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동결 핵 시설을 재가동하기 위해 봉인과 감시카메라를 제거하는 데 전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을 때, 일본의 지지(時事)통신은 주목할 만한 보도를 했다.
이 통신은 일본 방위청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이시바 시게루 방위청 장관이 지난 12월 중순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미군이 이지스함과 패트리어트 최신 개량형인 PAC-3을 이용해 북한의 노동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다는 설명을 전해 들었다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즈>는 26일자 신문에서 미국이 북한의 핵, 미사일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일본에 미사일 방어 약속을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보도는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은 물론이고, 향후 북한에 대한 미국의 대응 및 동북아 전체에 미치는 파장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핵, 미사일 문제에 대한 협상을 거부하고, 이를 MD(미사일 방위체제) 구축 및 동맹국의 참여를 이끌어내는데 호재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핵, 미사일 문제를 대단히 심각한 위협이라고 떠들면서도 적극적인 해결을 모색하지 않는 반면에, 북한위협론을 신속한 MD 구축에 활용하고 북한 미사일 전력을 무력화시키려는 이른바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또한 부시 행정부가 출범직후부터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인정한 “대북 협상의 유망한 요소”를 걷어차고 MD 구축 등 군비증강을 합리화하는데 북한위협론을 활용해온 못된 근성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왜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협상하려 하지 않는가?”라는 세간의 의문을 풀 수 있는 중요한 단초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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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워싱턴에서는 무슨 일이?
미국이 북한의 핵, 미사일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일본에 안도감을 주기 위해 MD 망을 일본에 씌어주기로 한 것은 12월 16일 워싱턴에서 열린 ‘2+2 미일안보협의회'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가와구치 요리코 일본 외상, 이시바 시게루 방위청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 회의에서, 미국은 대북 압박 및 제재 강화에 대한 일본의 지지 확보, 북한이 비핵무기인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에도 핵보복을 명시하는 것에 대한 일본과의 합의 도출, MD 참여 문제에 대한 일본의 호의적 고려 등의 성과를 얻어냈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는 9월 17일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 방문을 비롯한 일본의 독자적인 대북외교노선이 철회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도 해석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고민은 일본이 미국의 대북강경책에 편승할 경우, 일본 안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한반도 전쟁위기를 비롯해 북한의 핵, 미사일 위험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일본의 온건파들은 “MD보다는 협상이 북한의 위협을 대처하는데 훨씬 효과적이고 저렴하다”며, 북핵 파문에도 불구하고 북-일수교교섭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일본 내 강온파간의 논쟁이 점차 부시 행정부의 편에 서는 것으로 기울면서, MD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게 된 것이다. 즉, 부시 행정부는 일본에게 MD라는 '당근'을 제시하면서, 미국의 '우산' 안으로 복귀하라고 유혹한 것이고, 일본은 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미국은 "일본의 안보는 우리가 책임질 테니 걱정 말고 우리를 따라 오라"는 설득반 협박반으로 일본을 몰아붙인 셈이다.
이러한 미-일간의 물밑 움직임은 향후 한반도의 위기를 생각할 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본이 미국을 불편하게 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북일정상회담을 추진했던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이 끝난 다음, 북한에 대한 본격적인 압박을 가할 것이고, 이에 따라 한반도 전쟁위기가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일본은 반세기전의 전쟁과는 달리 일본 경제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고, 일본 영토가 북한의 노동미사일 사정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적지 않은 피해도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이러한 일본의 우려를 해소시키기 위해 미사일방어망을 씌어주기로 약속하고 이를 일본이 수용한다면, 일본이 미국의 대북 군사 행동을 반대할 이유는 그만큼 줄어줄 수 있다. MD 구축에 박차를 가해오고 있는 미국은 현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요격은 힘들더라도, 북한의 중단거리 미사일인 '노동'과 '스커드' 요격에는 일정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에 씌우겠다는 MD는 이지스함과 PAC-3의 합동작전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미국의 MD 전략은 미사일 방어는 '2차적인' 수단으로 두고, 선제공격을 통해 미사일 시설을 발사 전에 파괴시키는 것을 '최우선'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북한에 적용할 경우 북한의 미사일은 상당 부분 무력화될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것이다.
미국, 최첨단 MD용 지상레이더 한국 배치
미국의 발빠른 MD 구축이 미-일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대이라크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걸프지역에 스커드 미사일 요격시스템을 증강하면서 한국에도 이미 MD용 최첨단 지상레이더를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는 27일자 신문에서 미군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독일과 한국에 '합동 전술 지상기지(Joint Tactical Ground Station)'라고 불리는 이동식 조기경보 레이더를 배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내용은 미국의 미사일방어국(MDA) 사이트를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이 레이더는 첩보위성에서 보내온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해 상대방의 미사일 발사 위치와 시점을 파악해 PAC-3와 전투사령부에 보내는 임무를 수행하는 이동식 시스템이다.
이 레이더가 위력적인 것은 정보 처리 시간을 최소한으로 단축하면서 요격시스템과 전투사령부 등에 신속히 정보를 보냄으로써, 상대방의 미사일 시설을 파괴하고 미사일 요격 시간을 확보하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앞서 언급한 '선제공격'과 '미사일 방어'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을 골자로 한 미국의 MD 전략의 핵심 시스템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이 레이더의 한국 배치를 주목해야할 이유는 미국이 PAC-3 생산량을 늘리면서 중동과 한국, 일본 등에 배치하는 것을 서두를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미 국방부는 지난 12월초 당초 2003년 79기, 2004년 100기 구매 계획을 바꿔 각각 100기와 108기를 구매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현재 주한미군은 걸프전 때 사용된 것보다 성능이 향상된 PAC-2를 한국내 오산 기지 등에 배치해 둔 상태이고, 2003년부터 PAC-3 배치 계획도 갖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PAC-3 증산 및 조기 배치 계획은 향후 한반도의 정세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북한 미사일의 무력화를 MD 구상의 초기 목표로 삼아온 미국이 최첨단 지상 레이더에 이어 PAC-3를 한반도에 배치한다는 것은 '구상'이 '실행' 단계에 접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94년 위기 때와도 흡사한 측면을 갖고 있다. 94년 3월 강행된 미국의 패트리어트 한국 내 반입으로 당시 한반도의 위기는 더욱 고조된 바 있다.
미국의 한반도 MD 배치 계획에 단호히 맞서야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본격적으로 MD를 배치한다는 것은 군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금과 같이 북미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 미국이 북한이 갖고 있는 가장 유력한 억제력을 상당 부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군사력을 배치한다는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94년이나 98년 말처럼 사실상의 전시태세로 돌입하고, 전방배치 군사력의 강화, 미사일 발사 준비, 미국의 북폭 억제수단으로 핵시설 전면 가동 등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북한의 전시태세 강화는 미국의 대북한 전쟁 계획인 '작전계획 5027'의 발동으로 이어질 위험성을 주게 된다. 한미연합사의 대북 전쟁 계획인 작계 5027은 98년 개정을 통해 북한의 임박한 위협이 있을 경우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시킨 바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 역시 미일 '신가이드라인'과 주변사태법 등을 통해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일본내 기지 사용은 물론, 병참 지원과 일본이 위협받는다고 판단될 경우 자위대의 파병까지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놓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의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될 위험이 있다. 이는 94년 위기 때와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하나의 가정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긴장 상황이 계속 고조되고, 미국이 MD를 비롯한 군사력 강화를 강행할 경우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나기 전에 이를 막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보유한 미국이 MD를 배치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덜고 선제공격을 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를 확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시 행정부 스스로도 MD의 필요성을 말할 때, 군사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이러한 부시는 선제공격을 국가안보전략으로 공식 채택한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의 한반도 MD 배치 계획을 막아야 한다.
80년대 미국이 유럽에 퍼싱-2 핵미사일을 배치하려는 계획에 맞서, 전직 군사령관을 비롯한 유럽의 시민들 수십만명이 모여 배치 반대 투쟁을 벌이면서, 유럽 냉전 해체에 큰 기여를 한 바 있다. 우리 역시 PAC-3 등 MD 배치 계획에 맞서 이를 저지할 때, 한반도의 위기를 넘어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을 허무는 중요한 진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