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아람누리에서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이 바라는 주택' 민생토론회에서 주택 문제를 빠르고 확실하게 풀어내고 튼튼한 주거 희망 사다리를 구축하겠다고 하면서, 실로 파격적인 부동산 정책을 약속했다. 두 가지가 중심인데, 하나는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아주 확 풀어버리겠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를 철폐하겠다는 내용이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이명박 정부 이래 보수 정치세력의 대표적인 부동산 정책으로 자리 잡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훨씬 "빠르고 확실하게" 추진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마침 같은 날 정부에서도 관계부처 합동으로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 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 방안'(1.10 대책)을 발표했는데, 대통령의 발언과 기조가 같다.
1.10 대책과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는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가 비판 논평을 발표했고,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 등 전문가들의 비판 칼럼도 이어졌다. 필자는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의 비판에 대체로 동의한다.
대학에서 38년간 경제학을 가르치고 연구했으니, 필자가 감히 '경제학 선생'을 자처해도 욕을 먹지는 않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법학 전공자로 오랫동안 검사 생활을 하며 수사와 기소에 전념했으니 그 방면의 전문가인지는 모르겠으나, 경제에 관한 한 초보자라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윤 대통령을 경제학을 배우는 '학생'으로, 그의 발언을 주관식 시험의 '답안지'로 여기고 한번 채점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대통령은 과연 100점 만점에 몇 점을 받을까. 시험 문제는 '한국의 부동산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냉정한 교수라고 할지라도 주관식 시험에 0점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필자는 먼저 윤 대통령의 발언 내용 중에 점수를 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정치를 처음 하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바로 부동산 문제"였다고 하는 부분은 정치인으로서 바람직한 마음가짐으로 보아 점수를 줄 수 있겠다. 그 외에 세금을 부과하면 조세 전가가 일어난다든지 경제활동이 위축되어 후생이 감소한다든지 하는 일반론을 잠시 언급했으니, 거기에도 억지로 약간의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머지 내용에서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대통령의 시험 점수는 기껏해야 20점을 넘을 수 없다. 아래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왜 점수를 받을 수 없는지 대표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따져보기로 하자. 만일 필자의 평가가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대통령은 자신에게 이런 내용을 주입한 참모나 관료를 즉각 교체하는 것이 마땅하다.
부동산 문제의 본질을 파악 못 한 대통령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부동산 가격과 투기·불로소득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대한민국 국민을 괴롭혔던 것은 부동산 투기 광풍과 부동산 가격 폭등이 아닌가. '영끌투자', '이생망', '갓물주' 등의 신조어가 출연했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국민의 다수가 주택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고가주택에 대한 중과세나 재건축 규제 때문이 아니라, 지나치게 올라간 집값과 전셋값 때문이 아닌가. 주택 문제로 인한 국민의 고통을 해결하겠다는 마당에, 가격 문제와 투기·불로소득 문제를 철저히 외면한 것은 한국 부동산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물론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부동산 시장의 상황이 역전되어 가격 폭등을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한정 없이 높아진 부동산값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부동산으로 인해 이미 악화할 대로 악화한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시장 상황의 변화로 윤 대통령을 변호하기에는 남은 문제가 너무나도 심각하다.
대통령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해서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를 철폐하겠다고 약속했다(그는 주로 보유세를 염두에 두고 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부동산 부자에게 엄청난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으로 중산층과 서민, 그리고 임차인이 혜택을 입는다고 하다니, 도무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부동산 부자에 대한 중과세가 철폐되면 부동산 부자들은 즉각 세금 부담이 줄어들고 부동산 가격 상승 요인이 발생해서(보유세를 완화하면 보유 비용이 줄어들어 부동산 가격은 상승 압력을 받는다), 확실한 이익을 얻게 된다. 장차 다시 투기가 발발하기라도 하면, 지난 몇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엄청난 불로소득을 챙길 수 있다. 그러니 이 정책의 실체는 부자 감세요, 부동산 부자 지원책이라고 규정해야 마땅하다.
부동산 부자들에게 중과세를 하면 조세가 전가되어 그 피해를 임차인들이 고스란히 보는 것이 명백하다고 대통령은 말했다. 하지만 부동산 조세가 임차인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내용은 경제학 교과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조세 전가는 조세 부과로 공급이 감소할 때 일어난다. 그러나 부동산은 공급이 비탄력적이어서(즉 가격이 변하더라도 공급량이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보유세를 부과하더라도 임차인에게 전가되기가 어렵고 집주인이 고스란히 조세를 부담한다. 그러니 조세 전가 때문에 부동산 부자에 대한 중과세의 피해를 임차인이 고스란히 본다는 말은 틀렸다.
부동산 부자에 대한 중과세를 폐지할 때 확실한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부동산 부자들이라는 사실을 은폐했고, 다주택자에 대한 부동산 보유세가 임차인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쳤기 때문에, 여기에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사실 아닌 내용으로 자신의 주장 뒷받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