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9 11:56최종 업데이트 24.05.29 16:55
  • 본문듣기
경찰청 통계로 2022년 전국에서 발생한 운전자 폭행은 4368건이었다. 이중 서울에서 발생한 사건은 1115건으로 전국 대비 25.5%였다. 

하루로 환산하면 2022년 전국에서 12명, 서울에서는 3명의 운전자가 매일 운전대를 잡은 무방비 상태에서 폭행당했다. 서울시 통계로 영업용 자동차 업종별 수송 현황을 보면 등록된 택시가 법인 개인 합계로 2022년 기준 7만 1701대였다. 


이렇게 복잡한 숫자놀이를 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사는 서울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김모씨가 폭행당할 확률을 따져보기 위해서다. 매일 등록된 모든 운전자가 영업을 했다는 가정을 하면 당첨(?) 확률은 0.004%다. 

변수가 있다. 2023년 9월 25일 MBC 뉴스에 따르면 감사원은 '지난 4년 동안 서울시에서 택시 면허를 갖고 있는 차량 7만여 대 중 하루 평균 4만여 대만 운행됐다'며 '평균 운행률이 57%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계산을 다시 하자. 7만 1701의 57%인 4만 869명 중 3명이다. 허수를 뺀 실제 확률은 0.007%. 한 번 폭행당한 피해자가 두 번 안 당한다는 가정을 하고 하루에 3명씩 빠진다. 57% 운행률로 마지막 희생자가 나오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1만 3623일, 햇수로는 37년이다.

설사 마지막 희생자라 해도 37년은 내가 운전자 폭행을 한 번도 당하지 않고 개인택시를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택시 운전을 시작한 나에게 필요한 시간은 20년, 그러니까 20년 안에만 아무 일 없으면 되는 거다. 

확률은 희미했고 저런 몰상식한 범죄는 나를 비껴갈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보편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스스로 불행을 예약하지 않는다. 그렇게 개인택시를 시작하고 일 년도 안 된 아니 겨우 6개월을 갓 넘긴 지난 4월이었다. 내가 당첨됐다. 0.007%, 그날 하루 동안 서울에서 운행한 택시 4만여 대 중 운전자 폭행을 당한 3대의 차량 운전자 중 한 명이 나였다.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야간에 운행 중인 택시. 자료사진. 이희훈
 
멀쩡하게 앱으로 호출까지 했던 그가 택시에 오를 때, 배웅 나온 친구는 "기사님, 잘 부탁합니다"라고 살가운 인사를 했다. 자정이 목전에 다가온 깊은 밤이었다. 실루엣으로 비친 인상은 서른에서 마흔 사이 건장한 청년이었다. 차에 오르면서 털썩하고 주저앉을 때 술에 취한 줄은 알았다. 도착지까지는 20킬로미터가 넘는 시내 장거리였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강변을 따라 이어진 고속화도로에 차를 올리고 달리기 시작했을 때 징조가 보이긴 했다. 지인들과 연이어 짧은 통화를 하는데 그쪽에서는 서둘러 끊으려는 눈치였고 그는 욕설로 마무리했는데 그 상스러움이 심상치 않았다. 술을 먹었어도 평범한 사람이 함부로 뱉을 수 없는 단어였다. 

통화가 끝나고 기분이 나빴는지 혼잣말로 욕설하던 그가 내게 말을 걸었다. 물론 택시 기사와 승객으로 처음 만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그런 예의 바른 방식이 아니었다. 

그는 다짜고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아냐고 물었고 나는 당연히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어떻게 자기를 모를 수가 있느냐면서 심한 욕설과 함께 나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조수석 머리받이를 가리키며 이 형님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대개 술 취한 사람들이 택시에 타면 취기가 금방 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좁은 공간 안에 더운 공기가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는 앞자리에 대단한 형님을 모시고 가는 중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지금 여기는 택시 안이고 당신과 나밖에 없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줬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그에게 그런 설명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심한 욕설을 퍼붓던 그가 곧 모종의 행동에 나설 거란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왠지 그런 불운한 느낌은 꼭 현실이 되고 만다. 그 짧은 순간 그러니까 욕설과 행동 사이에서 내 예상은 주먹 아니면 발이었다.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나를 공격했다.

뒷자리에 앉았던 그가 상스러운 욕설을 퍼부으며 자기를 몰라보고 대단하신 형님까지 몰라본 내게 달려들어 휘두른 폭력은 목을 조르는 것이었다. 술에 취했어도 내 목에 감긴 건장한 청년의 굵은 손마디가 짱짱하게 조여왔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 막힘없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거침없이 속도를 높이며 운전대가 흔들리는 내 차 옆을 빠르게 지나쳐갔다. 

여기는 고속화도로고 이렇게 목을 조르면 조금만 운전대를 잘못 움직여도 다 죽을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내겐 직면한 위험이었고 실제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 목적지까지는 절반도 가지 못했다. 

아니, 목적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살 길을 찾아야 했다. 내겐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었다. 그는 계속 욕설과 함께 내 목을 힘껏 조이고 있었다. 갓길도 없는 고속화도로에서 목이 졸린 채 운전하는 그 시간이 영원할 것 같은 암담함만 가득했다. 그와의 몸싸움이나 방어를 위한 역공은 오히려 위험을 자초하고 후에 쌍방 폭행의 빌미가 될 수 있었다.

길 끝이 보이지 않는 아득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반포대교를 건너는 램프 구간이 앞에 나타났다. 거길 건너 좌회전하면 고속버스터미널이 있고 경찰 지구대가 바로 옆에 붙어 있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반사적으로 핸들을 꺾었다. 다리를 건너 고속버스터미널 택시승강장에 차를 밀어붙이고 핸드폰을 들고 뛰어내렸다. 여기까지가 사건의 전말이다. 

후유증은 컸다
 
택시 갓등에 빨간 불은 택시 기사가 보내는 구조 요청 신호로 어떤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표시다. 밖에서 이 빨간 불 택시가 보이면 즉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김지영
 
그는 운전자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되었고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이른바 특가법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특가법은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기소 처분된다. 그는 지금까지 가해자가 응당 해야 했을 충분한 사과나 적절한 조치를 어떤 방식으로도 하지 않았고 할 의사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나는 그런 행동을 했던 사람이 재판을 앞두고 갑자기 회심하여 지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내게 사과하는 이벤트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그 모든 건 결국 자기 형량을 낮추기 위한 연극에 불과하다. 

그날 이후 내게 닥친 현실은 새로운 격랑이었다. 물리적 폭력은 도무지 내 삶과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었다. 그런 줄로만 알았던, 날 것 그대로 당했던 폭력의 잔상은 광범위하게 악착같이 내 삶에 파고들었다. 나는 그것부터 해결해야 했다. 사건 이전의 삶으로 돌려놓는 일, 내겐 그게 우선이었다.

고속화도로에서 운전자 폭행은 살인 행위다. 목이 졸리는 와중에 전방 시야도 방해받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내가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아찔함이었다. 단순한 주취자의 폭력행위가 때와 장소를 잘못 만나면 모두에게 비극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심각한 문제는 그 사건의 주 무대가 나와 내 가족의 생계가 달린 택시라는 사실이다. 후유증은 컸다. 낮보다 50% 이상 소득이 좋은 야간 택시 운전을 한동안 도무지 할 수 없었다. 

병원에 있던 며칠 동안 심리적 안정을 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원하고 용기 내어 일을 나선 밤에 술과는 상관없이 건장한 젊은 사람이 타면 내리는 순간까지 식은땀 나는 긴장감이 팽배해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당장 가정경제가 피해를 보기 시작했다. 

더구나 돌발상황이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날 0.007%의 당사자가 내가 될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4만여 명 중 3명 안에 내가 들어갔다는 사실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 확률이다. 그 결과 당장 경제적 타격이 커져 버렸는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일상이 무너져버렸다

택시는 통상 하루 중 짧게는 여덟 시간에서 길게는 열두 시간 넘게 일을 하는데 낮이든 밤이든 혹은 낮과 밤을 섞든 각자의 생체 리듬과 일상 환경에 맞는 하루 일정표가 자연스럽게 고정된다. 내게도 지금 삶 안에 굵직하게 자리 잡은 택시와 글쓰기와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맞춤하기 위해 여러 달 동안 다양한 실험 끝에 완성된 하루 일정표가 있었다. 

오전 9시 전후로 일어나 오후 1~2시까지 개인 시간을 가지면서 글을 쓰고 2시 이후에는 일을 시작해 새벽 1~2시까지 할증구간 영업으로 마무리하는 일상이었다. 주말에는 오전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외식이 정례화되어 있었고 으레 나는 그런 시간 안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쌓아 놓은 나와 가족들의 일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렸다. 겨우 20분 남짓 된 폭력이 내 모든 평화의 시간을 허물어버렸다. 그리고 모든 게 엉켜버렸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사건 후 며칠은 마음을 붙잡느라 병원에 있었고 그 뒤로도 일주일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마음의 불안보다 형사사건 피해자가 알아야 할 경찰서와 검찰, 법원 관련 정보들을 수집하고 내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법과는 무관한 일상을 사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모든 게 생소하고 낯설었다. 단어, 용어, 절차 등 알아내는 모든 것들이 다 그랬다. 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쉽게 말했지만 나로서는 처음인 내용들을 소화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통계적으로 서울에서 매일 하루에 3건이 발생하는 상수로 존재하는 범죄행위인데 당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힘든 과정을 반복해 거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교통 운전자 폭행의 25.5%가 발생하는 서울시에서는 이런 피해자에게 일목요연한 정보제공과 피해구제에 대한 처리 과정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이 요구된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사건 이후 자비를 들여 격벽을 설치했다. 실제 폭행 예방에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심리적 안정에는 효과적이다. 김지영

내가 다시 마음을 잡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까지는 몇 주가 더 걸렸지만 예전 평화로웠던 일상은 두 달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온전하게 되돌리지 못하고 있다. 밤 운전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며 수입을 정상화하고 심리적 안정을 되찾는 데도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나와 같은 운전자 폭행 희생자 중에 아예 그 길로 밤 운전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가해자가 형사재판에 넘겨지고 피의자에서 피고인으로 신분이 바뀌었다는 통고를 받으면서 알게 된 이름 말고 내가 그의 신상에 대해 아는 것은 전혀 없다. 그가 나에게 행사한 폭력이 낳은 결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이제는 알 바 아니다. 그는 그저 내게 용서를 바라지도 않은 뻔뻔한 가해자로서만 기억될 뿐이다.

재판 결과도 관심 없긴 마찬가지다. 2022년 기준 5년 동안 1만 5631명이 운전자 폭행으로 검거되었지만 구속은 129명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쳤다. 운전 중 폭행 피해자가 처한 위험은 죽음 직전까지 도달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법은 늘 가해자에게 관용을 베풀었다. 

중요한 건 그에 대한 사법적 응징이 내가 가진 개별적 정의와는 별개라는 것이다. 내가 집중해서 다시 되돌려 놓아야 하는 건 사건 이전 내가 힘껏 만들어놓았던 나와 가족을 중심으로 평화롭던 일상이다. 그게 바로 내가 찾아야 할 정의다. 겨우 20분짜리 폭력으로 온전했던 일상이 회복되지 못하는 건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비겁한 도피였다. 

가해자의 진정어린 사과는 바라지 않고 그걸 받아 줄 생각도 없다. 대부분의 주취 폭력은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병리 현상이다. 통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는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모든 죄를 탕감받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술 마시던 일상으로 편안하게 돌아갈 것이다.

그런 병적 행동이 폭력을 앞세워 우연히 내 삶에 파고들었고 나는 속절없이 당했다. 나는 스스로 상처를 씻었고 약을 발랐다. 이제 남은 건 거기 새살이 돋는 일이다. 그러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한지 아직 모른다. 

나는 오늘도 닥치면 100%가 될 0.007%의 확률게임장에 다시 입장한다. 서울에서 택시 운전하는 김모씨들이 매일 당면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2024년을 살아가는 택시 노동자에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