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의 대안, '햇빛연금'을 받는 여흘리 주민들에게서 찾다

등록 2024.08.08 09:17수정 2024.08.0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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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4일부터 30일까지 6일간 18명의 '2024 햇빛바람농활' 대원들이 햇빛연금이 있는 전남 신안군 안좌면 여흘리를 찾았다. 햇빛바람농활은 기본소득당 전남도당과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가 공동으로 주관·주최한 농촌연대활동(농활)으로, 햇빛연금을 시행 중인 전남 신안군의 주민들과 직접 만나고 농가 일손을 도우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고민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참가 속에 진행되었다.

신안군은 2018년 제정된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공유 등에 관한 조례'를 통해 재생에너지 발전 수익을 주민 모두에게 나누고 있는 전국 유일의 지방자치단체이다. 태양광 발전 수익을 주민과 나누는 햇빛연금은 안좌도, 지도, 사옥도 주민 등 군민 45%를 대상으로 시행 중이다.

농활대원들은 여흘리의 주민들을 직접 만나 2~3회에 걸친 구술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방소멸과 기후위기, 햇빛연금을 기사로만 접하는 것을 넘어, 주민들의 삶과 생각을 직접 듣고 이해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여러 팀으로 나눈 농활대원들은 각 팀이 맡은 구역에 있는 주민들의 집에 찾아가 인터뷰 요청을 드리고, 기사 기고와 녹음 허락을 받은 뒤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를 통해 농활대원들은 여흘리 주민들의 삶, 여흘리라는 마을이 처한 상황, 햇빛연금에 대한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들을 수 있었다.

 
a  햇빛바람농활 대원들이 신안 여흘리에서 농가 일손을 돕는 모습

햇빛바람농활 대원들이 신안 여흘리에서 농가 일손을 돕는 모습 ⓒ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

 
여흘리에서 만난 사람들

농활대원들이 처음으로 만난 마을 주민은,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한 집에 거주하고 있는 이미단씨(73)였다. 많은 마을 주민들이 밭일을 하기 위해 집을 비운 반면, 이미단씨는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내내 집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올해로 73세인 이미단씨는 스물세 살에 결혼하면서 여흘리에 왔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여흘리에 살았다. 이미단씨는 과거 텃밭 농사를 지었는데, 70세에 허리를 다친 이후로는 밭일을 쉬고 있다. 배우자와 사별 후 혼자 살고 있는 이미단씨는, 현재 이천에 거주하고 있는 아들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다니고 있다. 신안군 내에 있는 병원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이미단씨의 아들은 일정한 주기로 이미단씨를 목포에 있는 병원에 데려다 주러 온다고 한다.

인터뷰 도중, 마을 주민 세 명이 이미단씨의 집에 놀러 왔다. 밭일을 따로 하고 있지 않는 이미단씨는 평소 자신의 집이나 마을 경로당에서 마을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마을 경로당은 여흘리 주민들의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다음으로는 마을회관과는 조금 떨어져 있는, 마을 안쪽에 있는 집을 찾아갔다. 마당에서 고양이 세 마리가 먼저 농활대원들을 반겨준 이 집에는 천필준씨가 살고 있었다. 천필준씨는 이전에 해남에 거주하다가, 염전 일을 하러 30년 전에 신안에 왔다. 10년 전 배우자와 사별 후 혼자 살고 있는 천필준씨는 현재는 건강 문제로 일을 하고 있지 않고, 평일 아침마다 집에 방문하는 요양사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몸이 안 좋아 거동이 불편한 천필준씨는 평소 다른 주민들처럼 마을 경로당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 집에서 라디오로 노래를 들으며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듯 보였다.
 
a  햇빛바람농활 대원들이 천필준씨의 집을 찾아 인터뷰하는 모습

햇빛바람농활 대원들이 천필준씨의 집을 찾아 인터뷰하는 모습 ⓒ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

 
소멸 위기에 직면한 농촌의 현실

이미단씨와 천필준씨처럼 이곳 여흘리 주민들은 대부분 결혼 이후부터 계속 마을에 몇십 년간 살아온 이들이다. 이들은 지역이 쇠퇴하는 것을 직접 보고 느끼는 세대이기도 하다. 주민들이 바라보기에 현재 여흘리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 마을이 소멸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이미단씨는 "옛날에 농사를 많이 지을 때는 사람들도 많았고 아이도 많이 낳았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커서 도시로 가 버리니까 아이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마을에서 안 보인 지가 꽤 오래되었다"며 여흘리가 소멸 위기에 처하게 된 과정과 그런 상황이 된 지가 꽤 오래되었다는 것을 들려주었다. "사람들도 많이 죽었다. 할아버지들은 다 죽고 우리끼리(할머니들끼리) 논다"고도 했다.


건강이 악화되어 더 이상 일하기 힘든 농촌의 몇몇 노인들이 인력사무소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고용한다는 말은 농촌 인구 문제를 더욱 체감하도록 해주었다. 천필준씨 역시 "마을에서 사람이 많이 빠져나갔다"고 말한다. 거동이 불편하여 바깥에 잘 나가지 않는다는 천필준씨도 여흘리의 인구 감소 문제를 체감하고 있었을 정도로, 여흘리의 인구 감소 문제는 심각한 듯 보인다.

여흘리가 처한 또다른 문제는 병원 등 인프라의 부족이었다. 이미단씨와 마을 주민들은 허리가 아프거나, 넘어져서 골반에 금이 가거나, 머리 수술을 하는 등 몸이 불편하다고 한다. 인터뷰 이전이던 농활 첫날, 여흘리로 이동하던 길에 농활대원들은 병원을 찾아볼 수 없어 대부분 고령자인 마을 주민들이 병원은 어떻게 다니는지 궁금하던 참이었다. 이에 대해 이미단씨는 "신안 안에는 조그만 병원밖에 없다. 거기서는 내 병을 안 다뤄서 진료를 보려면 목포까지 나가야 한다. 버스가 2시간에 한 번 정도 오는데 기운이 없어서 멀미를 많이 하는 것 빼고는 불편하지 않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것이고 아들이 차로 데려다주기도 한다"라며 병원 접근성이 낮은 것에 해탈한 태도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미단씨와 친분이 있는 정경자씨는 "몸도 좋지 않은데 버스를 타고 목포까지 가려니 멀미도 하고 힘들다. 신안에 병원이 더 생기면 좋겠다"라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천필준씨 역시 "버스와 택시를 모두 이용하여 목포에 있는 병원에 간다. 여기에서 목포터미널까지 버스로 1시간 반이 걸린다. 몸이 좋지 않아 목포터미널에서 병원까지 택시를 또 이용해야 한다"는 사정을 설명하며 "병원이 가까운 곳에 더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농촌은 도시보다 고령화되어 있으며, 가까운 곳에 병원이 필요한 사람들의 비율이 도시보다 높다. 병원과 같은 인프라의 확충이 시급하다.

햇빛연금이 시행되기까지

농활대원들이 찾은 신안은 국내 최대의 천일염 생산지로, 바람이 강하고 일조량이 많아 일찍부터 신재생에너지 발전지역을 조성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로 평가받은 곳이었다. 해마다 폐염전이 늘어나고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신안군은 지역의 경제성장을 위한 새로운 동력으로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을 구상했다.

2018년 박우량 신안 군수가 3번째로 재임하던 당시, 햇빛과 바람이 좋기로 유명한 신안군에는 이미 신재생에너지 개발 사업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러나 기존 방식에서는 사업자가 수익을 독점하였으며, 주민들에게는 일회성으로 피해보상금이 지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역 주민의 자산인 햇빛과 바람에서 창출되는 수익을 민간사업자가 독점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었다. 햇빛연금은 지역의 것은 지역 주민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햇빛연금이 처음부터 쉽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주민들은 주로 태양광 발전소가 인체와 축산에 해를 끼친다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 발전소가 파산하는 날에는 주민들이 책임을 떠안게 된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미단씨도 처음에는 "암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길래 태양광 발전소 설립을 반대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태양광의 전자파가 미약하다는 것은 입증되었다고 한다. 또 협동조합 1회비 단돈 만 원을 제외하고는 주민들에게 어떠한 부담도 없다. 군수와 공무원들은 주민들과 대화해 주민들에게 햇빛연금 제도를 이해시키고,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 개발 이익을 주민과 나누어야 한다는 점에서 민간사업자들의 집단 반발도 거셌다. 그러나 사업자가 이익공유제를 명시하면 군청에서 바로 허가를 내주기 때문에, 허가를 받기까지의 행정 비용과 주민들과의 갈등에서 소요되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익공유제가 사업자에게도 이득이 되는 것이었다.

햇빛연금을 받아보니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햇빛연금은 현재는 완전히 제도로서 정착하게 되었다. 현재 안좌도·자라도를 비롯한 5개 섬 지역 주민 9648명이 햇빛연금을 받고 있으며 누적 지급액은 128억 원이 넘는다. 2022년 이후부터 신규사업의 경우 사업 수익의 50%는 햇빛아동수당으로 환원되어 만 18세 미만의 아동에게 주어진다. 배당금은 지역 상품권으로 지급되어, 신안군 관할구역의 모든 상점과 관공서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이미단씨는 햇빛연금을 통해 얻은 수입에 대해 "저축하기보다는 소비한다"며 "외식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천필준씨도 햇빛연금을 받으면 "마트에서 쌀도 사고 생계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햇빛연금 시행 이후 신안군의 인구가 증가하는 효과도 있었다. 2020년까지 급격하게 감소하던 신안군의 인구는 햇빛연금을 도입한 이후 감소세가 둔화하였으며, 2023년에는 인구가 소폭 증가하기도 하였다. 신안군의 인구 증가는 지방소멸이 가속하는 오늘날의 상황과 비교해 보았을 때, 이익공유제 정책이 인구유입에 효과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신안군은 태양광뿐만 아니라 해상풍력 단지를 조성하여, 햇빛연금과 바람연금을 통해 2030년까지 군민에게 1인당 월 50만 원씩 지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햇빛연금이 모두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도록

이미단씨와 천필준씨가 들려주었듯, 여흘리에는 젊은 사람이 많지 않고 일할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병원 등의 인프라도 잘 갖추어져 있지 않다. 마을 경로당을 중심으로 끈끈한 마을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으나 주민 대부분이 노년층이라는 점에서 공동체의 재생산이 어려워 보인다. 햇빛연금 도입 후 신안군의 인구가 증가했다는 소식이 반가운 이유이다.

햇빛연금은 인구 증가 효과를 불러와 지방소멸의 대안으로 자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의 생계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햇빛연금에 더해 병원과 같은 필수적인 인프라의 형성이 수반된다면, 지방에서의 삶의 질은 향상되고 지방소멸의 대응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햇빛연금 추진이 주민들의 필요에 의해서였다기보다 발전사업자가 구상한 사업에 대해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주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미단씨와 천필준씨는 "태양광으로 분기마다 나오는 돈"의 명칭이 '햇빛연금'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정경자씨는 "돈 받을 때 별 설명 듣지 못했다.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오는 것은 여전히 안 좋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태양광 발전소 설립과 햇빛연금 시행 과정에서 신안군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사업 계획 단계부터 주민 협의가 없었기에 햇빛연금에 대한 무관심과 오해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또한 신안군이 법률의 위임 없이 주민들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리를 제한하는 사항을 조례로 정해 햇빛연금을 시행했다는 감사원의 지적과 햇빛과 바람이 풍부한 천혜의 환경은 신안군만의 특성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햇빛연금을 다른 지역에서 그대로 따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한계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 개발이익을 사업자가 독점하는 것이 아닌, 주민과 나누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이 햇빛연금의 성과다. 지방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에서 인구의 증가가 실제 통계로 나타났다는 점 또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재생에너지 전환, 지방소멸 대응, 개발이익의 공유에 지역 인프라 확충과 주민 의사 반영 방식에 대한 고민이 수반될 때 더 많은 지역에 적용할 수 있는 지방소멸의 대안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a  햇빛바람농활 대원들이 마을 주민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햇빛바람농활 대원들이 마을 주민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

 
덧붙이는 글 '2024 햇빛바람농활 기본소득 구술 인터뷰' 연속 연재글입니다. 김동희(kimdh1201), 김종환(jinboksun201), 장재원(wodnjs0486) 시민기자가 함께 작성했습니다.
#농활 #햇빛연금 #신안 #기본소득 #지방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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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사회와 문화 전반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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