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지금 '스타'라는 이름 위아래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스타'가 되길 원하고, 누구나 '스타'만을 보길 원하는 그런 세상. 그래서 <오마이뉴스>가 찾아 나섭니다. '스타'가 아닌 '배우'라는 이름으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누비고 있는 그런 이들을요. <오마이뉴스>는 '배우의 재발견'이라는 타이틀로, 이곳저곳에서 작은 빛을 내뿜는 배우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
덕만과 천명공주, 미실, 화랑도가 그렇게 애타게 찾고 있는 '문노'를 드디어 찾았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국선 문노' 역할을 맡아 단 2회 출연만에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배우 정호빈(40). 그가 맡은 문노는 초반에 등장했다가 홀연히 자취를 감췄고 언제 등장할지 기약도 없지만, 시청자들은 '문노'에게 무한 관심을 보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문노가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선덕여왕 문노'라는 낱말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들었을 정도. <선덕여왕> 홈페이지 시청자게시판에도 '문노는 이제 안 나오나요?', '문노는 언제 나오나요?', '문노, 죽은 거 아니겠죠?'라는 질문이 줄을 잇고 있다.
이처럼 초반 <선덕여왕>의 인기몰이에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문노, 정호빈씨를 지난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훤칠한 키에 약간은 마른 체구, 짧게 깎은 머리는 전반적으로 강인해 보이는 이미지 그대로였지만, 대화를 나눠보니 그는 의외로 재미있는 유머를 구사할 줄 아는 남자였고, 부드러운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오래된 묵은지' 같은 배우... "극중 나는 외강내유 형"
우선 화제가 되고 있는 <선덕여왕> 이야기부터 했다. 극 중 인물들은 물론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을 먼저 물었다. 대체 문노는 언제 나오는 걸까?
"예정으로는 드라마 중반쯤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드라마 진행 상황이 사람들이 계속 나를 찾고, 또 그 과정에서 사건들이 생기고 해결되는 것의 반복이기 때문에, 그게 좀 지속돼야 보는 시청자들도 긴장감을 느낄 거다."
그는 이번 드라마에서 화려하고 현란한 액션신을 구사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지만, 부상에 대한 위험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특히 문노는 매 회, 그것도 수십 명과 한데 엉켜 혼전을 벌이는 고난이도의 액션신을 선보였다.
정호빈씨는 "액션신을 찍을 때 미리 보호대를 착용한다고 해도 같은 촬영이 반복되다 보면, 사람인 이상 지치게 되고 지치면 힘 조절이 어렵다"며 "가짜로 때릴 걸 진짜로 때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말을 타다가 떨어진 경험도 있다, 그때 발목하고 어깨를 좀 다쳐서 힘들었다"며 "부상은 혼자만 당하는 것도 아니니, 아프다고 티를 낼 수도 없다"고 말했다.
'정호빈'이란 이름 석 자와 그의 얼굴을 본 이들이라면 몇 가지 떠올리는 이름이 있을 것이다. <주몽>의 우태, <꽃보다 남자>의 정실장, <떼루아>의 강정태 등. 정호빈의 출연작 중 큰 사랑을 받았던 작품과 극 중 캐릭터들은 대부분 외강내유 형으로 주인공이나 그 주변인물을 뒤에서 묵묵히 지켜준다. 그는 이런 배역을 자주 맡게 되는 것에 대해 "나 아닌 다른 배우들이 그 역할을 맡아도 물론 잘 하겠지만, 난 운 좋게 그런 작품과 그런 캐릭터를 많이 만난 것 같다, 나에겐 복이다"라며 웃었다.
사실 인터넷에는 그에 대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았다. 데뷔는 언제 했는지, 데뷔작은 무엇인지, 연기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상당 부분 베일 뒤에 감춰져 있는 느낌이었다. 이런 것을 묻자 그는 웃으며 자신을 "오래된 묵은지"라고 표현했다.
그는 "영화 <친구>(2001)를 찍기 전에 한 편의 영화를 찍었었는데, 그게 개봉이 안 됐고 드라마는 <올인>이다, 원래는 연극을 했다"며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연기를 시작한 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향한 갈망이 차곡차곡 내재된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다음은 정호빈씨와의 인터뷰 전문.
"문노는 언제쯤 다시 나오나요?"
- 먼저 제일 궁금한 것부터 물을게요. 문노는 언제쯤 다시 볼 수 있는 거죠?
"예정으로는 드라마 중반쯤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 드라마 진행 상황이 사람들이 계속 저를 찾고, 또 그 과정에서 사건들이 생기고 해결되는 것의 반복이기 때문에, 그게 좀 지속돼야 보는 시청자분들도 긴장감을 느낄 것이고요. 그래서 저는 되도록 늦게 나타나야죠. 일찍 나타나면 그만큼 사건이 빨리 해결되니까, 긴장감이나 재미가 덜하겠죠. 제가 나타나서 어떤 중요한 단서를 던져주고 다시 사라지면, 남은 배우들은 또 그걸 바탕으로 끝까지 갈 수 있겠죠."
- <선덕여왕>에 대한 반응이 뜨거운데, 예상은 했나요?
"전혀 예상 못 했죠. 시청자들이 이렇게 큰 관심 가져줄지 정말 몰랐어요. 저는 처음에 부담이 많았어요. 왜냐하면 문노가 1, 2회에 꽤 비중 있게 나오는 인물이고, 또 요즘 드라마는 1, 2회 시청률이 그 이후의 흐름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잖아요. 그래서 제 임무, 역할의 무게가 막중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부담이 컸죠."
- 여성사극인 KBS <천추태후>와 SBS <자명고>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태라 부담이 좀 컸을 것도 같은데요.
"아무래도 그렇죠. 저는 회당 분량에 비해서 임팩트 있는 역할이긴 한데, 처음부터 끝까지 쭉 가는 캐릭터는 아니라서, 오히려 고현정씨나 이요원씨, 엄태웅씨 같이 극을 끝까지 이끌어나가는 주인공들이 더 큰 부담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다행히 첫 회에 시청률이 좋게 나왔고, 또 많은 사랑과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화랑도의 최고봉 문노도 다칠 때가 있을까?
- 지금 <선덕여왕>에선 모두가 문노를 찾느라 난리잖아요? 극 초반에 이렇게 주목을 받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런 역할을 맡게 된 소감은요?
"아무래도 드라마에서 이렇게 비중 있게 나온 적은 처음이고, 게다가 가장 중요한 초반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맡아서 책임감도 남달랐어요. 그만큼 부담감도 컸죠. 시청률 안 나오면 '정호빈이 드라마 하나 말아 먹었구나'하는 소리도 들을 것 같았고….(웃음) 시청자들이 많이 사랑해주시고, 또 문노를 좋아해주시는 것도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 자체를 좋아하시니까 그런 것이겠죠. 그래서 요즘, 참 행복해요."
- <선덕여왕> 방송분을 보면, 산기슭, 동굴 등이 많이 나와 촬영이 고될 것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던데, 실제로 촬영 현장 상황은 어떤가요?
"화백회의 촬영지였던 담양 금성산성 같은 경우, 주차장에서 꼭대기까지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데, 거기가 하나의 등산코스예요. 화장실 한 번 가려면 성문을 넘어야 했죠. 금성산성 이외에도 제가 촬영했던 신들은 다 쉽지 않은 장소에서 찍었습니다. 드라마 초반의 동굴신도 그랬죠. 거기가 강원도 쪽이었는데, 멀기도 멀고 좀 험난했어요."
- 드라마를 보면 한 번에 수십 명씩 상대하는 장면이 나오던데, 고난이도 액션신을 찍을 때면 부상에 대한 두려움도 생길 것 같아요.
"액션신을 찍을 때는 사실 미리 준비를 하고, 대비를 하고 이런 게 잘 안 돼요. 미리 보호대를 착용한다거나 해도, 이게 같은 촬영이 반복되다 보면 사람인 이상 지치게 되어 있거든요. 지친 상태에서는 서로 힘 조절도 어렵고, 가짜로 때릴 걸 진짜로 때리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저도 많이 다치기도 하고, 삐기도 하고 그랬는데, 다 참고 하는 거죠. 말 타다가 떨어진 경험도 있어요. 그래서 발목하고 어깨를 다쳐서, 좀 힘들었죠. 그렇지만 부상은 저 혼자만 당하는 것도 아니니까, 아프다고 해서 티를 크게 낼 수도 없죠."
"카리스마 배우? 그런 배우 되려 노력해요"
- 대부분의 출연작에서 주인공이나 그 주변 인물들을 묵묵히 지켜주는 역할을 많이 하셨잖아요? <꽃보다 남자> 정 실장도 그렇고 <주몽> 우태도 그렇고요.
"드라마마다 각각 성격이 다 다르지만, 작가님들은 상황이나 설정을 잘 중화시킬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드시는 것 같아요. 저 아닌 다른 배우들이 그 역할을 맡아도 물론 잘하겠지만, 전 운 좋게 그런 작품과 그런 캐릭터를 많이 만난 것 같아요. 저에게는 복이죠."
- 찾아보니, 인터넷 인물소개란에 '선 굵은 얼굴과 낮고 남자다운 목소리로 가만히 있어도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배우'라고 평가돼 있던데요. 이런 평가, 어때요?
"좋은 말이네요.(웃음) 좋게 봐주시니까 참 고마워요. 저를 그렇게 보고 평가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제가 그런 캐릭터를 자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그런 배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또 그렇게 써주신 것 같아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런 배우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데뷔연도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요. 언제 데뷔했고 연기를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말해주세요.
"아주 오래됐다고 써주세요.(웃음) 영화 <친구>(2001)를 찍기 전에 한 편의 영화를 찍었었는데, 그게 개봉이 안 됐어요. 그래서 영화 데뷔작은 <친구>예요. 드라마는 <올인>(2003)이었고. 원래는 연극을 했어요. 연기는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니에요. 저는 정말 이 일(연기)을 하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향한 갈망이 차곡차곡 내재됐죠. 그게 계기라면 계기겠죠."
-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꾹' 찍은 작품이 SBS <올인>이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감독님이 저를 찾으셨죠. '저 배우와 한번 미팅을 해보고 싶다'고 하셨대요. 그래서 처음 만난 날, 첫 미팅에서 저한테 그 역할을 바로 주셨던 거예요. 저는 감독님께 '멋진 캐릭터로 한 번 만들어 보겠다'고 했고, 그렇게 서로 그 자리에서 마음이 통했던 것 같아요."
"다음엔 '악역으로서의 문노'같은 치떨리는 악역 하고 싶다"
- 조폭, 마피아 보스의 오른팔, 사채업자, 호위무사 등 지금껏 해온 역할이 좀 강한데요. 선 굵은 연기를 주로 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요?
"멋있는 연기를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남들 안 하는 연기. 카리스마라는 게 무턱대고 강하게 연기한다고 묻어나는 것은 아니잖아요. 내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무게감이란 뭔가, 그런 쪽으로 고민을 했고요. 개인적으로는 성격파 배우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요. 외적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내면 연기에 충실한, 그래서 그 캐릭터가 갖는 무게감이 말로 표현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보여질 수 있게 연기하고 싶어요. 근데 그게 하면서도 참 어려운 것 같아요."
- 최근 정호빈씨와 비슷하게 주로 카리스마 있는 역할만 맡았던 최철호씨가 <내조의 여왕>에서 연기변신을 시도했어요. 혹시 정호빈씨도 연기변신을 시도해보실 생각은 없나요?
"연기 변신 해보고 싶죠. 전 정말 독한 악역, 아니면 블랙 코미디를 해보고 싶어요. 예를 들어서, 지금은 좋은 이미지의 문노잖아요. 그런데 정말 악역으로서의 문노라면 어떤 이미지였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어요. 만약에 악역을 한다면 사람들이 '정말 저런 사람이 있을까?'하며 치를 떨 정도의 그런 독한 악역을 해보고 싶어요."
- 배우 중에 닮고 싶은, 목표로 삼은 롤모델이 있나요?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같은 분들이 그런 성격파 배우의 대선배님들이시죠. 제 연기 생활의 모티브이기도 하고요. 그런 성격의 연기나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그게 이제 숙제죠, 저한테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