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선거와 관련, 기부행위와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이완구 충남도지사의 네 번째 공판이 29일 열렸다. 이날 공판에는 이 지사와 한나라당 내 경선을 치렀던 박태권 후보의 경선대책본부장이 이 지사 측 증인으로 나서 '함정론'을 피력해 눈길을 끌었다.
대전지방법원 형사4부(재판장 박관근)는 29일 오후 서천 S식당 종업원 H씨를 증인으로 불러 지난 해 12월 29일 모임의 식사비 35만7000원을 이 지사의 운전기사가 지불한 경위 등에 대해 심문했다.
이에 H씨는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별도의 방에서 혼자 식사를 했던 사람이 전체 식사비를 지불했다"며 "그 뒤 식당주인이 내실에서 나와 이미 식비를 받았었다고 말해 식비를 추후에 돌려줬다"고 진술했다.
또한 재판부는 온양 O호텔커피숍 모임 참석자 Y씨를 불러 당시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와 누가 찻값을 지불했는지를 물었다.
이에 Y씨는 "이 지사와 잠깐 만나 '박사모'와 '뉴라이트전국연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 지지해 달라는 부탁이나 선거와 관련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며 "찻값도 함께 한 일행 P씨가 지불했고, 이 지사가 지불하거나 지불할 의사를 피력한 적은 전혀 없다"고 진술했다.
이어 세 번째 증인으로는 서천 S식당 모임 당시 현장에서 사진 채증을 한 후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던 J씨가 증언대에 섰다. J씨는 "이 지사의 운전기사가 식비 전체를 계산하는 것을 목격했고, 사전에 모임참석자인 N씨에게 부탁, 녹취한 이 지사의 발언 테이프를 건네받아 고발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박태권 후보 측 경선대책본부장 증인으로 나서 '함정론' 피력
이날 공판은 마지막 증인으로 나선 L씨가 '과연 증인으로 나설 것인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L씨는 이 지사와 당내 경선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박태권 후보의 경선대책본부장을 역임했으며, 박 후보의 최측근 인사이기 때문.
특히 이 지사 측 변호인은 그 동안 이 지사를 부정선거운동 혐의로 고발한 대부분의 고발인이 박 후보 측 지지자였다는 것을 부각시켜왔기에 L씨의 증언에 더욱 관심이 쏠려있었다.
이에 앞서 지난 25일 열린 세 번째 공판에서 이 지사 측은 이 L씨와 만나 녹취한 '녹취록'을 증거물로 재판부에 제출한 바 있으며,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이날 L씨를 이날 증언대에 세우게 됐다.
L씨는 이날 "이 지사를 고발했던 사람들은 박태권 후보의 지지자들이었으며, 이들이 '과잉충성'을 하면서 이 지사를 '곤경'에 빠트리려고 한 일"이라는 취지로 증언했다. 이 과정에서 사건이 부풀려지거나 조작되었으며, 이 지사를 '함정'에 빠트리려는 의도였다는 것.
L씨는 또 이러한 진술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 "이 지사와는 경쟁관계에 있었지만 이미 선거가 끝난 상황에서 200만 도민을 위해서 일해야 할 지사가 법정을 오가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았고, 특히 이로 인해 낙오가 된다면 당과 도민에게 엄청난 피해가 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이에 검찰은 "고발자들이 박태권 후보 지지자였다고 해서 범죄사실이 없었는데 꾸며진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따져물었다. 재판부도 "'함정'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고발자들이 사전에 준비를 했다가 몰래 녹취를 해서 고발했다는 것이지, 이 지사는 모임에 참석할 의도도, 지지발언을 할 의도도, 기부행위를 할 의도도 없었는데 억지로 그렇게 하도록 했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L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또 이례적으로 "증인은 선거가 모두 끝났으니 이제 고소를 모두 취하하고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는데, 예전의 선거를 보면 처음에는 서로 고소·고발을 하며 물어뜯다가 선거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모두 취하하고 그랬었는데, 그래서 우리나라가 지금 이 모양인 것 아니겠느냐"고 질책성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에 L씨는 "예"라고 짧게 답했다.
이날 공판은 L씨의 증언으로 모든 증인심문을 마칠 계획이었으나, 고발자가 제출한 서천 S식당에서의 녹취록에 대해 이 지사 측이 검증을 신청해 오는 31일 녹취테이프 원본에 대한 검증을 실시키로 했다. 이에 따라 이 지사에 대한 선고공판은 내달 13일 쯤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 지사는 지난해 12월 29일 낮 충남 서천군 S식당에서 한나라당 당원 20여명에게 경선 및 선거에서 지지 등을 호소하며 운전기사 C씨와 함께 식비 35만7000원을 제공하고, 같은 달 26일에는 충남 예산과 부여의 식당에서 당원 7~10여명에게 지지를 호소했으며, 또 올 1월 27일에는 온양 O호텔커피숍에서 당원 및 선거구민 등 4명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찻값을 지불하려는 기부행위 의사를 표시한 혐의 등으로 지난 달 21일 불구속 기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