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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은 극동 아시아에서의 군사외교 질서에 큰 변화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세계 군사외교 질서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는 메가톤급 대형 사건이다. 이 선언으로 인해 그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 몇 개국에 의한 핵무기 과독점 질서체제라 할 수 있는 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핵확산금지조약) 체제에 균열이 생겼으며 미국의 지도력에 큰 손상을 입게 되었다.
이러한 국제체제(international regime) 균열상태는 잘못 진행되면 그동안의 미국 중심의 세계군사질서 자체의 부분적 혹은 전면적 붕괴로 연결될 수 있을 정도로 파장이 큰 사안이다. 이 돌출상황이 조기에 수습되지 않으면 그 파장의 끝이 어느 곳으로 연결될지 모르는 초대형 사건이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은 그 자체로 북-미간, 북-일간, 남-북간 군사외교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이미 초래된 셈이며, 이어서 이란마저 핵무기 보유 선언을 하게 된다면 그 파장은 더욱 증폭된다. 그런 상황이 도래하게 되면 이란과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중동질서에도 큰 변화가 발생하며, 그동안 미국중심의 NPT체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어 미국에 불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부시행정부는 빨리 이러한 당황스러운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으나, 마땅한 대안이 없는 어려운 상황이다. 묘하게도 지금의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이 힘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만드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미국 중심의 지도력이 위협받는 변화를 결코 용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관행대로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부시 행정부의 극도로 강경한 군사·외교적 압박에 내몰렸던 북한과 이란이 죽기 살기 식으로 핵무장하거나 그런 가능성이 예측되는 상황은 미국으로서도 분명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그동안 타협의 여지없이 또 강온을 혼용하는 지혜로운 전략도 없이 오로지 강경 일변도의 '매질 외교'에만 나섰던 부시행정부가 쫓기던 북한으로부터 외교적으로 뺨을 한 대 두들겨 맞은 형국이 된 것이다. 그 한 대의 따귀가 부시행정부 외교에 깊은 상처를 안겨주며 거의 외교적 파산상태에 가까운 현상을 초래한 것이다.
부시행정부는 그동안 명백하고도 노골적으로 또 계속 반복해서 북한과 이란의 생존을 압박하고 몰아세워 왔다. 도망갈 퇴로를 전혀 열어주지 않은 채 스토커마냥 북한의 목줄을 계속 죄다가 쫓기던 상대로부터 그만 뺨을 맞고 만 것이다. 고양이에게 쫓기던 쥐가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격으로 북한의 군사력이 결코 미국에 대항할 수준은 아니지만, 생존의 벼랑끝으로 내몰리던 북한은 생존을 위협해온 부시행정부에 대해 핵무장으로 맞서게 된 것이다.
심대하게 손상된 미국의 지도력
북한의 핵무기 보유로 미국은 국익을 크게 손상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 책임을 부시행정부가 져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되어 있다. 부시행정부의 어려움은 우선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런 상황이기에 부시행정부가 북한을 공격하기 이전에 부시행정부 주변의 지지자와 동료, 우방들로부터 부시행정부가 먼저 정치적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역설적 상황이 동시에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사태를 조기에 원만하게 수습하지 못하면 기존의 잘 나가던 국제질서를 엉망으로 헝클어뜨리고 미국의 국익을 심대하게 손상시킨 이번 사태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이 형성되었기에 '의심만으로도 전쟁'을 하던 부시정부가 상대가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하여 보유했다고 공식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응징을 위한 십자군 전쟁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부시행정부의 조용한 외교 이면에는 이러한 역학구조가 숨어 있는 것이다).
부시행정부는 그동안 너무 초고강도의 압박수단을 행사해왔기 때문에 북한을 더 세게 압박할 남아 있는 수단이 없다. 그래서 라이스 국무장관도 이제 대응수단을 찾고 있다는 말만 하는 어려운 상황이며, 북한의 고립이 심화될 것이란 막연하고도 추상적인 경고만 하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대처할 실천적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서방세계로부터 사실상 고립되어 왔기 때문에 별도로 고립이 심화되어 고통을 받을 일은 별로 없다.
부시행정부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분명 미국의 이익이 보장되던 국제질서가 균열을 일으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 질러 다국적군을 만들 수도 어렵게 되어 있다. 북한응징론을 소리 높일수록 자신의 책임론 역시 커지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수수방관 하고만 있을 수도 없다. 그럴 경우 미국의 지도층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뚜렷한 대안이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인 것이다.
미국이 처한 어려움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은 이제 북한이 없는 '5자회담'을 계속 하자거나 자신은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한국정부나 일본정부 혹은 중국에 대해 조용히 요청하는 모습에서 그 실상을 잘 느낄 수 있다. 사태의 실제 당사자인 북한이 없는 5자회담은 신부가 없는 결혼식을 올리는 것처럼 실효성이 없는 일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신부없는 결혼식을 올리자는 것이 오늘날 부시행정부가 처한 어려움인 것이다.
미국은 지금 애써 신중하고도 조용한 대응을 하고 있다. 설령 북한이 핵무기 한두 개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큰 의미가 없다는 투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부시행정부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모든 상황이 갈수록 꼬여들고 어렵게 된다는 점이다. 이 논리 역시 뒤집어서 말하면, 북한의 핵보유가 확인된 상황에서도 그러하다면 미국이 추진했던 94년도 전쟁위기의 정당성이 사라지게 된다. 이런 것 역시 돌출상황에서 발생하는 부수적인 고민이 되는 것이다.
핵도미노 현상
지금의 상황이 조기에 수습되지 않으면 북한에 이어 이란이 핵무장 선언을 할 개연성이 높다. 어차피 이제까지 부시행정부가 이란을 몰아세우는 과정을 보면 섬뜩할 정도로 이라크 침공과정과 비슷하다는 분석이 이미 나와 있는 상태이다. 이라크사태는 북한과 이란에게 좋은 반면교사가 되고 학습효과를 안겨준 것이다.
이란 역시 미국의 공격이 반드시 있을 것이란 상황에서 가만히 앉아서 '제2의 이라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란까지 핵무장을 할 경우 사태는 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미국의 지도층은 이런 것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부시행정부의 고민도 깊은 것이다.
흔히들 북한의 핵무장은 남한과 일본의 핵무장으로 연결되어 중국이 원하는 것이 아닐 것이란 말이 유행해 왔다. 이것은 그럴 듯하지만 별로 근거가 없는 것으로 미국주변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노리고 의도적으로 유포했을 개연성이 높은 왜곡된 논리이다. 이런 가상적 도미노 현상이 나타나면 최소한 극동지역에서 미국의 지도력이 그대로 붕괴되는 형국이 되기 때문에 미국이 허용할리 없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영향력하에 있기 때문에 미국이 허용하거나 방치하지 않는 이상 핵무장할 수가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가상적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하여 중국이 나서서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리라는 분석은 타당성이 없다.
중국의 경우 한반도 비핵화원칙을 일관성 있게 지지해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북한핵보유에 대해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비핵화를 강제하거나 강요할 입장도 아니고 또 원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의 경우 비핵화가 중국의 외교적 원칙과 국가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일이지만 불가피할 경우 북한이 붕괴되어 적대적 정권이 들어서는 것보다는 차선책으로 북한이 몇 개의 핵을 보유하더라도 잠재적 위협국인 미국의 공세에 대한 방파제 역할을 해준다면 그것이 차라리 더 좋은 그러한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진정 우려하는 핵도미노 현상은 북핵이 한국과 일본으로 확산되는 것이 아니고, 북한에 이어 이란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그것이 부시강성외교의 후유증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부시행정부의 강성외교는 절묘한 시점에 무력화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이 상황이 방치되면 미국의 지도력은 끝없이 붕괴하게 되어 있다. 조지 모델스키(G. Modelski) 교수 등이 주장해온 미국의 쇠퇴가 그동안의 상대적 쇠퇴가 아닌 직접적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시발이 될 수도 있다. 부시행정부의 고민은 그래서 끝없이 흘러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강성인 부시행정부로서는 전쟁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셈인데, 이것은 지난번에 분석한 바와 같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잘못하면 미국이 가장 싫어하고 가장 피곤하게 여기는 지역에서 세 곳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해야 할 어렵고도 불확실한 상황에 빠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미국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늘 확실한 승리가 예상되는 게임만을 하다가 이제는 가장 불확실한 상황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다. 노일전쟁을 잘못 치른 제정러시아가 전쟁후유증으로 몰락한 것은 강대국의 흥망성쇠와 관련하여 큰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94년도 전쟁위기시와 현재의 현실이 다른 점 역시 부시행정부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97년도의 외환위기와 IMF체제 이후 외국자본이 급격하게 유입되어 주식, 금융, 토지 등 외국자본이 크게 들어와 있는 것도 전쟁이라는 옵션을 선택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다국적 기업측에서 엄청난 금액의 주식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재산을 먼지로 만들 일에 순순히 지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사회에서는 경제계의 발언권이 크기에 부시행정부도 이런 것은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 부시행정부는 큰 내상을 입고 행동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당황스러운 돌출상황에 대해 나름대로 해법을 모색해보겠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이러한 어려움에 처한 부시행정부에 대해 노무현 정부가 도와줄 기회가 왔다고 할 수 있다. 부시행정부가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처해 있고 또 어떠한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이 쟁점의 주요 당사자이기도 한 노무현 정부가 나서서 진정으로 의미있는 북-미간의 중재역할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위험해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사실 6자회담은 출발부터 북한이 싫어하는 형태의 회담형식이었고 또 미국 역시 성실하게 임하는 회의가 아니었기에 애초부터 큰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회의라고 할 수 있었다. 북한은 미국의 힘에 떠밀려 마지못해 나온 셈이며, 미국은 북한지도자를 '피그미'라 경멸하거나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등으로 폄하하며 결코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런 형국에서 북한이 다시 6자회담에 복귀한다고 해도 의미있는 합의를 보기까지에는 또 먼 길이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는 이제 형식적 6자 회담에 연연하기 보다는 북-미간의 직접적 중재를 통해 양측을 도우며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하도록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노무현정부의 퍼주기가 이번 사태를 발생시켰다고 하나 이것은 보수진영에서 만든 왜곡된 논리로 진실성이 없는 얘기이다. 이번 사태와 노무현 정부의 정책과는 하등 연관이 없는 것으로 북한과 미국사이에 발생한 일임을 유의해야 한다. 그동안의 진행과정이 그러하고 북한의 성명서에도 읽히는 내용이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왜곡된 보수논리에 위축되지 말고 의연하게 자기 몫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맺는말
이번 사태를 되돌아보면 부시행정부는 무서울 정도로 막강한 힘(power)은 있었으나 그에 부응하는 정당성(legetimacy)이 채워지지 못했고, 적대국에 대한 말살 의지(committment)는 분명하게 있었지만 그를 뒷받침할 지혜(wisdom)와 전략(strategy)은 없었다.
그동안 서방의 우방국과 유엔도 무시하는 일방적이고도 위압적인 지도력(leadership)은 보여주었으나 이것은 자신이 말한 전제와 폭정의 모습과 중첩되어 보였을 뿐 우방의 지지(support)를 이끌어낼 지도력은 될 수 없었다. 그 결과 북한의 고립보다는 오히려 부시행정부의 고립이 더 문제가 되는 국면이 발생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었기에 예기치 못한 일격을 북한으로부터 받았으며 이 한 대의 외교적 따귀에 부시행정부는 심한 내상을 입게 되었다. 당황스러운 돌출상황 발생으로 부시행정부 역시 이 상황을 빨리 수습하지 못하면 더 큰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되어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따라서 북-미간 전쟁위험이 커진 만큼 오히려 북-미간 타협의 여지도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상호간 이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는데서 상호이익이 있다는 것을 공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대한 사태가 발생했고 또 상황이 수시로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노무현정부는 상황을 잘 파악하여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가 떠내려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노오(No)라고 확실히 말하지 못하는 한국>(1992) <대북한 핵억제정책과 합리적 선택>(1995) 등을 씀. 이 글은 '쟁점과 비판'(http://www.apress.or.kr) 및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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