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갓등에 빨간 불은 택시 기사가 보내는 구조 요청 신호로 어떤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표시다. 밖에서 이 빨간 불 택시가 보이면 즉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김지영
그는 운전자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되었고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이른바 특가법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특가법은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기소 처분된다. 그는 지금까지 가해자가 응당 해야 했을 충분한 사과나 적절한 조치를 어떤 방식으로도 하지 않았고 할 의사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나는 그런 행동을 했던 사람이 재판을 앞두고 갑자기 회심하여 지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내게 사과하는 이벤트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그 모든 건 결국 자기 형량을 낮추기 위한 연극에 불과하다.
그날 이후 내게 닥친 현실은 새로운 격랑이었다. 물리적 폭력은 도무지 내 삶과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었다. 그런 줄로만 알았던, 날 것 그대로 당했던 폭력의 잔상은 광범위하게 악착같이 내 삶에 파고들었다. 나는 그것부터 해결해야 했다. 사건 이전의 삶으로 돌려놓는 일, 내겐 그게 우선이었다.
고속화도로에서 운전자 폭행은 살인 행위다. 목이 졸리는 와중에 전방 시야도 방해받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내가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아찔함이었다. 단순한 주취자의 폭력행위가 때와 장소를 잘못 만나면 모두에게 비극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심각한 문제는 그 사건의 주 무대가 나와 내 가족의 생계가 달린 택시라는 사실이다. 후유증은 컸다. 낮보다 50% 이상 소득이 좋은 야간 택시 운전을 한동안 도무지 할 수 없었다.
병원에 있던 며칠 동안 심리적 안정을 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원하고 용기 내어 일을 나선 밤에 술과는 상관없이 건장한 젊은 사람이 타면 내리는 순간까지 식은땀 나는 긴장감이 팽배해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당장 가정경제가 피해를 보기 시작했다.
더구나 돌발상황이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날 0.007%의 당사자가 내가 될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4만여 명 중 3명 안에 내가 들어갔다는 사실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 확률이다. 그 결과 당장 경제적 타격이 커져 버렸는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일상이 무너져버렸다
택시는 통상 하루 중 짧게는 여덟 시간에서 길게는 열두 시간 넘게 일을 하는데 낮이든 밤이든 혹은 낮과 밤을 섞든 각자의 생체 리듬과 일상 환경에 맞는 하루 일정표가 자연스럽게 고정된다. 내게도 지금 삶 안에 굵직하게 자리 잡은 택시와 글쓰기와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맞춤하기 위해 여러 달 동안 다양한 실험 끝에 완성된 하루 일정표가 있었다.
오전 9시 전후로 일어나 오후 1~2시까지 개인 시간을 가지면서 글을 쓰고 2시 이후에는 일을 시작해 새벽 1~2시까지 할증구간 영업으로 마무리하는 일상이었다. 주말에는 오전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외식이 정례화되어 있었고 으레 나는 그런 시간 안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쌓아 놓은 나와 가족들의 일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렸다. 겨우 20분 남짓 된 폭력이 내 모든 평화의 시간을 허물어버렸다. 그리고 모든 게 엉켜버렸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사건 후 며칠은 마음을 붙잡느라 병원에 있었고 그 뒤로도 일주일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마음의 불안보다 형사사건 피해자가 알아야 할 경찰서와 검찰, 법원 관련 정보들을 수집하고 내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법과는 무관한 일상을 사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모든 게 생소하고 낯설었다. 단어, 용어, 절차 등 알아내는 모든 것들이 다 그랬다. 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쉽게 말했지만 나로서는 처음인 내용들을 소화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통계적으로 서울에서 매일 하루에 3건이 발생하는 상수로 존재하는 범죄행위인데 당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힘든 과정을 반복해 거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교통 운전자 폭행의 25.5%가 발생하는 서울시에서는 이런 피해자에게 일목요연한 정보제공과 피해구제에 대한 처리 과정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이 요구된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