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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함 뒤에 숨어 있는 그림자를 찾는 '멋진 사회학'

[서평] 오찬호가 쓴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을 읽고

등록 2024.08.02 18:30수정 2024.08.0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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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세상 멎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 표지 오찬호가 쓴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2024, 북트리거) 표지이다.

<세상 멎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 표지 오찬호가 쓴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2024, 북트리거) 표지이다. ⓒ 북트리거

 
"사물의 편안함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생각도 편하게만 한다." (책, 35쪽)
 
최저 기온이 30도다. 몇 날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어딜 가나 에어컨이 있다. 시원한 공기 속에서 집-학교-카페를 옮겨 다니며 노트북 모니터만 쳐다보았으니 에어컨 없는 삶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제부터 에어컨 실외기가 이상해졌다. 수리 기사님 방문 예약 날짜는 아직 5일이 남았다. 그제서야 '대규모 물류센터에 에어컨 0'이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김세영 MBC 기자, 2024년 7월 28일 보도, <대규모 물류센터에 에어컨 '0'..'창고'라서 괜찮다?). 다행히 아직은 온도 설정을 27도 이상으로 하면 괜찮아 보인다.


한달 전 쯤, '초코파이'에 관한 충격적 사실을 알게 됐다. 초코파이' 속 하얗고 달콤한 먹을거리 정체가 '마시멜로'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40여 년 전부터 먹기 시작했고, 요즘도 가끔 먹는 과자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마시멜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영어 단어만 찾아봤어도, 포장지를 한 번만 봤더라도 알았을 텐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생크림'이라고 확신했다. '마시멜로'라는 존재를 알고 난 뒤에도, 왜인지 의심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 마시멜로라는 존재는 '달콤한 반죽(marshmallow)'이 아니었다. 먹기엔 너무 달아 가까이할 수 없는 원기둥 모양의 무엇이었다. 편향은 너무 확고해서 무척 자연스러웠다. 내게 충격을 준 건 그 '자연스러움'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고 있는지', '어떻게 알았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어떻게 그것을 모를 수 있느냐?'고 내게 되물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가상 세계에 갇힌 느낌이었다. 당연하지 않은 현실을 궁금해하지도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

오찬호가 쓴 책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은 우리 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자연스러움을 파헤친다. 너무도 익숙해서 많은 사람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 편리함에 길이 들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됐는지, 어떻게 우리 곁에 오게 됐는지, 그늘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지 않는 것들을 하나하나 낯설고 깊게 들여다본다.


수세식 변기, 피임약, 화장품, 플라스틱, 진통제, CCTV, 스마트폰, 프랜차이즈, 아파트, 헬스장, 에어컨, 냉장고, 원자력발전, 플랫폼 노동, 비행기. 우리에게 익숙한, 쉽게 만나는 물건, 기술, 현상이다. 책은 각각을 소재로 해 모두 15장으로 이루어졌다.

사소해 보이고,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 있으며, 편리한 것들이다. 이것들 없이 우리 삶이 가능하기는 할지 자신할 수 없다. 책을 쓴 이는 이것들의 기원을 찾고,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숫자가 포함된 근거들을 들이댄다. '이런데도 괜찮은 거냐고?'고 묻고 또 묻는 것 같다.
 
"편리한 현재에 대한 질문과 고민은 기술 발전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성찰하고 개선하자는 의도일 뿐이다. … 이런 문제의식으로 시작된 책이다. … '친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사회학의 시선을 입혔다. …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의 빈도와 강도, 그리고 농도에 따라 미래의 모습도 달라진다." (책, 9~10쪽)
 
책은 익숙함, 자연스러움, 편리함 뒤에 숨어 있는 그림자를 집요하게 드러낸다. 그림자는 바로 차별, 혐오, 불평등이다. 맑은 날, 그림자가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이들. 흐린 날과 어둠이 내린 날, 그림자는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들 모두를 향해 그림자는 여름날 시원한 그늘이 아님을 보여 준다.


그렇다고 핸드폰을 버리고 에어컨 없이 생활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편리함'에 빠져 놓치고 있는 것들, 하지만 반드시 생각해야 할 부분을 살펴보자는 제안이다. 십년 훨씬 넘게 사용한 에어컨이 고장나는 일은 예상 가능하다. 그런데도 내게 문제가 생길 때까지는 괜찮을 거라고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노력한 결과 삶 속에서 누리게 된 익숙한 도구와 기술은 언젠가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내가 직접 느끼지 못하더라도 이미 수많은 사회문제를 발생시켰다.
 
"사람들은 수백 년간 끙끙거렸던 고민을 해결하면서, 수천 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을 고민거리를 만들어 낸다. 더 잘사는 시스템과 더 못사는 시스템을 동시에 구축한다. 편리해지면서 불편해졌는데, 편리해졌으니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자유가 넘실거리길 희망하면서, 그 자유를 가장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요소인 불평등이 넘실거리는 건 둔감하다. 이 복잡함과 미묘함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집필 과정 내내 끙끙거렸다." (책, 310쪽)
 
'로켓 배송'으로 도착한 택배를 누가 어떻게 전달했는지, Chat-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빠르게 대답하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동력과 에너지가 투입되는지, 헬스장에서 체지방을 불태우더라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음을 잊지 말고 고민하자는 제안이다(책, 209~210쪽, 284쪽).

내가 누리는 편리함 속에 담겨 있는 땀과 눈물을 만드는 사회를 살펴보자는 말이다.
 
a 하늘 위를 날고 있는 비행기들 8월 1일 오후 9시경 한국과 주변 국가 하늘 위를 날고 있는 비행기들 모습이다.

하늘 위를 날고 있는 비행기들 8월 1일 오후 9시경 한국과 주변 국가 하늘 위를 날고 있는 비행기들 모습이다. ⓒ flightradar24

 
책을 읽고 실시간으로 비행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음을 처음 알았다(https://www.flightradar24.com). 위 사진은 8월 1일 오후 9시경 갈무리한 한국, 중국과 일본 일부 지역 하늘 위에 있던 비행기들이다.

그냥 내가 사는 하늘 위를 쳐다봐서는 이렇게 많은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인공위성을 통해 하늘을 내려다보듯, 한 걸음 떨어져서 우리 삶을 살펴본다면,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 수 있다.

글쓴이는 흔히 접하는 주변 사물과 현상을 그렇게 보는 것이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혁신이란 말의 아름다움 때문에, 좋은 사회를 위해서 반드시 짚어야 할 지점을 은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책, 290쪽)
 
편리함과 자유를 누구는 누리는데, 다른 사람은 접근조차 어렵다면, 그건 민주적인 사회가 아니다. 책은 우리가 알고 있지만 평소에 잊거나 외면하는 사실들이 무엇인지 짚는다.

최소한 내가 누리는 편리함과 익숙함이 당연한 '나의 권리'라고 주장하며, 일상에서 만나는 나와 똑같이 소중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며 '선을 넘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 -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져야 할 질문

오찬호 (지은이),
북트리거, 2024


#오찬호 #세상멋져보이는것들의사회학 #북트리거 #편리함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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