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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창 밖을 내다보면 바깥이 제법 싸늘해요. 누구나 추운 겨울이 되면 날씨만큼 마음도 쌀쌀해져요. 겨울을 나려면 적어도 석 달은 지내야 하는데, 벌써부터 겨울나기가 걱정스러워요. 내 마음도 이러한데 우리 둘레엔 겨울나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요.
사무실 앞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는 이들이 있어요. 못쓰는 종이를 주워서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에요. 여기도 그런 이들이 무척 많아요. 때때로 종이상자 하나라도 더 주워가려고 서로 옥신각신 다툴 때도 있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가슴이 짠해요.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삶이 넉넉하지 못해요. 내가 아는 이옥희(71) 할머니네 식구들도 마찬가지예요. 이 마을에선 할머니의 아들인 ‘윤식이네’로 더 잘 알려졌어요.
할머니는 벌써 일흔 하나, 경북 구미시 임은동에서 아들 둘을 데리고 사는데 손윤식(41), 손공식(38)씨에요. 아들 둘 모두 나이가 찼지만 집을 꾸리거나 늙은 어머니를 모실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에요. 오히려 늙은 어머니가 두 아들 뒷바라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어요. 윤식이와 공식이 둘 다 정신지체장애 1급으로 어릴 때부터 온전한 몸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나이는 들었지만 지능이 낮아서 어린아이와 같아요.
이옥희 할머니는 당신도 나이가 들어 하루하루 살기가 버겁지만 저 두 아들을 보면 잠깐이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시며 종이를 주워 하루하루 살아간답니다. 주워도 어려운 살림에 큰 도움은 안 되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한 푼이라도 벌어서 저눔들 용돈이라도 줘야지…” “나 죽으면 누가 저것들 거두겠노, 내 몸 성할 때 부지런히 댕겨야지”하며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아요.
마을 사람들은 윤식씨와 공식씨를 부를 때, ‘윤식아!’ ‘공식아!’하고 불러요. 그렇다고 함부로 대하는 게 아니라 모두 가깝기 때문에 살갑게 부르는 거예요. 두 아들은 몸이 온전하지 못하지만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어머니 일을 돕고 있어요. 게다가 참 착해요. 이런 모습을 보고 이웃들도 모두 안쓰럽게 여겨요.
윤식이는 어릴 때 경기(놀람병)를 하다가 주사를 잘못 맞아서 그만 소아마비를 앓게 되었지요. 왼손이 꼬부라진 채로 굳어서 손을 잘 펴지도 못하고 제대로 힘을 쓸 수 없어요. 말하는 것도 어눌하고요. 큰 아들이 몸이 성하지 않아 안타까워하던 어머니가 막내 공식이를 낳았는데, 딱하게도 공식이조차 형처럼 온전한 몸이 아니에요.
이옥희 할머니는 10년 앞서 남편을 먼저 저 세상에 보내고 지금은 윤식이와 공식이를 데리고 살아요. 남편이 남겨 놓은 재산이라고는 허름한 집 한 채가 다였고, 갚아야 할 빚만 남겨놓았지요. 그리고 언제나 하나하나 챙겨주어야 할 윤식이와 공식이….
그나마 일흔이 넘은 할머니가 하루하루 끼니를 이으며 살 수 있는 길은 쪽방을 세놓아 받는 10만원과 정신지체장애 1급인 윤식이와 공식이 앞으로 따로 15만원씩 나오는 생활보조금뿐이에요.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이 마을 저 마을 찾아다니며 종이를 주워서 고물상에 내다 파는 일밖에 없어요.
내가 이집 식구들을 하루도 안 빠지고 만난 지 벌써 다섯 해가 되었네요.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난해만 해도 종이를 주워 버는 돈이 1kg에 70원도 받고 많이 받을 땐 100원까지도 받았대요. 그러나 올해 들어 이런 종이도 중국에서 사들여 오기 때문에 값이 35원으로 떨어졌대요. 두 달 가까이 모아야만 4000 kg 남짓 모은다는데, 값을 따지니 15만원이 채 안 되더군요.
이웃에서도 이집 식구들이 애쓰며 사는 게 딱해서 가게나 창고 같은 데서 나오는 종이를 일부러 모았다가 따로 내어주기도 하고, 마을 교회에서도 틈틈이 보살피고 있어요. 우리 사무실 사장님도 명절이면 마을에 몇몇 종이 줍는 어르신들한테 쌀 한 포씩 나눠주기도 해요. 이웃에서 도와주는 손길은 매우 적지만 이 식구들은 그 마음을 얼마나 고맙게 여기는지 늘 넘치는 인사를 해요.
몸은 비록 온전하지 못해 마음대로 할 수 없어도 윤식이와 공식이가 나이 드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씨는 얼마나 착한지 몰라요. 어머니도 이렇게 착한 두 아들이 무척 대견스러운지 나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었어요. 아들이 늘 입버릇처럼 어머니한테 하는 얘기를 들려주는데, 목이 메고 눈물이 나더군요.
“어매 어매, 뭐할로 우리 낳았노. 낳지 말지. 우리 땜에 어매 이케 고생하잖아….”
“그런 소리 마라. 그래도 어매가 너거 땜에 살아.”
아들이 한 이야기를 나한테 들려주며 할머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요. 굳이 할머니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두 아들이 어머니 얘기를 할 때나, 어머니한테 마음 쓰는 걸 보면 잘 알아요. 두 해 앞서 어버이날, 이집 식구들을 보며 내가 쓴 시 한 편을 소개해 봅니다.
자랑스런 카네이션
종이 줍는 식구.
비질하던 칠순 노모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 환하게 웃는다.
마흔을 바라보는 아들 둘,
온전치 못한 정신에도
엄마를 생각하는 맘씨는
온전한 열 자식
안 부럽다.
앞 날,
사무실에 와
내일이 어버이날이라며
엄마 줄 카네이션 걱정에
한숨짓더라.
늙은 어미의 얼굴에
뿌듯한 웃음이 넘쳐
자랑스런 아들 둘을
매단 가슴 보란 듯
자꾸만 내민다.
추운 겨울, 남보다 조금 덜 가진 사람들은 겨울 한철 날 걱정이 누구보다 커요.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부동산 대책’이니, ‘FTA'니 하는 이야기도 이들에겐 아주 먼 나라 이야기예요.
이들의 꿈은 아주 작고 소박해요. 따뜻한 아랫목에서 연탄 걱정 없이 하루하루 끼니만 잘 이을 수 있다면, 그리고 못쓰는 종이를 하나라도 더 많이 주울 수 있다면, 식구들이 아프지만 않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척 행복해 하지요. 또 이들은 하나같이 바탕이 착하고 여린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사는 둘레를 돌아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어렵게 겨울을 나고 있어요. 이들에게 말 한마디라도 더 따뜻하게 건네주세요. 그리고 도울 수 있다면, 적은 힘이나마 보태주세요. 하다못해 추운 날 안으로 불러들여 따뜻한 차 한 잔이라도 나누어주세요.
이번 겨울도 꽤 길겠지요. 어쩌면 이들에겐 우리보다 더욱 길고 긴 겨울일지도 모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