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산 바다 중심 위도, 황금어장은 왜 황폐어장 되었나?

"7~8년 전부터 해조류가, 3년 전부터 홍합이, 2년 전부터 망둥어가 사라졌어요."

등록 2024.08.09 14:56수정 2024.08.0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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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는 고슴도치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위도에 가서 지명을 보니 지명에 금(金)자가 많다. 위도에는 자연 마을 총 11개 리가 있다. 진리, 치도, 대리, 정금리, 시름, 깊은금, 소리, 전막리, 논금, 미영금이다. 11개 중 4개가 마을 이름에 금이 들어가 있고 작은 마을 이름도 벌금, 파장금, 석금 등이다.

위도는 우리나라 3대 파시 중 하나였는데 파시란 바다 위에서 어획물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시장을 뜻한다. 칠산 바다의 중심에 있는 위도는 조기 파시로 유명하며 위도 여객선 선착장에 파장금 지명의 유래를 설명하는 돌에 지명에 들어간 금(金)은 "돈이 몰려온다는 뜻이 있다"라고 새겨져 있다.

위도 대리마을 노인정의 벽화는 1930년대 위도 파시의 모습을 벽화로 담아놓았다. 수백 척의 배가 조기 거래를 위해 몰려든 모습이 장관이다.
 
a  1930년대위도 조기 파시 모습이 벽화로 담겨 있다. 위도 파장금에 수백 척의 배가 조기를 사고 팔기 위해 정박해 있다.

1930년대위도 조기 파시 모습이 벽화로 담겨 있다. 위도 파장금에 수백 척의 배가 조기를 사고 팔기 위해 정박해 있다. ⓒ 유준

 
칠산어장의 중심, 전북의 대표적인 황금어장의 중심이었던 위도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위도에는 어촌계가 6개 있다. 위도 본토에 4개 어촌계(대리, 진리, 치도, 벌금)가 있고 식도어촌계, 왕등도어촌계가 있다. 위도 어촌계 중 대리어촌계가 가장 크다. 우리는 위도의 어업 상황을 알기 위해 김인배 대리어촌계장과 송성은 치도어촌계장을 인터뷰했다. 또 우리는 민박집 사장님이 위도에서 낚시점과 민박집을 해온 지 27년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민박집을 운영하는 남매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인터뷰는 7월 29일, 30일 양일간 진행했다.

김인배 대리 어촌계장은 1971년 위도 출생으로 부안 수협에서 일을 하다가 18년 전에 귀어했다. 아버지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1895년 전후해 고창에서 먹고 살기 위해 위도로 왔으며 할아버지는 어업에 종사하셨고 아버지는 그물 염색을 하셨으며 9남매 중 5형제가 어업에 종사할 정도로 어업 집안이다. 귀어해서 김 양식을 하다가 힘들어서 몇 년 전에 김 양식을 줄이고 바지락 양식으로 바꿨는데 갯벌에 모래가 없고 펄이 많아져 올해는 꼬막 종패를 뿌렸다고 한다.

대리어촌계는 마을 앞 갯벌과 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에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어촌계에 도착했을 때 김인배 어촌계장은 어민 한 명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인터뷰는 김인배 어촌계장을 주로 했지만 자연스럽게 다른 어민도 인터뷰에 함께 하게 되었다. 어촌계에 도착하자 김인배 어촌계장은 창밖에 보이는 갯벌과 바다를 보면서 대리 앞 바다의 변화를 설명해 주었다.
 
a  김인배 대리어촌계장이 어촌계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인배 대리어촌계장이 어촌계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유준

 
"초등학교 전후로 한 20년은 제 기억에 고기가 너무 많았어요. 마을 앞 방파제가 저렇게 안 나갔어요. 그때는 크레인까지만 방파제가 있었거든요. 1993년 전까지만 해도 일주도로가 없을 때 여객선이 이틀에 한 번 운행했어요. 그때는 여객선이 걸린 적이 없어요. 근데 지금은 펄이 차서 방파제를 더 길게했는데도 배를 못 떼잖아요. 물이 빠지면 배가 걸려버리니까. 그리고 저기 해상풍력단지 실증 단지인데 가는 중간에 굉장히 고기가 많았어요. 그물로 고기를 많이 잡았거든요. 근데 지금 그물을 넣으면 펄밖에 안 차는 거예요. 이 주변 전체가 다 그래요.

위도 주변 전체가 그게 새만금으로 인해서 그 펄이 위도로 다 몰려오는 거예요. 그래서 위도 주변으로 많은 데는 몇 미씩 펄이 퇴적돼 있을 거예요. 제가 봤을 때 저기 깊은 바다로 가면 한 4~5m 쌓였을 거예요. 닻이나 그물을 넣어보면 옛날하고 이게 확연히 다르다는 거예요. 그리고 모래등 같은 경우에 우리 육안에 안 보여서 그러지만, 거대한 모래등이 바닷속에 있어요. 지금 여러 가지 예전과 다르게 새로운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 어린 시절에 들은 아버지한테 들었던 옛날 바다 이야기가 있습니까?
"어릴 때는 어법이 낭장망이라고 해요. 그물을 고정해서 한쪽을 열어서 그물로 고기가 들어가면 뒤로 고기가 나오지 못하는 거죠. 그걸 들어 올려서 고기를 싣는 거죠. 형님들은 아기 때부터 그런 걸 했던 것 같아요. 8살 그전부터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안 하고 형님들이 멸치 말리는 거, 나르고 해파리 껍질 벗기고 했어요. 어렸을 때 좋았죠. 일단 고기가 풍성하니까. 밤에 밥을 못 먹어요. 일손이 부족하고 고기는 많고 그놈을 갖다가 거기서 다 못 실으면 그물채 끌고 와요. 그래서 여기 뻘밭에다 퍼요. 물 빠지면 그거 다 또 손으로 나르고 그랬어요. 솥에 멸치 같은 거 삶죠. 그러면 그 덮개가 있어요. 거기에다가 소금 뿌려서 병어나 조기, 갈치를 소금 뿌려서 저녁 대용으로 먹고 그 정도로 큰 고기들이 많이 잡혔어요.


저희 아버지가 92세인데 전국에서 배들이 여기 위도에 모였다고 해요. 대리마을 경로당에 벽화가 있는데 한번 내일이라도 보세요. 벽화를 타일로 해놓은 게 있어요. 1930년대 거기에 많은 배들이 대리에서부터 치도리까지 서로 연결돼서 정박해 있는 사진이 타일로 돼 있어요. 조기 배들이에요, 우리나라의 3대 파시가 여기에 형성이 됐던 거예요. 흑산도, 연평도, 위도죠. 칠산이라는 게 지금 영광군의 칠매라고 그래요. 영광군의 송이도 부근에 무인도가 7개 가 있어요. 그걸 이제 칠매 칠산이라고 그래요. 위도를 중심으로 해서 그 칠산 그리고 여기 곰소만, 법성포, 신안, 고군산군도 군산까지 이 일대를 칠산 바다라고 일컬어요. 지금 보이는 여기 바로 가 고군산군도인데요. 그러니까 이 일대를 다 칠산 바다라 하는 거예요."

- 언제부터 약간씩 좀 잘 안 잡히기 시작했어요?
"영광 원전하고 저기 본격적인 것은 새만금 때문에 유속이 줄고 지형이 변하고 여러 가지 어떤 요인들이 있겠죠. 저희 형이 1990년도에 서울을 올라갔어요. 저희 형님들이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한 2~3년 전부터 고기가 점점 줄어들었거든요. 그때는 새만금 전이니까 영광 온배수의 영향을 받을 수가 있어요. 그전에 원전은 가동이 됐었으니까, 온배수가 나와도 처음부터 고기가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지속해서 서서히 영향을 주는 거죠. 그러다가 1990년대 더 많이 줄어들었죠. 그러다가 지금 가까이에 있던 고기들이 없으니, 배들을 다 키우게 된 거예요. 3톤에서 5톤 되던 배들이 다 7.3톤으로 바꾸는 거예요. 그러면서 채무가 늘어나고 이자 부담이 더해지고 거기는 또 먼 바다까지 갔는데도 또 안 잡히고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니까 어촌 사회가 피폐해지는 거죠. 생활이 굉장히 좀 힘들어지는 거죠."


- 대리어촌계원은 몇 분인가요?
"저희는 한 150명 정도 돼요. 예전에, 여기에 배들이 한 60여 척이 있었어요. 60여 척 그 배들이 지금 다 없어졌어요. 인근에서 고기 잡는 배들이 다 없어진 거죠. 지금은 허가선은 없고 양식장 관리선 1톤, 2톤 되는 배들이 한 40여 척이 있는 거예요. 허가 어선은 다 없어졌죠.

여기 대리가 원래 새가 굉장히 강했어요. 어장으로는 제일 큰 데가 여기예요. 지금 식도에 큰 배들 열몇 척만 남은 거예요. 식도에서 키워서 먼 바다 가서 잡는 거예요. 위도에는 어촌계가 6개 있습니다. 위도 본토에 4개 어촌계(대리, 진리, 치도, 벌금)가 있고 식도 어촌계, 왕등어촌계가 있어요. 이 중에 대리가 가장 크고 다른 어촌계도 다 비슷한 상황이에요."

- 마을 공동어장은 어떻습니까?
"마을 공동어장은 임대를 사업을 하고자 하는 계원들이 있으면 저렴하게 임대로 줍니다. 저희가 하는 것은 엊그저께 해삼도 작업을 했는데 배당도 하고 관리가 너무 힘이 들어요. 밤에 몰래 와서 도둑질을 너무 많이 해요. 해경에서 한 번 걸렸잖아요. 헬기 타고 와서 잡았어요. 도둑 잡는다는 게 비용도 많이 들고 그걸 어촌계에서 지키기 힘들고 하다 보니까 임대줘서 배당해 줬어요. 저희가 한 7억 6천 받아서 몇백씩 배당해 줬죠."

- 그렇게 변하게 된 원인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어민) 1차는 영광 한비도 온배수고, 더 거기에다가 불을 지핀 게 새만금 완전히 막아버린 거죠. 물의 방향 이런 것들이 바뀌었거든요. 새만금 설치되기 이전하고 이후하고 물길이 바뀐다는 거죠. 그리고 또 물길만 바뀐 게 아니라 산란부터 일단은 다 막아버리니까요. 동진강, 만경강 이런 데에서 나오는 플랑크톤 이런 것들이 산란할 때 다 필요하고 그게 필수 영양원인데 그런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리니까 물고기가 산란 못 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질 않잖아요. 물고기가 또 떠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거지 그게 가장 커요. 그리고 펄도 퇴적층이 우리 어렸을 때는 단단했었는데 지금은 밟으면 이 정도까지 들어가 버리니까 그만큼 죽벌이 밀려왔다는 거죠. 저쪽에서."

- 올해 새만금 해수 유통 규모와 방법을 다시 정하는 해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민 : "그러면은 최소 10분의 1은 최소 3.3km는 터야 해요."

김인배 : "4분의 1은 터야죠. 마인드들을 좀 바꿔야지. 안쪽으로 교각을 놓고 그리고 방조제를 해체 해버리는 거야."

- 바다가 계속 후손 대대로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많은 이해 당사자들이 일단은 바다에 대한 어떤 그 생각부터 바꿔야죠. 그냥 이렇게 벌어먹는 수단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고 이게 가꿔야 할 그런 어떤 자산으로 좀 생각을 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바다를 많이 고민하고 바다에 대해서 많이 연구해야 해요."
 
a  송성은 어촌계장이 어촌계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있다

송성은 어촌계장이 어촌계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있다 ⓒ 유준

 
김인배 어촌계장은 치도에 가면 퇴적의 변화를 더 알 수 있다고 했다. 김인배 어촌계장의 소개로 치도 송성은 어촌계장을 만나기 위해 치도어촌계 사무실을 찾았다.

치도 송성은 어촌계장은 1968년 위도 출생으로 젊어서는 육지로 가서 생활하다가 위도로 온 지 2년 6개월 정도 되었다고 했다. 그전에는 에어컨 기사로 일했는데 3~8월 사이에는 에어컨 기사를 하고 일이 없을 때는 위도에서 주로 생활했다고 한다. 어촌계장을 맡은 지는 1년 정도 되었으며 육지에 있더라도 낚시를 좋아해서 위도에 자주 오고 하면서 치도의 변화를 체감해 왔다고 했다. 송성은 어촌계장은 개인적으로 양식장을 하지는 않고 마을 공동어장을 관리하는 일을 주로 한다고 했다.

치도는 앞에 큰 딴 치도와 작은 딴 치도 섬이 있으며 밀물 때는 Y자로 길이 생겨 섬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고 또 저 멀리 두 개의 형제섬이 있었다. 마을 공동어장은 치도리 앞 개펄과 형제섬 인근에도 있으며 300헥타르(약 90만 평) 라고 했다. 어촌계에 도착해서 송성은 어촌계장으로부터 최근 치도리 앞 갯벌의 변화를 들을 수 있었다.
 
a  치도 앞 마을 공동 양식장. 예전에는 갯골이 없었는데 작은 딴 치도 쪽이 급격히 퇴적되면서 바뀌었다고 한다. 큰 섬이 큰 딴치도, 작은 섬이 작은 딴 치도이다.

치도 앞 마을 공동 양식장. 예전에는 갯골이 없었는데 작은 딴 치도 쪽이 급격히 퇴적되면서 바뀌었다고 한다. 큰 섬이 큰 딴치도, 작은 섬이 작은 딴 치도이다. ⓒ 유기만

 
"동네 앞에 섬이 2개가 있는데 Y자로 갈라지면서 큰 딴 치도, 작은 딴 치도 그래요. 물이 빠지면 길이 나고 물이 들어오면 길이 잠기죠. 근데 지금 작은 딴 치지도 쪽으로 배가 들어올 수가 없게 되었어요. 거기가 원래는 바지락, 동죽, 가무락이 엄청나게 잘 되던 곳이에요. 근데 갯벌이 제가 봤을 때 1m 이상은 높아졌어요. 물 많이 들어올 때를 사리 때라고하는데 한 사리 때 외에는 배가 들어올 수 없어요. 한 5톤 규모 배들은 들어오질 못해요.

바지락이나 조개류는 어느 정도 물에 잠겨 있어야 해요. 근데 갯벌이 높아지니까 물에 잠겨 있는 시간이 줄어요. 예전엔 하루 12시간 정도를 물에 잠겼는데 지금은 7~8시간 정도로 준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조개류들이 많이 폐사하고 양식장이 황폐됐다고 봐야죠. 10년이나 15년 전에는 1년이면 어촌계에서 한 10억 정도의 수익을 냈는데 지금 1억 정도 수익도 내기가 쉽지 않아요. 예전에는 자연산도 많았는데 이제 종패를 뿌려야 하잖아요. 근데 바지락이 크질 않아요. 물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조개류들이 크질 않아요. 또 폐사율이 늘어요. 특히 여름 같은 경우는 햇빛에 많이 노출돼서 더우니까 폐사해요. 걔들이 더위를 못 이겨서 그 안에서 익어버리는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요. "

- 퇴적의 변화가 10년 전까지는 전혀 없었던 현상입니까?
"퇴적 변화가 전혀 없지는 않았고 급격히 빨라졌죠. 엄청나게 큰 변화죠. 그리고 펄을 뒤집어 보면 냄새가 엄청 나요. 속이 시커멓게 썩어 있어요. 그런 것들은 과학적으로 증빙할 수는 없지만 새만금 호에서 물을 한 번씩 내뿜잖아요. 그럴 때마다 보면 시커먼 물이 띠를 둘러서 이 앞으로 지나갑니다. 바닷물과 담수 된 민물이 빨리 섞이질 않아요. 그러면 그 라인이 확실히 보일 정도예요. 그게 맨눈으로 보여요. 그런 날은 망둥어도 없어요. 갯벌이 죽었다는 거죠."

- 새만금 내부에서 시커먼 물이 흘러나온다고 하셨잖아요. 언제부터 그런 게 좀 관측이 됐어요.
"한 4~5년 전부터 심해졌던 것 같아요. 유통하려면 완전 상시 유통이 돼야 해요. 담수했다가 이렇게 내보내면 안 돼요. 자연 생태계가 한 번씩 복원되려면 한 20~30년 이렇게 걸릴 것 같아요. 그리고 저기 갑문 한 번씩 열어버리면 해파리가 엄청 많이 생겨요. 그것도 과학적으로 증빙돼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안에서 아마 얘네들이 폴립 형태로 있다가 외부로 급격히 나오는가 보더라고요. 원래는 7월, 8월 넘어가고 그러면 해파리가 다 녹아서 없어져야 하거든요. 제가 지금 바다 나가서 작업하다 왔는데 해파리가 어마어마하게 많고 해파리를 잡는 배들만 바다에 많아요. 그물을 놓을 수가 없어요. 저도 전라북도 해파리 감시위원이거든요. 그런데 정말로 어민들한테 피해가 막대할 것 같아요. "

- 어촌계원 103명 중에 혹시 어선은 몇 분 정도일까요?
"실질적으로 어선 어업을 하는 집은 두 집입니다. 연세들이 다 평균 연령이 75세 정도 되는데 특별하게 우리 동네는 혜택을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아까 말씀드렸듯이 공동 양식장이 있고 또 큰 딴 치도와 작은 딴 치도 사이에 있는 곳은 자연산 바지락 생산이 되어서 바지락 작업을 해서 개인적으로 판매하기도 합니다. 거기도 양이 많이 줄었어요. 더 심각한 건 펄이 죽었어요. 조금만 이렇게 뒤집으면 썩은 냄새가 너무 심해서 머리가 아플 정도 그러면 알맹이들이 제대로 못 자라겠죠. 그래서 마을 분 대부분이 맨손 어업하고 그다음에 어르신 일자리, 공공근로 많이 해요. 한 75세 이하 되시는 분들은 공공근로 예를 들어 해양 쓰레기를 치운다든지 아니면 뭐 노인정에 밥을 한다든지 이런저런 일들, 한 50% 이상은 그런 일들을 하는 것 같아요. 60세 이하는 직장인들 빼고 어촌계원 중에 빼고는 한 5명입니다.

저희 어렸을 때는 우리 동네가 제일 배가 많았거든요. 멸치가 주종이었는데 멸치가 안 나니까 점점 멀리 가다 보니까 기존에 적은 배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이제 못 하고 배가 대형화돼서 한 마을에 두세 집 남다가 지금은 본섬에 멸치 잡는 배들은 없어요. 예전하고 달라서 1억~2억 가지고 할 사업이 아니라 최소한 30억~40억 있어야 할 수 있는 그런 사업들이다 보니까 하시는 분이 없고 꽃게 잡는 배들은 가을철에 종종 있어요. 꽃게 배 외에는 낚시 조금씩 하시고 소일거리로 하시고 그런 거 말고는 없어요. "

- 마을 공동 양식장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300헥타르 정도 됩니다. 올해 작업해 보니까 해삼은 상반기에 2억 원, 바지락 1억 2천만 원, 동죽 5천만 원, 상반기에 이 정도 올릴 것 같아요. 이거 해서는 어림도 없어요. 치도리 어촌계원이 103명인데 수익이 남으면 그 수익을 어촌계 운영비와 사업비로 쓰거든요. 나머지는 조합원에게 수익이 돌아갑니다. 그런데 수익이 안 나니까 힘들죠.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거의 공동 양식장 보고 살 정도였어요. 양식장이 잘 되면 고용 창출이 이루어져요. 예를 들어서 홍합을 딴다든지 그러면 인력을 써야 따잖아요. 기계로 할 수 없으니까 우리 주민들이 하는 거죠. 외지에서 일당 받고 이런 것보다는 훨씬 나아요. 내가 10kg을 했다. 그러면 경비 빼고 어촌계가 4kg 가져가고 6kg은 주민들한테 돌려주고 그런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서 10억이 나왔으면 그러면 한 8억 5천 정도는 주민들한테 돌아갔겠죠. 다 주민들이 와서 일을 하는 거니까."

- 그런 변화를 보실 때는 마음이 어떠세요?
"죽을 맛이죠. 진짜로. 그런 거 보면 진짜 마음 아프고 그런 데서 나온 수익들이 전부 우리 주민들한테 돌아가야 할 수익이잖아요. 예를 들어서 우리 주민들이 직접 안 하더라도 임대를 내준다거나 그러면 수억씩 받을 수 있는 1년에 수억씩 받을 수 있는 그런 양식장들이 다 황폐해지고 있잖아요."

- 언제까지 고기가 좀 있었습니까?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굉장히 가까운 곳, 그냥 저기 앞에 섬 이런 데서 낚시 잠깐 해도 광주리로 금방 하나씩 잡아 왔어요. 지금은 하루 종일 있어서 한두 마리 잡기 힘들어요. "

- 바다가 1990년대 말부터 한 20년 안에 이렇게 변했잖아요. 변하게 된 걸 원인을 뭐라 생각하세요?
"제일 큰 원인은 기후 변화 같아요. 그런데 기후 변화라면 따뜻한 물에 있는 고기들이 여기로 올라와야 할 거 아니예요. 어종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런 현상은 별로 없어요. 저쪽 좀 나가면 오징어도 들어오고 대구도 들어오고 그런다고 그러더라고요. 이쪽은 아직 그런 현상은 없고 어류가 많이 빠졌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많이 바뀌게 된 이유가 새만금을 막고 안 막고 차이가 아주 큽니다. 새만금 막으면서부터 여기 퇴적이 되기 시작했어요. 물길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물이 쭉 밀려갔다가 쭉 물이 밀려 나와야 하거든요. 그러면 유통이 훨씬 커지겠죠. 그러면 퇴적물이나 이런 것도 훨씬 덜 생기겠죠. 조류가 굉장히 약해졌어요.

그리고 어렸을 때는 해조류라든지 이런 것들이 아주 많았어요. 톳이나 청각이나 이런 것들이 아주 많았어요. 근데 그런 것들이 어느 때부턴가는 7~8년에 한 번씩 가끔 돋아요. 바위가 백태화되었다고 하는데 바위에 하얘지면 해조류가 붙을 수 없어요. 해조류가 붙어야 플랑크톤도 오고 그다음에 조그마한 생물체들도 살고 그래야 큰 고기도 오고 이렇게 먹이 사슬이잖아요. 그런 게 많이 없어졌어요. 해삼 같은 경우도 조류가 약해지고, 방조제에서 물을 텄을 때 펄이 같이 밀고 들어오잖아요. 근데 그런 것들이 바위를 다 덮어버렸어요. 그러면 해삼 서식지가 없어진 거잖아요. 해삼이 예전에 비해서 성장 속도도 아주 느리고 양도 많이 줄었죠. 전북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미역이나 톳이나 다시마 같은 게 많이 자라야 그걸 먹으려고 성장이 될 텐데 얘네들이 못 먹어서 3~4년 지나도 크질 않아요."

- 바위가 하얗게 변하는 이유가 뭡니까?
"새만금을 막아서 그런 거죠. 조류가 약해서 우리가 따개비 이런 유들을 청소 생물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들은 안 좋은 물에서 잘 살아요. 그런 것들이 바위를 덮어요. 그러면 홍합이라든지 소라라든지 전복이라든지 이런 게 바위에 착상을 못 하잖아요. 6~7년 전에만 해도 치도에 홍합 양식장에 있었어요. 그걸 제가 임대해서 3천 투자하면 6천 정도 했거든요. 근데 언제 부턴가 5천만 원 투자하면 인건비도 못 벌고 원금만 나와요. 홍합이 바위에 착상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다 이미 덮고 있어서 착상 못 해요. 예전에는 홍합 같은 거 줘도 안 먹었어요. 이제 그렇게 많던 것들이 바다 나가보면 한 개도 붙어 있는 게 없어요."

- 좀 나아지려면 어떤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새만금부터 어떻게 해야죠. 영광 원자력발전소도 솔직히 친환경으로 바꾸고 그만 돌리고요. 아마 저기 영광에서 여기가 한 20km 정도 돼요. 영광 원자력발전소에서 20km도 안 될 거예요. 그러면 최소한이라도 방공호라도 하나 만들어 놔야지 그렇잖아요."

우리는 대리어촌계장 인터뷰와 위도 지역을 살펴보기 위해 대리 인근에 민박을 했다. 생각보다 많이 허름한 민박집은 93세(남), 89세(여), 85세(여)의 세 오누이가 운영하고 있었다. 정제일(93세)씨는 서울에서 장사하다가 다리를 다쳐서 처가인 부안에 왔다가 낚시하러 위도에 처음 왔는데 낚시가 너무 잘돼서 1998년부터는 전세로 살던 민박집을 인수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했다. 낚시 가게와 같이 했었는데 몇 년 전 태풍에 낚시 가게가 날아가서 지금은 민박집만 한다고 했다.
 
a  대리에서 낚시 점과 민박 집을 27년째 운영 중인 정일제 씨와 정봉순 남매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리에서 낚시 점과 민박 집을 27년째 운영 중인 정일제 씨와 정봉순 남매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유준

 
- 1998년에 비해 얼마나 고기가 안 잡혀요?
정일제 : 1998년에는 낚시하면 혼자서 못 들고 올 정도로 많이 잡았는데 지금은 그때 비하면 40%도 안 잡혀요.

정봉연 : 처음에 우리가 여기 들어왔을 때만 해도 고기가 말도 못 했다니까.

- 왜 그렇게 됐나요?
정일제 : 새만금 막으면서 여기 물 빨이 없어. 물 빨이 죽었어. 그래서 그물 같은 걸 보면 그물에 그냥 허래가 많아. 물 빨이 있으면 그게 잘 생기는데 그물 쳐서 꺼내면 그물에 허래가 많아.

정봉연 : 확실히 조류가 확 밀려 나갔다가 확 밀려 들어오고 이래야 하는데.

- 마을 공동어장 일도 하시나요?
정봉연 : 어촌계 계원이에요. 1년에 홍합이나 바지락 할 때 가서 일하죠. 근데 홍합도 다 없어지는 거야. 옛날에는 저 바다의 언덕에 돌 같은 데에 홍합이 쫙 그냥 검었어. 근데 지금은 없어.

- 언제부터 안 잡혀요?
정봉연 : 그게 한 3~4년 됐을 거예요.

정일제 : 시나브로 없어져 버려. 우리가 여기 왔을 때 홍합이 그냥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홍합 값이 없었어.
 
a  새만금 배수 갑문으로 부터 약 20여키로 떨어져 있는 위도 지도. 어민들은 새만금 갑문이 열리면 새만금 호의 안 좋은 물과 부유물이 위도까지 흘려 온다고 했다.

새만금 배수 갑문으로 부터 약 20여키로 떨어져 있는 위도 지도. 어민들은 새만금 갑문이 열리면 새만금 호의 안 좋은 물과 부유물이 위도까지 흘려 온다고 했다. ⓒ 유기만

 
위도 인터뷰를 마치고 고창부터 위도까지 어민들이 느끼는 바다의 변화를 들으면서 바다는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칠산 바다라 불렀고 그것조차 인간을 위한 구분이고 결국 흑산도 위도, 연평도가 하나의 어장이 아닐까, 하고 생각되었다. 1991년 새만금 방조제 공사를 할 때 이런 변화를 예측이나 했을까?

또 하나 느낀 점이 있다면 대리어촌계와 치도리어촌계는 공동어장이 마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특히 치도리는 공동어장 규모가 300헥타르나 되었다. 송성은 어촌계장은 마을 어장이 황폐해지고 그러다 보니 젊은 사람이 없어 고령화되고 있어 공동어장과 함께 마을도 자연 소멸할 것 같다고 했다. 대리어촌계가 운영하는 해삼 어장은 도둑들로 인해 관리가 어려워 임대했다고 하는 것도 안타까웠다. 위도는 섬이라는 특성상 많이 소외됐을 텐데 그만큼 마을 사람들이 공동어장을 관리하며 생사를 같이 해오던 곳이었다.

7~8년 전부터는 해조류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3~4년 전부터는 홍합이 사라지고, 2년전 부터 망둥어가 안 보인다고 했던 어민들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위도 앞 바다의 해양 생태계가 전반적으로 무너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금이 몰려온다고 마을마다 금자가 들어있던 황금 어장의 섬 위도, 육지에서 굶주린 사람들이 맨몸으로 들어와서 자식을 키우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생계를 꾸려나갔던 위도의 사람들도 결국 칠산 바다 생태계의 한 부분이다.
#새만금기행 #새만금상시해수유통 #새만금과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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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시에 살고 있습니다. 기자 활동은 전라북도의 주요 이슈인 새만금 사업에 대해서 다뤄보고 싶어 시민 기자로 가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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