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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책 표지 ⓒ 궁리
에피소드 1.

몇 년 전, 북경에서 만난 이탈리아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서울은 어떤 곳이죠?"
그 순간, 여행기중독자의 머릿속은 하얘졌고, 입은 얼어붙었다. 애국자라면 "굿, 원더풀~"이라고 무조건 날려놓고 없는 말이라도 만들어 냈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 "뭐 이것저것 문제가 많긴 하지만요"라고 마무리를 하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문제 많기로는 이탈리아도 만만치 않은 나라이므로 쉽게 공감대가 이루어졌으리라.

3초 사이에 수많은 단어가 떴다가 졌다. 무엇 하나 특별하지 않았다. 급기야 '다이나믹?'하고 생각하다가 도대체 뭐가 다이나믹하다는 것인지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살기는 힘들지만 한강이라는 아름다운 강이 있는 도시죠"라고 말했다. 얼마나 재미없는 대답이었는지 대화가 잠시 끊겼다. 다행이 상대가 이탈리아 사람이었기에 침묵은 길지 않았다.

그 이후로 어떤 외국인이 또 다시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서울에 대해서, 한국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소개할 것이 무엇인지 가끔씩 생각해 보고는 한다. 고백컨대, 아직까지 나의 답안지는 채워지지 않았다. 그동안 도대체 뭘 배운 걸까? 한심할 따름이다.

에피소드 2.

미국에 다녀온 적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미국은 어때?"
90퍼센트의 사람이 "글쎄..."로 시작해서 "나는 어디어디에만 있어봐서 잘 모르겠지만." 으로 말을 이어갔다. 재미없는 사람들은 재미없는 사람끼리 봐줘가며 어울리기 때문일까?

이야기는 매우 다양한 인간과 인종이 공존한다는 것, 그 다양함을 묶어주는 것은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기독교 문화라는 것, 미국시민과 그렇지 않은 이민자 사이에는 엄청난 벽이 존재한다는 것 등등으로 이어졌다.

대화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미국에 대한 이야기는 흡사 영화 <매트릭스>를 연상시켰다.  전 세계를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모습은 스펙터클하기만 한데, 그들의 '시온', 즉 그곳에 사는 미국시민들의 본모습은 오리무중이었다. 그들의 생활은 주마다 다르고, 인종마다 다르고, 계층마다 다르거니와 그곳에 사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국제무대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서는 물론 미국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고 했다.

오랜 기간 수많은 뉴스와 대중문화로 그들을 접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인간적인 면에는 너무나 무지했음을 깨달았다. 여행기중독자에게 미국은 뭔가를 보러 가고 싶은 나라가 아니라, 도대체 미국인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서 가고 싶은, 그런 나라가 된 것이다.

미국여행의 안내자를 찾아서

미국여행의 안내서를 찾기 위해 몇 권의 여행기를 보았다. 세련됨과 광활함과 각종 선진기법을 나열한 책들도 있었고, 엄청난 빈부격차와 탐욕과 추악한 음모를 파헤친 책들도 있었다. 그 양면을 모두 망라하고자 하던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서점 한 구석에서 현기증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메리칸 버티고>라는 제목을 달고. 현기증 안 나게 만드는 안내자가 필요했다. 이민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미국인의 본모습을 보여줄 그런 안내자가 필요했다.

'존 스타인벡'의 여행기 <찰리와 함께한 여행 Travels with Charley in Search of America >를 펼쳐드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 지는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여행에 앞서 여행기중독자가 관심 있어 하는 두 가지에 대해 먼저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란 바로 '여행'과 '조국'이었다.

"다년간 시달리고 나면 사람이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사람을 끌어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불가피하게 닥치는 관광 안내원이며 예정표며 예약이며 하는 문제들도 실은 여행이 가지는 개성으로 말미암아 으레 산산조각이 나게 마련이다... 그때에야 모든 좌절감이 사라진다. 이런 점에서 여행은 결혼과 같다. 자기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오산이다."

책머리 두세 페이지의 '여행론' 만으로도 마구 신뢰가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여행은 누구에게나 다 똑같다고, 미국여행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고, 일단 떠나 보자고 은근하게 눈웃음치는 것 같았다. 내가 잠시 망설이며 뜸을 들이자, 그는 미국인인 자신도, 노벨상을 받은 소설가인 자신도 미국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 미국에 관해서 글을 쓰는 미국작가지만 나는 실은 기억에만 의존해 왔다. 그런데 기억이란 기껏해야 결점과 왜곡 투성이의 밑천일 뿐이다. 나는 참된 미국의 언어를 듣지 못하고 미국의 풀과 나무와 시궁창이 풍기는 진짜 냄새를 모르고, 그 산과 물, 또 일광의 빛깔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단 세 페이지를 읽고, 나는 스타인벡의 손을 덥석 잡았다. 손을 잡고 보니 1960년 9월 뉴욕이었다. 그리고 스타인벡의 나이는 쉰여덟이었다.

스탠 바이 존 스타인벡 (Stand By John Steinbeck)

그는 지난해에 몹시 아팠다고 했다. 그러자 주위에서 이거 조심해라, 저거 조심해라 하며 아이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수명을 조금 더 늘이자고 장렬한 삶을 버릴 생각은 나에겐 없었다. 내 아내도 어엿한 한 남자와 결혼을 한 것이다. 그녀가 이제 와서 어린아이를 맡아야 할 이유는 도대체 없지 않는가."

노인의 고집스런 모습에서 남성적인 매력이 느껴졌다. 이제 40년 전의 미국이라도, 그가 이미 나하고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의 대작가라고 하더라도 더 이상 문제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트럭짐칸 위에 숙식을 할 수 있도록 잘 꾸며놓은 컨테이너 박스가 얹혀 져 있었다. 분리형 트레일러보다 이동이 수월할 것 같았다. 이 노인네는 글만 잘 쓰는 것이 아니라 다방면으로 꼼꼼한 캐릭터인 것이다.

내 옆에서 그의 애완견 '찰리'가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손님 대접을 해줘야 할지, 동생 취급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나도 찰리를 째려보았다. 어차피 나도 미국에 와서 개에게까지 대접받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사람끼리라도 인간대접을 해주면 족하리라 생각하고 떠난 길이기 때문이다.

내가 찰리와 함께 차에 오르자 그는 서쪽이 아닌 북쪽으로 달렸다. '뉴욕 주'를 위시한 북동쪽 지역을 크게 '뉴잉글랜드'라고 한다고 했다. 아마도 영국 청교도들이 처음 정착한 곳이라서 그럴 것이다. 나는 그에게 뉴욕에서 미국일주를 시작하면서 왜 서쪽이 아닌 북쪽으로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우선 여행의 첫길로 메인 주 꼭대기까지 갔다가 거기서 서부로 향하리라 마음먹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 여행의 그 어떤 모양이 잡힐 것만 같았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모양이 있어야 한다. 없다면 사람의 마음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법이다."

이 양반은 어쩜 이렇게 내 맘에 드는 말만 하는지. 하지만 너무 호들갑을 떨면 가벼운 사람처럼 보일까봐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혹시 이번 여행은 요즘 잘나가는 '비트 제너레이션' 작가들에게 자극받은 결과인가요?'하는, 사전에 준비해간 질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여행 초장부터 그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주기는 싫었다.  

메인 주로 가는 길에서 '버몬트 주'의 가을산림을 보았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도 너무나 아름다웠던 버몬트의 가을 단풍은, 그 사진마저도 흐린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믿을 수 없이 요란한 색채를 펼쳐 보이고 있었다. 혹시 늘 대하고 있으면 예사로워 지는 것은 아닌지 그곳에 사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녀는 그들도 매년 가을만 되면 언제나 놀란다고 말했다.

우리는 몇 번인가 길을 잃어버리는 우여곡절 끝에 미국 북동부에 있는 '메인 주'에 도착했다. 훗날 '스티븐 킹'의 소설에서 악령이 출몰하는 동네로 자주 등장했던 곳이기에 여행기중독자도 한 번 와보고 싶었더랬다. 뉴욕 사람들이 여름 피서를 마치고 떠나버린 터여서 그런지 썰렁했다. 9월인데도 벌써 춥고 습한 것이 조금 음산하다. 왜 스티븐 킹이 여기를 애용했는지 알 것 같았다.

캐나다에 가까워질수록 날씨는 더 추워지고, 사람들의 말투는 영국식 억양에 가까워졌다. 사람들이 어찌나 과묵한지 마치 아일랜드에라도 온 것 같았다. 뭘 물어보면 트림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놈도 있고, 아예 대답을 하지 않는 놈도 있었다. 나는 내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무시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가만히 보니 스타인벡에게도 그러는 것이 여기 사람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인가 보다. 

메인 주에서 가장 신비한 풍경을 간직한 곳은 '메인 주라는 유방에 젖먹이처럼 다가앉은 섬'인 '디어아일'이었다. 스타인벡은 '디어아일'의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는 스티븐 킹의 출현을 예고라도 하듯이 말했다. 검은 수면이 광선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급기야는 이상하게도 본 것 같지 않던 여러 사물들이 떠나고 난 후에 자꾸만 되살아오는 느낌이라고까지 했다. 그곳은 분명 수상한 곳이 틀림없었다.

한편, 북쪽에는 '따뜻한 플로리다에 땅을 사라'는 광고가 매우 많았다. 추운 날씨 탓에 광고만 봐도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훗날 카리브 해 연안의 '썬밸트'는 이미 40년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이때 존이 다소 길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0월 저녁때도 노상 푸르기만 한 잔디밭에 나일론과 알루미늄으로 만든 의자를 내다놓고
앉아 모기를 때리고 있는 '플로리다의 뉴잉글랜드인' - 고향에 대한 추억으로 그의 가슴 한 구석이 찢기 듯 아프지는 않을 것인가? 습기 찬 상하의 계절에 고향을 그리는 그 마음은 그를 부르는 고향 산천의 선명한 빛깔과, 때리면 깨질 듯 산뜻한 겨울 하늘로 불타는 소나무의 향긋한 냄새와, 훈훈히 몸을 감싸주는 부엌의 온기로 틀림없이 줄달음을 치고 있을 것이다. 마냥 푸르기만 하다는 것이 또 무슨 소용이 있으랴."

국도를 타고 북쪽의 끝으로 향해가던 스타인벡은 또 길을 잃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투덜거리며 하이웨이로 들어갔다. U.S하이웨이 1번을 따라 올라가, 북쪽 끝에서 U.S하이웨이 2번으로 갈아타고 서쪽으로 달려 '뉴햄프셔 주'로 간다. 우리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당시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던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점점 도시에 가까워지자 노인은 이렇게 투덜댔다.

" 대도시는 점점 커지고 마을은 자꾸만 위축되어 간다. 식료, 잡화, 철물, 의류 등 그 어떤 장사를 불문하고, 조그만 촌락의 상점들은 슈퍼마켓이나 연쇄점을 도저히 당해낼 길이 없다... 한때는 자기 집을 든든하게 꾸려서 비바람에도 끄떡없고, 서리나 한발, 해충 같은 것 하나도 무섭지 않던 그런 사람들이 이제는 대도시의 소란한 가슴팍에 매달려 살고 있는 것이다. "

1960년의 노인과 2009년에서 날아간 여행기중독자 사이의 시차는 무너졌다. 그는 대도시에 작은 마을이 먹히고 있는 현상을 계속해서 한탄한 후, 언젠가는 도시에 찌든 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전원으로 되돌려 보내려고 할 것이라고 예언하듯 말했다. 돈 많은 사람들이 앞장을 서면 으레 가난한 사람이 뒤를 따르는 법이라면서...

그는 그렇게 열변을 토하고 나서 내 쪽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내 옆에 앉은 찰리를 보고 있었다. 스타인벡은 처음부터 끝까지 찰리에게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고, 나는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찰리는 '유령'인 나를 째려보았던 것이다. 나는 달리는 차에서 조용히 뛰어내렸다.

미국인의 얼굴

이제 독자가 되어 그와의 여행을 함께 한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들렀다가 계속 동쪽으로 달려 뉴잉글랜드 지방을 벗어난다. '오하이오 주'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거짓말처럼 쾌활해졌다. 전형적인 미국인의 모습이다.

클리블랜드, 톨레도, 디트로이트의 공장들이 한창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1990년대에 이르러 이곳의 공장들이 대거 문을 닫으면, 이 사람들은 일거리를 찾아 다른 도시로 미련 없이 떠날 것이다.

미국인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고향과 혈통을 바코드처럼 달고 다니면서도 먹을 게 다하면 미련 없이 고향을 떠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 땅은 어차피 선조들의 고향도 아니었고, 그 선조들은 사냥과 개척으로 살아남았던 것이다. 개척이란 미국인이 되는 통과의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나 지금이나, 토착민에게나 이민족에게나 마찬가지로.

여행은 미국에서 겨울에는 가장 춥고, 여름에는 가장 덥다는 (코엔 형제의 영화 <파고>의 배경지인) '파고 시'를 지나, '몬태나 주'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거쳐, 태평양에 다다른다.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를 달리며 스타인벡은 그곳이 옛날의 그곳이 아니라고 투덜댄다. 바다가 보이는 아담하고 평화로운 도시였던 그곳은, 이제 전망 좋은 자리는 돈 많은 사람이 다 차지하고, 토박이들은 바다에서 점점 더 먼 곳으로 쫓겨나 우울하게 지내는 그런 동네가 되었다고 화를 낸다.

하지만 이방인이 보기엔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는 그래도 다른 도시에 비해 좋아보였다. 이민족이 많아 인종차별도 덜했고, 분위기는 자유분방했으며, 날씨도 좋았다. 여행기중독자는 좀 더 오래 머무르고 싶었지만, 스타인벡은 애절하게 잡고 늘어지는 고향친구들의 손을 뿌리친다. 아무리 그리워도 돌아갈 수 없는 것이 과거라고 하면서.

그리고는 애리조나의 사막을 건너 남부로 향한다. 그는 서서히 두려움에 휩싸인다. 당시 최고조를 향해 치닫던 인종갈등 때문이었다. 백인인 그는 그 추악한 싸움의 중심 앞에서 자꾸만 머뭇거린다. 스타인벡의 고뇌에도 불구하고, 여행기중독자에게는 이 남부여행이 이번 여행 중 가장 유익한 시간이었다.

먼저 '텍사스'에서는 그 지역특성을 통해 전 미국 대통령인 '부시 부자'의 기질을 좀 더 깊이 알게 되었다. 텍사스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돌아이' 기질로 유명한듯하다. 그들은 스스로 멕시코 인들을 몰아내고 삶의 터전을 잡은 연유로 지역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텍사스 사람들은 전국 어딜 가나, 또 아무리 부자여도 카우보이 문화를 즐긴다고 한다.

거기다가 텍사스는 석유로 인해 재정이 튼튼하므로 연방정부와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둔다고 한다. 카우보이와 석유가 만난 결과, 텍사스 사람들은 모두가 "예스"라고 말할 때 혼자서 "아니오"라고 말하는, 모두가 "아니오"라고 말할 때 혼자서 "예스"라고 말하는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여행기중독자는 이제야 '부시'라는 캐릭터를 조금 알 것 같다. 40년 전의 스타인벡은 이런 곳에서 대통령이, 그것도 대를 이어 대통령이 나오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뉴올리언즈'에 이르면 격세지감은 한층 더해진다. 인종분쟁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뉴올리언즈의 어느 백인 초등학교에서는 최초로 흑인 학생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는데, 그 사건은 전국적인 흑백갈등을 촉발시켰다. 그 와중에 백인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스타로 떠오른 인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응원단'이라 불리는 백인아줌마들이었다.

그들은 아침마다 교문 앞에 서서, 등교하는 흑인 초등학생을 향해 갖은 욕설을 퍼부었고, 사람들은 이들에 대한 환호와 경멸로 양분되었다. 갈등은 흑백은 물론이고 백인과 백인 간으로도 번져 나가고 있었다. 갈등의 광풍 속에 스타인벡과 같이 '응원단'을 경멸하는 백인들을 위한 자리는 좁기만 했다.

스타인벡은 무거운 마음으로 남부지역을 벗어난다. 그리고는 어느 날 오후 네 시 무렵 '버지니아 주 애빙턴' 근처에서 여행을 끝내버린다. 달아난 여행을 애써 불러보았지만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더 이상 뭉개지 않고 과감하게 집으로, 집으로 달린다. 그 역시도 길게 뒤돌아보지 않는 미국인이었던 것이다.

이랬던 미국인들이 40년 뒤에 흑인 대통령을 배출해낸 사실은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여행기중독자가 더 놀랍게 느끼는 것은 텍사스 부호 출신 대통령에서 흑인 대통령으로 단번에 갈아타는 그들의 과감함이다. 과연 그들의 과감함의 끝은 어디인지,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 두렵기도 하다.

<찰리와 함께한 여행>은 대작가의 풍모가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감동적인 여행기이다.
특히 좋게 말해 쿨하고 진취적인, 나쁘게 말하면 이기적이고 매정한 미국인의 특성을 내밀하게 접할 수 있게 해준 점에서 각별하다 할 수 있겠다.

끝으로, 35년 전 번역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려하게 번역을 하신 '고 이정우 번역자님'께, 또 2006년에 35년 전 그때 번역 그대로 이 책을 재출간한 '궁리 출판사'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찰리와 함께한 여행 - 존 스타인벡의 아메리카를 찾아서

존 스타인벡 지음, 이정우 옮김, 궁리(2006)


#찰리와 함께한 여행#궁리#존 스타인벡#미국#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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