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서귀아들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겪게 된 어머니의 좌절과 극복의 여정을 그린 강 작가의 소설 <태풍서귀>에 수록한 작품 배경 사진.
강홍림
강 작가가 최근 펴낸 소설집 <서쪽으로 돌아가다>에 실린 세 편의 소설 이야기부터 들어보았다. 이 소설책에는 소설사진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작품의 배경이 되는 서귀포 곳곳의 풍경을 담은 아름다운 사진이 곁들여져 눈길을 끈다. 강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다.
"소설 <아버지의 바다>는 가정 안팎에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이 시대 아버지들을 위로하기 위한 소설로 화자인 아들이 서귀포를 여행하면서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 실마리를 풀어간다는 내용입니다. 소설 <태풍서귀>는 자신의 사회적 성공만을 추구하다가 아들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겪게 된 어머니의 좌절과 극복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지요. 역시 서귀포 여행이 배경으로 나옵니다. 서귀포는 대한민국에서 태풍이 가장 먼저 가장 세게 불어오는 곳입니다. 우리 주변엔 인생 태풍에 쓰러지고 좌절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쓴 글입니다.
소설 <막달라>는 독자들로부터 가장 관심을 끈 작품입니다. 남영호 침몰사고에서 살아남은 주인공 박춘희를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나는 왜 살아남았을까? 지난 코로나 팬데믹의 위기 속에서 혹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여태 살아남았을까? 우리 모두 생존자인 셈이지요. 죽음 너머에 무엇이 있든 우리는 잘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일까! 이런 평소의 문제의식을 소설로 풀어낸 것입니다."
남영호 침몰사고는 1970년 12월 15일 제주도를 떠나 부산으로 항해하던 여객선이 여수시 남동쪽 35㎞ 해상에서 침몰해 탑승자 338명 가운데 326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연말 성수기에 판매할 감귤 상자를 과적한 것이 사고원인으로 지목됐고, 희생자 대부분이 서귀포 일대의 주민이었다.
소설 <막달라>에서 서귀포 유흥업소 접대부인 박춘희는 '마담 언니'의 돈을 훔쳐 고향인 부산으로 가기 위해 몰래 남영호에 오른다. 그러나 서귀포를 출항한 남영호가 성산포항에 잠시 기항한 틈에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절도범으로 체포된다. 한편 남영호는 이튿날 새벽 침몰하는 운명을 맞는다. 소설은 이후 박춘희의 제주교도소 생활, 출소 후 장사로 돈을 버는 과정,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을 갚기 위해 남영호 희생자 유가족을 수소문해 도와주는 사연이 잔잔히 펼쳐진다.
남영호에서 극적인 반전으로 살아남은 한 여인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주인공은 물론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연도 현실감이 돋보인다. 어디까지가 실화일까.
"소설 <막달라>가 실화냐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주인공 박춘희가 여자 감방에서 만난 '방장 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실존 인물들입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 당시 남영호 사고와 관련된 인물과 유가족을 수소문해서 그들의 그 후 삶을 들여다보고 이를 바탕으로 창작한 소설입니다.
주인공 박춘희는 술집 송화정에 드나들었던 사람들을 수소문해 그분들의 기억으로 되살려냈고, 남영호를 타고 도망가려다 성산포항에서 붙잡히는 바람에 극적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교도소를 나온 후의 삶은 창작의 영역에서 풀어낸 것이고요. 남영호 희생자의 유족들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렵게 살아가는 이야기도 다 사실입니다."
남영호 사건은 10년 전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게도 한다. 전국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대형 선박사고라는 점, 제주도가 출발지 혹은 목적지였다는 점,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와 유가족들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이라는 점 등에서 많이 닮았다. 강 작가가 추적한 남영호 사건은 반세기가 지난 현재 어떤 흔적으로 남아 있을까.
"교도소에서 출소한 주인공이 새 인생을 시작하도록 도와주는 '영자 이모'가 나오는데, 80대 중반의 이분을 어렵게 만났습니다. 남편이 남영호 사고로 사망한 후 잡화상을 하면서 살아오신 분입니다. 유복자로 태어난 막내딸에 의하면 5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남편을 부르며 왜 그렇게 빨리 갔냐, 5남매 기르며 사느라 너무 힘들었다며 허공에 대고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생존자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유족들도 아픈 기억을 잊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남영호 사고를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텐데, 그런 점에서 크게 미흡해 보인다는 점입니다. 서귀포항에 세웠던 희생자 위령탑이 항구 확장을 이유로 산속 공동묘지로 옮겨졌다가 유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몇 년 후 다시 정방폭포 입구로 옮겨 왔어요. 항구 확장과 위령탑이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당시 군사정권이 참혹했던 과거를 덮고 싶었던 것이지요."
'서쪽으로 돌아가다'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