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도 희년 정신에 따라서 토지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옳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진은 서울시내의 모습
픽사베이
구약성서 레위기 25장에는 희년(Jubilee) 규정이 담겨 있다. 7년 주기의 안식년을 7번 지내고 맞이하는 해를 가리킨다. 50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희년이 되면, 모든 사람은 자기 가족이 처음에 분배받아 보유했던(그러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매각하거나 방치했던) 자기 땅을 무조건 회복한다.
그와 더불어, 가난해져서 다른 가족의 머슴이 되었던 사람들도 희년의 나팔이 불리면 무조건 자기 가족에게 돌아간다. 사람들이 희년을 '자유와 해방의 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평등했던 사회상태가 점차 불평등해지더라도 50년째에는 원래의 상태로 완전히 리셋된다.
현대사회에 적용해야 할 희년 정신
레위기를 제외하고도 구약성서는 곳곳에서 모든 사람이 토지에 대한 권리(토지권)를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실제로 고대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그 땅을 지파별·가족별로 균등하게 분배했고, 그렇게 성취된 평등한 토지분배 상태를 영구히 지속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의무를 저버리고 토지 겸병(둘 이상의 것을 하나로 합치어 가짐)에 몰두했을 때 예언자들이 등장해 지주들을 맹렬하게 비난했고 그들의 행위가 국가 멸망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오래전 중동 지역의 조그만 민족에게 적용되었던 낡아빠진 규례가 복잡한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현대인들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생각하기 쉽지만, 여기에는 현대사회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중대한 원리가 들어 있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그것은 평등지권(平等地權)의 원리, 즉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토지와 자연자원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등지권을 말하면 사회주의 사회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 원리는 사회주의와는 크게 다르다. 노력과 비용을 들여 만드는 생산물은 만든 사람에게 절대적·배타적 권리를 보장하는 사유재산제와 아무 모순 없이 결합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표적 조지스트(Georgist: 19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를 따르는 사람)인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는 두 원리가 결합한 사회를 사회주의와 구별하여 지공주의(地公主義) 사회라고 부른다.
생산물과는 달리, 토지와 자연자원에 대해서는 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권리를 보장해야 할까. 우선, 토지와 자연자원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누구도 토지와 자연자원을 만들지 않았고 앞으로 만들 수도 없다. 마지막으로, 토지와 자연자원이 자산이 되면 가치를 갖는데 그것은 소유자가 아니라 사회와 국가가 만든다. 그러므로 고대 이스라엘 민족과 마찬가지로, 현대인들도 희년 정신에 따라 토지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옳다(토지와 같은 성질을 갖는 자연자원과 환경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인류는 토지에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자연자원과 환경은 아직도 사유제 적용의 범위 밖에 놓여있는 부분이 많지만, 세계 곳곳에서 자연자원을 사유화하고 환경을 독점적으로 이용하려고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상태를 유지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토지와 자연자원의 사유화가 초래한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