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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지고 비는 억수로 퍼부었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었다. 일기예보에서 소나기가 예견되긴 했었지만 한참 그렇게 퍼부을 때는 비가 한 100년 정도는 계속 내릴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한 시간 정도 시간이 흐르자 거짓말처럼 비는 그쳤고 하늘은 회색빛 구름만을 머금은 채 낮게 내려 앉아 있기만 했다. 그렇게 밤이 되었다. 늦은 밤 산골에는 정적만이 감돌고 달빛 한 점 없는 검은 밤에 벌레 우는 소리만 이따금씩 들려올 뿐이다.

오히려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명징하게 다가오고 다른 어떤 존재의 현실성이 무감각해지는 시간이다.

사람의 평생 숙제, '먹고 사는 문제'

귀농을 결정하기 전에 가장 망설였던 부분은 부인할 수 없이 먹고 사는 문제였다. 서울에서의 생활비와 시골에서의 생활비가 마땅히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고 확신을 했던 것 또한 사실이지만 미리 계산할 수 없었던 얼마간의 생활비조차 어떻게 벌어들여야 할 것인지는 살아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계량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단지 막연하게 한 백만 원 정도면 되지 않을까 추측했고 또 귀농선배들의 대체적인 증언들도 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진 않았었다.

서울에서나 시골에서나 먹고 사는 문제만큼은 사람이라면 끝내 헤어나지 못할 평생의 숙제이다. 생각해 보면 결국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식이 귀농이었다.

너무 잘 먹고 잘 살아도 문제가 많은 법이다. 많은 질병을 동반하거나 많은 이해관계를 빚어내거나. 적당히 먹고 살아야 건강하다는 것은 한참을 인구에 회자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세간에 떠돌고 있는 '웰빙'이란 말이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과거로부터 인간의 역사에 지나치게 잘 먹어서 탈이 난 경우는 제정 로마시대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먹고 사는 문제만큼 진부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또 있을까 싶다.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여러 형태들이 존재하겠지만 귀농이라는 삶의 방식도 결국은 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인 것이다. 다만 '잘'에 대한 철학적 접근 방식이 차이라면 차이인 것일 뿐.

'대형면허증' 하나가 귀농의 '빽'이 되다

▲ 볕이 좋은 날의 일상.
ⓒ 김지영
무언가 믿을 만한 '빽'이 필요했다. 농사라곤 대학 2학년 농활(농민학생연대활동) 경험이 전부인 내가 당장에 시골 가서 농사지어 밥 먹고 산다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기엔 적어도 많은 시행착오를 동반한 세월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귀농지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도시가 있다는 것에 착안하여 일단 대형면허를 땄다. 정 안 되면 운전을 할 생각이었다. 이것저것 빼고 더해도 월 100만원은 수중에 잡힐 만한 직종이라는 판단이었다. 차로 20분을 달려 다시 회사에 취직한다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끔찍한 짓이었다. 다시 영혼을 팔아 고작 먹을 것을 사는 임금노예의 선봉에 선다는 것이란.

귀농을 결심하고 귀농을 하기까지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 시간 동안 내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하등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무모함은 순전히 그 면허증 때문이었다. 경력도 없는 대형운전면허증 하나가 귀농에 대한 초심을 잃지 않게 해준 단단한 '빽'이 되 주었던 것이다. 35만원의 비용치고는 심리적 효용성이 썩 괜찮았던 셈이다.

지금은 내 조그만 지갑 속에 고이 모셔져 있는 면허증이지만 여전히 귀농을 했다는 확신이 서기까지는 그런 역할들을 충분히 해줄 것으로 믿는다.

하여간, 시골생활을 하고 보니 선배 귀농인들의 셈법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 다만 가족 수나 아이의 교육에 대한 방식 혹은 문화생활에 대한 활동의 범위 등이 약간씩의 오차를 있게 하는 요인들이긴 했다.

시골생활, 19만원이란 순이익이 발생하다

우리 가족은 세 식구다. 나(41), 아내(38), 아들(9). 지난 두 달 동안의 총 지출을 월로 평균해 본 결과는 대략 다음과 같다. 부식비 20만원, 통신비(핸드폰 2대) 5만원, 문화비(영화 1편과 서적 구입비) 7만원, 인터넷 3만원, 서울에서 묻어온 금융비용(이자 및 원금) 30만원, 차량유지비 20만원, 기타 잡비(기호품 비 포함) 20만원 총계는 105만원이다.

다음 우리 가족의 수입을 보자. 서울에서는 맞벌이였지만 시골에서는 나 혼자 외벌이를 하고 있다. 계란 배달(월, 목) 월 64만원, 마을공사 현장잡부(화, 수, 금, 토)는 연 평균 강수량과의 상관관계가 무척 깊으므로 월 12일에서 15일 정도를 할 수 있다. 평균 60만원 정도를 번다. 수입 총액은 124만원이다.

결론적으로 매달 순이익 19만원이 발생한다. 참고로 상기 지출과 수입내역은 향후 1년 안에 얼마든지 변동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지금 계획하고 있는 고정적인 밥벌이는 따로 준비 중이고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시점에 지금은 없는 교육비(대안학교 수업료 및 기숙사비)가 버젓이 지출항목으로 예정되어 있다(다만, 귀농을 현실적으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약간의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그야말로 참고할 만한 사항으로만 기억되기를 바란다).

하여간, 지출항목을 들여다 보면 차량유지비와 핸드폰 두 대의 통신비가 있는데 기간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는 도시에서는 자동차가 선택사항일 수 있지만 하루에 세 번 버스가 왕래하는 이 곳 시골에서는 필수사항이다. 게다가 유선전화도 들어오지 않는 이 곳 궁벽한 산골에 핸드폰 역시 어쩔 수 없는 필수사항이 되기도 한다.

수입 적지만 '삶의 질'은 훨씬 높아져

▲ 귀농 후 읽은 책들이다. 저녁시간은 언제나 여유가 있다.
ⓒ 김지영
특기할 만한 사항은 과일을 밥보다 좋아하는 우리 가족의 특성상 부식비 지출이 좀 과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기할 만한 사항은 명색이 생태마을에 사는 내가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통해 기타 잡비 중 기호품비의 비중이 상당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담배를 끊으면 여러모로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독하게 도시를 떠나 귀농을 할 줄은 알면서도 이놈의 담배는 어떻게 돼 주질 않으니.

하여간, 서울에서 맞벌이를 할 때와 비교해 보면 비교가 되지 않을 수준의 수입이지만 지출 역시 비교가 되지 않을 수준으로 보조를 맞추어 주니 남는 돈이야 크게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에 아내를 무척 걱정시켰던 '먹고는 살 수 있겠니?'에 대한 부분만큼은 완벽하게 해결해 준 셈이다.

당근(당연히), 수입과 지출의 변화는 앞으로의 행보에 따라서 얼마든지 진폭이 있을 것이다. 지금 준비 중인 유정란 사업의 성패여부나 상대적으로 소극적 지출을 감수하고 있는 문화비 지출에 대한 욕구를 얼마만큼 참아낼 수 있느냐에 따라 정착자금을 뺀 생활자금의 고정적인 계량이 가능하지 싶다.

분명한 건 이곳에서의 돈의 가치로는 엄청난 수입이 있었던 서울에서의 삶의 질보다 서울에서의 돈의 가치로는 한심스러울 정도의 수입을 벌고 있는 이곳에서의 삶의 질이 훨씬 높다는 점이다.

서울에서의 삶은 회사와 집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나마 업무가 끝나고 제대로 휴식을 취해야 할 집에서조차 머릿속은 회사 업무의 연장선을 벗어나지 못해 가족들에게 살갑게 다가서지 못하는 우울한 날들의 연속이었다면 말이다. 또 아내는 아내대로 회사일과 집안일, 아이 교육으로 인해 작은 체구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면 말이다.

귀농, 100번 생각해도 200번 잘한 일

나는 이 시골에서의 삶에 하루치 노동을 끝낸 뒤 사랑하는 가족들과 보내는 살가운 시간이나 청명한 숲 속 공기, 아니면 보고 싶어 사두긴 했지만 읽을 시간과 여유가 없어 미뤄 놓았던 책 등을 채워 넣을 수 있다. 자유롭게...

아내는 아내대로 복잡하고 고단한 서울살이를 하면서 언제나 꿈만 꾸었던 늦은 아침잠을 자거나, 아이와 행복하게 놀아주거나, 정성스레 밥을 짓거나, 숲길을 거닐며 노래를 부른다. 또 아니면 평일에는 부지런히 잠을 보충하느라 꿈도 꾸지 못했던 밤새워 책을 읽는 일을 하기도 한다.

이제 갓 두 달을 넘긴 초보 귀농자의 입장에서 함부로 뱉을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직까지 나는 우리 가족과 함께 시골로 내려온 것에 대해서 100번 생각해도 200번 잘한 선택이었다는 데 300번도 더 동의한다.

여기 시골에서의 나와 내 가족들이 가지고 싶은 '자발적 가난'에 대한 삶을 이야기해주는 이해인 님의 시를 옮겨본다.

가난한 새의 기도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주십시오.

가진 것 없어도
맑고 밝은 웃음으로
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게 해주십시오.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하늘을 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게 해주십시오.

오직 사랑 하나로
눈물 곡에도 기쁨이 넘쳐날
서원의 삶에
햇살로 넘쳐오는 축복

나의 선택은
가난을 위한 가난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가난이기에
모든 것을 버리고도
넉넉할 수 있음이니

내 삶의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의 평화여

날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내게
더 이상
무게가 주는 슬픔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이 선택일 수 있음을, 그래서 자유롭고 사랑할 수 있음을, 그래서 돈이 제일인 세상보다 사람이 제일인 세상이 지금도 가능할 수 있음을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좌충우돌 귀농일기>를 보신 분들 중에 쪽지를 보내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참 죄송한 부분이지만 제가 사는 마을의 인터넷 환경이 많이 안 좋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그 중 몇몇 분께는 정상적인 답장을 못해드렸습니다. 이 점 이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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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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