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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7월 9일 전교조 홈페이지(eduhope.net)엔 어느 교사의 색다른 글이 떠올랐다. 그는 정년을 4년 앞둔 노교사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뒤에, 다음처럼 말했다.

"소년신문이 몇 십 년을 두고 교실에 반강제 투입되는데 이것은 잘못 아닌가요? 감사원에도 질의했지만 언론이 무서운지 흐지부지 답이 없습니다. 전교조는 이를 어떻게 보는지요. 본인은 이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 문제의 답은 꼭 알고 퇴임하고 싶습니다."

서울초등학교 98% 학교 소년신문 구독

이 글이 올라온 지 약 3개월 후인 지난 해 10월 24일 서울시교육청은 '학교별 어린이신문 구독실태'를 서울시교육위원회에 보고했다.

이 보고는 98%의 초등학교가 학교 안에서 소년신문을 구독하는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학교는 신문지국, 교사는 신문배달부'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해주었다. 더구나 대부분의 초등학교가 소년○○일보를 학생들에게 보게 하면서 받은 기부금의 편차가 크게 발생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초등학교가 받는 기부금은 서울의 경우 월 구독료(3500원)의 20% 정도인 평균 700원. 이는 성인 일간신문이 평균 70%(7000원) 정도를 지국 운영비로 할애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턱없이 적은 액수다. 신문사 입장에선 손 안대고 *푸는 일인 셈이다.

특히, '주간 교육희망'에서 자체 분석한 결과 10개 학교 가운데 한 학교 정도는 500원 이하를 받고 있어 학교장과 신문업자의 유착 의혹까지 일고 있다.

기부금 액수도 제 각각

이 보고자료에 따르면 서울성원초와 서울청덕초는 각각 973원과 872원을 받은 반면, 서울ㅅ초등학교가 140원, 서울ㄱ초등학교가 427원을 받는 등 약 10%의 학교가 500원 이하를 기부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분석 결과 이와 같은 액수의 편차는 신문구독 학생 수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올 한해 서울지역 초등학교가 받을 기부금이 평균 600만원 정도이며 전국 수많은 초등학교가 학교 신문구독을 실시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 기부금 편차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박명기 서울시교육위원회 부위원장은 전화인터뷰에서 "기부금에 대한 의혹이 드러난 이상 초등학교 신문 배포체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청 "학교장과 신문업자가 알아서 할 일"

서울시교육청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한 서울시교육청 모 장학사를 25일 전화 인터뷰했다. 그는 현재 초등학교 소년신문 관련 일을 맡고 있다.

- 현재 서울 대부분의 초등학교가 소년신문을 학교에서 구독하고 있는데….
"교육청은 구독을 하라 말라 한 적도 없고, 그럴 만한 처지도 못된다. 학교장이 교육관에 따라 알아서 하는 일이다."

- 소년신문을 구독시키면서 각 학교는 구독액의 20% 정도를 기부금으로 받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기부금을 받고 있는지 그건 모르겠다."

- 지난해 10월 서울시교육청 자료에 보면 그렇다고 나와 있지 않은가.
"학교마다 받고 있는지 실정이 제각각이니 파악하지 않고 있다."

- 아무튼 기부금을 받고 있는데, 그 액수 차가 심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내 처지에서 뭐라 말할 수 없다. 학교장과 신문업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 교육청 공문을 보면 우유 등을 납품하는 업자에게는 학교발전기금을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는데 신문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뭐라 말하기 곤란하다."

- 학교에서 교사가 동아전과나 표준전과를 판매한다면 이해할 수 있겠나.
"학교에서 책을 판매하는 행위는 못하도록 되어 있다."

- 신문을 판매하는 게 전과를 판매하는 것과 다른 일인가?
"신문을 판매하는 건 개인구독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신문은 부교재가 아니라 학습자료로 보는 교장선생님들이 많다."

- 가정 구독에 맡기면 신문을 보려는 학생들이 자율로 볼 수 있지 않겠나.
"그건 어떻게 하라 말할 수 없는 일이고 신문사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 앞으로 신문구독에 대한 대책은 좀 있나?
"지난해 12월 과장회의를 한 다음 강제구독을 통한 민원을 일으키지 않도록 각 학교에 공문을 내려보냈다. 또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신문지국에 신문총무가 있듯이 학교에도 업무분장에 소년신문 판매·배달을 주관하는 '어린이신문 담당 교사'가 있다. 신문 강제구독의 주체가 바로 업무를 명령하는 학교 관리자들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뜻 있는 초등교사들과 학부모들은 학교의 강제구독을 없애기 위해서는 배포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어서 빨리 일반 신문처럼 가정배포체계로 바꾸라는 소리다.

신문팔이로 충당하는 초등학교 재정?

서울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 1학년 아들을 보내고 있는 김명희 씨는 "지난해 말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소년조선일보를 선생님이 주었다며 가지고 와서 황당했다"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털어놨다.

"문제의 해법은 간단하다. 정말 그 신문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개인적으로 구독하게 하면 될 것이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재정이 신문사에서 기부금을 받아 유지될 정도로 허약하다면 예산을 더 늘리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학교장과 교사들의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 "학교 교육의 뿌리는 바로 초등학교. 이 초등학교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를 흔드는 주범은 누구일까요? 7사 7생으로 나눠 다루어봅니다. 

앞으로 3월초까지 2~3일에 한번씩 생각해 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2사2생 '아이들 돈으로 내는 교장단 회비'는 26일에 올라갑니다.
 
<초등교육 7사 7생 시리즈 차례>
1사=교사·학생은 배달부, 1생=소년신문 가정 구독
2사=아이들 돈으로 내는 교장단 회비, 2생=교원단체 회비는 스스로 힘으로
3사=공포의 폐휴지 수합, 3생=가정 분리수거에 맡기자
4사=3월 1일자 담임발령, 4생=담임발령은 방학 전에
5사=학교 안 청소년 단체, 5생=지역 청소년 단체
6사=있으나 마나 어린이회, 6생=어린이회를 학생자치기구로
7사=관리자의 분리불안증 7생=교육소신에 바탕한 관리자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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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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