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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올해는 심기가 매우 불편해진 해로 기억될지 모르겠다. '국가권력의 남용으로 인한 인권침해사건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해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경축사 때문이다.

어쩌면 박 대표는 노 대통령의 경축사를 들으면서 '조국 근대화' 시기에 권력자로 군림했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리며 자신의 정신적 지주인 부친이 과거사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단죄되는 끔찍한 상상에 몸서리를 쳤을지 모른다.

노 대통령이 경축사를 읽는 동안 박 대표의 표정이 어두웠던 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대연정 쇼크'에 이어 '과거사 쇼크' 오다

노 대통령이 논쟁을 즐긴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올해만 해도 몇가지 굵직한 논쟁거리를 우리 사회에 던진 바 있다.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연정 제안'과 '과거사 청산을 위한 공소시효 배제'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 두 가지는 그 빛나는 역사적 명분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의 정국주도용 의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위기시 정국을 돌파하는 그의 정치력을 고려했을 때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두 의제의 성격은 딴판이다.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공식 제안할 때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은 손을 잡아야 할 '짝'(partner)이었다. 지역구도를 해소하기 위해라면 자신의 권력을 나눠서라도 한나라당과 손을 잡겠다고 할 정도였다. 그래서 지지세력들의 '거부반응'에도 불구하고 연정론의 불을 계속 지폈던 것이다.

반면 이번의 공소시효 배제 발언의 경우는 상당히 달라 보인다. 대연정 제안이 박근혜 대표가 이끄는 한나라당과 손을 잡고 공존공생하겠다는 상생의 정치인 데 비해, 공소시효 배제 발언은 사실상 박 대표를 겨냥한 '배제전략'으로 비친다.

노 대통령의 경축사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국가권력의 남용으로 인한 인권침해사건에 대해 민·형사상 공소시효를 배제하자는 것과, 확정판결 사건에 대해서도 재심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공소시효 배제에 대해 "더 이상 국가권력을 남용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놓고는 나 몰라라 하고 심지어는 큰소리까지 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부연설명했다. 이는 현재까지도 우리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친일파 등 과거 기득권세력에 대한 경고로도 들린다.

"국가권력을 남용"한 사건의 다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에 일어났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각종 간첩단 조작사건에서부터 인혁당이니 통혁당이니 하는 조직사건 등이 그렇다.

최근 논란이 됐던 김형욱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노 대통령의 주장대로 공소시효가 배제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형욱 전 중정부장의 살해를 지시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이는 박 대표에겐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선 그가 직접 나서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의 경축사에서 '세가지 분열 요인'을 지적한 부분이 기자의 눈길을 잡아끈다.

그의 발언은 1)이데올로기 대립 2)지역주의 3)경제양극화에 대한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공감할 수 있는 2)와 3)보다 1)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정부가 최근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해 훈장을 추서한 흐름과도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노 대통령의 의도와 상관없이 박 대표와 한나라당에 적지 않은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대연정 쇼크'에 이어 '과거사 쇼크'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박 대표가 왜 국회 처리 전에 과거사법을 철저하게 챙겼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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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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