단이 반드시 들렀다는 유리창(琉璃廠)이 나온다.
▲대관루 중국 영화의 발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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