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30 07:04최종 업데이트 24.07.3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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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주 성산읍 내륙습지 조사팀장성산읍 수산리가 고향인 오은주 씨는 제2공항 예정지역 일대의 숨골과 습지 등에 대한 조사작업을 통해 공항이 들어설 경우 예상되는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황의봉
 
2015년 11월 10일, 국토부가 제주 제2공항 후보지로 성산읍 일대를 전격적으로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오은주씨는 광고물 제작 사업을 하는 남편과 함께 자식을 키우며 평온한 삶을 영위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지금 그녀는 제2공항 반대 투쟁의 최일선에서 싸우는 투사가 됐다. 고향인 성산읍 수산리가 공항 건설로 인해 피해지역이 되는 것은 물론, 제주 동부지역의 자연환경이 결정적으로 파괴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부터다.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 환경조사위원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공동대표, 다른제주연구소 운영위원, 성산읍 내륙습지 조사팀장, 수산리 마을해설가. 오은주씨가 참여하고 있는 단체나 맡은 역할만 일별해 봐도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동생인 오창현씨는 수산리 청년회장에 이어 요즘은 제2공항 성산읍 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아 역시 최일선에서 싸우고 있다.


오은주 오창현 남매의 발길이 다시 빨라졌다. 국토부가 조만간 공항 건설을 위한 기본계획을 고시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올해 초 공표할 것으로 알려졌던 '고시'가 국토부와 기획재정부의 제2공항 총사업비 협의가 8개월여나 시간을 끄는 바람에 지연됐으나, 최근 관련 작업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가 벌어지고,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제주 시민사회의 반대성명이 쏟아졌다.

수산초등학교 앞 카페에서 마주 앉은 오은주씨는 자신의 직함 중에서 '성산읍 내륙습지 조사팀장'이 가장 어울릴 것 같다고 한다. 성산읍은 제주도에서도 특히 습지와 숨골이 많고 이곳을 찾는 새들의 천국인 만큼 제2공항 건설로 인한 자연환경 훼손을 가장 실감나게 알릴 수 있는 역할이 조사팀장이기 때문이란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수산리 일대가 어떤 곳이기에 공항 건설이 문제가 되고 있는가로 시작했다. 오은주 '습지조사팀장'이 말하는 습지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수많은 새, 185개의 숨골... 이래도 공항 지을 건가
 
찍구물 습지조사성산읍 내륙습지 조사팀이 성산읍 난산리에서 가장 큰 습지인 찍구물을 조사하고 있다. 공항 건설을 강행할 경우 훼손이 예상되는 습지로 꼽힌다. 성산읍 내륙습지 조사팀
 
"습지에는 많은 식물과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풍부한 생물 다양성으로 각종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자연의 콩팥 역할을 합니다. 수산리는 중산간의 뱅듸(제주어로 너른 들판) 지역으로 연못 같은 습지가 발달해 있어요. 몽골이 삼별초의 난 이후 제주도에 설치한 1호 국영목장이 바로 이곳 수산리 뱅듸 지대였습니다. 초지와 물이 풍부했기 때문이죠. 저희 수산리에만 27개의 습지가 기록돼 있습니다만, 지금은 7∼8개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수산리의 명물 습지인 '수산 한못'에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식물인 전주물꼬리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8월이면 장관을 이루고 있어 관광객도 많이 찾아오는 명소입니다.

이웃 마을로 역시 공항 예정지역인 난산리에도 습지가 많습니다. 습지조사팀이 살펴보니까 공항부지 500m 이내에 약 20∼30개의 습지가 분포하고 있더라고요. 습지 주위에는 보존해야 할 멸종위기 식물이나 곤충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습지를 주목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종 다양성을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곳을 찾아오는 새들이 씨앗을 먹고 다른 습지로 가서 배설하는 방식으로 퍼뜨리는 겁니다. 공항이 들어서 습지가 메워지고, 비행기가 날게 돼 새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생태계 벨트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습지와 새 이야기가 나왔지만 성산 일대는 제주도에서도 조류가 많은 곳이다. 하도 철새도래지와 고성, 오조 철새도래지는 탐조행사가 자주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모두 제2공항 예정지에서 가깝다. 공항이 건설되면 비행기와 조류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오은주 팀장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국토부 앞 반대집회제2공항 기본계획 고시가 임박하자 성산읍 피해 마을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0일 국토부 앞에서 집회를 갖고 공항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
 
"'성산환경을 지키는 사람들'이 총 네 차례에 걸쳐 전문가와 함께 조사한 결과, 성산이 표선면이나 남원읍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새의 개체 수가 월등히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하도와 고성, 오조 사이 바닷가에 많은 새가 서식하는데, 다른 지역보다 양식장과 갈대밭이 많고 수심이 얕아 먹이활동이 쉽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성산-하도 권역은 제주에서 유독 많은 새가 서식할 뿐 아니라 일본 중국 북한 동남아 등에서 날아와 서식하고 이동하는 '새들의 국제공항'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세계자연유산인 성산일출봉만 해도 남쪽 절벽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수많은 새가 둥지를 틀고 서식하는 공간입니다. 이곳은 새가 아파트처럼 군락을 이루는데, 상층부는 매와 칼새 등이 서식하고, 가운데 부분은 가마우지 떼가 모여 삽니다. 그 아래로는 백로와 갈매기 종류가 살고 있고요. 이 성산일출봉과 6㎞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공항이 들어선다는 것입니다. 하도 철새도래지는 제2공항 예정 부지 경계로부터 8㎞, 고성,오조 철새도래지는 5㎞도 채 안 됩니다.

2019년 국토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보면 새가 해안에서 내륙, 다른 해안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비행기와 조류가 충돌할 위험이 적다고 했지만, 사실과 다릅니다. '성산환경을 지키는 사람들'이 조사해 보니, 신천리에서 발견된 새 떼들이 30여 분 후에는 신산리 해안에서 발견됐고, 시간이 좀 지나서는 신양리 바닷가에서 발견됐어요. 제 고향인 수산리의 연못인 '통한못'에서도 많은 수의 오리를 볼 수 있었는데, 이 새들은 바다와 내륙을 수시로 이동하며 먹이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특히 청둥오리 개체 수가 많았어요.

두산봉에 서식하는 매 가족들은 200∼300m 이상 높이 날다가 사냥감을 발견하면 수직 낙하합니다. 계획대로 공항이 생기면 비행기가 대왕산, 두산봉 위 100∼200m 상공을 날게 될 것이니까 매와 비행경로가 겹치게 되는 겁니다. 과연 조류 충돌 사고를 무시할 수 있을까요?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수산리 마을 해설오은주 팀장은 고향인 수산리의 습지와 동굴 등 자연자원을 안내하고, 수산진성 4·3 피해 등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을 해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오은주
 
습지와 함께 숨골도 공항이 건설되면 다수가 파괴될 운명이어서 쟁점이 되고 있다. 육지 사람들에겐 다소 생소한 숨골 이야기를 들어보자.

"숨골은 화산섬 제주에서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용암으로 생겨난 바위 사이에 금이 나고 구멍이 뚫려 있는 곳이에요. 비가 오면 물이 그 틈으로 들어가 지하 깊은 곳으로 내려갑니다. 땅속 깊은 곳까지 물길이 나 있는 숨골 덕분에 홍수 피해도 면할 수 있는 것이지요. 비가 많이 오는 날 숨골을 쳐다보면 사람이 그 안으로 쏠려 들어갈 것처럼 물이 빙글빙글 돌면서 쫙 들어가거든요. 이 숨골은 특히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제주의 동쪽 지역에 많습니다.

전략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보면 공항 예정 부지에 숨골이 8개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물으니 '송아지가 빠질만한 크기'를 숨골로 쳤다는 겁니다. 저희가 문제를 제기하니 나중에 153개라고 인정했어요. 주민들이 조사한 바로는 공항 예정 부지에만 185개의 숨골이 발견됐습니다. 공항이 들어서면 숨골이 모두 시멘트로 막혀 버릴 것이므로 홍수 피해도 발생하고, 지하수도 고갈되겠지요.

삼다수라는 게 바로 이 숨골을 통해 들어간 지하수를 퍼 올린 것입니다. 요즘 저희가 먹는 물은 18∼20년 전쯤 숨골을 통해 지하에 들어간 물이라고 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물을 많이 퍼 올리다 보니 숨골로 들어갔다가 다시 퍼 올려지는 주기가 점점 단축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공항마저 생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숨골과 함께 간과할 수 없는 게 동굴입니다. 제2공항 예정지 부근에는 수산굴을 비롯해 모낭굴 신방굴 공쟁이굴 등 동굴이 많습니다. 공항 건물과 활주로 아래 동굴과 숨골이 다수 존재한다면 함몰과 건물붕괴 등 대형참사 우려도 있지만, 국토부는 이런 문제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제주 사람들 갈라놓은 제2공항
 
제주도청 앞 피케팅 시위지난 1일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가 제주도청 앞에서 공항 건설 백지화와 기본계획 고시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
 
성산읍에 제2공항이 들어서면 공항 주변의 습지와 숨골이 사라지고 동굴과 오름의 훼손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인근 마을 주민들의 소음피해도 예상된다. 또 일부 주민은 토지가 수용되면 고향을 떠나야 하고, 감귤재배와 같은 생업을 포기해야 하는 주민도 다수 발생할 전망이다. 공항 예정 부지 3㎞ 이내에는 새들을 유인할 수 있는 과수원이나 양식장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지역에 따라서는 땅값 상승 등 개발 기대감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상충하다 보니 피해지역과 수혜지역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성산읍 14개 마을 중에서 신산리 난산리 온평리 수산리 등 4개 마을이 직접적인 피해지역으로, 나머지 10개 마을은 수혜지역으로 꼽힌다. 제2공항을 둘러싸고 찬반 갈등이 빚어지는 배경이다. 2015년 11월 제2공항 후보지로 발표된 이후 성산읍 지역사회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그해 여름부터 사람들이 성산읍에 많이 오기 시작했어요. 아마 개발정보를 알고 온 사람들 같아요. 가장 눈에 띈 것은 부동산업체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겁니다. 대부분 외지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말투를 들어보면 금방 알 수 있거든요. 6∼7개 정도였던 부동산업소가 50∼60개로 늘어났어요. KBS 제주 보도에 의하면 2015년 후보지 발표 이전 5∼6개월간 토지거래 건수가 가파르게 오르다가 발표 전후로 뚝 떨어졌습니다. 사전 정보 유출이 의심되는 것이죠. 이 기간 토지거래 소유주의 3분의 2가 다른 지역 거주자들입니다. 땅값도 10배씩 마구 올랐고요. 현재는 토지거래허가제에 걸려 있어 최고점에서 조금 떨어졌을 겁니다.

시위가 일상화한 것도 큰 변화였습니다. 시위는 성산읍에서도 했지만 대부분 제주시로 나가서 했어요. 마을 삼촌들이 밭에서 일하던 차림으로 버스 타고 시위현장으로 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는 것을 처음 봤을 때는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까지도 시위현장에서 팔을 휘두르며 노래를 부르시더라고요. 99세 된 할머니도 공항 어떻게 되는 거냐고 걱정하실 정도로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요.

제2공항에 대한 찬반 견해 차이로 싸우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제 동생은 성산 시내에 나갔다가 공항 찬성하는 선배들 만나 가끔 싸우기도 한다고 해요. 선후배 사이가 틀어진 것입니다. 체육대회 같은 마을행사할 때도 반대하는 마을 분들이 다 깃발 들고 나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머니도 고성의 한 미용실에 갔다가 어떤 '완전 찬성파' 삼촌과 싸울 뻔했다고 하더라고요. 모르는 사람끼리도 공항 이야기가 나오면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겁니다.

저희 수산마을은 나이 드신 세대 가운데는 개발을 해야 돈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분이 많았어요. 특히 마을의 이장이나 개발위원장 같은 분들이 그런 논리를 펴곤 했는데, 제2공항 문제가 불거진 이후로 이런 생각들이 조금 바뀐 것 같아요. 마을 존폐 위기가 닥치니까 환경문제라든가 마을의 자원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공항 건설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이어지면서 중재에 나선 제주도의회가 제주도 측과 지루한 협상 끝에 제주지역 9개 언론사 공동으로 제주도민 대상 찬반 여론조사를 한 것이 지난 2021년 2월 15∼17일이었다. 20여 일간의 찬반 운동을 거친 여론조사여서 사실상 주민투표의 성격을 띤 것으로 여겨졌다.

두 군데 여론기관에서 실시한 결과, 모두 반대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당시 성산읍만 따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찬성 여론이 훨씬 높았다. (관련 기사: 제주도민은 반대, 예정지 주민은 찬성한 '제2공항' https://omn.kr/1s4y2)  그동안 제2공항에 대한 도민사회와 성산 현지 여론의 흐름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성산에 제2공항을 짓겠다는 발표가 나온 직후만 해도 찬성 여론이 거의 70%에 달할 만큼 압도적이었습니다. 제주 전역에 제2공항 환영 현수막이 걸리고 국책사업은 어차피 막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거든요. 그런데 9개 언론사 공동조사 때는 완전히 뒤바뀌어 반대 여론이 높았습니다. 

이렇게 제2공항에 대한 도민들의 여론이 반전하게 된 것은 피해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직접 현장 조사를 하면서 성산을 후보지로 선정한 사전타당성 용역보고서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한 게 주효했다고 봅니다. 안개일수 조작(성산과 난산의 연평균 안개일수를 17일이 아닌 12일로 계산한 것. 국토부 측은 '오류'를 인정했지만 후보지 평가점수에는 영향 없다고 밝힘) 등이 드러나면서 성산이 공항 건설의 적지라는 게 설득력을 잃은 것이지요. 그리고 앞에서 살펴본 습지나 숨골, 조류서식지, 오름의 훼손 가능성이 제기돼 주민들이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된 것도 여론의 반전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제주도는 강정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엄청난 갈등을 겪어야 했고, 지금도 그 상처를 안고 있다. 제2공항의 경우, 강정 사태보다 더 심각한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크다. 과연 이 갈등을 해소할 방안이 있을까?

"저는 이 문제는 제2공항 건설 강행을 막아야만 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목숨 걸고 막아야만 강정 사태와 같은 비극적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 같아요. 공항을 막을 수 있는 근거와 이유는 많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숨골 습지 동굴 오름 등 환경훼손 문제가 고시 이후 실시될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그리고 도의회 동의 과정에서 공항이 들어서서는 안 된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봅니다.

강정 해군기지 때만 해도 제주 사람들이 처음으로 대규모 국책사업에 맞선 것이어서 막아내는 데 결국 실패했지만, 성산 제2공항은 이제 경험도 있고, 시민단체도 전과는 다르게 조직적으로 대처하고 있어서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항 찬성 측에서도 기본계획 고시가 된다고 해도 공항이 실제 건설되기는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관광객 수 정체... 제주공항 개선해서 쓰면 된다"
 
제2공항 예정지 걷기 행사지난 6월 8일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제주도민들이 제2공항 활주로를 포함한 공항 건설 예정지를 걷는 행사를 하고 있다. 맨앞 왼쪽이 오은주 팀장.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
 
오은주 팀장은 기본계획 고시 이후 전개될 가장 중요한 절차인 환경영향평가와 제주도의회 동의 과정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이 문제를 두고 '제주도의 시간'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환경영향평가는 사전 타당성 조사의 성격을 띤 전략환경영향평가와는 달리 4계절의 환경영향을 평가해야 하므로 아무리 짧아도 1∼2년 이상이 걸릴 전망이다.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자.

"기본계획 고시가 되면 당장 다음 날 공항 짓기 위해 포크레인으로 땅을 팔 거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한 절차가 기다리고 있어요. 제주도특별법에 따르면 정식으로 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하고, 도의회의 동의를 거쳐 제주도지사가 도장을 찍어야 공항 건설이 확정되는 겁니다. 그동안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세 차례나 반려된 끝에 조건부 동의라는 편법을 통해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제대로 문제점을 지적해 낸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 환경영향평가 과정에 많은 문제가 있어요. 제주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현장조사 과정에 민간에서도 참여해 함께 조사하자는 요구도 할 것이고, 환경영향평가 심의위원회에도 주민이 들어가야 한다고 문제 제기할 겁니다. 사업자가 주도하는 환경영향평가법을 개정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앞으로 관건은 선거라고 생각합니다. 환경영향평가가 2026년 지방선거 이전에 끝날 것 같지 않으니까 차기 도의회 구성이 중요해진 것이지요. 다음번 지방의회 선거를 잘해서 공항 건설을 도의회 차원에서 막아낼 도의원들을 많이 뽑아야 하고, 도지사도 잘 뽑아야만 국토부의 건설 강행 시도를 저지할 수 있으니까요."


제2공항에 대한 제주 도민사회의 찬반 주장과는 별도로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도 견해차가 있는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성산 지역에 공항이 또 하나 생긴다면 비행기표 구하기가 훨씬 쉬워져 편리하게 제주를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진 육지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오은주 팀장은 이런 외지인의 기대감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공항 후보지인 성산의 지역적 특성을 이해한다면 이곳에 공항이 추가로 생긴다고 해도 관광객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지역은 제주도에서도 비가 많이 내리고, 안개가 자주 나타나는 곳입니다. 또 여름 휴가철에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입니다. 아마 이곳에 공항이 들어서면 현 제주공항보다 훨씬 결항일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제주를 찾는 관광객 숫자가 이제는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거나 정체되고 있어 성산에 공항을 지어도 쓸모없는 공항이 될 가능성도 있어요. 육지의 일부 지방 공항에 이용객이 적어 예산 낭비 사례로 지적되고 있지 않습니까. 제주를 찾는 관광객은 2013년에 1000만 명을 넘고, 2017년 1700만 명으로 최고점을 찍은 후 더 이상 늘지 않은 채 1500만 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1334만 명으로,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이후엔 오히려 줄었어요. 게다가 인구감소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고요.

그래서 저는 새로 공항을 더 지을 게 아니라 현 제주공항을 개선해 관광객들이 좀 더 편리하고 쾌적하게 오갈 수 있도록 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수행한 용역 결과 제주공항을 개선하면 최대 연간 45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숨골 조사지난 3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 환경조사위원들과 도민들이 활주로 예정지 인근의 숨골을 조사하고 있다.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
 
오은주 팀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회적 이슈가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는 평범한 생활인에서 제2공항 반대 투쟁에 투신하기까지 자신의 행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오늘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2015년 말 성산 지역이 제2공항 후보지로 결정됐다는 발표를 듣는 순간, 거짓말인가? 무슨 얘기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혀 상상도 못 했던 것 같아요. 생업에 바쁘기도 해서, 한 1년은 거의 멍한 상태로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마을에서 대책위원회를 꾸리면서 정신을 차리고 반대운동을 시작한 것이지요.

공항 발표가 난 지 9년이 됐는데, 그동안 제가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느낌입니다. 고향인 성산에 공항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다 보니 이 지역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진짜로 공부를 많이 하게 됐습니다. 제가 수산리에서 나고 자랐지만 언제 숨골이니 습지니 이런 곳을 조사하고 연구했겠습니까. 요즘 뒤늦게 제주대 대학원 자연문화유산교육학과에 다니고 있는 것도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 고향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저는 2020년부터 수산리 마을해설가 일도 하고 있습니다. 수산 한못 같은 습지도 안내하고, 성산읍에서도 가장 피해가 컸던 4·3 이야기, 수산진성, 수산초등학교의 역사도 해설해 드립니다. 요즘은 제2공항 예정지 걷기 행사도 하고요. 저는 자연을 좋아하고, 답사 다니는 걸 좋아했었는데, 전에는 그냥 제주도는 좋은 곳이라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성산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 제2공항이 왜 들어서면 안 되는지를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는 사명감과 고민 속에서 답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 60회 정도 마을 해설을 하고 있는데, 누구든 안내와 해설을 요청해오면 기꺼이 해드립니다.

또 제주의 정치 상황이나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고, 제주의 미래세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고요. 이런 모든 일은 제2공항 문제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러니까 저에게는 제2공항 문제가 아주 큰 위기였지만 실은 저를 성장시키는 기회이기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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