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정원서 떠올린 문구, 욕심을 멈춰야 할 때구나

[갑이네 시골살이 24] 정원을 정리하면서 배우는 인생살이

등록 2024.10.07 13:41수정 2024.10.0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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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이 무더위가 끝날까? 꽃과 잎이 타들어 간다. 가끔 폭우도 퍼붓는다. 꽃들이 꺾이고 쓰러진다. 폭우가 끝나니 가을장마란다. 비가 그치고 나니 반팔이 긴팔로 바뀐다. 하루아침에 가을로 접어들었다.


흔히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동안 땀의 결실이 넉넉함으로 이어진다. 그 넉넉함으로 그동안의 힘듦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나에게 가을은 그동안 설렘과 기쁨으로 가득하였던 정원을 정리하는 계절이다. 그리고 내년을 기약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집 정원을 둘러보면 해야 할 일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여름 내내 자기만의 색과 모양으로 아름다움을 뽐냈던 달리아도 가을을 맞아 이제는 힘에 겨운지 자고 나면 줄기가 곳곳에 꺾여 있다.

무더위와 폭우 그리고 바람을 견디기 위해 온 힘을 다 하였던 모양이다. 가능한 한 본줄기만 남기고 곁줄기는 과감히 잘라 몸을 가볍게 하여 준다. 그랬더니 꽃들이 한결 신선하고 아름답고 오래 간다. 그리고 핀 꽃들도 조금 일찍 잘라준다.

a 달리아(카바나바나나) 달리아 곁줄기를 잘라 주고 나니 꽃이 한결 신선하고 오래간다.

달리아(카바나바나나) 달리아 곁줄기를 잘라 주고 나니 꽃이 한결 신선하고 오래간다. ⓒ 정호갑


자른 꽃은 물병에 담아 거실에, 난간에 놓아두니 집이 한결 밝아진다. 집 안으로 꽃을 데려온 것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인데, 집 안팎에 꽃이 가득하다.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사치를 싫어한다기보다는 생각도 할 수가 없었는데, 내가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다니. 시골살이하면서 사치를 마음껏 누린다.

사치에서 행복을 맛본다. 그런데 이래도 되나. 그 순간 벌과 여치가 손님으로 찾아와 잠시 쉬어 간다. 사치도 행복도 함께 나누고 있으니 괜찮은 것이지 하며 스스로 위로한다.


a 거실 달리아 꽃을 조금 일찍 잘라 물병에 담으니 집 안이 환해졌다.

거실 달리아 꽃을 조금 일찍 잘라 물병에 담으니 집 안이 환해졌다. ⓒ 정호갑

a 달리아와 여치 난간에 달리아를 물병에 담아 놓으니 여치가 찾아와 쉬어 간다.

달리아와 여치 난간에 달리아를 물병에 담아 놓으니 여치가 찾아와 쉬어 간다. ⓒ 정호갑


달리아 줄기를 정리하면서 생각한다. 정리해야 할 때 정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 품위가 유지된다. 정리하지 않으면 구저분한 욕심이 곳곳에 묻어나 추할 수가 있다. 이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야 할 나이가 되었음을 거듭 확인한다.

그런데 막상 현실이 눈앞에 다가서면 생각처럼 쉽사리 잘되지 않는다. 달리아 괴근을 이웃에게 분양받을 때 가능한 한 많이 받고 싶었다. 심을 곳이 많다고 하니 이웃은 괴근을 원하는 만큼 주었다.


받은 괴근을 정원 이곳저곳에 심었다. 자라고 나니 다른 나무나 꽃들과 맞닿거나, 자기네들끼리 겹치는 부분도 있다. 그러다 보니 손길 가기가 힘든 곳이 있고, 공기의 흐름이 좋지 않은 곳이 있고,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한 곳이 있다. 그리고 심을 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는데 에어컨 실외기 앞에 심었던 달리아는 실외기 바람에 시달려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한 녀석도 있다.

시골살이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마음가짐이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지족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이다. 이제 만족하고 욕심을 멈출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모욕을 당하지 않고 위태로움에 빠지지 않는다. 이제 무엇을 더하려 하지 않고 비우고,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시 한번 욕심을 버리자고 다짐한다.

내년에는 달리아 수를 반으로 줄이자고 아내는 말한다. 이 말을 실천하기 위해 미리 이웃과 지인들에게 미리 말을 내뱉는다. 달리아 괴근을 캘 때 분양하겠으니 필요하면 말하라고. 아직 갈 길이 멀기에 이렇게라도 하여야 할 것 같다.

집 둘레 경계로 심었던 나무들 가운데 조금 자라고 보니 다른 나무 또는 석축이 가까이 있어 앞으로 자라면 문제가 될 나무는 옮겨 심는다. 그리고 봄, 여름이 지나면서 눈에 거슬리는 나무도 재배치한다.

정원 일에 서투른 나를 만나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해야 했던 나무들에 미안하고 미안하다. 옮겨 심었던 나무를 매일 찾아 상태를 살펴본다. 이번만은 주인의 무지를 용서하여 주고 잘 자라나 주길 바란다. 나무 한 그루를 심을 때 이제는 나무의 생태와 환경은 물론이고 정원과 어울림도 함께 생각한다.

어울림, 어울려야 자기의 멋을 온전히 낼 수 있다. 희망의 상징인 무지개, 무지개는 다양한 색이 어울려 최고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나. 다양한 색 어울림은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위로도 안겨 준다.

심지어 독야청청(獨也靑靑)을 자랑한다는 소나무, 이 소나무조차도 홀로 서 있을 때보다는, 겨울, 그것도 눈으로 살짝 덮였을 때 가장 빛을 발휘한다. 홀로는 자기의 멋을 제대로 낼 수 없다. 어울리면서 자기의 멋을 잃지 않을 때 진정한 멋이 나온다.

나 또한 세상과 어울리면서도 내 멋을 간직한 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피갈회옥(被褐懷玉)'이란 말을 좋아한다. 갈옷을 입고 옥을 품는다. 세상과 어울리면서도 내 멋을 지니고 살고 싶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내가 조금 손해본다는 생각으로 살면 세상과 잘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내 생각과 가치를 간직하고 살아가길 바란다. 쉽지 않기에 내공을 기르기 위해 시골살이를 선택하였고, 여전히 배우고 노력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우리 정원 곳곳에는 봉선화가 있다. 봉선화를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의 우리집과 마을 풍경이 그려진다. 흙 담벼락에 빨간, 분홍, 하양으로 가녀린 꽃이 참 예쁘다. 봉선화 물을 들인 손톱을 보면 따뜻함이 느껴졌다. 어릴 때 그 감성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봉선화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져 한동안 멍하니 바라본다. 그러면 어린 시절의 모습이 어슴푸레 떠오른다. 이때 뉴욕 필하모닉이 평양에서 연주한 최성환의 아리랑 연주를 들으면서 어린 시절 속으로 서서히 다가간다. 잠시나마 아무 생각이 없는 행복에 빠져 편안함이 온몸으로 흐른다.

봉선화의 놀라운 점은 가녀린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비바람에 강하다. 비바람에 쓰러질 듯하면서 쓰러지지 않는다. 쓰러져도 바로 세워주면 곧바로 곧추선다. 옮겨 심어도 잘 자란다. 씨앗 발아도 잘된다. 생명력이 정말 강하다.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래도 시간은 거슬러 수 없다. 이제 꽃이 떨어지고 줄기도 꺾인다. 내년을 기약하면서 씨앗을 받고 봉선화를 뽑는다.

가을 정원의 정리는 이렇게 끝나가고 있다. 정리는 정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을 정원의 정리는 내년 봄을 위한 또 다른 시작이다. 정리한 정원에 내년 봄을 위해 씨앗을 뿌린다. 과꽃, 루드베키아, 백일홍, 수레국화, 양귀비, 패랭이 등등. 그리고 내년 봄을 기대하며 가을 구근도 심는다. 수선화, 튤립 히아신스 등등.

a 봉숭아와 잡초를 정리한 정원  정리한 정원에 씨앗을 뿌리고 구근을 심는다

봉숭아와 잡초를 정리한 정원 정리한 정원에 씨앗을 뿌리고 구근을 심는다 ⓒ 정호갑


정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기대이다.
#시골정원 #인생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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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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