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차 한 잔을 마시고 있다.
서인희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 번도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나 본 적이 없이 자란 저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계약직 교직원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계약이 종료되던 해에 같은 대학에서 만난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향이 지방도시라는 것이 그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습니다. 스물일곱의 저는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라고 생각했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못해 처절했습니다. 아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 도시, 익숙한 공간이 한 곳도 없는 도시가 마치 투명한 결계가 쳐진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학연과 지연으로 끈끈하게 연결된 관계나 마음을 깊이 나눈 친구는 고사하고 그 흔한 지인조차 한명도 없다는 것은 무척 가혹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직장생활 2년차 사회초년생의 경력은 단절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우울감이 짙어졌고, 술을 마시는 날이 늘더니 어느 순간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상태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참 뻔한 이야기지요. 평생 치열하게 살아온 덕에 미술심리치료사 자격증도 취득하고, 교습소도 시작하며 사회 속 내 자리를 만들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혼자 운영하던 작은 교습소는 출산을 앞두고서 정리할 수 밖에 없더군요. 또 다시 노력은 제자리로 돌아왔고, 육아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육아는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필요 없는 것 같은 이 사회에서 나 없으면 안 되는 생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기쁘게 하던지요. 다만, 결혼 이후에 석사와 박사 과정을 쉼없이 밟아가는 남편을 보며 어느 순간 우울해지고 갈수록 그 빈도와 강도는 심해졌습니다. 내가 너무 아까워졌습니다.
견딜 수 없어서 남편에게 토로한 날, 그의 답변은 강렬했습니다.
"생각해보자. 이 지역에서 나고 자라지도 않았고, 학교를 다닌 적도 없고, 결혼을 했고 갓난아이가 있는데 또 아이를 가질 가능성도 있는 서른이 넘은 여자를 고용할 회사가 있을까? 나라면 너를 뽑기 어려울 것 같아. 너라면 어떨 것 같니?"
냉정한 말이었지만, 모두 공감되는 현실이었습니다.
오랜 대화 끝에 대학원에 진학을 하기로 하고, 다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3시간씩 자며 공부와 살림, 육아를 했지요. 내 관계를 만들어가고 내 고민을 깊게 하는 일은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이 지역에 제 자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일로 연결이 되더군요.
2014년, 결혼이주 5년 만에 처음으로 사회적 자리가 주어졌습니다. 제 일은 공부, 일, 육아, 살림으로 늘어났습니다. 저는 다음 일로 연결되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결코 끼어들 수 없는 지역 사람들의 관계망을 넘어서려면 매순간 능력을 증명해야 했고, 남들보다 몇 배는 열심히 일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7년의 시간 동안 계약직 프리랜서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공공 영역의 정규직 직원으로 제 자리는 달라졌습니다.
그러는 동안 회사에서의 사고로 PTSD와 중증도 우울증, 공황장애를 얻기도 했습니다. 산재로 승인받을 만큼 분명하고 심각한 일이었지만 겨우겨우 갖게 된 그 자리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흔을 앞둔 시점 공황장애의 재발은 모든 것을 멈추게 했습니다.
더이상 조급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