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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음식 낫토. 건강식품으로도 명성이 높다
일본음식 낫토. 건강식품으로도 명성이 높다 ⓒ 유신준
음식은 빼놓을 수 없는 여행의 즐거움 중의 하나다.

어느 곳에 가든 현지 음식을 즐길줄 알아야 여행이 한층 즐거워진다. 여행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했다는 말을 듣게 되는데 우리는 가리는 음식이 별로 없어 어딜가든 불편하지 않았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말은 배부른 소리로 들릴 정도다.

배고파 봐라.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 어디서 나오나.

'현지음식에 잘 적응할 것', 자전거 여행의 첫 번째 수칙이다.

일본 전통음식 중에 낫토라는 음식이 있다. 낫토는 냄새나 맛이 독특해 외국사람이 다루기 힘든 음식으로 친다. 우리나라 청국장 비슷한 음식으로 콩을 날로 먹는 것이니 그럴 수밖에. 처음 대하기는 좀 거북할지 몰라도 차츰 익숙해지면 독특한 맛을 잊지 못한다. 일본에 몇 번 다녀본 적이 있는 아내도 처음에는 낫토를 싫어하다가 익숙해져서 이번 여행 내내 낫토를 즐길 정도가 됐다. 슈퍼에서 파는 것을 별도로 사서 참으로 먹을 정도로.

오늘 일정은 일단 다카야마씨가 있는 다누시마루까지 가는 것이다. 루트를 정하기 위해 자전거여행용 책 부터 사야했다. 한국에서 구입하려면 외국주문이라서 시일도 많이 걸리고 절차가 복잡해 이곳에서 구입하기로 계획했었는데 구입이 쉽지 않다. 몇 군데를 들렀지만 허탕이다. 전문서적이어서 작은 책방에서는 취급하지 않는 모양이다.

준비해온 비상지도로 다자이후(太宰府)→ 아마기(甘木)→ 다누시마루(田主丸)로 루트를 정하고 일단 출발했다. 중간에 행선지를 물어도 젊은 사람들은 자전거로 길가는 방법을 잘 모른다. 모두 자동차 전용도로만 타고 다닌 탓이다. 나중에는 그것도 경험이 되어 가급적 나이든 사람을 골라서 길을 묻게 되었다.

주저앉아 먹은 도시락

자전거 여행을 선택하는 순간 우아함과는 결별되어 버렸다
자전거 여행을 선택하는 순간 우아함과는 결별되어 버렸다 ⓒ 유신준
날씨는 여전히 비가 오다 그치기를 계속했다. 몇 번씩이나 비닐봉지 우의를 입었다가 벗었다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처음에는 제주도 비바리 같다는 둥 서로 우스꽝스런 모습을 쳐다보며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지만 하도 반복되는 일이라 그러려니 해졌다. 신경이 쓰이던 남들 눈길조차도 개의치 않을 정도까지 되었다.

어느 덧 규슈의 유적지가 산재한 다자이후에 도착했다. 다자이후는 7세기 후반부터 헤이안을 거쳐 나라시대까지 큐슈지역을 다스린 지방 관청이다. 그것이 지금은 지명으로 굳어져 남아 있다. 오랜 역사만큼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 天滿宮) 등 유적이 많이 남아있어 구경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늘 일정이 빠듯하다. 점심만 먹고 출발하기로 하고 식당을 찾으니 음식점이 마땅치 않다.

결국 따뜻한 집(호카호카테)이라는 도시락 점에서 구입한 도시락을 자전거에 싣고 공원을 찾았으나 공원도 눈에 띄지 않는다. 결국 사람이 한적한 길가에 주저앉아 먹었다. 자전거 여행에 우아함이란 없다. 우리가 자전거 여행을 선택하는 순간 이미 우아함과는 결별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평상시 같으면 비닐봉지 비옷 패션이며 노상식사가 어디 가능한 일이기나 하겠는가. 그런 것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케 하는 것이 자전거 여행이다. 스타일에 제법 신경 쓰는 아내도 이제는 주변 눈길쯤 신경을 꺼버린 지 오래다. 그런 것보다 밤을 섞은 도시락이 맛있다며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점심을 먹느라 잠시 들른 다자이후(太宰府) 마을.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고….
점심을 먹느라 잠시 들른 다자이후(太宰府) 마을.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고…. ⓒ 유신준
달리다가 물이 필요하면 패밀리마트 같은 데를 들러 '오미즈'를 부탁하면 대개 OK다. 필요한 물건을 하나 사도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리 싫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타고난 친절함 때문인지 사람들이 매정하지 않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 한 병 정도 챙겨 주는 것은 가게의 의무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 느껴질 정도다.

중간에 서점이 보일 때마다 자전거여행 책자를 구하기 위해 서점에 들렀다. 다자이후 근처 어느 서점에선가 그만 자전거열쇠를 잃어버렸다. 자물쇠 하나로 아내 것과 나란히 묶어 두었는데 이를 어쩐다.

발을 동동거리는 아내를 뒤로하고 백화점에 있는 열쇠가게에 들러서 사정을 말하니 무슨 자물쇠냐고 묻고는 니퍼(펜치와 유사한 도구)를 내준다. 한꺼번에 끊으려 하지 말고 조금씩 끊으면 쉽게 자를 수 있단다. 대신 니퍼는 꼭 가져오란다. 이런 친절이 없었으면 여행이 훨씬 더 고생스러웠을 텐데. 가는 곳마다 여행의 청량제 같은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첫날 자전거 주행 거리는 40∼50km를 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이미 저녁까지 도착하기로 다카야마씨와 약속을 한 터라 그 한계를 넘길 수밖에 없다. 주행거리가 60km 정도를 넘겼다고 생각이 들 즈음 아내가 더 이상 못 가겠다며 주저앉는다. 아마기를 5km 정도 남겨둔 지점이었다.

5km를 남겨 두고...

오늘의 주행코스. 길을 찾느라 헤맨 거리까지 포함하면 훨씬 길다
오늘의 주행코스. 길을 찾느라 헤맨 거리까지 포함하면 훨씬 길다 ⓒ 유신준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튼튼하지도 못한데다 장거리 자전거 여행이 처음이다. 주변을 살펴 한적한 공민관 주변에 일단 텐트자리를 정했다. 다카야마씨에게 차를 부탁해도 되겠지만 처음부터 자동차 신세를 지기는 싫었다. 그래도 명색이 규슈북부 일주인데… 전화를 걸어 사정을 얘기하고 오늘 들어가지 못하고 내일 일찍 들어가겠다고 말하니 절대로 안 된단다.

자기 집 근처까지 왔는데 거기서 그렇게 재울 수는 없다며 다카야마씨가 나오겠단다. 20분쯤 기다리니 아내인 유우꼬씨와 함께 소형트럭을 끌고 왔다. 요즘 몸이 좀 안 좋다더니 얼굴이 많이 야위어 보인다.

낙천적인 성격은 여전하여 우리들과 이야기하는 중에도 유쾌한 유머감각이 살아있다. 자전거를 트럭에 싣고 어두워진 길을 따라 다누시마루의 다카야마씨 댁을 향했다.

다카야마씨가 살고 있는 다누시마루는 주민 2천여 명의 독립된 자치단체(町)로 존재했으나 지난해 시정촌 합병계획에 따라 인근 3개 지자체와 함께 구루메(久留米)시로 통합 합병되었다. 후쿠오카현 남부에 위치한 구루메 시는 인구 30만 명 정도의 중소도시이며 국도3호선 이외에 수많은 국도와 지방도가 교차되는 상공업 도시이다.

덧붙이는 글 | 2006년 9월 15일부터 25일까지 떠났던 일본 규슈 자전거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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