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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군 검찰단이 현역 육군대장 등 군 고위장성들의 비리에 메스를 가하면서 군이 요동치고 있다. 이 때문에 군의 사정기능이 강화되는 게 아니냐는 기대섞인 전망도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군의 '사법'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는 '전시(戰時)'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기반한 군 사법제도 때문으로 평시에 '軍 비리'를 은폐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오마이뉴스>는 [특별기획-군 사법을 고발한다]를 통해 현행 군 사법체제의 불합리 실태를 고발하고 대안도 제시할 방침이다... 편집자 주

"김00 전 장성, 길00 전 장성, 김00 전 장성 등은 재임기간동안 육군회관에서 자식들의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전에 (복지관 운영 수익금에서 횡령한 돈 중) 김 전 장성에게는 800만원, 길 전 장성과 김 전 장성에게는 각각 1000만원씩을 결혼식 비용 보전을 위해 주었다."

▲ 성 원사가 '당신들은 장성도 아니다'라고 읍소했던 고등군사법정의 현판.
육군복지단의 회관장이었던 성00 전 원사가 육군본부 보통검찰부에서 밝힌 내용이다. 성 전 원사는 육군복지단 운영 수익금 5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구속된 뒤 사법처리됐다.

성 전 원사는 횡령한 돈의 일부를 사실상 '축의금'으로 군 장성들에게 바친 셈인데 그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3명의 군 장성들은 수뢰혐의를 벗기 어렵다. 특히 무려 1000만원에 달하는 횡령한 돈을 결혼식 축의금 형식으로 받아갔다는 점에서 도덕적 비난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실제 김 전 장성의 장녀는 99년 5월, 길 전 장성의 장남은 2001년 3월, 김 전 장성의 차남은 2002년 5월에 육군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린 바 있다. 성 원사는 자신의 '윗선'에 있었던 한 장성에게 '축의금' 전달 사실을 보고했고, 이 장성은 군검찰 조사과정에서 이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2003년 9월24일, 육군본부 보통검찰부는 성 원사를 2억여원의 횡령혐의로 기소하면서 이같은 핵심 진술을 누락했다. 또 성 원사의 보고를 받고 이를 묵인한 장성의 진술도 누락됐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군 지휘부의 핵심인사 A씨는 처음 이 사건이 일어난 뒤 '난 그런 돈을 받은 적이 없다. 엄정하게 수사해 책임을 물어라'라는 식으로 지시한 것으로 알고있다. 그런데 해당 장성들이 발끈했다. A씨는 당시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에 참석했다가 '선배 잡아먹을래'라는 항의성 말을 듣기도 했고, 다른 장성들로부터도 전화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군의 한 관계자의 말이다. 결국 A씨의 수사 의지가 예비역 장성들의 '외압'으로 무너져내렸다는 주장이다. 축의금 진술 누락도 이같은 배경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A씨측에 공문을 보내 '당시 3명의 군장성으로부터 압력성 전화 여부' '축의금을 조서에서 누락시키라고 지시했다는 의혹' 등에 대한 사실관계를 물었다.

하지만 A씨측은 외압설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A씨의 한 측근은 "당시 3명의 전 장성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적이 없다"면서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에 A씨와 함께 참석했었는데, 그 자리에선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 등에 대한 대화만 오갔다"고 부인했다.

군장성 '축의금' 2800만원 진술이 누락된 이유?
군장성 A씨측 "축의금 얘기 보고받지 못했다"


또다른 한 측근인사도 "(A씨는) 결혼식 보전비용으로 전 장성들에게 성 원사가 돈을 주었다는 진술이 조사 과정에서 나왔다는 보고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 진술을 빼라마라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비리가 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처리한다는 게 A씨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 측근인사는 오히려 "성 원사가 그렇게 진술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되묻기도 했다.

이 사건은 군 장성이 대거 연루되었기 때문에 언론으로부터도 크게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육군본부 검찰부는 이 사건과 관련된 군 장성들에 대해서 압수수색과 계좌추적도 하지 않은 채 혐의자들의 진술만 청취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수사 초기단계의 기본 절차라고 할 수 있는 자금흐름 추적조차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미 군검찰의 수사가 무력화됐다는 것이다.

또한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도 재판장과 주심판사가 '결혼식 축의금' 제공 여부에 대해 집중적으로 심문한 바 있으나, 다음 공판부터는 이에 대해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 그 배경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사건 수사를 둘러싸고 뒷말이 무성한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무혐의 결정내린 징계위원장이 재판장
군검찰, 기피신청 추진하다가 실패한 이유?

육군본부 검찰부는 지난해 11월경 이 사건 관련 업무상 횡령 방조 혐의 등으로 군장성 2명을 기소하고, 다른 2명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처분 후에 징계위에 회부했다. 군검찰이 2명의 군장성을 기소유예한 뒤 징계위에 회부한 것은 사법처벌 여부와는 별도로 혐의 내용 일부가 증거에 의해 사실로 확인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징계위에 회부된 2명의 군장성중 한명은 합참 소속, 다른 한명은 육군본부 소속이었다. 육본 소속 장성 정00 준장에 대한 징계위가 열리기 하루 전, 합참에서 기습적으로 최00 준장에 대한 징계위가 열렸다. 징계위 결론은 무혐의 결정.

이는 검찰에서 인정한 증거를 모두 배척한 채 징계 혐의자인 최 준장의 진술만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00 준장은 소명자료도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합참의 이같은 결정은 육군본부 검찰부와 징계위 회부에 사인한 육군참모총장에 대해 '반기'를 든 것으로 비춰질만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여파 때문인지 다음날 육본에서 열린 정00 준장의 징계위도 최 준장과의 형평성 유지라는 명목으로 당초 예상됐던 중징계 처분이 아닌 가장 낮은 징계처벌인 견책으로 의결됐고, 육군참모총장은 이를 '경고'로 감경했다.

문제는 최 준장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린 합참 징계위 위원장 해군 오00 중장이 지난 2월에 열린 이 사건의 항소심 군사법정에서 재판장으로 재등장했다는 점이다. 그는 합참 징계위에서 이 사건과 관련한 장성에게 무혐의 결정을 내렸기 마땅히 재판장으로서의 제척사유 또는 기피사유에 해당한다.

실제 군검찰은 이 인물에 대해 재판장으로서의 기피신청을 청구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참모총장 역시 군검찰의 기피신청에 동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군검찰의 이같은 움직임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결국 해당 장성에 대한 중징계, 재판장 기피 신청 등 육군본부측의 강력한 수사 또는 처벌 의지조차 무력화된 것이다.

'육군복지단 상납사건'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성 원사가 군검찰부에 의해 기소되면서 확정된 횡령한 돈의 규모는 총 2억여원. 그는 업무상 횡령혐의로 구속된 뒤 징역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횡령한 돈의 대부분을 '상납'하는 데 썼다고 주장했고, 그의 주장은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횡령한 돈을 상납받은 군장성들은 '관행'이라는 이유로 조사조차 받지 않았고, 상납을 사실상 지시 또는 묵인한 또다른 군장성들 역시 경고 등 경징계 조치를 받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군사법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단적인 예다.

우선 수사과정에서 사실로 밝혀진 성 원사의 '상납 품목 리스트'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매달 군 장성들에게 갖다바친 품목이다.

"서양란(30만원상당) 1개, 전복을 5-6마리짜리(20만원 상당), 영광굴비 10마리짜리(30만원 상당), 꽃게·낙지 등 해산물(10만원 상당), 안동 간고등어·제주 생갈치 등 수산물(10만원 상당), 떡류(10만원 정도), 면세양주 1박스(6병들이 10만원 상당)."

성 원사의 상납품목 리스트

이뿐만이 아니었다. 다음은 매주 상납한 기본 물품 내역이다.

"서울에 1주일에 한번씩 올라오는 데 그때마다 사방화(꽃꽃이, 개당 10만원 상당) 1개. 계절 과일로 주당 10여만원 상당. 갈비는 월 2회 정도 6-7킬로짜리(약 20-30만원 상당). 점심 값 10만원 상당."

연중 또는 명절을 위한 품목도 별도로 있었다.

"김장을 매년 하는데 1년에 120만원정도. 명절 때는 명절 음식(송편, 육류, 계절나물) 1년에 2회 각 50여만원. 사모님 생신 때는 꽃바구니와 간단한 생일 음식, 시루 떡, 케잌, 삼페인 등 매년 1회 50여만원.

이밖에도 군장성의 하계휴양 때 직원 6~7명이 따라갔고, "김00 장성은 남해안 1회, 길00 총장님은 청간정 콘도를 매년 1회씩 2회, 김00 장성은 청간정 콘도를 1회 가셨다"면서 " 그 때마다 식사를 지원했고, 포도주 1박스(6병 들이, 20만원 상당), 로얄살류트 2병(병당 20만원)은 항상 지원했다. 방값과 식사에 필요한 돈이 3박4일동안 약 200여만원이 들었다"는 게 성 원사의 진술이었다.

성 원사가 지난 99년 1월부터 2003년 3월까지 3명의 군 장성을 모시면서 공관지원에 투입된 돈은 매월 500여만원 이상. 사실 이 정도 액수의 공관 운영 자금은 '관례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돈이 육군회관 예식장 수익금을 누락하는 방법, 즉 횡령이라는 부당한 방법으로 마련됐고, 이는 성 원사의 '단독범행'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성 원사는 군검찰 조사과정에서 횡령을 하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98년 말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김00 장군이 '난 대령으로 끝날 사람인데 김00 장성께서 은혜를 주셔서 장군 진급도 했고, 00단장 직책까지 맡게 되었는 데 앞으로 서운하면 안된다. 사모님도 몸이 안좋으신데 요청이 들어오면 나에게 보고하지 않아도 되니 즉각 지원하라'라고 해 거기에 필요한 돈을 조달하기 위해 예식대금을 누락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 원사는 김00 후임으로 온 정00 단장도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정 장군은 '전 단장에게 들으니 공관지원을 그렇게 한다는 데 자금은 어디서 나오느냐'고 물으셔서 '제가 예식을 누락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보고를 드렸습니다. 정 단장은 '관례적으로 해오던 일인데 내가 끊어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돈으로 할 수도 없는 일이니 네가 전적으로 알아서 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 원사는 그 뒤에 부임해온 최00 장군에게도 비슷하게 보고했고, 이00 장군은 '아무개 장성님께서 나를 진급시켜서 여기에 데려다 놓았는 데 한치의 불편함도 주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군 장성들이 횡령 묵인·교사?

결국 성 원사가 횡령한 돈은 대부분 3명의 군 장성에게 잘보이려는 또다른 군장성들의 '어긋난 충성'에서부터 비롯됐고, 이는 군 장성의 묵인 또는 암묵적인 지시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결말은 초라했다. 성 원사만이 횡령혐의로 구속기소돼 처벌을 받았다. 지난 98년 성 원사에게 사실상 '횡령'을 지시한 김00 준장에 대해선 민간 검찰로 사건을 이관했고, 정 준장은 경고, 후임 최 준장은 무혐의, 이 준장에게는 벌금형이 선고됐다. 이들 군 장성들은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업무상 횡령 교사 등의 혐의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군 장성 자제의 결혼식 '축의금'과 정기적으로 상납됐던 양주와 계절 과일 등을 마련키 위해 성 원사가 횡령한 돈은 장병들의 복지에 사용되어야할 돈이었다. 성 원사는 1심 군사법정에서 횡령 교사 혐의 내용을 전면 부인하는 장성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읍소했다.

"당신들이 대체 별을 단 장군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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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부터 판결까지 일상화된 '외압'
군사법제도, '관할관'이란 이름으로 지휘관 개입 제도화

군사법의 근간을 뒤흔드는 군 지도부의 '외압'은 일상화됐다. 오히려 군사법이 '외압'을 보호하는 형국이다. 군 수사기관이 사건을 인지하고 내사에 착수한 뒤부터 수사→소환조사 여부→불구속/구속 기소여부 결정→재판관 지정→판결 확인 등 거의 전단계에 걸쳐 법의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는 지휘관(관할관)들의 개입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할관이란 군사법원이 설치되어 있는 사단급 이상 부대의 지휘관을 뜻한다. 현행 군사법원법상 관할관은 수사 단계에서는 군검찰관 임명권(제41조), 군검찰관 지휘감독권(제39조), 재정신청처리에 관한 권한(제301조), 집행확인권(제535조), 형집행 정지에 관한 권한(제514조) 등을 가진다.

또 재판 단계에서는 군사법원의 행정사무 관장권(제8조), 심판관 임명권(제24조), 재판관 지정권(제25조), 각종 영장발부 승인권(제238조, 제254조), 판결에 대한 확인조치권(제379조) 등의 권한을 가진다. 군검찰에서 군사법원에 이르기까지 사법 전 단계에 걸쳐 지휘관이 개입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결국 육군복지단 사건의 경우 A씨가 설령 군검찰부에서의 성 전 원사의 진술을 누락하라고 지시했다고 하더라도, 이같은 현 제도 아래서는 지휘관으로서의 당연한 권리행사인지, 아니면 부당 압력인지에 대한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는 지휘관들의 수사·재판 부당 개입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소환조사조차 하지 못하도 군검찰을 압박하거나, 때론 공소장까지 변경하도록 압력을 넣기도 한다. 비리 혐의가 사실로 입증됐음에도 불구하고 기소 단계에서 전역시키는 것은 고위층 수사에서는 거의 일반화된 형태다.

이에 대해 군의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여러 단계에 걸쳐 지휘관의 개입이 제도화되어 있기 때문에 한번 봐주려고 마음만 먹으면 '100'에서 시작해 '1'로 끝낼 수 있습니다. 또 한번 손보려고 마음 먹으면 '10'에서 시작해 '100'으로 부풀릴 수도 있습니다.

구속사안이 안된다고 보고해도, 지휘관이 '구속해'라고 명령을 내리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가령 밑에서 불기소장을 올려도 지휘관이 결재를 안하면 더 이상 사법절차 진행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군사법제도는 '봐줄 때'만 악용되는 게 아니라 '손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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