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 업계가 그동안 가격을 너무 올리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한국양회공업협회 정환진 회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응수했다. 그는 이어 외환위기 이후 2년에 한번씩 가격을 올렸지만 과거에 정부에 의해 가격을 통제받았던 시절에 비해 아직도 높은 수준이 아니라고 역설했다.
최근 <오마이뉴스>에 의해 보도된 시멘트업계의 카르텔 보도에 대해서도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카르텔이란 말은 과거 70, 80년대에나 있었던 말”이라며 “90년대 들어서는 철저히 시장경제의 경쟁체제이며, 업계의 특수성 때문에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일부 업체들의 시멘트 공급 담합에 대해서도, “협회가 주도해 특정업체에 시멘트 공급을 중단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업체마다 일시적인 재고 부족과 유진에 대한 평가에 따라 공급량이 조절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시멘트 업체에 대한 담합 여부 조사에 들어가자, 그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회장직도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토로하면서 “우리(한일시멘트)는 유진과 거래도 없는데…”라며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정 회장과의 인터뷰는 최근 서울 강남의 한일시멘트 본사에서 1시간여 동안 이뤄졌다.
다음은 정 회장과의 인터뷰 전문.
- 최근 일부 시멘트업체와 레미콘 업체 사이에 갈등이 업계차원으로 확산되는 것 같다. 우선 일부 시멘트 업체들이 슬래그분말을 제조업체의 대주주인 유진레미콘에 시멘트 공급을 일제히 중단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각 사가 자체 판단이나 수급차원에서 유진레미콘에 시멘트 공급을 중단하거나, 축소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협회가 주도하거나 공동으로 특정업체에 시멘트 공급을 중단하는 등의 행위는 있을 수 없다. 일부사의 경우 통상적인 성수기 일시 재고 부족과 유진의 무리한 사업확장과 관련 향후 부실이 우려되어 공급에 신중을 기한 점은 있다고 보고를 받았다. 게다가 한일시멘트의 경우 유진과 거래한 사실이 없으며 따라서 7개회사 운운은 사실과 다르다.
또 시멘트업계와 레미콘업계간 갈등이라 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유진의 사장이 레미콘연합회장이라는 직분을 이용해 전체 레미콘업계 뜻으로 호도하고 있다. 그리고 동종 레미콘업계에서도 유진레미콘은 대형 레미콘 3사중 하나로서 값싼 분말 슬래그를 수입하여 중소업체에 공급하면서 폭리를 취해왔으며, 상대적인 원가우위를 바탕으로 수많은 중소 레미콘업체들을 위협해 온 장본인이다."
"유진 고사작전 한 적 없다"
- 업계에선 고로슬래그 분말 등 대체재 개발로 시멘트업계가 큰 손실을 보고 있기 때문에 기득권 수호 차원에서 공급량을 무기로 '유진 고사 작전'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하는데.
"시멘트 대체재의 등장이 시멘트시장을 잠식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원가절감이 된다고 슬래그 분말의 무분별하고 일률적으로, 20-30%씩 투입하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혼화제의 사용은 콘크리트 중성화를 촉진해 철근 부식, 균열을 일으켜 결국 대형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시멘트 업계의 이익을 위한 표면적인 명분이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는데 사고는 예방이지, 사고 발생 후 대처는 그 희생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우리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결국 실질적인 피해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소비자라는 것이다. 또, 유진 기초소재가 99년부터 공장을 지어 2000년부터 가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고사작전을 폈다면 공장을 지을 때부터 하지 왜 시멘트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황에서 했겠는가."
- 유진 사례 이외에도 다른 레미콘 회사에서도 지난해 슬래그 분말 공장을 지으려다 시멘트 업체들로부터 압력을 받아 포기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나.
"그렇지 않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공정위, 산자부 등 관계기관에도 소명이 끝난 얘기다. 신규 사업은 항상 리스크가 따르기 마련이지만 남이 한다고 나도 하면 된다는 주먹구구식 사업전개는 결국 실패한다. 오랫동안 레미콘업을 영위해온 업체라면 분말 사업의 성장성, 안전성 등 사업성을 사실자료에 의하여 면밀히 검토한 후 그 회사 스스로 판단했을 것이다. 압력에 의한 사업포기라 함은 지나친 표현이다. 실제로 작년의 경우 태풍수해로 생산에 차질이 있어 수급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다. 결국 이는 공급이 원활치 못한 것이었지 특정업체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 슬래그시멘트를 생산하는 전남 광주의 대한시멘트에서도 최근 대형시멘트 회사를 상대로 가격덤핑 등의 이유를 들어 공정위에 제소를 했는데, 이에 대한 회장의 생각은 어떤가.
"한일 시멘트는 광양지역에 슬래그 시멘트 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솔직히 광양권 슬래그 시멘트 업체의 성향 및 영업 환경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자원 재활용 제품이며, 보통 시멘트보다 값이 싼 슬래그 시멘트 수요는 급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슬래그 분말 사용, 내년 4월부터"
- 시멘트업계에선 슬래그 분말의 안전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슬래그는 지난해 이미 국가로부터 KS규격으로 인정을 받은 것 아닌가.
"슬래그를 콘크리트에 사용 가능하도록 정한 KS규격은 2003년 4월 개정되었지만 시행은 2004년 4월로 1년 늦춘 상태다. 이처럼 1년 동안 시행을 유보한 것은 시공지침 및 시방서 등을 준비하는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정된 KS규격에서는 슬래그 분말은 반드시 구입자의 승인을 얻어 사용하도록 되어 있으며, 제품 인도 시 슬래그 분말의 혼합 비율을 구매자에게 알려야 한다. 이는 슬래그 분말을 사용한 콘크리트는 일반 콘크리트와 품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에 알맞은 세심한 품질관리 및 양생 관리를 구매자 측에서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 공정위에서는 이와 관련해 시멘트 업체와 협회를 상대로 담합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데, 공정위 조사에 대해 별도로 할 얘기는 없나.
"이해 당사자의 한 입장에서 현재 조사가 진행되는 관계로 본 사안에 대한 코멘트는 적절치 않다고 본다."
- 시멘트 업체들의 경우 지난 외환위기 이후 매년 시멘트 공급 가격 인상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의 시멘트 가격 상승률이 기존 물가 상승률보다 2배 가까이 높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우선 '매년 인상'은 어불성설이고 2년마다 인상했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리고 시멘트 가격 인상률과 관련하여 외환위기 이후 6년간 인상률만 놓고 보면 타 공산품이나 건축자재에 비해 높은 것은 사실이나, 1980년을 100으로 놓고 비교해 봤을 때는 오히려 생산자 물가 상승률에도 못 미친다.
이것은 시멘트가 1992년까지 국민생활 긴요 품목으로서 정부의 저물가 정책 유지를 위한 가격관리 대상품목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제때 가격현실화를 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멘트 40kg 한 포대 당 단가는 3000원 미만인데 비하여 자장면 한 그릇에 3500원, 커피 한잔에 5000원 하지 않나."
- 일부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국내 대형 시멘트 업체들이 프랑스와 일본 등 외국의 거대 다국적 시멘트 자본에 넘어가면서 가격 인상 등을 주도해 왔다고 하는데.
"외환위기 직후 일부 대형 시멘트 업체들이 자금난을 겪으면서 고금리 부담까지 겹쳐져서 경영악화로 연결되었고, 위기극복의 방편으로 외자유치를 선택한 것으로 알고 있다. 외국의 다국적 시멘트 자본이 일부 참여한 것은 사실이나, '넘어갔다'는 표현은 사실과는 다르다. 그리고 외국자본의 입김이 경영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 시멘트 가격인상은 누적인상요인이 자체흡수능력을 넘어섰을 때에만 선택할 수 있는 자구책으로 이해해야 한다."
- 이들 외국계 시멘트 업체를 중심으로 해마다 막대한 이익을 올리면서 자본의 국부유출 논란도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외국계 시멘트 업체라고 표현한 회사들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경영난 타개의 수단으로 외국 지분 참여를 택한 회사들이기 때문에 막대한 이익을 올리기는 커녕, 아직까지 경영정상화를 위해 구조조정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어떤 상황으로 전개될 지는 앞으로 지켜볼 문제지만, '막대한 이익', '국부유출'등의 논란은 지금 시점에서는 한마디로 넌센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