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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 혁명 유적지에 대해 설명하는 안내원. 그녀의 시선과 감정 가득한 목소리는 일행을 압도했다.
만경대 혁명 유적지에 대해 설명하는 안내원. 그녀의 시선과 감정 가득한 목소리는 일행을 압도했다. ⓒ 정용국
북한 여성의 대표적 한복으로 차려 입은 안내원은 마이크를 잡고 숙연하면서도 넘치는 감정으로 만경대 혁명 유적지를 설명하였다. 그녀의 뜨거운 시선과 감정에 복받치는 목소리는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일행을 압도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말하는 역사적 내용보다는 시선과 억양, 감정 담긴 목소리에 주목하고 있었는데 조별로 인도되어 새 안내원을 만났을 때에도 똑같은 내용의 문구를 자주 듣게 되었다.

생각보다는 단출하고 간결하게 꾸려져 있는 생가를 둘러보고 그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나는 다른 곳에서 찍은 사진 포함해 한 장에 오천 원씩 총 다섯 장을 샀다. 북에서 찍은 사진들은 작가회의에서 한꺼번에 받아 각자 집으로 배달해 주었는데 사진 겉장에는 '조국방문기념'이라는 어마어마한 문구가 적혀 있어서 나를 아연 실색하게 만들었다.

만경대 생가에서 신경림, 백낙청, 고은 선생등과 안내원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만경대 생가에서 신경림, 백낙청, 고은 선생등과 안내원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 정용국
나는 조국방문기념이라는 글귀를 보았을 때 무척 생경하다고 느꼈는데 내가 그 문구 속에서 북측 사람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속내를 알게 된 것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였다. 우리가 재일 동포도 아닌데 '조국방문' 이라고 쓴 것은 아마 남쪽이 미국의 압제 하에 있다고 보는 북측의 속내를 표현한 것이었으리라.

나는 이 자리에서 남과 북의 지도자들에게 권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유엔에 가입하기까지 한 만큼 일단 서로 존중하는 뜻에서 남은 북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으로 북은 남을 '대한민국'으로 불러주자는 제안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기에는 복잡한 심경이 깔려 있다는 것을 필자는 잘 안다. 북은 남쪽이 조선의 일부라는 뜻에서 '남조선' 이라고 하고 있으며 남은 북쪽을 대한민국의 일부이므로 '북한' 이라고 부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서로 흡수, 통합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으니 이것이 당연한 호칭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좋은 말로는 통일인데 그 방법이 상이한 것이다. 그러니 통일을 배제하는 것이 아닌, 장기적 평화통일을 모색하되 현실을 존중해서 각자 정식 국가명칭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찝찝하게 언제까지 서로 싫어하다 못해 경멸하는 '남조선과 북한'을 고집할 것인가.

이 단어 속에는 너무 많은 아집들이 똬리를 틀고 들어앉은 채 각자의 속셈에 눌려있는 것이므로 원칙론을 적용하여 '조선' '한국' 이라는 호칭을 교체 인정하자는 것이다. 영원히 분단을 고착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상호존중을 우선으로 하자는 것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쑥섬에서 바라다 보면 대동강 너머로 아득히 평양시내가 보인다.
쑥섬에서 바라다 보면 대동강 너머로 아득히 평양시내가 보인다. ⓒ 정용국
만경대의 여성 안내원들은 대표단 버스가 떠날 때 거리로 나와 손을 흔들어 주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내가 어려서 책에서 배운 내용들은 이것과는 전혀 다른 인정할 수 없는 역사가 아니었는가 말이다. 가는 곳마다, 보는 것마다 실체와 사상의 딴지에 차인다. 어지러운 시선을 대동강 푸른 물로 옮겨 본다. 정지상의 이별노래에 나오는 여자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울리련만 세월은 우리를 자꾸 사상의 우리에 가두려 하는구나.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황 선생이 한 마디 툭 던져서 내 생각의 싹을 사정없이 싹둑 잘라버렸다.

"저기 강가에 보이는 것이 미국의 군함 프에블로호 입니다. 동해에서 그들은 우리를 공격하려다 나포되었고 우리는 저 자리에 전시해 두고 교육용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

회색빛을 띠고 있는 군함이 멀리 보인다. 북쪽 사람들은 저 대동강변을 바라보며 해마다 이별눈물이 더해져서 흐르는 정지상의 이별노래는커녕 '아, 민족의 원쑤 미국! '하며 한도 끝도 없는 눈길로 저 배를 바라볼 것이다.

통일선전탑 뒷면에는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한 남측단체와 대표자 이름을 잘도 새겨 두었다.
통일선전탑 뒷면에는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한 남측단체와 대표자 이름을 잘도 새겨 두었다. ⓒ 정용국
대동강 쑥섬에 있는 통일선전탑은 북측이 체제의 정당성을 세상에 알리기에 적당한 역사가 서린 곳이다. 그 유명한 1948년 남북연석회의가 이곳에서 열렸기 때문이었다. 화강암에 새겨둔 선언문과 참가단체와 그 대표자들의 면면이 이 회의의 역사적 입지를 증명해줄 만했다. 북은 수십 개의 남쪽 단체와 김구 선생, 김규식, 조소앙 등 독립운동의 명망가들과 실세들이 다수 참가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었다. 내가 왜 북남이라고 쓰지 않고 '남북연석회의'라고 되어 있느냐는 질문에 안내원은 '바로 이거야' 라는 듯 대답했다.

"위대하신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남쪽에서 참가한 인민들의 대표들에게 예우를 다하기 위해서 특별히 남북연석회의라고 그 이름까지도 각별하게 남측을 먼저 쓰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안내원의 대답은 확신에 차 있었고 쑥섬에 우리를 안내한 목적은 초과달성한 셈이었다. 안내원은 더위를 피해 김일성 주석과 김구 선생이 바둑을 두었다는 원두막까지 안내하며 조국통일이 다 되었는데 미제가 앞세운 이승만 정권 때문에 이런 꼴이 되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주제를 이끌어 갔다.

날씨가 너무 덥고 햇살이 강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나자 더위가 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조금 있으면 먹게 될 그 유명한 옥류관 랭면 육수맛을 생각하며 얼른 버스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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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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