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자취가 남아있는 바투미 피아짜(Piazza)
이상기
학교에서 독서클럽에 가담해 체르니셰프스키(Nikolay Chernyshevsky)의 혁명소설 <이루어져야 하는 것>, 마르크스(Karl Marx)의 <자본론> 같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마르크스주의에 빠지게 되었고, 차르 체제의 러시아제국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지아 사회민주당인 <제3그룹(Mesame Dasi)>에 참여하게 되었다. 스탈린은 1899년 4월 신학교를 떠났고, 10월부터 티플리스 기상관측소 직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혁명을 위한 교육활동을 하면서 많은 지지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1900년 노동절에는 노동자들을 동원해 파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때부터 제국 비밀경찰은 스탈린을 요주의인물로 주목했고, 1901년 3월에는 그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졌다.
그는 지하로 잠적해 1901년 노동절 데모도 주도해 3,000명의 데모대가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1901년 11월에는 마르크스주의 정당인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티플리스 위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11월에 흑해의 항구도시 바투미로 여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선동적인 화술이 노동당원들의 분열을 조장해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는 로트쉴트(Rothschild) 정유저장고에 취직해 두 번이나 노동자 파업을 일으켰다. 그 후 노동자 파업을 주도한 지도부가 체포되자, 스탈린은 대규모의 데모에 주도적으로 참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