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굿 공연제주 볍씨학교 학생들이 4·3 예술축전에서 거리굿 공연을 하고 있다.
박정근
이제 본격적으로 제주 볍씨학교의 교육현장으로 들어가 볼 차례다. 16세 안팎의 학생들은 이곳에서 어떤 내용을 공부하는 것일까.
"광명 볍씨학교는 한 학년에 15명이 기준입니다. 현재 제주 볍씨학교 학생은 13명인데 이 가운데 2년 차와 3년 차가 각각 3명입니다. 그러니까 9학년을 졸업했지만 제주 생활을 2년째 혹은 3년째 하는 학생이 6명이나 되는 셈입니다. 교사진은 저와 담임교사 한 분이 있습니다만, 다양한 수업을 맡아주시는 강사들이 많습니다.
강사 선생님들은 각 분야의 전문성을 지닌 분들로 합창, 풍물, 염색, 마임, 건축 등의 수업을 재능 기부 형식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동아리 수업으로 기타, 바투카타(브라질 악기)를 지도해주시기도 하고요. 저는 인문학 수업을, 담임선생님은 영어를 맡고 있어요.
우리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4일은 공부를 하고, 화·목·금 3일은 집짓기, 밭농사, 식당 아르바이트, 농장 아르바이트 등 일을 합니다. 저희가 농사짓는 밭이 약 6천 평이나 되거든요. 요즘은 귤밭에 가서 풀베기도 해야 하고 넝쿨도 제거하고 가지치기도 해야 할 때입니다. 콩을 심기 위한 준비작업을 하는 때이기도 하고요. 이밖에 밀 양파 호박 오이 참외 수박 토마토 옥수수 가지 채소 등 저희가 먹는 작물들은 거의 자급자족하고 있습니다."
이영이 교장이 전해주는 제주 볍씨학교의 커리큘럼은 국어·영어·수학 등 입시 위주의 일반 학교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과목 자체가 다른 것은 물론, 수업방식도 달랐다. 이영이 교장이 담당하는 인문학 수업이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인문학 수업은 먼저 책을 읽고 다섯 줄로 요약하도록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완전히 이해해야만 가능합니다. 대충 베껴서는 할 수가 없습니다. 다섯 줄로 요약한 다음에는 한 가지 문제의식을 도출하고, 그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한 페이지로 정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다른 학생들과 토론을 합니다.
1년 차 아이들(9학년)의 경우 <진화와 협력>, <녹색평론>을 공부한 데 이어 다음 책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다룰 예정입니다. 3년 차 아이들은 최근에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를 읽었어요. 저희 학생들이 읽은 책들은 모두 상호부조에 관한 책입니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우리 교육철학과도 맞는 내용이거든요. 책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놓고 토론을 하지만, 저는 어떤 게 맞는 길이라고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자기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각자의 선택인 것이죠."
볍씨학교의 교육과정을 듣다 보니 학생들이 무척이나 바쁠 것 같다. 교실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듣는 전통적인 학교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볍씨학교에서 자기 주도성을 강조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하다. 교사와 학생들의 일과는 어떻게 돌아갈까.
"아침 6시에 기상을 하면 6시 10분부터 동백동산까지 왕복 2.7㎞ 달리기를 합니다. 그다음엔 요가로 몸을 풀어주고요. 이후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5분간 읽는 '책 명상'을 합니다. 이어서 청소하고 아침밥을 먹습니다. 식사 준비는 2명의 '밥지기'가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한 사람은 가마솥에 밥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반찬을 만듭니다. 공부하는 날이든, 작업하는 날이든 항상 8시부터 일과를 시작해 저녁까지 이어집니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7시부터 다 같이 모여서 노래를 합니다. 매일 30분 정도 노래를 하는데, 아이들이 이 시간을 엄청 좋아해요. 기타나 오카리나 같은 악기들도 총동원해 음악을 즐기는데, 민중가요 복음성가 대중가요 등 다양한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에 이어 '하루 나눔'을 합니다. 그날 하루를 정리하는 글쓰기를 하고, 자기가 쓴 글을 읽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동료들과 함께 그 글에 대한 코멘트를 주고받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일하는데 작업 체계가 너무 안 잡혀 속도가 늦었다, 하면 그 체계를 어떻게 다시 잡을 건가를 얘기해야 하므로 서로 코멘트를 하는 것이지요.
이게 끝나면 다음 날 일정을 정합니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고, 어떤 행사에서 와달라고 요청을 하는데 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의논하여 결정하는 것이지요. 다음날 일정까지 짜고 나면 잠자기 전에 200배 절을 합니다. '절 명상'을 하는 거죠. 그리고 나서도 또 잠들기 전에 할 일이 있어요. 다음날 행사가 있으면 이에 대비해 기획하거나 공연 연습을 해야 합니다. 저녁 식사 후 잠들기 전까지 이처럼 할 일이 많다 보니 아이들이 엄청 바쁩니다. 눈코 뜰 새가 없어요."
볍씨학교가 바쁘게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학생들이 대외 행사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제주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행사에 함께하는 것은 물론, 매주 월요일 선흘초등학교 6학년을 대상으로 목공, 요리, 인형만들기, 뜨개질, 바느질, 공동체놀이 등 '살림수업'도 맡고 있다. 토요일엔 자폐 친구들과 함께 놀아주며 그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대외활동의 사례들을 좀 더 들어보자.
"볍씨학교 아이들이 초등과정 때부터 여러 악기를 배워왔고, 노래를 많이 부르고 하니까 외부에서 공연 요청을 자주 받고 있어요. 최근에만 해도 4·3 예술축전과 설문대 할망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했고, 즉흥춤 축제라는 국제행사에서 '여는 무대'를 저희가 했습니다. 동검은이오름 달맞이 산행에서 오카리나 공연을 했고, 장애인부모연대 행사에도 갔어요. 또 6월에는 사회적 참사와 인권 관련 행사에 가서 마임 공연을 할 예정이고요."
남다른 볍씨학교의 졸업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