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안장 친일파] 신현준 묘지무적 해병'의 아버지 신현준, 만주군 장교가 되고 싶었다
친일파 신현준의 묘는 국립대전현충원 장군1묘역에 잠들어 있다. 대전현충원 상징인 현충탑을 끼고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역삼각 형태로 배치된 장군1묘역을 확인할 수 있다. 신현준은 장군제1묘역 최상단 우측에 위치한 묘에 잠들었다.
김종훈
신현준은 여순사건을 계기로 '상륙작전을 전담하는 부대가 필요하다'면서 해병대 창설을 국군에 제안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 5월 5일 대통령령으로 해병대 창설을 정식 공포한다. 신현준은 해병대 초대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신현준은 1949년 제주4.3사건이 발생하자 해병대 전 병력을 제주에 배치해 토벌 작전을 전개한다. 한국전쟁 후 신현준은 해병대 사령관 자리를 간도특설대 출신 김석범에게 인계한다. 이후 1958년 미 육군참모대학에서 유학한 뒤 1960년 6월 해군 중장으로 진급했고 1961년 4월 국방차관보에 임명된다.
5.16군사쿠데타 후 군에서 물러난 신현준은 초대 모로코 대사와 초대 바티칸 대사를 지냈다. 제5대 세계반공연맹 사무총장도 역임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노년을 보낸 신현준은 2007년 10월 15일 만 9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닷새 뒤인 10월 20일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공식보고서에 "신현준은 만주국군 장교로서 1938년 창설된 간도특설대의 창설기간 장교로 발탁돼 1944년에 이르기까지 만주지역 항일세력 무력탄압에 적극 협력했다"면서 "이러한 행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43년 9월 만주국 정부로부터 훈6위 경운장을 받았다"라고 기록했다.
이어 "신현준의 이러한 행위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10호, 19호에서 규정하는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공식보고서에 명시했다.
"장성급 장교"라는 이유로 2007년 10월 현충원에 안장된 신현준은 국가공인 친일파로 선정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립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최상단에 잠들어 있다.
상훈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강제로 이장할 수 없다. 현행 상훈법에는 "서훈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나 국가 안전에 관한 죄를 범해 형을 받거나 적대지역으로 도피한 경우, 형법·관세법·조세범 처벌법 등에 규정된 죄를 범하여 사형·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금고형을 받은 경우에만 서훈을 취소할 수 있다"라고 돼있다.
▲ 신현준 (1916~2007) - 간도특설대에서 광복군으로 신분세탁 1932년, 일본군에 종군할 것을 결심하고 일본 만주군 통역이 됐다. 만주국 봉천군관학교를 거쳐 항일무장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간도특설대 창설요원으로 활동했다. 열하방면으로 출동해 팔로군 및 항일무장세력을 토벌했다. 일본이름은 우다카와 요시히토.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일본군 출신 조선인을 광복군에 적극 편입한다'는 한국독립당의 방침을 접하고 만주국군 후배인 박정희 등과 함께 베이징 광복군 부대로 향한다. 당시 항일무장세력을 탄압하던 만주국군 장교가 해방 후 대한민국 광복군이 된 예는 적지 않다. 친일파 전문가인 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이들을 '해방 후 광복군'으로 구별해 부른다.
1946년 미군 수송선을 타고 부산에 상륙, 대한민국 해병이 된다. 여순사건 때 저항세력 진압에 앞장 선 뒤 해병대 창설을 국군에 제안, 해병대 초대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4.3사건이 발생하자 해병대 전 병력을 제주에 배치해 토벌작전을 전개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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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 국가공인 친일파 11인 묘지 찾기
(http://www.ohmynews.com/NWS_Web/event/snmb/index.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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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 국가공인 친일파 이장 촉구' 청와대 국민청원 함께 하기(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7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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