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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역 3-1 출구, 이 표지판을 지나치지 마세요

[관람기] 도심 속에서 공평동 옛터를 만날 수 있는 공평도시유적전시관

등록 2024.05.30 10:50수정 2024.06.1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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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역 3-1 출구로 나와 길을 걷다 특이한 조형물을 발견했다. 조형물이 꼭 UFO처럼 생겼다. 그런데 조형물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게 있었다. 바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라는 표지판이었다. 
 
a 공평도시유적전시관 표지판 길을 걷다 UFO를 닮은 조형물과 전시관 표지판을 발견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표지판 길을 걷다 UFO를 닮은 조형물과 전시관 표지판을 발견했다. ⓒ 전영선

 
주변에 전시관이 있는 모양이다 싶었는데 출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표석인 건가 생각하고 가던 걸음을 다시 걸었다. 그런데 좀 더 나아가니 그제야 전시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이곳은 센트로폴리스 빌딩을 지을 당시 서울시가 기부채납을 받아 2018년 9월 개관한 서울역사박물관 분관이었다. 개관한 지 6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말았다. 코로나 영향 탓도 있을 테지만 그동안 이런 곳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목적지를 향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전시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a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이곳은 서울역사박물관 분관이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이곳은 서울역사박물관 분관이다. ⓒ 전영선

 
전시관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지하로 내려가 자동문을 열고 박물관으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실내가 넓어 깜짝 놀랐다.
 
a 공평도시유적전시관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센트로폴리스 빌딩 지하 1층에 위치해 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센트로폴리스 빌딩 지하 1층에 위치해 있다. ⓒ 전영선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도시 개발에서 발굴되는 매장 문화재를 원위치에 보존하는 조건으로 건물 용적률을 높여주는 '공평동 룰'에 따라 조성된 곳이라고 한다. 이는  개발과 보존의 상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고. 


공평동 일대는 1978년 '공평구역 도심재개발지구'로 총 19개 지구가 지정되었고 2010년까지 6개 지구의 재개발사업이 완료되었다. 2014~2015년 재개발사업 시행에 따른 문화재 발굴조사가 제1구, 제2구, 제4지구에서 진행되었는데 조사 결과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4개 시대별 문화층에서 건물지와 도로 등 유구와 다양한 유물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그중 유구의 상태가 가장 온전히 남아있는 IV 문화층(16~17세기) 유구를 전시관 내부로 이전하여 복원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인 것이다.
 
a 전동 큰 집 전동 큰 집을 복원한 축소 모형도(앞)와 실제 발굴 터(뒤).

전동 큰 집 전동 큰 집을 복원한 축소 모형도(앞)와 실제 발굴 터(뒤). ⓒ 전영선

   
a 이문안길 '전동 큰 집'과 '골목길 ㅁ자 집'을 지나면 나타나는 이문안길. 끝까지 가면 조선전기 한옥의 발전과정을 엿볼 수 있는 '이문안길 작은 집'이 나온다.

이문안길 '전동 큰 집'과 '골목길 ㅁ자 집'을 지나면 나타나는 이문안길. 끝까지 가면 조선전기 한옥의 발전과정을 엿볼 수 있는 '이문안길 작은 집'이 나온다. ⓒ 전영선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것은 덕수궁이 지어지기 이전 사대문 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목판으로 만든 지도였다. 지도에서 청계천과 북악산, 인왕산, 낙산, 그리고 사대문 안 문화재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a 목각 수선총도 조선후기 서울지도로, 덕수궁이 나타나 있지 않은 게 특징이다. 이 때문에 제작연도를 덕수궁 건립 이전으로 추정한다.

목각 수선총도 조선후기 서울지도로, 덕수궁이 나타나 있지 않은 게 특징이다. 이 때문에 제작연도를 덕수궁 건립 이전으로 추정한다. ⓒ 전영선


전시관에는 곳곳에 흥미를 끌 만한 체험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기와를 올려보는 코너가 있는가 하면 벽돌을 쌓아보는 코너가 있고, 고지도 위에 지금 남아있는 조선시대 건물을 올려볼 수 있는 코너도 있었다. 집터를 VR로 감상할 수 있는 코너도 있었다. 
 
a VR 체험코너 '골목길 ㅁ자 집터'를 VR로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다

VR 체험코너 '골목길 ㅁ자 집터'를 VR로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다 ⓒ 전영선

 
한복을 입어볼 수 있는 코너도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순라꾼(야간 순찰대원), 왈짜(시전을 주름잡던 사람), 전기수(소설을 낭독해 주는 사람) 입상과 주막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a 한복을 입어볼 수 있는 체험코너 한복도 입어보고 순라꾼, 왈짜, 손기수 입상도 구경할 수 있다.

한복을 입어볼 수 있는 체험코너 한복도 입어보고 순라꾼, 왈짜, 손기수 입상도 구경할 수 있다. ⓒ 전영선


체험코너 중 특히 눈길을 끄는 코너는 순라꾼 체험코너였다. 통금이 되면 순찰을 다니던 순라꾼이 들고 다니는 조족등(손전등)을 비춰 통행금지를 어긴 사람들을 찾아내는 놀이였다. 이 코너는 조족등을 켜볼 수 있어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a 순라꾼 일명 야경꾼이라고도 불리는 순라꾼은 손전등 역할을 하는 조족등을 들고 한양 도성의 순찰을 돌았다.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밤 10시경 순찰을 시작해서 새벽 4시경 해제를 알리는 종루 종소리가 울리면 순찰을 종료했다.

순라꾼 일명 야경꾼이라고도 불리는 순라꾼은 손전등 역할을 하는 조족등을 들고 한양 도성의 순찰을 돌았다.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밤 10시경 순찰을 시작해서 새벽 4시경 해제를 알리는 종루 종소리가 울리면 순찰을 종료했다. ⓒ 전영선

  
a 순라꾼 체험코너 통행금지를 어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조족등을 비춰 찾아볼 수 있다.

순라꾼 체험코너 통행금지를 어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조족등을 비춰 찾아볼 수 있다. ⓒ 전영선

 
이곳에서 몇몇 생소한 단어를 접했다. 

우선, 견평방. 이는 지명을 일컫는 단어로 '방'은 지금의 '동'을 일컫는 말이었다. 견평방은 조선시대 초기부터 있던 한성부 중부 8방 중의 하나로서, 지금의 종로1 · 2가, 견지동, 공평동, 수송동, 인사동, 청진동 각 일부를 일컫는다.

다음으로 적심석, 박석, 고맥이. 이것은 모두 건축 용어였다. 적심석은 초석과 함께 기둥의 기초가 되는 돌의 이름이고, 박석은 얇고 넓적하게 뜬 돌의 이름이었다. 고맥이는 벽의 기초가 되는 돌의 이름이었다.
 
a 초석과 박석 기둥 밑에 받치는 초석과 벽돌 역할을 하는 박석. 박석은 얇게 떠 대궐이나 왕릉 등에 깔아 통행에 편리함을 주거나 지하로 침입할 변고에 대비하는 구실을 했다고 한다.

초석과 박석 기둥 밑에 받치는 초석과 벽돌 역할을 하는 박석. 박석은 얇게 떠 대궐이나 왕릉 등에 깔아 통행에 편리함을 주거나 지하로 침입할 변고에 대비하는 구실을 했다고 한다. ⓒ 전영선

  
a 고맥이 벽의 기초가 되는 돌을 일컫는다.

고맥이 벽의 기초가 되는 돌을 일컫는다. ⓒ 전영선

 
'명문자기'라는 단어도 낯설었다. '명문(銘文)'은 글자나 부호를 일컫는 말이었다. 분청자의 명문은 內贍(내섬), 內子(내자), 慶州(경주) 등으로 그릇의 소비처와 생산지를 가리킨다고 한다. 백자의 굽 안쪽에는 天(천), 地(지), 玄(현), 黃(황), 左(좌), 右(우), 別(별) 등의 명문이 새겨진 것이 많은데 이는 조선 전기 관요에서 제작된 것임을 의미한다고 한다.

공평동 유적에서는 백자의 굽에 먹으로 글씨나 부호를 표시한 묵서 백자들도 다수 출토되었다는데 주로 쟈근, 막비, 은비, 덕향, 귀금, 막더기 등과 같은 여성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한글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그릇을 이웃에게 빌려주고 되돌려 받기 위해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a 명문자기 '명문(銘文)'은 글자나 부호를 일컫는 말로, 분청자의 명문은 그릇의 소비처와 생산지를, 백자의 굽 안쪽에 새겨진 명문은 조선 전기 관요에서 제작된 것임을 의미한다. 공평동 유적에서는 명문을 먹으로 쓴 묵서 백자들도 다수 출토되었는데 이는 그릇을 이웃에게 빌려주고 되돌려 받기 위해 아낙들이 자신의 이름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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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자기 '명문(銘文)'은 글자나 부호를 일컫는 말로, 분청자의 명문은 그릇의 소비처와 생산지를, 백자의 굽 안쪽에 새겨진 명문은 조선 전기 관요에서 제작된 것임을 의미한다. 공평동 유적에서는 명문을 먹으로 쓴 묵서 백자들도 다수 출토되었는데 이는 그릇을 이웃에게 빌려주고 되돌려 받기 위해 아낙들이 자신의 이름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 ⓒ 전영선

 
'진단구'라는 단어도 생소했다. 진단구는 건물을 지을 때 건물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지신에게 기원하기 위해 땅에 묻는 물품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뚜껑이 있는 항아리가 묻혔는데, 현재까지는 항아리 안에서 별다른 내용물이 확인된 바가 없다고 한다. 공평동 유적에서 발굴된 진단구는 외면에 철화안료로 문양을 그린 17세기 백자 항아리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a 진단구 건물을 지을 때 건물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지신에게 기원하기 위해 땅에 묻는 물품.

진단구 건물을 지을 때 건물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지신에게 기원하기 위해 땅에 묻는 물품. ⓒ 전영선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는 다양한 출토 유물도 전시되어 있었다. 백자로 만든 도장과 장기알, 청동으로 만든 제기가 눈길을 끌었다.

공평동 유적의 중앙부에서는 폭 210~305cm 내외의 골목길이 3곳 확인되었다는데 이 길을 전동 골목에 난 길이라 하여 '전동 골목길'로 불렀다고 한다. 공평동도시유적전시관에서는 이 길도 복원해 놓았다. 
 
a 전동 골목길 표지판 앞으로 길게 뻗어 있는 길이 '전동 골목길'이다.

전동 골목길 표지판 앞으로 길게 뻗어 있는 길이 '전동 골목길'이다. ⓒ 전영선

 
전동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그곳에 둥지를 틀었을 사람들을 상상했다. 예나 지금이나 별다르지 않았을 풍경이 떠올랐다.

길을 쭉 따라 걷다 창 밖으로 에스컬레이터를 오르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남자를 보자 순식간에 시간이동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접선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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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타임머신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순간.

타임머신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순간. ⓒ 전영선

 
마지막 전시 구역에 이르니 종로구의 옛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해 놓은 공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책장처럼 생긴 전시대에는 예전 종로의 모습이 사진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다소 평면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큰 화면은 렌티큘러였다. 왼쪽,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종로의 옛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변화하는 장면을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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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의 어제와 오늘 ⓒ 전영선


전시관을 나오며 뿌듯함을 느꼈다. 이곳을 그냥 지나치면 어쩔 뻔했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나 장소를 만나면 언제나 선물로 느낀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도 그런 곳 중 하나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선물 같은 이곳을 방문했으면 좋겠다.

관람 정보 : 관람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입장마감은 5시 30분), 월요일은 휴무, 관람료는 무료다. 하루에 총 세 번(11시, 14시, 16시) 해설이 진행되므로 꼼꼼하게 관람하고 싶은 사람은 해설을 예약해 관람해도 좋겠다. 서울특별시 공공서비스예약 (seoul.go.kr).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종로역 #공평동룰 #개발과보존의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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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하고 아름다운 나무 같은 사람이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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