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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십수년을 끌어오며 수시로 한반도에 전쟁 위기를 몰고 왔던 북한 핵문제가 지난 2월 10일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으로 그 최극점에 도달했다.

북한의 핵무장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자주적인 결정이겠지만 미국 중심의 '팍스 아메리카나'란 국제 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것이기에 미국은 이런 것을 도전적 행위로 보며 용납하지 않는다. 그 응징은 전통적으로 군사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은 그동안의 미국 관행을 고려하면 공식적으로 북-미간 외교-군사적 충돌이 이루어진 것으로 사실상 전쟁 대결 국면인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북-미간을 중심으로 한 국제환경은 너무도 조용한 상황이다. 마치 ‘폭풍의 전야’나 ‘태풍의 눈’속처럼 너무 조용하다. 조용한 것도 보통 조용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조용하다는 사실이 미스테리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먼저 노파심에서 밝히자면, 필자의 분석은 이렇게 조용하니까 북한을 쳐서 시끄럽게 만들 것을 주문하는 글이 결코 아니다. 만에 하나 그러한 단세포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제해 주기 바란다. 지금 진행되는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해 한반도의 평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지혜를 도출하게 위한 것이다.

기존의 보수적 언론이나 지식 세계에서 제공해 주지 않았던 심층분석을 통해 보다 정확한 판단과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조용한 호수의 백조지만 물밑으로는 많은 물갈퀴질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외형적으로 조용한 한반도 상황을 관통하고 있는 물밑 흐름을 보다 깊이 이해하여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위험을 피해나가는 지혜를 얻는 데 일조하기 위해서이다.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없으면 94년도의 전쟁 위기와 같이 우리는 알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쟁이 진행될 수도 있는 것이다.

도대체 부시 행정부 내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왜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몰아세울 때와는 대조적으로 갑자기 조용해진 것일까? 무엇이 상황을 조용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 조용한 상황은 계속될 것인가? 아니면 조만간 허물어질 것인가? 북미간의 충돌없이 원만한 사태 수습은 가능할 것인가? 혹은 아닌가? 이제 6자 회담은 무용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유효한 방식으로 남아 있는 것일까? 과연 정부 관리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6자회담에 대해 낙관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에 대해서는 기존의 고답적이고 정형화된 인식으론 해결되지 않는다. 한반도 주변의 국제질서, 특히 미국의 상황을 보다 깊이 이해할 때에 그 해답이 나오는 것이다.

부시강경 외교와 북한의 벼랑끝 선택- 북한 핵무기 보유

그동안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이란을 벼랑 끝으로 몰아왔다. 이것은 너무나 노골적이고 명백하게 진행되었기에 별도의 논증이 불필요하다. 북한, 이란, 쿠바, 리비아, 시리아 등 미국의 영향력 밖에 있는 국가들에 대해 ‘불량국가’ ‘악의 축’ ‘폭정의 전초’ 등으로 표현하며 냉전적 입장의 연장선상에서 선제공격 가능성을 수시로 밝히며 그들의 생존을 압박해 왔던 것이다. 독자적으로 살아가려는 이들을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로 위협하며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다. 최근 리비아의 굴복은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미국이 구사한 힘의 외교의 승리인 것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보수적인 부시 행정부는 더 큰 자신감을 가지고 부담 없이 북한과 이란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갔고, 그 결과 북한은 드디어 핵무장을 했다는 대담한 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전쟁명분을 얻은 부시 행정부는 기존의 관행대로라면 충분히 북-미간 무력 충돌로 나아갈 법했지만, 기존의 ‘의심만으로도 전쟁’이라는 강압 기조와는 전혀 다르게 조용한 외교를 펴고 있는 것이다.

조용한 강대국 외교의 이면

왜 갑자기 조용한 외교를 펴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강경 일변도의 부시 외교를 조용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 정확하게 답을 하기 위해서는 북한 핵문제의 실체적 진실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기존 언론에 흔히 보도되어온 왜곡된 인식과 판단을 벗어날 수 없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과 판단이 불가능해진다(몇 단계로 나누어서 하나하나 밝혀나가도록 한다).

북핵문제의 진상 1- 그동안의 쟁점은 ‘핵무기 개발억제’가 아니라 ‘핵에너지 개발억제’였다

그동안 우리 언론을 통해 북한 핵문제는 핵무기 개발로 획일적으로 전달되었으나, 사실은 ‘핵무기 개발’이 아니고 ‘핵에너지 개발’문제였던 것이다. 물론 핵에너지 개발은 핵무기개발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에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핵에너지의 평화적 개발과 핵무기 개발은 서로 다른 면도 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이 향유하고 있는 (핵무기 개발이 없는) 평화적 핵에너지 이용의 단계도 충분히 국제사회에서 현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단계에 대한 이해를 무시한 채 ‘핵에너지 개발=핵무기 개발’이라는 너무나 단순도식화 된 이데올로기적 분석이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되면서 국민들의 인식은 왜곡되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의 여론을 독점하고 있는 주류 언론에 의한 병폐의 한 단면인 것이다.

북핵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단계 구분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하며 대단히 중요하다. 미국 정부는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외형상 북한의 ‘핵무장’ 억제란 명분을 내세우며 북한의 ‘핵에너지 개발’ 자체를 억제하려 한 것이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북한은 에너지의 극심한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한때 잘 나가던 산업화, 공업화가 70연대 이후로 어렵게 된 주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에너지 공급 부족이다. 석유 공급이 제한된 북한에서 전통적으로 공급이 넘쳐나던 전력 에너지가 부족하게 되면서 에너지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국가발전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인공위성으로 찍은 북한지역의 밤사진이 주변 나라와는 달리 컴컴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것이 사실 이제까지의 북핵문제의 핵심이자 출발점이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심하게 겪고 있는 북한 입장에서 자신들의 생존을 좌우하는 에너지 문제를 일거에 해소시킬 수 있는 것은 자체에서 대규모로 생산 가능한 핵에너지였을 것이다. 핵에너지의 개발은 무기용으로도 엄청난 파괴력을 과시하지만 평화적 용도인 에너지 공급 측면에서도 엄청난 결과를 발생시키는 일이다. 핵에너지는 기존의 일반 화석연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대규모의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수 세력은 미국의 영향력 밖에 놓여 있는 적성국가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개발하여 사용하는 것을 지극히 싫어한다. 이것이 전통적 입장인 것이다. 한 국가의 발전에 있어서 에너지의 역할은 엄청나다. 석유 등 에너지 공급의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에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거의 무한적으로 공급될 경우 북한의 발전에 큰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중남미의 가난한 국가에서 북한을 흉내내어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난 독자노선을 걸으려는 나라들이 다수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의 지도층, 특히 보수적인 지도층은 이러한 탈미(脫美) 도미노 효과를 지극히 우려하고 싫어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 이란 등 우라늄을 자체적으로 다량 생산 가능한 국가에서 핵에너지 개발에 탄력을 받을 경우 급속한 속도로 국가발전을 기할 수 있다. 그 결과가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을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사태의 도래를 지극히 꺼려하는 미국의 보수 지도층은 이들 비핵국가에서의 우라늄 개발 자체를 적극적으로 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외형적 명분이 바로 ‘핵무기 개발’억제 혹은 ‘대량 살상 무기 개발 억제’였던 것이다.

사실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과 무기로의 이용 사이에는 90% 이상의 기술이 공유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한다고 해도 그 잠재력을 인정 받아 일정 수준 군사적 지위가 향상되는 효과를 가지기도 한다. 평화적으로 이용하다가 자신들이 필요시 언제든 핵폭탄을 제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만 이용할 경우 실재 핵무기 보유를 하지 않았더라도 지하실에 핵무기가 있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이 일차적으로 북-미간의 충돌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숨어 있는 요소인 것이다.

북한과 이란이 일본과 같은 대우를 못 받는 것은 단순히 북한과 이란이 미국의 영향권 밖의 적성국이란 이유 외에도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체에서 다량의 천연 우라늄이 생산되기 때문에 개발 시초 단계에서 포기하도록 억제해 놓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욱 더 통제가 어려워지는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본은 원료를 외국에 의존하고 있기에 해상으로 둘러싸인 섬나라라는 특성으로 인해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해상봉쇄를 통해 핵개발에 제동을 걸 수 있다. 하지만 북한과 이란의 경우는 핵개발을 방치하게 되면 비록 평화적 용도라고 해도 외부에 의한 물리적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 우라늄 매장량이 약 2600만t, 가채량이 약 400만t으로 보도되고 있으며 평산과 박천에 정련 시설 2개소를 갖추고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핵사이클을 자체적으로 돌릴 수 있는 상당한 여건을 구비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현재 전지구적으로 우라늄 정광 소요량이 2002년도 기준 연간 6.5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에너지 자원임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렇게 자체 매장량이 많은 북한에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술과 시설을 기반으로 하여 자체적으로 엄청난 에너지가 개발될 수 있는 상황이기에 보수적인 미국 지도층에게는 자신들의 국제적 지위를 뒤흔드는 큰 위협으로 간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지도층은 미국의 영향권 밖에 놓여진 적대국에서 핵무기용이든 혹은 평화적 이용이든 핵에너지 개발에 대해서는 무차별적으로 차단 혹은 억제하려는 것이다. 다만 평화적 이용단계 조차도 막는다면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에 “핵무장” 혹은 “대량살상 무기억제”라는 명분을 이용하는 것이다.

초강대국이 관리하는 전략물자

이 쟁점과 관련하여 반드시 이해해야 되지만 국내에서 논의되지 않은 내용이 있다. 바로 '전략물자(strategic material)'라는 개념이다. 세계의 패권을 다투었던 제1차 및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강대국은 특정의 자원을 확보하느냐 여부에 따라 국가 군사력의 우열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그러한 전략물자의 확보와 상대 경쟁국의 소유 억제/통제에 특별히 노력해왔다.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 까지는 ‘고무(gum)’가 그러한 전략 자원으로 통제되었는데 당시에는 기동력의 우열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측면에서 기동력을 좌우하는 엔진의 주요부품 소재이자 타이어의 원료인 고무가 관심사였으나 고무생산의 독점이 깨지고 점차 보편화되면서 그 전략적 가치가 상실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서는 ‘석유’와 ‘우라늄’이 그러한 전략물자가 됐다. 세계의 패권국은 그러한 주요 전략 물자를 공식 혹은 비공식적으로 통제해 왔다. 냉전기간동안 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COCOM) 혹은 대중국수출조정위원회(CHINCOM), 또는 보다 최근에는 바세나르협정(통칭 신코콤)을 통해 주요 물자를 통제해 온 것 등이 그러한 모습이다.

이렇게 통제된 물자에는 제2차 대전을 겪으며 중요성이 더해진 항공기와 미사일의 합금 원료인 크롬·망간·티타늄 등과 제트엔진 제조에 필요한 코발트 등 항공·우주·원자력·전자 등 첨단기술 산업에 필요한 희소금속자원이 포함된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중요성이 적어진 것은 빠지고 또 새로운 품목이 들어오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2차 대전의 승패를 최종적으로 귀결지은 계기가 되었고 또 강대국의 지위를 뒤바뀌게 한 결정적 자원이라고 할 수 있는 우라늄은 패권국인 미국이 언제든 무력사용 의지를 표명하는 전략물자 확보/억제와 관련된 사안인 것이다.

이번의 북핵문제에는 이러한 전략물자 통제의 의미가 깊이 개입되어 있다. 북한이 미국과 함께 세계의 패권을 경쟁하는 입장은 전혀 아니지만 이러한 물질이 적성국인 북한과 이란에서 마음껏 개발되는 상황은 분명히 미국의 지도층이 용인하기 힘든 일인 것이다.

그동안 서방세계의 일원인 한국조차도 이러한 핵개발 가능성이나 잠재력 개발에 대한 의심만으로 큰 압박을 받기도 했음을 감안하면 얼마나 민감하게 통제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일부 과학자들이 1982년도에 실험용 원자로에서 플루토늄 0.7그램이라는 지극히 적은 소량을 가지고 과학자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실험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지금의 정부가 엄청난 외교적 압력을 받았던 것이다. 70년대에 캐나다와 프랑스로부터 중수형 원자력발전소가 도입되려고 하다가 미국의 압력으로 결국 중지된 것이라든지, 혹은 1977년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 이휘소(미국명 Benjamin W. Lee)박사가 당시 떠돌던 박정희 정권의 핵개발과 관련하여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은 것도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발생하는 의혹인 것이다.

전략물자, 그 중에서도 핵에너지 개발은 초강대국인 미국이 사활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것으로 대단히 민감하고 강력하게 대응하는 통제된 기술이다. 현재의 팍스 아메리카나를 변경시킬 수 있는 일이기에 미국은 그러한 변화를 초래할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일조차 결코 용인하지 않아 왔던 것이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은 '국가 에너지'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자국 내에서도 국가 에너지 정책(National Energy Policy)을 세워 특별한 관심을 갖고 관리하고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번의 이라크 침공도 이러한 미국의 국가 에너지 정책과 연관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외형상 명분으로 이라크의 '해방'과 '인권'을 내세우고 있지만, 보수 정부인 부시 정부가 이러한 진보적 개념에 충실하기 위해 피를 흘려가며 이라크를 침공했다고 보지 않는다. 사실상 '석유' 및 '중동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소위 ‘자원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는 것이다. 국가 에너지 확보 및 억제(상대방이 갖는 것 억제) 문제는 강대국의 지위와 관련되어 언제나 미국의 최우선적인 관심사였던 것이다.

미국의 보수 지도층은 적성국이 영원히 가난한 나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적성국이 가난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자연스럽게 내외적으로 미국이 대표하는 서방 체제의 우월감을 심어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며 현존하는 미국중심의 지도력을 지속시키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보수적 성향을 대변하는 부시 행정부이기에 적성국인 이란과 북한에서 자체적으로 무진장의 에너지를 자체 공급할 수 있는 상황을 허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80년대 후반부터 북한의 핵에너지 개발문제가 불거지는 단계부터 '평화적 이용단계'는 생략된 채, 핵무기 개발로 명분이 상승된 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북한이 자신이 갖고 있는 천연 우라늄으로 자신들의 기술에 의해 자신들의 영토에서 평화적으로 쓸 에너지개발을 전면적으로 막기에는 명분이 약했다. 때문에 94년도의 제네바 합의시 북한에 경수로 원자로를 건설해주는 조건에서 북한의 핵에너지 개발을 동결시켰던 것이다. 핵무기 개발과 관련이 없고 또 제한된 에너지 공급이었기에 미국도 그 정도는 허용 가능한 것으로 보고 타협했던 것이다(당시 북한이 멀지 않아 붕괴되리라는 미국 측의 성급한 예상도 합의에 일조를 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시 미국의 칼루치 대표도 합의를 해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당시 상대적으로 온건한 민주당 정부하였기에 또 쟁점이 (겉으로는 두곳의 특별사찰 문제와 관련된 군사외교적 문제였지만) 실재적으로는 핵에너지 개발문제였기에 다소간의 유연한 조치를 통해 양 자간의 원만한 국익성취가 가능했던 셈이다.하지만 보수적인 부시행정부 등장 이후로 제한된 에너지 허용조차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미국 보수층을 대변하여 부시행정부는 계속해 북한에 대한 압박정책을 폈던 것이며 그 결과 뜻밖의 북한핵무장 선언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부시 정부의 강성 ‘매질 외교’는 결국 이러한 북-미간 핵에너지 개발/억제라는 대립구도를 핵무장 충돌이라는 국면으로 전환시킨 셈이 되었다. 전자가 합의가능한 넌제로섬(non-zero sum) 게임의 대립 속성을 가졌음에 반해 후자는 제로섬(zero-sum) 식의 대립적 속성을 가졌기 때문에 대립속성의 변화로 합의가 가능한 공간이 날아가 버린 셈이다.

그리고 핵무장 충돌이라는 전혀 새로운 국면에 대한 대비가 없이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미국 입장에서도 국제적 지도력 훼손이라는 국익 손상 현상이 발생했으며 부시 행정부 차원에서도 무능외교의 오명을 뒤집어 쓰게 생긴 것이다. 결과적으로 큰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되었으며 한반도에서도 위기 상황이 증폭되는 역기능이 초래되었다. 현안과 관련된 당사자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을 초래하는 부시 행정부의 외교적 대실수가 발생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실책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태를 다시 원상회복 시켜야만 하는데 그 방법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의 조용한 외교는 바로 뜻하지 않게 발생한 국면변환과 그에 대한 대응수단의 미비로 나타나는 침묵 상황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다음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기자는 <노오(No)라고 확실히 말하지 못하는 한국>(1992) <대북한 핵억제정책과 합리적 선택>(1995)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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