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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 하면 김밥 다음으로 만국기가 떠오릅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만국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운동회 하면 김밥 다음으로 만국기가 떠오릅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만국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 김지영
초등학교 2학년 선웅이는(필자의 아들) 지난 6월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산청군 신안면 소재지에서도 차로 15분은 달려야 당도할 수 있는 조그마한 분교로 전학을 했다.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 운동회나 체육대회 같은 걸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했어도 주말이 아닌 이상은 갈 수 없는 일이고, 그럴 수 있다 해도 오라는 이야기도 들은 바가 없다.

서울에서 수천 명은 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좁은 운동장에 한꺼번에 모아 놓고 무얼 한다는 것이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한다 해도 그 복잡한 상황들을 어떻게 정리해낼지 워낙 난감하고 심오한 퍼즐풀기인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선웅이가 운동회를 한다고 알려준 날은 운동회 이틀 전이었다. 꼭 부모가 와야 한다는 말도 없었는데 나나 아내나 함께 사는 이웃들이나 함께 가잔 말도 안했는데 시골 운동회는 당연히 참석하는 것이라는 침묵의 동의가 있었다.

내가 오히려 선웅이보다도 더 운동회를 기다렸던 것은 도시에서 나고 자라기만 했던 내게 전설로만 들어왔던 ‘동네잔치 시골운동회’를 드디어 체험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선웅이도 내게 물었지만 나는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벌써 했었다.

"아빠. 내일 비온대?"

운동회가 '땅' 소리로 시작되었습니다. 개회사 및 폐회사를 '짧게 끝내주는 센스'를 보여주신 교장선생님입니다.
운동회가 '땅' 소리로 시작되었습니다. 개회사 및 폐회사를 '짧게 끝내주는 센스'를 보여주신 교장선생님입니다. ⓒ 김지영
하늘은 높고 푸르렀고 바람은 엷게 살랑 불어주었다. 지난 금요일이었다. 태극기는 바람에 펄럭였고 당근,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였다. 게다가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었고 그래서 시골분교 운동회는 시작될 수 있었다.

그날은 마침 계란 배달이 없는 날이었고 노가다는 하루 쉬어도 무방한 일이었기에 직장 상사 눈치 보며 월차 낼 필요 없이 정말 편한 마음으로 학교로 향할 수 있었다. 하루 일당을 과감히 포기할 만큼의 값진 시간일 것을 장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히 운동회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점심식사는 아침 일찍 아내가 준비했고 당연히 점심메뉴는 김밥이었다. 나 어릴 적 운동회 때는 김밥과 사이다와 삶은 달걀은 필수메뉴였고 밤이나 떡이나 과자는 선택메뉴였는데 삼십년 가까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메인메뉴의 첫 자리를 꿰차고 있는 김밥의 일관성에 잠시 숙연해졌다.

"여보. 짐 내려!"

옛날에는 달리기 등수에 들면 팔목에 등수가 찍힌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공책도 주고 그랬지요. 요즘 도장은 없지만 선물은 역시 공책이었습니다. 그러나저러나 아이들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보는 것만도 기분이 무척 좋아집니다.
옛날에는 달리기 등수에 들면 팔목에 등수가 찍힌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공책도 주고 그랬지요. 요즘 도장은 없지만 선물은 역시 공책이었습니다. 그러나저러나 아이들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보는 것만도 기분이 무척 좋아집니다. ⓒ 김지영
과연 운동장에서 건물 쪽 중앙을 중심으로 하얀 천막들이 펼쳐져 있었고 운동장 가장자리 덩치 큰 나무들 밑으로 벌써 아이들의 부모님 어린 동생들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좁은 시골동네에서 모여든 분들이라 모두들 아는 처지인 것은 자명한 일. 서울에서 갓 귀농한 나와 아내만 섬처럼 떠 있는 기분도 들었지만 학교 학습 발표회 날 이미 학부모들과 일면식이 있었던 아내는 부지런히 아는 사람들에게 아는 척을 하고 있었다. 아내의 그런 모습이 나를 육지에 상륙시켜주었다.

전교생 64명이다. 선웅이 반은 8명이고 이 8명이 2학년 전체 인원이다. 조촐한 학생 수와 비례하여 모여 있는 학부모와 가족들의 숫자도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학부형들조차 대부분 농사짓는 분들이어서 특별한(이혼이나 사별) 경우가 아니고는 부모들 거의가 다 참석한 듯했다.

교장선생님의 화약 총소리로 운동회는 시작되었다.

"땅!"

아이들이 했던 경기들 모음입니다. 저에게도 익숙한 경기들입니다.
아이들이 했던 경기들 모음입니다. 저에게도 익숙한 경기들입니다. ⓒ 김지영
아이들은 신나게 달리고 뛰고 던졌고 학부모들은 줄기차게 불려나가 아이들과 함께 경기를 하거나 어머니들만 따로 하거나 아버지들만 따로 경기를 하기도 했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별도의 특별한 경기를 했다.

나 어릴 적 운동회를 그대로 옮겨놓은 기마전이나 박 터뜨리기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던진 대형 주사위의 숫자만큼 어머니들이 매트에서 구르고 달리는 경기나 아버지들만했던 굴렁쇠 경기는 운동회 때는 처음 보는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이외에도 물동이 이고 달리기라든지 풍선 매달고 매트에서 굴러 터뜨린 후 다시 돌아오는 경기 등 안내장에 써 있었던 전체 27개 경기 중에서 온전히 학생들이 하는 경기는 17개였고 나머지는 모두가 부모님과 가족들과 함께 하루를 즐기는 경기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경기입니다. 사진속 여성은 큰 통속에 들어 앉아 선물을 낚여주시던 선생님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선물들 때문에 신났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경기입니다. 사진속 여성은 큰 통속에 들어 앉아 선물을 낚여주시던 선생님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선물들 때문에 신났습니다. ⓒ 김지영
그 중 내가 특별하게 보았던 경기는 ‘운수대통이야’라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한 경기였다. 운동장 한가운데 커다란 나무 상자가 놓이고 양 옆으로 놓인 의자에 한 쪽은 할아버지 한 쪽은 할머니가 앉아 장대로 만든 낚시대를 그 상자 안에 넣으면 할머니 낚시대에는 고무장갑이 낚이고, 세제비누도 낚이고, 후라이팬도 낚이는 한편으로 할아버지 낚시대에는 술도 담배도 낚이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저럴 수 있나 궁금하여 사진사를 빙자하여 상자에 접근하였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상자 안에는 상품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상품들을 성별에 맞게 낚이게 해주는 선생님이 한 분 앉아서 부지런히 낚여주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나야 뭐 이런 장면이 처음이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벌써 아들 때부터 지금까지 몇 십 년을 해온 가락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출발선에서 서두르지도 않고 무심히 의자로 와 낚시대를 드리우고는 얌전히 앉아서 천천히 하시는 말씀이 걸작이었다. 배꼽을 뺄 만큼.

"좋은 걸로 걸어줘."

학부모와 가족들도 시골학교 운동회는 함께 참여하고 함께 즐깁니다.
학부모와 가족들도 시골학교 운동회는 함께 참여하고 함께 즐깁니다. ⓒ 김지영
우리도 나름대로 준비한다고 했던 점심이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고는 다음부터는 나름대로 준비해서는 큰일이겠다는 생각을 해야 했다. 김밥과 과일과 음료수까지 갖출 것은 다 갖춘 셈인데 다른 가족들 점심식단에는 있는데 우리만 없었던 몇 가지 메뉴들이 있었다.

돼지머리고기와 새우젓, 삶은 밤과 삶은 콩과 삶은 계란, 소주나 막걸리, 백설기 떡이 지금 기억할 수 있는 우리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메뉴들이었다. 시골 분교운동회는 아예 모든 가족들이 며칠 전부터 벼르고 별러 나선 맛있고 재미있는 나들이였음이 분명했다.

내가 시골분교 운동회에 대한 첫 경험 때문에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랐던 것보다 더 학교와 관련된 모든 마을사람들은 이 날을 마치 날 받아놓은 잔칫날처럼 생각했을 것이라는 게 그날 운동회를 보고 난 후의 결론이다.

대부분 학부모들이 또한 이 학교 졸업생들임을 감안하면 어떤 사람에게 이 운동회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장구한 세월 동안 우리 시대 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쇠락해진 시골풍경에 그나마 큰 위안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소중한 장면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벌써 내년 운동회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운동회 픙경들입니다. 청군백군은 여전합니다. 숫자판도 과거의 그것과 많이 비슷했습니다.
운동회 픙경들입니다. 청군백군은 여전합니다. 숫자판도 과거의 그것과 많이 비슷했습니다. ⓒ 김지영
2010년쯤 후부터는 정부의 시골분교 폐교방침에 따라 시골분교 운동회가 박물관에 전시될 또 하나의 문화유산쯤으로 치부되겠지만, 교육과정의 운용이라는 행정적인 이유와 재정적인 비효율성을 재고한다는 자본의 논리가 분명하게 있겠지만.

행정과 자본의 잣대로는 도저히 계량되어지지 않는 운동회뿐 아니라 학교가 시골에서 차지하는 공간적 문화적인 가치와, 시골 사람들도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 권리를 포함하여 다시 한 번 재고 해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다.

"폐교, 안하면 안 되겠니?"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우리마을 홈페이지(www.educovillage.com)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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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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