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부모가 사라진 딸의 손을 우리 부부가 잡았다.
김지영
내겐 아내와 함께 낳은 자식이 둘 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아들은 결혼한 이듬해 아내가 배로 낳았고 고등학교 2학년인 딸은 18년 전 시골에 귀농했을 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입양으로 낳았다.
입양을 보통 가슴으로 낳는다는 표현을 하는데 배로 낳은 아들과 입양한 딸을 키우면서 알 수 있었던 삶의 진실은 배든 가슴이든 일단 낳고 기르다 보면 그게 어느 쪽이든 자식은 (각자가 지닌 우주적 차원의 개별적 다름과 별개로) 그냥 다 똑같은 자식이라는 사실이다.
배로 낳은 아들과 입양으로 낳은 딸
우리 가족이 행복한 삶의 무지개를 쫓아 서울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섬으로, 다시 육지 고향으로 갔다가 또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지난한 12년 동안의 과정이 있었다. 내 나이로는 41살에 시작해서 53살에 다시 서울로 왔고 지금은 그로부터 5년이 지나 58살이 되었다. 생후 27일 된 딸을 입양했을 당시 내 나이는 마흔두 살이었다.
한곳에 머물며 많아야 한두 번 이직으로 그치는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인생행로를 한참 벗어난 삶을 살았다. 가족관계도 혈연 만이 아닌 입양가족이라는 다소 특별한 구성을 했다. 내가 다소 특별하다고 표현한 입양은 내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인식하고 소비하는 입양을 말한다. 비혈연을 전제로 한 입양은 아직 우리 사회 안에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선택이다. 있는 그대로의 입양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예컨대 딸은 우리 가족 안에서 공개입양으로 자랐는데 사람들은 굳이 어린 나이에 입양 사실을 말해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느냐고 나무란다. 입양 당사자에게 입양사실은 생물학적 정체성의 근원이기 때문에 늦게 알면 알수록 배신감과 상처가 비례해서 커지는 이치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쉽게 생각해서 아이가 사리판단이 되는 사춘기 이후에 잘 설명하면 쉽게 납득하는 줄 안다. 하지만 한 인간에게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로부터 태어났는지는 가장 근원적인 물음임과 동시에 평생의 질문이다. 그리고 이미 앞선 경험으로 사춘기 전후로 입양 사실을 말했다가 집안이 사달나는 사례는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다.
그게 그렇게 쉽게 납득되는 이성적 영역이라면 입양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선택으로 남아 있지 않는다. 아무튼 내 딸은 어릴 때부터 입양 사실을 알았고 입양가족 모임을 통해 자기처럼 입양된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았으며 무엇보다 그 사실이 부모인 우리가 자기를 사랑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앞에서도 괄호 안에서 이야기했지만 '각자가 지닌 우주적 차원의 개별적 다름'과는 별개다. 굳이 이 말을 강조하는 이유는 부인할 수 없이 인간은 DNA로 모든 생물학적 형질이 완성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딸에게는 나와 아내의 DNA가 없다.
기질, 성격이나 성향, 외형적으로는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나 스머프처럼 작달막한 우리 부부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기다란 키와 전혀 정보가 없는 가족력 때문에 우리가 가끔 서로 혼돈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그 사실이 우리의 관계를 조금이라도 흠집내지는 못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서로 잘 투명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양을 해도 가족 안에서 자라면 모든 게 부모가 원하는 방식으로 동일시된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오만이다. 모든 관계는 상대적이다. 가족도 서로 다른 각자의 상호관계다. 혈연이든 아니든 마찬가지다. 사람이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태어날 때 가진 유전적 형질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가족이나 성장환경이 중요한 이유는 그 형질의 발현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가르는 매우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매우 중요한 그 변수가 바로 부모의 역할이다.
다만 우리 가족은 의외의 경우다. 우리 부부가 딸을 위해 그런 부모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딸이 내 삶과 우리 가족 이주의 역사에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