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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명박 전 서울시장.
이명박 전 서울시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조선일보>가 눈길을 끈다. 1면 머릿기사 제목으로 "벌써…박근혜·이명박 전면전"을 뽑았다. 당 대표 경선결과를 뒤로 미룬 채 서로 '당 분열세력'이라고 삿대질한 것을 문제 삼은 게 이채롭다. 다른 신문들이 일제히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 성토 발언을 1면 머릿기사로 올린 것과도 대비된다.

<조선일보>의 문제의식은 뭘까? 해답은 '뉴스 초점'면에 녹아 있다. 이러다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갈 수 있다는 한나라당 일각의 우려를 전한 기사다. 여기에 곱씹어볼 만한 말들이 다수 녹아있다.

임인배 의원은 "반대파 의원들은 다음 공천이 없다는 말이 돌 만큼 양측 진영이 갈라져 상처가 깊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진영 의원은 "초선 의원들에게 줄서기를 강요하는 모습이 이번 전당대회에서 일부 보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부는 '분당'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분당의 전개과정에 대한 예측도 있다. 이명박 전 시장과 가까운 것으로 분류되는 심재철 의원은 "당장은 아니지만 갈등의 불씨가 잠복했다가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조선일보>가 전한 '말'들을 듣다보니 비로소 이해가 된다. 소장파 단일후보 권영세 의원의 탈락은 수수께끼였다. 그는 지역구 당원협의회장 절반 가까이가 투표에 참여해 옹립한 후보였다. '산수' 수준으로 풀면 권영세 의원의 득표율은 적어도 30~40%는 돼야 했다. 하지만 그의 득표율은 8%를 겨우 넘겼다.

'산수'로는 풀이가 불가능했다. 그러던 차에 <조선일보>가 '고등수학'의 공식을 던져줬다. '공천 압박'이다.

제18대 총선은 2008년 4월에 실시된다. 대선 직후다. 따라서 어느 대선 후보에 줄서기를 하느냐에 따라 공천 여부가 갈린다. 공교롭게도 당 대표 경선은 대선 후보의 대리전으로 전개됐다. 너무 일찍 줄서기를 강요하는 현실 앞에서 '옹립'의 의리와 책임을 다 하는 건 무모한 일이다.

차기 공천 여부, 대선 후보에 달렸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공천 압박을 느끼는 게 어디 소장파뿐이겠는가. 금배지의 달콤함을 맛본 의원이라면 그 누구도 초연해질 수 없다. 대선 승리는 당의 숙원이지만 공천은 '나의 숙제'다. 일단 살고 봐야 한다. 동아줄인지 썩은 줄인지를 가려 줄을 잡아야 한다.

당 대표 경선이 과열로 치달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내 대선후보들은 줄 감별에 나선 의원들에게 뭔가를 보여줘야 했다. 가장 좋은 소구점은 국민 지지도이지만 이건 유동적일 뿐 아니라 우열이 확연히 갈리지도 않았다. 역시 가장 안정적인 건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당권이었다.

이 게임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이겼다. 그럼 이명박 전 시장 측은 어떻게 해야 하나?

반전의 여지는 남아있다. 끝난 건 당 대표 경선이지 당 대선 후보 경선이 아니다. 일반 국민의 지지를 더 많이 얻는 자가 대선 후보가 된다. 정치 이벤트를 잇따라 연출해 국민 관심도와 지지도를 올리면 된다.

하지만 부담이 크다. 삐져나온 돌이 정을 맞는 법이다. 전복 위험을 무릅쓰고 과속을 하는 건 부담스럽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당 내에서 개혁 기치를 드는 것이다. 주류를 점한 박근혜 전 대표측의 허점을 파고들면서 개혁을 외치면 위험도는 줄어들고 이미지는 좋아진다. 경우에 따라 중립지대(예를 들어 권영세 의원 지지표)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조선일보>가 "당내 비주류로서 정체성이나 인사 문제 등 현안에 대해 강(재섭) 대표와 날카롭게 대립할 가능성"을 점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년 봄 전에 결정을 봐야 하는 이명박

친박-친이 진영의 당내 대립을 다룬 <조선일보> 12일자 1면 기사.
친박-친이 진영의 당내 대립을 다룬 <조선일보> 12일자 1면 기사.
하지만 이 또한 부담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당내 투쟁은 대회전이 아니라 지구전이다. 하지만 지구전을 펼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한나라당 당헌당규는 대선 180일 전까지 대선 후보를 확정하도록 돼 있다. 역산하면 늦어도 내년 4월경에는 대선후보 경선을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이명박 전 시장은 내년 봄이 되기 전에 결정을 봐야 한다. 일단 당내 경선에 참여하면 다른 길은 없다. 선거법은 경선 불복자나 패배자는 대선 후보로 등록할 수 없도록 해놓았다.

"갈등의 불씨가 잠복했다가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는 심재철 의원의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한꺼번에 터진다면 그 형태는 분당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조선일보>의 전망이다.

이렇게 보면 당 개혁 투쟁은 분당의 명분이 된다. 2002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가 이회창 총재의 독주를 맹비난하면서 뛰쳐나간 적이 있다.

이명박 전 시장 입장에선 전당대회 결과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니, 말을 바꾸자. 최악은 아니다. 어설픈 자리 균점보다는 싹쓸이 결과가 자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싹쓸이는 독주를, 독주는 저항을, 저항은 이탈을 낳을 수 있다.

<조선일보>는 "강(재섭) 대표 등의 노력이 어느 정도 현실화되느냐에 따라 한나라당의 운명도 달라질 전망"이라고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대들기로 작심한 사람에겐 티끌도 들보가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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