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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에 못쓰는 종이를 주워 싣고 힘없는 손으로 힘겹게 꽁꽁 묶고...
유모차에 못쓰는 종이를 주워 싣고 힘없는 손으로 힘겹게 꽁꽁 묶고... ⓒ 손현희

일터에서 창 밖을 내다보면 바깥이 제법 싸늘해요. 누구나 추운 겨울이 되면 날씨만큼 마음도 쌀쌀해져요. 겨울을 나려면 적어도 석 달은 지내야 하는데, 벌써부터 겨울나기가 걱정스러워요. 내 마음도 이러한데 우리 둘레엔 겨울나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요.

사무실 앞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는 이들이 있어요. 못쓰는 종이를 주워서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에요. 여기도 그런 이들이 무척 많아요. 때때로 종이상자 하나라도 더 주워가려고 서로 옥신각신 다툴 때도 있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가슴이 짠해요.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삶이 넉넉하지 못해요. 내가 아는 이옥희(71) 할머니네 식구들도 마찬가지예요. 이 마을에선 할머니의 아들인 ‘윤식이네’로 더 잘 알려졌어요.

윤식이네 말고도 종이를 주워 내다 팔아 살고있는 어려운 이웃이 많아요.
윤식이네 말고도 종이를 주워 내다 팔아 살고있는 어려운 이웃이 많아요. ⓒ 손현희

종이를 모아주는 게 고맙다고 창고 앞 청소도 깨끗이 해주는 윤식이네
종이를 모아주는 게 고맙다고 창고 앞 청소도 깨끗이 해주는 윤식이네 ⓒ 손현희


할머니는 벌써 일흔 하나, 경북 구미시 임은동에서 아들 둘을 데리고 사는데 손윤식(41), 손공식(38)씨에요. 아들 둘 모두 나이가 찼지만 집을 꾸리거나 늙은 어머니를 모실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에요. 오히려 늙은 어머니가 두 아들 뒷바라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어요. 윤식이와 공식이 둘 다 정신지체장애 1급으로 어릴 때부터 온전한 몸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나이는 들었지만 지능이 낮아서 어린아이와 같아요.

이옥희 할머니는 당신도 나이가 들어 하루하루 살기가 버겁지만 저 두 아들을 보면 잠깐이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시며 종이를 주워 하루하루 살아간답니다. 주워도 어려운 살림에 큰 도움은 안 되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한 푼이라도 벌어서 저눔들 용돈이라도 줘야지…” “나 죽으면 누가 저것들 거두겠노, 내 몸 성할 때 부지런히 댕겨야지”하며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아요.

이웃에서도 일부러 종이상자를 따로 모아 윤식이네 손수레에 갖다주기도 해요.
이웃에서도 일부러 종이상자를 따로 모아 윤식이네 손수레에 갖다주기도 해요. ⓒ 손현희

마을 사람들은 윤식씨와 공식씨를 부를 때, ‘윤식아!’ ‘공식아!’하고 불러요. 그렇다고 함부로 대하는 게 아니라 모두 가깝기 때문에 살갑게 부르는 거예요. 두 아들은 몸이 온전하지 못하지만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어머니 일을 돕고 있어요. 게다가 참 착해요. 이런 모습을 보고 이웃들도 모두 안쓰럽게 여겨요.

윤식이는 어릴 때 경기(놀람병)를 하다가 주사를 잘못 맞아서 그만 소아마비를 앓게 되었지요. 왼손이 꼬부라진 채로 굳어서 손을 잘 펴지도 못하고 제대로 힘을 쓸 수 없어요. 말하는 것도 어눌하고요. 큰 아들이 몸이 성하지 않아 안타까워하던 어머니가 막내 공식이를 낳았는데, 딱하게도 공식이조차 형처럼 온전한 몸이 아니에요.

이옥희 할머니는 10년 앞서 남편을 먼저 저 세상에 보내고 지금은 윤식이와 공식이를 데리고 살아요. 남편이 남겨 놓은 재산이라고는 허름한 집 한 채가 다였고, 갚아야 할 빚만 남겨놓았지요. 그리고 언제나 하나하나 챙겨주어야 할 윤식이와 공식이….

그나마 일흔이 넘은 할머니가 하루하루 끼니를 이으며 살 수 있는 길은 쪽방을 세놓아 받는 10만원과 정신지체장애 1급인 윤식이와 공식이 앞으로 따로 15만원씩 나오는 생활보조금뿐이에요.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이 마을 저 마을 찾아다니며 종이를 주워서 고물상에 내다 파는 일밖에 없어요.

온전하지 못한 두 아들 걱정에 일흔이 넘어도 편히 쉴 수 없는 이옥희 할머니
온전하지 못한 두 아들 걱정에 일흔이 넘어도 편히 쉴 수 없는 이옥희 할머니 ⓒ 손현희

내가 이집 식구들을 하루도 안 빠지고 만난 지 벌써 다섯 해가 되었네요.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난해만 해도 종이를 주워 버는 돈이 1kg에 70원도 받고 많이 받을 땐 100원까지도 받았대요. 그러나 올해 들어 이런 종이도 중국에서 사들여 오기 때문에 값이 35원으로 떨어졌대요. 두 달 가까이 모아야만 4000 kg 남짓 모은다는데, 값을 따지니 15만원이 채 안 되더군요.

이웃에서도 이집 식구들이 애쓰며 사는 게 딱해서 가게나 창고 같은 데서 나오는 종이를 일부러 모았다가 따로 내어주기도 하고, 마을 교회에서도 틈틈이 보살피고 있어요. 우리 사무실 사장님도 명절이면 마을에 몇몇 종이 줍는 어르신들한테 쌀 한 포씩 나눠주기도 해요. 이웃에서 도와주는 손길은 매우 적지만 이 식구들은 그 마음을 얼마나 고맙게 여기는지 늘 넘치는 인사를 해요.

몸은 비록 온전하지 못해 마음대로 할 수 없어도 윤식이와 공식이가 나이 드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씨는 얼마나 착한지 몰라요. 어머니도 이렇게 착한 두 아들이 무척 대견스러운지 나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었어요. 아들이 늘 입버릇처럼 어머니한테 하는 얘기를 들려주는데, 목이 메고 눈물이 나더군요.

“어매 어매, 뭐할로 우리 낳았노. 낳지 말지. 우리 땜에 어매 이케 고생하잖아….”
“그런 소리 마라. 그래도 어매가 너거 땜에 살아.”


아들이 한 이야기를 나한테 들려주며 할머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요. 굳이 할머니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두 아들이 어머니 얘기를 할 때나, 어머니한테 마음 쓰는 걸 보면 잘 알아요. 두 해 앞서 어버이날, 이집 식구들을 보며 내가 쓴 시 한 편을 소개해 봅니다.

자랑스런 카네이션

종이 줍는 식구.
비질하던 칠순 노모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 환하게 웃는다.

마흔을 바라보는 아들 둘,
온전치 못한 정신에도
엄마를 생각하는 맘씨는
온전한 열 자식
안 부럽다.

앞 날,
사무실에 와
내일이 어버이날이라며
엄마 줄 카네이션 걱정에
한숨짓더라.

늙은 어미의 얼굴에
뿌듯한 웃음이 넘쳐
자랑스런 아들 둘을
매단 가슴 보란 듯
자꾸만 내민다.


이 작은 유모차를 끌고 이 마을 저 마을 안 다니는 데가 없어요. 이들에겐 이 작은 유모차가 밥줄이나 다름없어요.
이 작은 유모차를 끌고 이 마을 저 마을 안 다니는 데가 없어요. 이들에겐 이 작은 유모차가 밥줄이나 다름없어요. ⓒ 손현희

언제나 엄마를 도와 일하며, 엄마 걱정을 많이 하는 윤식이. 엄마와 내가 얘기하는 동안 뻘줌해하며 바깥만 보고 있다.
언제나 엄마를 도와 일하며, 엄마 걱정을 많이 하는 윤식이. 엄마와 내가 얘기하는 동안 뻘줌해하며 바깥만 보고 있다. ⓒ 손현희

추운 겨울, 남보다 조금 덜 가진 사람들은 겨울 한철 날 걱정이 누구보다 커요.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부동산 대책’이니, ‘FTA'니 하는 이야기도 이들에겐 아주 먼 나라 이야기예요.

이들의 꿈은 아주 작고 소박해요. 따뜻한 아랫목에서 연탄 걱정 없이 하루하루 끼니만 잘 이을 수 있다면, 그리고 못쓰는 종이를 하나라도 더 많이 주울 수 있다면, 식구들이 아프지만 않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척 행복해 하지요. 또 이들은 하나같이 바탕이 착하고 여린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사는 둘레를 돌아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어렵게 겨울을 나고 있어요. 이들에게 말 한마디라도 더 따뜻하게 건네주세요. 그리고 도울 수 있다면, 적은 힘이나마 보태주세요. 하다못해 추운 날 안으로 불러들여 따뜻한 차 한 잔이라도 나누어주세요.

이번 겨울도 꽤 길겠지요. 어쩌면 이들에겐 우리보다 더욱 길고 긴 겨울일지도 모른답니다.

덧붙이는 글 | '2006, 나만의 특종' 공모글입니다.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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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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