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12월 6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백낙준 관련 기사
매일신보 캡처본 재촬영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에 담긴 백낙준의 친일행적은 A4용지 24장에 이른다.
1940년대 교육과 문화, 언론, 종교에 이르기까지 일제에 부역한 백낙준의 친일 족적이 그만큼 방대했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백낙준의 행위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3호 '사회·문화 기관이나 단체를 통해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에 해당한다"라고 평가했다.
"백낙준은 평남 신성학교와 중국 천진신학서원을 거쳐 미국 파크대학에서 수학하고 프린스턴신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예일대학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연희전문교수로 재직하며 문과과장을 지냈다. 1940년 조선총독부로부터 조선예수교 장로회 포교자로 허가를 받은 뒤 각종 사회단체를 통해 일제에 협력하는 활동을 했다."
백낙준은 '국가사회 유공자'라는 이유로 사후 국립서울현충원에 묻혔다. 2009년 정부가 '친일파'로 결정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누워있다. 현행 상훈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강제로 이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현행 상훈법에는 "서훈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나 국가 안전에 관한 죄를 범해 형을 받거나 적대지역으로 도피한 경우, 형법·관세법·조세범 처벌법 등에 규정된 죄를 범하여 사형·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금고형을 받은 경우에만 서훈을 취소할 수 있다"라고 명시됐다.
▲ 백낙준 (1896~1985) -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이 된 친일파, 연세대 총장 "제국의 궐기는 대동아 공존공영과 세계평화를 위한 정의의 옹호다. 이러한 성전에 몸과 정성을 받들 수 있는 것은 황국에 생을 향유하고 있는 우리 신민된 자에게 무한한 영광이다." 연희전문학교 초대 총장이자 문교부 장관, 초대 참의원 의장을 지낸 백낙준이 직접 창간한 <기독교신문>에 실은 글이다. <기독교신문>은 194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을 맞아 창간했다. 10년 전, 윤봉길 의사가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폭탄 투척 의거를 성공시킨 날이기도 하다.
해방 후엔 미군정청 학무국 조선인교육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돼 김성수, 김활란 등과 함께 활동했다. 1957년 연세대학교가 설립되자 초대총장으로 취임했다. 1968년엔 친일파 홍종인 등과 함께 독립유공자 상훈심사회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국립현충원 11명의 국가공인 친일파 중 유일하게 군인이 아닌 인물이다. 그의 친일행적 기록은 A4용지 24쪽에 달한다. ⓒ 오마이뉴스
☞
현충원 국가공인 친일파 11인 묘지 찾기
(http://www.ohmynews.com/NWS_Web/event/snmb/index.aspx)
☞
'현충원 국가공인 친일파 이장 촉구' 청와대 국민청원 함께 하기(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7052)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