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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목마을 해변. 앞 섬이 경기도 국화도이다.
ⓒ 최성민

여행에서 '샛길 빠지기'의 즐거움이라는 게 있다. 어딜 가더라도 도중에 작지만 왠지 정감있는 샛길들이 나온다. 솔가지가 소복하게 덮인 오솔길이면 더욱 좋고 차가 한 대 겨우 다닐 수 있는 낡은 시멘트길도 좋다. 길이 있으면 가라는 것이고 그 길 끄트머리엔 사람 살만한 동네나 일터 또는 길이 나 있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곧 도시를 떠나온 여행객에겐 신선한 쉴참거리가 될 것이다.

'몰려가기' 여행문화에서 한발 빼기

우리 여행문화의 큰 병폐 하나는 '몰려가기'이다. 그것은 매스컴의 '명소 선정주의' 탓이 크다. 수많은 일간지가 매주 컬러면에 명소여행지 소개를 쏟아내고 텔레비전 방송들은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읊어댄다. 남들 다 가니 뒤질세라 몰려가는 행태가 남긴 것은 모텔촌이 된 정동진, 낙지가 기어다니는 물골에서 시궁창에 가깝게 뭉개진 진도 회동리 '모세의 길'과 같은 명소들이다.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는 명소 소개로 도배질하고 있고 마치 관광공사의 그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개발한 관광상품이라는 듯 '관광공사 추천'이라는 이름으로 일간지에 내밀곤 하는 게 한국관광공사의 큰 실적(?) 가운데 하나다. 이런 관광문화와 여행행태 속에서 올 여름엔 또 얼마나 동해안으로 몰려가다가 영동고속도로 위에서 더위를 먹을지, 벌써 숨이 턱 막힌다.

나는 10여년 전 한 달 정도 동서남해안 갯마을들을 두루 취재한 일이 있다. 목적지를 확실하게 정하고 간 것이 아니라 책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양을 채워 넣어야 하는 작업이었다. 그때 터득한 것이 샛길 빠지기의 맛이다. 목적지가 있는 여정일지라도 피서철 같은 경우 길이 워낙 막히면 샛길로 빠져 들어가 보기를 권한다.

다만 그런 곳은 명소가 아니라서 사전 정보가 없으니 거기서 만나는 자연과 삶을 소박하나마 절실하게 해석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아니라 절실하게 대하는 만큼 다가오는 것이다.

서해안 샛길 빠지기 여행의 작은 즐거움

좁은 땅에 오천만이 동서남북으로 갈려 아웅다웅 사는 나라, 1천만명이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려면 2시간 가까이 기어가야 하는 공룡도시에 밀집돼 사는 나라에서 자연을 찾아가야 하는 여행의 명제는 더욱 선명해진다. 그리고 다른 것은 몰라도 남북관계에서 여행이라도 '백두에서 한라까지' 즐겁고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지난 2000년 9월 남북정상회담의 산물 '백두 한라 교차관광' 취재차 50년만에 북녘땅으로 백두산을 다녀왔다. 그때 이후 간절한 소망은 남쪽 사람들이 북녘의 원시 자연과 광활한 백두고원(개마고원을 북에서는 이렇게 부른다)을 볼 수 있다면 땅좁은 한을 풀고 웅대한 기상을 품어볼 수 있으며 더 관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 빨리 백두산에 가는 길이 열리고, 부산에서 기차타고 중국과 몽골고원을 지나거나,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이르크츠크시와 바이칼호를 굽어보며 유럽까지 달릴 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서해안 샛길 빠지기 여행의 작은 즐거움을 소개한다.

▲ 삽교호 함상공원
ⓒ 최성민

▲ 삽교호 함상공원 함상카페. 멀리 서해대교가 보인다.
ⓒ 최성민

공룡도시 서울을 빠져나가 시원한 갯바람이라도 쐴 양이면 요즘 서해안 고속도로가 잘 나 있어서 그쪽으로 달리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 해수욕장이 즐비하고 안면도로 유명한 태안쪽을 향한다. 그런데 그쪽은 예전에 비해 대도시나 다름없는 문명지대가 돼 버렸다.

함상카페에 앉아 서해대교 야경에 빠지다

한나절 거리, 아니면 퇴근길에 갯내음을 맡으며 드라이브라도 해 보겠다면 서해대교를 지나자마자 송악나들목으로 나가는 샛길 빠지기를 시도해 보자. 거기엔 30분~1시간 거리에 삽교호 함상공원, 망루대 해변, 석문방조제, 외목마을, 대호방조제, 도비도와 삼길포, 솔뫼성지 등등 내내 긴장감과 신선함을 불어넣어주는 구경거리들이 줄서있다.

서울에서 송악나들목까지는 막히지만 않는다면 1시간 남짓이니 이 구경거리들을 둘러보는 데 한나절이면 충분하다. 아니면 퇴근길 데이트 겸 서해일몰에 해물 저녁식사를 하고 밤 12시 안에 돌아올 수 있으니 서울 안에서만, 또는 미사리 정도 오가면서 바글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좀 넉넉하게 일정을 1박 2일로 잡으면 당진 외목마을에서 하룻밤 보내기를 권한다. 외목마을 해변에서 앞섬 국화도를 바라보며 야자수 숲만 없는 남태평양 사이판이나 인도양 몰디브의 정경을 연상해보는 것은 각자의 연출능력 나름이다. 외목마을은 '서해에서 해가 뜬다'(실제로는 석문방조제쪽 육지에서 뜬다)는 말로 유명해져 연말엔 10만명이 몰려온다는 곳이다.

이 일대 둘러보기는 송악나들목-삽교호 함상공원-망루대(음섬) 해변-석문방조제-외목마을-대호방조제 순으로 하는 게 좋다. 상륙함과 구축함으로 이뤄진 삽교호 함상공원은 동양 최초로 퇴역군함을 활용해 만든 테마파크로 함포조작체험을 해볼 수 있고 군함 안에 들어가 모든 시설을 구경할 수 있다. 구축함 뒤쪽 함상에 마련된 함상카페에서 서해낙조와 서해대교 야경을 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은 데이트족들에겐 색다른 분위기를 선사할 듯.

▲ 망루대 해변. 앙증맞은 백사장과 서해대교 위용의 어울림이 이채롭다.
ⓒ 최성민

▲ 망루대해변에서 서해대교의 야경을 바라보는 맛이란?
ⓒ 최성민

망루대 해변엔 앙증맞은 백사장 해수욕장이 있는데 서해대교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길 수 있다. 서해대교와 함께 새롭게 태어난 명물이어서 한여름밤 서해대교 위를 다리는 자동차 불빛을 응시하며 바닷물에 몸을 맡기는 '낭만'이 기대된다.

망루대 해변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달리면 만나는 동양 최장 길이(10.6km, 서해대교는 7.3km)의 석문방조제를 만난다. 방조제 바깥쪽 바다가 자갈밭이어서 물이 깨끗하고 갯바람이 무척 시원하다. 방조제 중간에는 다랑포부두가 있어서 고기잡이배와 유람선이 많이 닿는다.

석문방조제에서 나와 외목마을을 지나면 곧 대호방조제(7.8km)로 이어진다. 대호방조제 중간 다리구실을 하는 도비도엔 노천탕을 가진 해수탕이 있다. 방조제끝 갯마을 삼길포는 우럭, 갑오징어, 백합 등 서해에서 잡히는 생선을 다루는 횟집단지 마을이다.

▲ 석문방조제. 동양 최장의 방조제로 바다 한가운데로 뻗은 일직선 길이 도시인의 가슴을 틔워준다.
ⓒ 최성민

▲ 방조제 앞바다는 자갈밭이어서 물이 깨끗하고 갯바람이 시원하다.
ⓒ 최성민

▲ 석문방조제 중간에 있는 다랑포 포구의 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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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호방조제
ⓒ 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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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창간발의인, 문화부 기자, 여론매체부장, 논설위원 역임.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철학박사(서울대 교육학과,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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