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어울려 먹는 게 얼마나 좋아. 덜 적적하고."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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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9일 안남면 연주리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이 먹은 것
쌀밥, 뼛국, 청국장, 땅콩멸치볶음, 김 무침, 김치, 소시지 구이, 그리고 함께 먹는 기쁨
오랜만에 안남면 연주리 마을회관 주방이 시끌벅적하다. 창가 가스레인지 위에선 뼛국과 청국장이 끓어오르고 맞은 편 빨간 밥솥은 하얀 김을 뿜으며 구수한 냄새를 퍼뜨린다. 싱크대 한편에 기대선 김정순(81)씨는 땅콩멸치볶음과 김치를 접시에 나눠 담느라 분주하다. 대한노인회가 지원하는 경로당 급식 도우미 활동이 재개된 지난 1월 19일 늦은 오후의 장면이다.
이날 점심을 먹은 후 일찌감치 마을회관을 찾은 염선순(82)씨는 오랜만에 둘러앉아 함께 수저를 뜰 생각에 괜히 신이 난다. 평소 약을 챙겨 먹느라 혼자서도 세 끼를 꼬박꼬박 잘 챙겨 먹는 그이지만 누구 말마따나 역시 '다른 사람이 차려주는 밥이 제일 맛있는' 걸까.
"그렇지, 우리야 뭐 누가 챙겨주는 게 제일 좋지(웃음). 아니, 꼭 그게 아니어도 같이 어울려 먹는 게 얼마나 좋아. 덜 적적하고. 젊은이들이야 알아서들 잘 먹겠지만 우리가 어디 그런가. 별거 없어도, 국 하나만 있어도 서로 챙겨주면 좋지."
대한노인회 지원 경로당 급식 도우미 활동은 월 10회 진행되지만 이 사업이 재개된 이번 1월에는 설 연휴 등으로 19일, 20일, 25일, 26일 4회만 실시됐다. 김정순씨와 함께 연주리 회관 급식 도우미로 활동하는 곽계환(86)씨는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함께 먹는 식사 준비에 절로 흥이 난다.
"평소에는 장(국), 시래기, 김, 김치 정도만 놓고 먹어. 오늘은 올해 처음 모이는 거라 뼛국에 청국장에 이것저것 꺼낸 거여."
그의 말처럼, 언뜻 보기에도 반찬 가짓수가 꽤 많다. 손바닥만 한 접시마다 땅콩멸치볶음, 고추부각, 김 무침과 소시지 구이까지 담겼다. 곽계환씨와 김정순씨가 집에서 따로 만들어 온 반찬들도 있다니, 이것만 봐도 '함께 먹는 밥'을 향한 그간의 그리움, 재개된 '함께 먹는 밥상'에 대한 반가움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월 10회로 제한된 급식 지원이라는 점이다.
"이건 한 달에 열흘 하고 나면 끝이니까. 나머지 날들도 같이 먹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 혼자 있으면 솔직히 굳이 뭐 하러 챙겨먹나 싶거든? 근데 같이 있으면 '저 사람도 먹을 거니 더 챙기자' 싶은 마음이 생긴단 말이여. 하루 한 끼라도 그렇게 해먹으면 얼마나 좋겠어."
급식 도우미 김정순씨가 한 가지 바람을 전하곤 다시 주방으로 향한다. 그사이 다른 주민들이 상을 펴고 반찬 그릇을 나르며 어느새 푸짐한 한 상을 뚝딱 차려낸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밥과 국을 놓고 둘러앉은 밥상 위로 조용한 수저질과 잔잔한 말소리가 오간다.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한 저녁의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