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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늦어지고 소나무 쓰러지고... 아쉽습니다

꽃봉오리 맺을뿐 개화 않는멸종위기 가시연꽃, 자생지 보호관리 필요해

등록 2024.10.11 11:40수정 2024.10.1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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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정저수지 제방 숲 (황옥택, 2022.10.02)
대정저수지 제방 숲 (황옥택, 2022.10.02)황옥택

전북 임실 오수에서 남원 방향 17번 국도의 대정교차로 가까운 곳에 둘레가 500m 되는 그리 크지 않은 대정저수지가 있다(대촌제, 대말방죽). 이곳에는 개화한 꽃의 크기가 4cm 정도 되는 수련과의 가시연이 이십여 년째 자생하고 있다.

지난 8일 오전에 이곳 저수지에 가시연의 생육 상태를 관찰하러 찾아갔다. 수많은 가시연 개체의 꽃봉오리와 너른 연잎이 저수지 수면의 아래쪽 절반을 가득 채웠다. 줄기, 잎과 꽃봉오리에 가시가 가득 돋힌 고슴도치 같은 가시연의 모양은 무척 인상적이다. 수면에 뜬 원형 연잎이 지름 1m가 훌쩍 넘는 가시연 개체도 많았다.


 대정저수지 가시연잎
대정저수지 가시연잎이완우

가시연은 오래된 저수지나 늪지에 서식하며, 7~8월에 긴 꽃자루에 밝은 자주색 예쁜 꽃을 한 개씩 피운다.

기자는 2021년부터 수년째 매년 7월부터 이곳을 가끔 방문하여 저수지 탐방로를 한 바퀴 돌면서, 가시연의 모습을 살피고 꽃봉오리가 올라오며 개화가 되는지를 살펴왔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9월부터 가시연의 꽃봉오리가 올라오지만, 끝내 꽃잎은 열리지 않는 현상이 여러 해 반복되는 걸 알 수 있었다.

 대정저수지 가시연 꽃봉오리
대정저수지 가시연 꽃봉오리이완우

이곳 저수지의 동남쪽 가까이에 연꽃농장이 있다. 이 농장을 운영하는 황옥택씨는 기자와 만나 올해도 가시연이 끝내 개화하지 않을 듯하다고 말했다.

가시연은 개방화와 폐쇄화 두 유형의 꽃을 피우는데, 꽃봉오리 상태로도 물속에서 자가수분하여 스스로 종자를 맺을 수 있다. 이곳 저수지의 가시연도 폐쇄화의 전략을 선택하여 열악한 환경에도 생존할 수 있게 적응하고 있는 듯했다.


이곳 저수지는 1990년대 후반부터 가시연꽃이 피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꽃도 제법 컸는데 해가 갈수록 점점 작아진 듯했고, 최근 몇 년은 꽃봉오리만 맺고 개화를 하지 않는 현상이 잦아지고 있다.

황옥택씨는 이곳에서 연꽃농장을 운영한 지 8년째 되는데 한 번도 가시연 군락이 한꺼번에 제대로 활짝 꽃 피는 것을 못 봤다고 한다. 그의 연꽃 농장 수조에서는 가시연이 6월이나 7월이면 꽃이 활짝 핀다고 했다.


황옥택씨는 이곳에서 연꽃농장을 운영하니, 자연히 대말방죽의 가시연을 자주 살피며 가시연의 생육 상태를 확인하고 있단다. 가시연은 물깊이가 깊지도 않고 얕지도 않은 환경을 선호하니, 때에 따라 물깊이를 적절하게 조절해 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곳 대말방죽은 가시연에 적당한 물깊이가 필요한 때에 농업용수로 저수지 물을 많이 빼어내기도 하고, 가시연에게 물이 깊은 때에도 저수지에 물을 계속 저장해 두기도 하니 가시연의 생육과 개화 조건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정저수지 제방과 아래 황금 들녘 (황옥택, 2022.10.02)
대정저수지 제방과 아래 황금 들녘 (황옥택, 2022.10.02)황옥택

이곳 저수지에는 수량이 부족하면 물을 대어서 가시연의 생육을 돕기 위한 관정을 두 개 갖추고 있다. 그러나 가시연의 생육 환경 조성을 위해 저수지 물깊이를 조절하려고 관정에서 물을 퍼 올린 사례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자연 상태의 호수라면 가시연 등 수생 식물이 그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 텐데, 이곳 저수지는 농업용수를 우선하여 가시연의 서식 조건에 맞지 않게 저수지 물깊이가 자주 변동하여 가시연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는 듯하다.

'언제쯤 이곳 대정저수지에서 밝은 자주색 가시연꽃을 볼 수 있을까?'하며 황옥택씨가 연꽃농장에서 찍은 가시연꽃의 사진첩을 들여다 보았다.

지난해, 대정저수지 옆 연꽃농장 가시연꽃 (황옥택, 2023.08.23)
지난해,대정저수지 옆 연꽃농장 가시연꽃 (황옥택, 2023.08.23)황옥택

그런데 올해에 이곳 저수지에서 찍은 가시연꽃 사진이 있다고 했다.

남원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김태윤씨가 9월 중순에 이곳 대정저수지에 들려 힘겹게 가시연꽃 한 송이를 사진에 담았다고 했다.

 올해 대정저수지 연꽃 개화 사진 (김태윤, 2024.09.18)
올해 대정저수지 연꽃 개화 사진 (김태윤, 2024.09.18)김태윤

올해 김태윤씨가 이곳 저수지에서 가시연 개화 사진을 찍은 곳은 저수지의 동남쪽에 햇볕을 많이 받고 바람을 막아주는 지형으로 다른 곳보다 높은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좁은 곳이었다.

이곳 저수지 가시연도 환경 조건만 맞으면 아름다운 가시연 군락의 개화 가능성이 보였다.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김태윤씨는 '가시연이 오전 10시쯤에 기온이 25도가 되어야 꽃잎을 연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 저수지에 한때 각시수련이 자생하였으며, 해오라기가 수초 사이에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틀고 새 생명을 품기도 한 야생 조류의 낙원이었으며 수생식물의 보고였다고 말했다.

 대정저수지 제방에 서 있던 큰 소나무 (황옥택, 2022.10.02)
대정저수지 제방에 서 있던 큰 소나무 (황옥택, 2022.10.02)황옥택

한편, 황옥택씨가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이곳 저수지 제방에 서 있던 예쁘고 크며 오래된 소나무 한 그루가 지난 8월 어느 날 강풍에 쓰러졌다'고. 쓰러진 소나무 둥치는 말끔히 치워졌단다.

이곳 대말방죽 제방과 둘레에 있는 소나무와 왕버들나무 군락은 예로부터 명품 숲이었다. 2011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숲을 평소에 잘 살펴서, 오래되어 거대한 소나무가 스스로 무게를 견디기 어려울 상황에 미리 버팀목을 설치하거나 보강했다면, 이 아름답고 오래된 소나무가 수명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보살핌과 관리를 받고 있지 못한 자연

 강풍에 쓰러진 소중한 소나무 (황옥택, 2024.08.30)
강풍에 쓰러진 소중한 소나무 (황옥택, 2024.08.30)황옥택

이 저수지의 제방에 소나무가 쓰러진 것과 저수지에 물깊이가 자주 변동하여 가시연이 제대로 개화하지 못하는 현상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곳 저수지의 명품 숲과 멸종위기 야생 식물 가시연의 생태 환경이 제대로 보살핌과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이곳 대정저수지 어귀에 행정관청에서 설치한 '가시연꽃 자생지 안내판'이 서 있다. 가시연꽃에 대한 설명 다음에 가시연꽃에 대한 보호와 협조를 강조하고 있었는데, 이곳 저수지의 현재 환경 실태와는 대조되는듯 했다.

'가시연꽃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으로서 법적인 보호 관리를 받고 있으며, 채취 훼손 등의 행위 시 야생동식물보호법에 의한 처벌을 받게 되므로 이곳을 찾는 여러분의 적극적인 보호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가시연은 진한 자주색 예쁜 희망의 꽃을 피우고 싶어 한다. 이곳 저수지의 가시연이 꽃을 피우지 않고 해마다 폐쇄화로서 열매를 맺어 매년 개체를 이어간다면, 이곳 1년생 수생식물 가시연 군락은 결국 도태되고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네 소중한 자연유산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와 관리 방안이 필요하다.

 대정저수지 옆 연꽃농장의 가시연꽃 (황옥택, 2021.08.17)
대정저수지 옆 연꽃농장의 가시연꽃 (황옥택, 2021.08.17)황옥택

덧붙이는 글 '서리 내리는 늦가을에 만난 가시연꽃 꽃봉오리'(오마이뉴스, 2021.10.19), '시집 간 딸과 친정엄마 만남 장소, 대말 방죽 아시나요'(오마이뉴스, 2023.06.23)의 기사와 관련됩니다.
#임실가시연자생지 #임실대정저수지 #임실대말방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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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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