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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시간도 아까워 버텨"... 이들이 멈출 수 있으려면

플랫폼 노동자 작업중지권 어떻게 보장할까

등록 2024.08.30 15:32수정 2024.08.3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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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땀방울이 볼을 따라 타고 흐르는 여름이다. 이 더위에 먹고 살기 위해 불꽃과 열기 앞에 서야 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식당이나 제철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전형적이다. 한편 기후 위기 시대, 늘어나는 폭염 일수와 올라가는 낮 최고기온과 싸우며 이동 노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스팔트 위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판매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플랫폼 노동자들이다.

제도와 현장의 다른 '온도'

대표적인 플랫폼 노동자인 음식 배달 노동자를 보자. 달궈진 도로 위에서 양 옆 승용차와 버스가 내뿜는 열기까지 오토바이에 앉아 맨몸으로 받아내면 배달복 안은 금세 땀으로 가득 찬다. 헬멧까지 썼으니 보통 열기가 아닐 것이다.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면 움직여야 한다.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고장 난 경우엔 계단도 오르내려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바짝 조여진 배달 시간 안에 해내야 하니 서두를 수밖에 없다. 택배 배송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지난 7월 2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폭염 속 노동실태 및 제도개선 국회토론회'에서 택배 노동자가 한 현장 증언 일부를 옮겨 본다.

"이렇게 열악한 시설에서 적재를 마치고 배송을 시작하면 폭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아스팔트는 뜨겁고 요즘 같은 날에는 습하기까지 합니다. 택배 노동자의 차량 이동 거리는 길면 1분, 짧으면 30초입니다. 뜨거워진 차량이 식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라 에어컨도 무용지물입니다. 냉방시설이 있는 터미널에서 일하는 택배 노동자도 배송지에서는 오롯이 개인이 폭염을 감당해야 합니다. 탈이 나거나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하기 때문에 찬 음료를 양껏 먹기도 부담스럽습니다. 택배기사에게는 화장실에 가는 시간도 버리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옥내에도 옥외에도 있다. 앞서 말했듯 요식업에 종사하는 조리 노동자들이 있고, 건설 노동자들도 온열 질환에 걸리기 쉬운 전형적인 직종이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사업주와 정부에 폭염 대책을 요구해 왔다. 고용노동부는 '물·그늘·휴식'을 키워드로 하는 가이드라인을 매년 내고 있고, 국회의원들은 법안을 제·개정하고 있다. 이상과 현실이 멀듯 이 제도와 현장의 '온도'가 다르지만, 어쨌거나 노동자들이 더위에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사용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쪽으로 갈피는 잡히는 것 같다.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폭염 대책은?

그런데 플랫폼 노동자들은 사뭇 이야기가 다르다. 우선 이들의 지위는 제도 안에 애매하게 안착해 있다. 이들은 한 사업주에게 속하여 그들에게 노동을 제공하는 전통적인 근로관계에서 벗어나 있다. 여러 사용주로부터 일감을 받아 여러 고객에게 전달한다. 물류 허브처럼 재화나 서비스가 모였다가 다시 분산된다. 고용주가 여러 명인 데다 노동 장소가 고정되지 않다 보니 폭염 대책을 어떻게 세우고 누구에게 요구할지가 참 애매하다. 그래도 일단 음식 배달 플랫폼 노동자의 편에 서서 폭염 대책을 세워보고, 이걸 누구에게 요구할지 생각해 보자.


질병관리청과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을 종합해보면, 온열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그늘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수분을 자주 보충해줘야 한다. 그럼 플랫폼 노동자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면 문제가 해결될까? 실제로 많은 지자체에서 거점 쉼터를 만들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이는 제대로 된 답이 아니다. 많은 언론이 지적하듯 접근성이 문제다.

접근성을 높이려면 쉼터의 공급량도 충분해야 하지만, 플랫폼 노동자들이 쉴 시간을 따로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쉴 수가 없다. 콜이 들어오면 제 한 시간 내에 배달을 완수해야 하고, 높은 수수료 때문에 하루를 꼬박 일해야 한다. 게다가 다수의 플랫폼 업체는 악천후에 할증을 붙여 배달 감소를 방어한다. 아무리 덥고 땀이 비 오듯 흘러도 다시 헬멧을 쓰고 시동을 켜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쉴 틈을 낼 수 없는 구조다.


택배 배송 노동자의 경우, 앞서 언급한 토론회에선 이런 얘기가 나왔다. "제가 일하고 있는 쿠팡의 경우에는 2회전 배송을 강제하고 있고 신선식품은 오후 8시, 일반 상품은 저녁 12시까지 배송을 마쳐야 하고 그러지 못했을 경우 구역을 회수당하는, 사실상 해고와 다름없는 패널티를 받기 때문에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더욱더 시달리고 있습니다." 누가 열심히 일하는지 감시하는 것도 아닌데 쉬엄쉬엄하면 되지 않냐는 순진한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a  7월 17일 기후위기비상행동 주최로 진행한 기후 재난 속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 를 위한 기자회견

7월 17일 기후위기비상행동 주최로 진행한 기후 재난 속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 를 위한 기자회견 ⓒ 기후위기비상행동 페이스북


기후 수당, 작업중지권 보장을 위한 첫걸음

이처럼 임금을 충분히 보전받지 않으면 무리해서 일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기후 수당에 대한 논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작년 8월, 라이더유니온은 이미 기자회견을 통해 기후 실업급여를 주장한 바 있다. 기후 위기로 인한 이상기후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수당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기 위한 첫 번째 걸음이다.

하던 작업을 중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단순한 관성도 있겠지만, 당장 수입이 끊기고 괜히 불이익을 받을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조건들이 제대로 설계되어야 노동자 개인의 '멈춤'은 그저 한순간의 쉼이 아니라, 권리 행사가 될 수 있 다. 잠깐 작업을 중단해도 임금이 납득 가능한 수준까지 보전되어야 플랫폼 노동자들은 쉼이라는 선택지를 고려할 수 있다.

물론 배달과 이동 노동자를 위한 쉼터도 더 많이 생겨야 하고, 플랫폼 업체들의 무리한 할증 혜택에 규제도 필요하다. 이것이 작업중지권을 향한 두 번째 걸음이다. 또한 플랫폼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을 지지할 만큼 시민의식도 성숙해야 한다. 배송 시간이 길어져도 기후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가장 어려운 마지막 걸음일 수 있겠다.

이쯤 되면 작업중지권을 누가 보장해야 하는지는 다 나온 것 같다. 정부가, 기업이, 소비자가, 우리 모두 함께 플랫폼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해야 한다. "내가 그걸 왜?"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각자도생의 시대고, 내 몫 챙기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니까. 하지만 복닥거리는 이 사회 안에서 살기로 한 이상 우리는 동료 시민의 권리에 무심할 수 없다. 타인의 권리에 관한 관심은 반드시 나의 권리에 관한 관심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어제 점심에 배달로 먹은 밥 한 끼, 오늘 받은 택배 한 박스는 역설적으로 그것을 연결하는 사람이 멈춰 설 권리를 보장해야 내일로 이어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격월간 <비정규노동>에도 실립니다.글쓴이는 김희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68호 9,10월호 '기획[이동노동자 작업중지권]'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기후재난 #기후위기 #작업중지권 #플랫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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