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3) 수면(睡眠)

[우리 말에 마음쓰기 373] '광태(狂態)'와 '미친 짓-미친 모습'

등록 2008.07.16 11:21수정 2008.07.1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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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광태(狂態)

 

.. 민자당 의원들의 그러한 광태(狂態)는 10여 일 후로 예정된 변호사대회의 주제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  <그날을 기다리는 마음>(한승헌, 범우사,1991) 102쪽

 

 “10여 일 후(後)로 예정(豫定)된”은 “열흘 뒤에 잡힌”이나 “열흘 뒤에 있을”로 손볼 수 있습니다. “민자당 의원들의 그러한 광태(狂態)”는 “민자당 의원들이 보여준 그러한 짓거리”나 “민자당 의원들이 저지른 그러한 미친 짓”으로 풀어냅니다.

 

 ┌ 광태(狂態) : 미치광이 같은 태도나 모양

 │   - 광태를 보이다 / 요즘의 그의 주벽은 도를 지나쳐 광태에 가깝다

 │

 ├ 그러한 광태(狂態)는

 │→ 그러한 볼꼴사나운 짓은

 │→ 그러한 터무니없는 짓은

 │→ 그러한 못난 짓은

 │→ 그러한 미친 짓은

 └ …

 

 문득 ‘광견(狂犬)’과 ‘광분(狂奔)’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입으로 말할 때 흔히 ‘미친개’라 하지 ‘광견’이라 하지 않습니다. 아마 미쳐서 날뛰는 개를 보고 “저런 광견이 다 있나?” 할 사람은 없겠지요. “저런 미친개가 다 있나?”라 할 뿐입니다. 그러나, 개가 미쳐서 날뛰는 병을 가리킬 때에는 ‘미친개병’이라 안 하고 ‘광견병’이라 합니다. 미쳐서 날뛰는 짓을 가리킬 때에도 ‘미쳐날뛰다’라 하기보다 ‘광분’이라 하고요.

 

 변호사 한승헌 님도 마찬가지일까요. ‘미친 짓’이지 ‘광태’가 아니잖아요. ‘광태’라 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뒤에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적어 넣는다면, 이 한자를 아는 이들은 ‘아하, 이런 뜻으로 썼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릴 테지만, 묶음표에 넣은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어떡하지요.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알아듣지 못해도 괜찮은가요.

 

 ┌ 광태를 보이다 → 미친 짓을 보이다 / 미쳤다

 └ 광태에 가깝다 → 미친 모습에 가깝다 / 미쳐 버렸다

 

 미국말이든 한자말이든 일본말이든, 우리가 써야 한다면 써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손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라면 안 쓰는 편이 나아요. 우리 삶과 동떨어지거나 우리 삶과 어긋나는 말 또한 안 쓰는 편이 낫고요. ‘광태’라는 말은 어떠한지요? 명태 친구 광태인가요?

 

ㄴ. 수면(睡眠)

 

.. 첫째, 독서는 수면(睡眠)과 비슷하다 ..  <두뇌의 회전을 도우는 독서술>(신조사,1972) 16쪽

 

 ‘독서(讀書)’라는 말을 널리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을 아예 안 쓸 수 없다고 봅니다. 다만, ‘책읽기’나 ‘읽기’로 쓸 때가 한결 낫다고 느끼며, 웬만하면 ‘책읽기’와 ‘읽기’로 담아내면 좋겠습니다.

 

 ┌ 수면(睡眠)

 │  (1) 잠을 자는 일

 │   - 수면 부족 / 수면을 취하다 / 그들의 수면을 방해한 울음 소리

 │  (2) 활동을 쉬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수면(睡眠)과 비슷하다

 │→ 잠자기와 비슷하다

 │→ 잠과 비슷하다

 └ …

 

 아이들보고 “수면을 취하라”고 말하는 어른은 없습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수면을 취하세요” 하고 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병원에서라면 이런 말을 쓰겠지요. 다른 자리에서 이런 말을 쓸까요. 집에서 아내보고, 남편보고 “수면 좀 취하세요” 하고 말을 할까요.

 

 그러고 보니 병원이나 군대에서는 이 말, “수면을 취하라”고 읊습니다. 요양시설에서도 이 말을 쓰리라 봅니다. 여느 사람들 여느 삶에서는 안 쓰는 말이요, 여느 사람들 여느 말에는 끼어들 일이 없는 말입니다만.

 

 “주무셔요”, “자자”, “자라”, “자렴” 하고 말하면 넉넉하다고 봅니다. 자니까 ‘잠’이고 쉬니까 ‘쉼’입니다. 우리가 ‘잠’이라고 말하면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글을 쓰면서 “책읽기는 잠과 비슷하다”고 해도 누구나 알아듣습니다. 괜히 ‘수면’ 같은 한자말을 불러들이니까, 묶음표를 치고 ‘睡眠’이라고 넣어 주게 됩니다.

 

 ┌ 수면 부족 → 잠이 모자람

 ├ 수면을 취하다 → 자다

 └ 그들의 수면을 방해한 → 그들이 못 자게 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살찌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무너뜨리거나 끙끙 앓게 내동댕이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7.16 11:21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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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우리말 #우리 말 #한자어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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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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