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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밤나무들 중에 일부는 벌써 완연한 가을 분위기를 내고 있다.
ⓒ 김지영
서울 살 때 밥이 익는지는 알았어도 밤이 익는지는 모르고 살았었다. 쌀이며 배추며 고추 따위는 사시사철 마트에 가면 있는 것이었고, 온갖 과일들 역시 그저 돈만 있으면 계절을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기에 그게 언제 익고 저무는 것인지 알 필요도, 생각조차도 없었다.

서울 살 때 날이 바뀌는지는 알았어도 달이 바뀌는지는 모르고 살았었다. 지하철 타고 출근하고, 사무실에서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밤이 이슥해서야 다시 지하철 타고 퇴근을 해서 보면, 언제 한 번 고개 들어 밤하늘을 바라볼 여력조차 없었다.

설사 문득 고개 들어 밤하늘을 바라본들 벌건 대낮 같은 도시의 밤이 휘영청 밝은 달을 비쳐줄리 만무한 일이기도 하다. 별은 말해 무엇하랴.

▲ 높고 깊고 푸른 하늘
ⓒ 김지영
서울 살 때 계절이 달라지고 있음을 짐작케 해준 것은 거리를 지나는 여인들의 옷차림이었다. 회색 빛 하늘과 회색 빛 건물들과 회색 빛 인상의 사람들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던 여인들의 찬란한 옷매무새는 도저히 바라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극단의 유혹이었다. 그 여인들은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분명 목청껏 외치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아 주세요!’ 비로소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름에 시골로 내려왔으니 이제 겨우 계절을 하나 넘기는 셈이다. 찬란한 여인네들도 없는 흑백의 시골에서 어떻게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았는지 질문해 달라. 그럼, 질문한 셈치고 답한다.

가을은 분명 왔다. 그것도 명백하게. 창을 열면 지천으로 열린 밤이 익어가고 있고, 마을을 지나 면으로 가는 편도 일차선 길 좌우로 나락이 익어가고 있고, 여름을 넘긴 달이 다시 동그랗게 차 오르고 있다. 저녁별은 여전히 총총하다.

▲ 나락이 무르익는 만큼 가을도 무르익어가고 있다.
ⓒ 김지영
골을 타고 오르는 저녁 바람이 한기를 느끼게 하고, 김장배추 농사준비는 진작부터 시작되었고, 더군다나 조생 밤에 대한 농협 수매는 이미 시작되었다. 비로소 나는 이곳에 없는 휘황한 여인네들의 자극적인 옷차림이 아니어도 자연 그대로의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 살 때 느꼈던 계절의 변화와 시골 내려와 살면서 느끼는 계절의 변화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서울에서는 가질 수 없었던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보고 ‘그렇구나, 계절이 바뀌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면 시골에서는 ‘아~ 가을이구나’하고 감탄할 수 있는 감동이 있다는 것이다.

인공적인 것이 가미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 모습들을 보며 절로 탄성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자연(自然)이란 말이 주는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자연(自然)이란 말 그대로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떤 위선도, 욕심도, 타성도 혹은, 산업시대를 관통해온 불가해한 인간의 개발논리도 없이 스스로 그렇게 되는 모습들 말이다. 아침이면 밝아지고, 밤이 되면 깜깜해지고, 더우면 덥고, 추우면 추운 대로, 달이 기울면 기우는 대로, 달이 차면 차는 대로, 곡식이 익으면 익는 대로 그런 대로 말이다.

왜 도시의 밤은 대낮처럼 밝아 불면의 밤이어야 하는지, 철에 맞는 과일이 사라져야 하는지,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보지 못하는지, 기껏 여인네들의 옷차림으로 계절의 변화를 간파해야 하는지 시골에 내려와서야 조금씩 이치를 깨닫고 있는 것이다.

▲ 아내와 아이의 새끼 손톱에 고이 물들 봉숭아 꽃
ⓒ 김지영
처음 시골에 내려왔던 여름을 보내면서 우리는 시골생활에 반드시 필수적인 세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파리채와 장화와 손전등이었다. 나는 세상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벌레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각종 나방에서 곤충들까지 도저히 이름을 셀 수 없는 벌레들이 노란 전등불을 까마득하게 감싸는 모습과 함께 파리채는 파리만 잡을 수 있는 무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시골에서의 밤은 정직하게 어둡다. 가로등도, 간판도, 불 켜진 아파트 단지도 없는 이곳에서의 달 없는 밤은 그야말로 검은색 도화지 그대로이다. 손전등 없이는 코앞이 절벽인 느낌이다.

시골 생활이라는 것이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가능하고 보니 모든 것이 불편하고 어수선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이런 불편함들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케 해주는 좋은 질료로 작용하는 것을 알았다.

서울 살 때야 집에만 들어서서 문 하나만 열면 화장실로, 큰방으로, 작은 방으로, 거실로 다 통하게 되어 있어 철저하게 편리하고 간편하지만, 시골에서는 문을 열고 마당을 가로질러야 화장실로, 주방으로, 건넌방으로, 가게 되어 있어 아파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편하긴 하지만 말이다.

▲ 높은 하늘아래 익어가는 감
ⓒ 김지영
때로는 밥을 먹으러 오라고 부르러 와야 하고, 먹기 위해 비를 맞으며 뛰어 가야 하고, 밤 길 화장실이 무서운 아이를 위해 화장실 문밖에서 보초도 서야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가족들끼리의 대화의 양이나 질을 더 많고 풍부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물리적인 불편함들이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인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고 오히려 서로 돕고 도와주어야 하는, 좋은 관계가 필수적인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는 셈이다.

편리함을 쫓는 것이 당장에 손쉬운 문제해결은 될지언정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서로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그래서 스스로마저도 편리함에 도취된 나머지 사람들과의 관계의 필요성을 망각하고 있다는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귀농을 해서 우리 가족이 생각하는 서로에 대한 사랑의 농도는 생활의 불편함만큼과 비례해서 짙어져가고 있다. 도시에서 모든 편리하고 손쉬운 것들에 갇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람에 대한 질박한 소중함들을 복원시키면서 말이다.

▲ 보름을 하루 앞둔 달의 모습니다. 이런 날은 하늘마저 푸른 색으로 깊은 밤에도 앞 마을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밝게 비추인다.
ⓒ 김지영
배가 불룩해진 샛노란 저녁달이 가을이 무르익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오늘 같은 날 손전등은 필요 없지만 내게 소중한 가족들의 쌔근쌔근한 숨소리만은 반드시 필요한 풍경이다.

짧은 귀농 기간 덕에 가을을 맞고도 거둘 좋은 쌀과 과일은 없지만 가족들에 대한 사랑과 좋은 이웃의 소중함을 대신 거둘 수 있는 계절이 된 것이다. 누구의 노랫말처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듯이. 마치 가랑비에 젖어가는 모래밭 같은 마음으로 누구 하나 뺄 수 없는 사람의 소중함을 새겨가면서 말이다.

‘아~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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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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