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따스한 이름으로!

[이미지 산책 1] <오르세미술관전> 1

등록 2007.08.20 14:20수정 2007.08.2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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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일명 [이미지 산책]입니다. 미술작품에 관한 글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한정을 했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서 전시되고 있는 세계적인 명작들', 이렇게요.

다들 아시겠지만 지금 3대 대형 전시회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예술의 전당의 <오르세미술관전>, 서울시립미술관의 <'빛의 화가 모네'전>, 덕수궁미술관의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전>이 그것입니다. 이미 보신 분들이 상당수 계시겠지만, 사진으로 보는 것과 직접 가서 진품을 보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운 좋게 이런 명작들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대형 전시회가 지금 동시에 열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바쁜 일이 끝나고 휴가를 보내고 나서 8월 중순에, 이 3개의 전시회를 3일에 걸쳐 취재 겸 감상을 했습니다. 한 전시회에서 3-4시간 머무르며 작품들을 보았고, 해서 진이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왕 기사를 올릴 바에 좀더 다른 각도에서 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전시회 소개기사는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수없이 보도되었으니, 전시 요강은 넘어가고 작품을 깊이 소개하는 것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래서 미술서적을 뒤지며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꼼꼼히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저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저는 일부러 전시장에서 관람객을 이끌며 작품 설명을 하는 도슨트를 피해 다녔습니다. 그저 개인적으로 작품을 보고 싶어서요.

그리고 오디오 안내 가이드도 작품을 먼저 감상한 다음에 들었습니다. 미술서적을 읽은 것도 상당 부분 관람 후의 작업이었습니다. 먼저 제가 대면해서 즐기지 못한다면 의미가 적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지식으로 '중무장한' 다음 관람하려고 했는데 그 짓도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3일 동안 '유럽여행'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오르세미술관전>과 <'빛의 화가 모네'전>에서는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고,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전>에서는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여러 나라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명작들을 보러 일부러 여행하는 이들도 있을텐데, 서울 살면서 이런 기회들을 놓칠 수는 없겠지요.

전시회 관련자분들의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취재 명목이었지만 사실은 감상이 목적이었습니다. 아직 그림이 제게 말을 거는 수준은 못되고, 색채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분들을 한없이 부러워하지만, 제 딴에는 뚫어지게 보려 했고 그러다 제 가슴을 두드리는 그림들을 만나곤 했습니다. 보려고 애쓰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도 했고요. 설명을 읽고서 다시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관람하고 시리즈를 연재하려 합니다. 여기에 실리는 사진들은 모두 전시회측의 협조를 받고 얻은 이미지 사진들입니다. 허락을 받고 제가 찍은 것도 있습니다. 가능하면 <오마이뉴스> 지면상에 비해 크게 올리려 했습니다. 기사를 보시면서 감상도 하시길 바랍니다. 이미 보신 분들은 다시 감상하시고, 아직 보지 못하신 분들은 기간 내에 전시회장에 들러 보시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루브르전>을 놓친 게 후회가 됩니다.

기사는 3개 전시회가 끝나는 9월까지 전부 올리기로 하겠고, 이어 11월 말부터 있는 <고흐전>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한 기사에 몇 개씩의 작품을 주제별로 묶어 소개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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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 베르트 모리조, 1872년, 56 x 46 cm, 오르세 미술관. ⓒ Photo RMN-René-Gabriel Ojéda

첫 번째 시리즈는 가족이라고 해도 좋고, 여성이라고 해도 좋을 타이틀로 작품을 모았습니다. 우연하게도 이 세 그림 속 주인공들과 화가들은 친척들이거나 아주 가까운 벗입니다. 그리고 모델들은 전부 여성이고요. 이제 자세히 보겠습니다.

첫 번째 그림은 베르트 모리조라고 하는 19세기 여성 유일의 인상파 화가의 작품입니다. 자기 언니 에드마 모리조와 그의 딸 블랑쉬를 그린 작품입니다. 아늑한 분위기의 그림입니다. 제겐 '요람'이라는 단어가 생경했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하는 식으로 상징적인 의미로만 다가오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아기를 가진 부모들은 아기침대를 사용하지, 요람을 사용하는 일은 많지 않은 걸로 압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진짜 요람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요람은 참 안전한 곳입니다. 아기는 그렇게 믿고 아무런 근심도 없이 잠을 잡니다. 잠자는 아기의 평온한 모습을 보십시오. 아무도 요람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든든한 어머니가 옆에 있고, 또한 하얀 모슬린 천이 아이를 보호해 주는 보호막이 돼 주고 있으니까요.

저는 아기 주위의 투명한 모슬린 천을 어떻게 그렸을까 하는 점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아기를 형상화하면서 천의 얇은 느낌을 살려냈습니다. 이미 화가의 시야에 아기와 천은 합쳐진 색채로 들어왔겠지만, 그걸 동시에 살리는 묘미가 놀랍습니다.

모슬린 천 주변을 어두운 색으로 처리하여, 아기를 감싸는 천을 돋보이게 했습니다. 예를 들면 어머니의 옷 색깔을 짙푸른 색으로, 의자와 뒤쪽 벽면을 검은 색으로 처리한 것이 그것입니다.

불투명한 커튼은 외부와의 차단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안정된 실내, 보호감이 연상됩니다. 빛을 사랑하는 인상파 화가들은 외부에서 많이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실내에서도 많은 작업을 했는데, 제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창을 통한 햇빛을 활용한 그림은 인상파 그림 중에서 별로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초상화 같은 경우 완전히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내부의 빛만으로 느낌을 살렸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얼굴 표정을 보십시오. 안온하지만 분명 미소를 짓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따스한 눈길과 애정어린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겠지만요. 그걸 이 그림을 설명한 다음의 인용글로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미술 이야기꾼' 웬디 수녀님의 글입니다.

"사랑은 돌아오는 보람이 크기도 하지만 언제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 두 가지 측면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아이를 가진 부모는 절대 끊을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책임을 떠맡는다… 어머니의 역할은 무엇이든 주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이를 보호하고 소중히 기를 의무가 있으며, 그 일은 선선히 한다고 해도 분명 부담스러운 짐이다. 에드마는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 그녀의 시간은 아이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의 짐이고, 이 어머니는 그러한 구속에 만족하고 있는 듯 보인다."(<웬디 수녀의 명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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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마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887년, 65.5 x 53.5cm ⓒ 오르세미술관

「줄리 마네」의 그림 속 줄리는 바로 위 그림 「요람」을 그린 베르트 모리조의 딸입니다. 베르트 모리조와 친분이 있었던 화가 르누아르에게 부탁을 하여 딸의 초상화를 그리게 한 것입니다. 아이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베르트 모리조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인상파 화가 마네와 관계가 깊습니다. 베르트 모리조는 화가이면서 마네의 모델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러다 마네의 동생 외젠 마네와 결혼하게 됩니다.

줄리 마네는 화가들 그것도 인상파 화가들 사이에서 자라납니다. 어머니를 비롯해 르누아르, 드가 등이지요. 그리고 문인 말라르메까지 포함해서요. 나중에 베르트 모리조가 일찍 세상을 떠났을 때 르누아르와 말라르메는 줄리의 후견인이 되어 줍니다. 그녀는 그래서 '르누아르 아저씨'를 다정한 분으로 기억합니다.

그림 속 줄리의 얼굴과 손은 섬세한 데 비해 옷은 아주 거칠게 그려져 있습니다. 얼굴이 은은하게 돋보입니다. 만약 음악에 비유한다면 얼굴 부분은 협주 악기에 차분히 묻힌 독주 악기의 소리일 것 같습니다.

뒷배경은 인물보다 약간 어두운 색조로 초점이 흐려진 듯 그려져 있습니다. 원근감은 완전히 배제된 듯 소파와 뒷벽이 분리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품속의 고양이는 마치 웃고 있는 듯한 만족스런 표정으로 줄리와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행복한 그림을 그린 르누아르답습니다.

그림을 보면 정감 있는 분위기와 따스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르누아르의 그림은 나중에 더욱 화려해지고 따뜻해집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림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 그러합니다.

누군가 르누아르에게 그렇게 물었답니다. "이 세상은 어둡고, 고통스러우며, 슬픈 일뿐인데 당신의 그림은 왜 그렇게 밝고, 즐거우며, 기쁘기만 합니까." 르누아르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처절하고, 힘겨우며, 우울합니다. 그렇다고 그림까지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이것이 제 그림이 따뜻하고, 행복하며, 즐거운 까닭입니다."(<사랑한다면 그림을 보여줘> 중에서)

르누아르 자신, 말년에 폐병과 류머티즘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붓을 손가락에 묶고서 계속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인상파 화가들이 처음에는 냉대를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위의 말 덕분에 르누아르는 인상파 화가 중 가장 먼저 세상에 받아들여졌습니다.

"르누아르가 그려낸 세계에는 모든 사람을 매혹시켜 버리는 평화로운 빛이 있다…밝고 행복한 주제만을 그렸다. 색색의 꽃, 향기로운 과일, 따뜻한 태양이 비치는 풍경, 떠들썩하게 노는 젊은이들, 천진한 아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 건강하고 고운 피부의 젊은 처녀들, 풍만한 나부, 그것이 르누아르의 세계였다"(<명화를 보는 눈> 중에서)

그런데 중요한 것은 르누아르가 위의 그림을 더 이상 빛을 중시하는 인상주의 하에서 그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인상주의를 밀고 나간 모네와 달리 인상주의와 결별해야 했습니다. 인물화를 그리는 데 인상주의는 한계가 있었던 거지요.

"고운 피부 밑에 따뜻한 생명의 흐름이 고동치는 여성미를 각별히 사랑했던 르누아르는 나중에 스스로도 고백했듯이 본질적으로 인물화가였다…(그런데) 인상주의의 색채 분할은 모든 것을 빛의 반짝임으로 환원함으로써 그리는 대상의 실질적인 무게와 형태를 희생시켜 버린다. 거기에서는 인물도 하늘의 구름이나 들판의 햇빛처럼 빛의 아지랑이에 싸여 고유의 존재를 잃어버린다."(위의 책에서)

한마디로 인물을 정성껏 그릴 수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줄리 마네」는 그가 인상주의를 떠난 후에 그린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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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장식을 단 베르트 모리조」, 에두아르 마네, 1872년, 55 x 38cm ⓒ 오르세미술관

위 초상화는 앞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조리개를 완전히 열고 찍은 사진 같은 그림입니다. 베트트 모리조에게는 이 검은색 옷이 잘 어울려 보입니다. 검은색 정장 한가운데 제비꽃 장식이 보일랑 말랑 달려 있습니다. 제 느낌이지만 베트트 모리조는 초점을 명확하게 앞으로 향하고 있지 않아 보입니다.

이 그림은 베트르 모리조가 마네와 알게 되면서 몇 년 동안 그의 모델이 되어 준 여러 작품 중의 하나입니다. 마네의 동생과 결혼하기 전이지요. 이 그림을 그린 해, 1872년은 마네가 살롱전에 출품할 작품이 없어 슬럼프에 빠진 상태의 시기였습니다. 당시 프랑스 화가들에게 살롱전은 사회적 인정을 받는 그 자체였습니다. 그때 화실로 종종 방문하는 베르트 모리조를 즉흥적으로 그린 그림 중 하나가 이 그림입니다. 베르트 모리조는 스스로 편한 포즈를 취해 주었다고 합니다.

시인 폴 발레리는 이 그림을 보고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나는 1872년에 그린 베르트 모리조의 초상화를 마네 예술의 정수라고 여긴다…무엇보다 나는 그 검은색의 완전한 어둠에 주목하고자 한다…검은색의 힘과 단순한 배경, 장밋빛이 도는 백색의 깨끗한 피부, 가히 '현대적'이며 '신선한' 모자의 독특한 실루엣. 즉 인물의 외면을 감싸고 있는 모자술과 끈, 리본의 형태…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시선과 그윽한 눈빛의 커다란 눈을 지닌 이 모델은 일종의 '부재의 존재'를 웅변하고 있다.(<마네-이미지가 그리는 진실> 중에서)

베르트 모리조는 언니 에드마 모리조와 함께 풍경화가인 코로에게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베껴 그리는 모사에 있어서는 베르트보다 뛰어났지만 에드마 모리조는 아마추어 화가로 남았습니다. 위 첫 번째 그림 「요람」 속 어머니말입니다.

"마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감정이나 사상이 아니라, '나는 본 대로 사물을 증거했을 뿐이다'라고 말할 때의 '투명한 무관심'인 것이다"(<미술과 문학의 만남> 중)

그래서 마네의 다른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다소 메마르고 차가운 묘사를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처럼 제비꽃 장식을 한 아름다운 베르트 모리조의 모습을 그리거나, 말라르메의 초상화를 친밀감 있게 그리는 등 지극히 따스한 '인간적인 시선'으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제비꽃 장식을 단 베르트 모리조」는 반항적인 초기작품 시대를 지나 중반기에 이르렀을 때 그린 작품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글에는 베르트 모리조가 주인공이네요. 첫번째 그림 「요람」을 그렸고, 자신의 딸의 초상화를 르누아르에게 그리게 했고(두번째 그림 「줄리 마네」), 자신이 모델이 되어 마네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했고요. 이 세 화가들도 거의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들이었고요. 나중에 마네의 그림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오르세미술관전> :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9월 2일까지.

덧붙이는 글 <오르세미술관전> :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9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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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몸을 씁니다』 등 네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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