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과 북한의 핵개발 시도로 조성되고 있는 한반도 위기를 막고자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당선자가 팔을 걷고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당선자는 북한과 미국에게 일종의 양보안을 제시하고 '대결국면'을 '협상국면'으로 반전시키기 위한 중재 방안을 적극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에서는 중재안을 바탕으로 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을 설득하기 위해 특사 외교도 준비하고 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고 있는 중재안의 핵심은,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먼저 포기할 경우 미국이 '조약체결'이 아닌 '문서'를 통해 북한의 체제 및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을 남한 정부가 적극 중재한다는 것이다. 즉, 북한의 '선(先) 핵포기 선언'과 미국의 '후(後) 체제안전보장'을 맞바꿈으로써 현재의 위기 국면을 타결하자는 것으로써, 그 출발점으로 북한의 핵포기 선언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한 우선적으로 북한의 핵포기 선언 대상으로 전체 핵 프로그램보다는 핵위기의 시발점이 되었던, 고농축 우라늄을 통한 핵개발 계획만으로 한정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문제의 원인부터 해결함으로써 협상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북미 양측의 부분적인 양보를 통해 서로의 우려 사안을 완화시킴으로써, 포괄적인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그러나 알려진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보면, 여러 가지 미흡한 점도 발견할 수 있어 수정/보완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ADTOP7@
미국, 문서 형태의 불가침 제안 받아들일까?

첫 번째 문제는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시설에 대한 핵개발 포기 선언을 이끌어내기 위해 전제조건으로 필요한 '문서 형태의 대북체제안전 보장'을 미국이 해줄 의사가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즉, 그것이 사후에 이뤄지더라도 북한으로서는 미국으로부터 '문서 형태의 대북체제안전 보장'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선 핵포기 선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중재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미국측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가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부시 행정부의 태도를 볼 때, 미국이 남한의 중재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낙관하기는 힘들다. 대북한 불가침 문제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일관된 태도는 부시 대통령과 파월 국무장관이 이미 여러 차례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밝혔기 때문에, 불가침 조약 체결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약보다는 낮은 단계이지만 그것이 '말'이 아닌 '대통령 친서'와 같은 문서 형태를 미국이 북한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시 행정부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높다고 할 수 없다.

두 번째 문제는 미국이 문서 형태로 체제안전보장 서한을 북한에 보내더라도, 북한이 이에 만족할 것인가의 여부이다. 북한은 이미 제네바 합의 이행에 대한 클린턴 대통령의 보증 서한을 받은 바 있지만,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강한 불만을 갖고 있어, 법적 구속력이 없는 '서한'으로 만족할 가능성 역시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스스로도 이것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될 수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고, 남한 정부는 이 점을 집중적으로 설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ADTOP8@
세 번째 문제는 정부가 북한의 핵포기 대상으로 삼고 있는 고농축 우라늄 이용 핵개발의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특사 파견 때 증거를 제시하자 북한이 이를 시인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북한은 미국 특사가 증거 제시도 없이 자신을 몰아 붙이자 북한도 핵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말해주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파문이 일어난지 3개월이 지나도록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확인이 안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에게 고농축 우라늄 이용 핵개발을 포기할 것을 선언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타당성이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네 번째 문제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이용 핵개발 포기가 '선언' 수준으로 나와야 할지, 아니면 미국이 요구하는 것처럼 "신속하고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인지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북한은 전자를, 미국은 후자를 고집하게 될 것이다. 특히 미국은 북한이 '핵포기 선언'을 하더라도 이를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남한 정부가 요구하는 '문서 형태의 대북체제안전보장'을 해줄 수 없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부의 중재안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한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다섯 번째 문제는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문제가 관련해 양보 조치를 취하더라도, 재가동을 준비해온 영변 핵시설의 처리가 남는다는 것이다. 현재, 그리고 향후에도 더욱 큰 문제는 고농축 우라늄 시설보다는 영변 핵시설의 재가동 여부에 있다.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해 핵개발을 시도하더라도 2년 안팎의 시간이 필요한 반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할 경우 6개월 이내에 5개 안팎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기 때문에 사안의 시급성과 심각성은 고농축 우라늄 시설보다는 영변 핵시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정부의 중재안에는 이 부분에 대한 대응 방안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핵포기 대상으로 영변 핵시설도 포함시킬 예정인지, 아니면 문제의 발단이 되었던 고농축 우라늄 문제에 일단 한정하고, 영변 핵시설 문제는 추후에 해결하겠다는 것인지가 불명확한 것이다. 여러 가지 언론보도를 종합할 때, 정부는 전자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중재안의 실효성을 더욱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 중재안, 어떻게 수정/보완할 것인가?

사실 정부의 이와 같은 중재안은, 그 실효성의 여부를 떠나 시점에 대한 아쉬움을 갖게 한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동결 해제를 선언하기 전, 즉 작년 11월경에 이와 같은 중재안을 만들어 북한과 미국 설득에 나섰다면, 그 효과가 더욱 컸을 것이란 안타까움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뒤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천명하면서 해결안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환영할 일이고, 또 마땅히 지지·협력해야할 일이다. 동시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수정/보완해 대결국면을 협상국면으로 반전시키는데 효과가 발휘되도록 국민적인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수정/보완 방향은 다음과 같다.

먼저 첫 시발점으로 삼고 있는 북한의 핵포기 선언 대상을 고농축 우라늄에 한정하지 말고, '포괄적인' 수준에서 나오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최대 현안이 되고 있는 것은 고농축 우라늄 부분보다는 영변 핵시설이다. 또한 고농축 우라늄 관련 의혹에 대한 북미간의 입장 차이가 워낙 커서, 북한이 공개적으로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개발 계획을 포기한다"고 선언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가 북한에게 요구하고 설득해야할 핵포기 선언 내용은 "우리(북한)는 오늘날의 엄중한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우리의 생존권과 자주권을 보장할 담보를 제공할 용의가 있다면, 먼저 '모든' 형태의 핵개발 계획을 포기할 의사가 있음을 천명한다"와 같은 내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북미 양측은 물론 국제사회에 일종의 문제 해결의 지침서(road map)를 제시하는 것이다. 즉, 단기적으로 북핵 문제를 푸는 과정이 북미간의 적대관계를 해소해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 및 동북아에 새로운 안보질서 창출까지 지향할 수 있는 '마스터 플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스터 플랜의 과정은 다음과 같이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핵포기 선언시 '문서 형태의 대북체제안전보장 제공 의사' 미국에 확인 → 북한의 포괄적인 핵포기 선언 → 미국의 대북 체제안전보장 문서 제공 → 영변 핵시설에 대한 IAEA 사찰단의 복귀 및 봉인·감시카메라 재설치 → 북미 협상 시작 및 고농축 우라늄 의혹에 대한 북한의 IAEA와의 협의 개시, 북일국교수립 교섭 재개 → KEDO의 중유 제공 재개 및 한미일의 대북 인도적 지원 확대 → KEDO 이사국들(한,미,일,EU)과 북한과의 제네바 합의 이행 개선안 협상, 중국과 러시아 옵저버 자격으로 참가 → 북핵문제가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 경우, 남북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참여하는 '동북아 비핵지대화 기구' 창설 제안 → 핵문제외에 북미간의 다른 현안에 대한 협상 →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골자로 한 남-북-미 협상 본격 개시

물론 위와 같은 일련의 과정은 반드시 순차적으로 이뤄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번 북핵 문제와 같이 다시는 한반도에서 위기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북미간의 적대관계 종식 및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라는 커다란 밑그림을 그리면서 중재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 한가지 조심해야할 부분은, 중재가 실패할 경우 사태는 오히려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시간상의 촉박함을 감안하더라도, 남한에서 마련한 중재안을 북미 양측이 '반드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중재안 자체를 건실하게 만드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끝으로 중재안의 발표를 '공개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협상안까지는 밝히지 못하더라도, 국제사회가 공히 받아들일 수 있는 '포괄적인 해결안'을 발표함으로써 북미 양측에 "협상에 나서라"는 국제사회의 요구와 압력이 커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즉, '노무현 독트린'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그 내용과 방식에 있어서 섬세하고도 과감한 방안을 강구해 국내외에 천명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