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지난 5월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해외 직접구매(직구) 논란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6일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KBS1TV <일요진단>에 출연해 대통령의 말과 유사한 견해를 피력해서 관심을 끌었다. 종부세는 사실상 폐지하는 것이 옳고 상속세는 최고세율을 대폭 낮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가 내세운 명분은 저가 다주택자, 은퇴자, 일반적인 주택을 가진 사람들의 세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가련한' 중산층에 해당하니, 성 실장의 주장은 대통령의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종부세 폐지를 중산층을 위한 정책이라고 강변하는 데는 도무지 동의할 수 없다.
2023년의 경우 주택분 종부세는 전체 주택 소유자의 2.7퍼센트가 냈는데, 과연 이 2.7퍼센트를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을까. 토지분과 주택분을 합한 전체 종부세 납세자는 49만 5000명이었고 이중 상위 10퍼센트, 즉 4만 9500명이 납부한 세액이 전체 세액의 88.5퍼센트를 차지했다. 반면, 종부세 납부자 하위 50퍼센트가 납부한 세액은 전체 세액의 1.5퍼센트에 불과했다. 따라서 종부세를 폐지할 경우 혜택이 상위 계층에 집중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요컨대 종부세 폐지의 목적은 중산층이 아니라 부동산 슈퍼리치의 세부담을 줄여주려는 데 있다. 목적이 전혀 다른 곳에 있는데도 왜 엉뚱하게 중산층을 들먹거릴까. 마땅히 내세울 만한 논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성태윤 정책실장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를 지낸 정통파 경제학자다. 그런 그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들고나오다니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성 실장은 '종부세는 이중과세다', '임차인에게 전가된다', '주택가격 안정 효과가 미미하다', '세금 걷는 효과는 작은데 경제활동 왜곡 효과는 크다', '다주택자는 임대주택 공급 역할을 담당하므로 중과세해서는 안 된다'는 등 해괴한 견해를 늘어놓았다.
성태윤 실장의 주장에 대한 몇 가지 반박
성태윤 실장의 견해 가운데 대표적인 것 몇 가지에 대해 간단히 반박해보자. 첫째, 이중과세 문제. 종부세 세액 계산에서 재산세 상당액을 공제하므로 종부세가 이중과세라는 주장은 전형적인 가짜뉴스다. 헌법재판소도 종부세가 이중과세가 아님을 명백히 밝힌 바 있다.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이중과세 주장은 힘을 잃었는데, 그런 엉터리 주장을 정책실장이 다시 거론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둘째, 전가문제, 종부세가 임차인에게 전가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공급이 고정된 토지에 대한 보유세는 전가되지 않는다. 건물에 대한 보유세는 전가된다. 두 가지 성격이 합쳐진 종부세는 '부분적으로' 전가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단, 건물 보유세는 전가되기는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건물의 멸실과 신축, 즉 공급 변화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조세 전가는 조세 부과로 공급이 감소할 때 일어난다. 그러나 단기에 건물은 가격이 변하더라도 공급량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보유세를 부과하더라도 그것이 임차인에게 전가되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종부세는 상당한 기간 임차인에게 전가될 수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부동산 임대료에는 조세 외의 다른 요인들도 영향을 끼친다. 실제 종부세와 임대료 사이에 직접적인 비례관계가 없다는 것은 종부세를 형해화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전세대란이 일어났고, 종부세를 강화했던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오히려 전월세가 안정되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성태윤 실장이 종부세의 전가를 진심으로 걱정했다면, 폐지를 논할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보유세 즉 토지 보유세를 도입·강화하자고 주장했어야 한다.
셋째, 주택가격 안정 효과. 종부세가 주택가격 안정 효과가 없다는 주장은 논리적 근거도 없고 현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종부세 폐지 논란이 벌어진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다시 집값이 들썩거리는 작금의 현실은 이 주장의 허구성을 명백히 입증한다.
넷째, 다주택자의 임대주택 공급 역할. 임대주택 공급이라는 긍정적 기능을 하는 다주택자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진실을 은폐한다는 점에서 고약하다. 한국 사회에서 집을 여러 채 보유하려는 동기가 주택 임대사업인가 부동산 투기인가. 이 질문에는 삼척동자도 쉽게 답할 수 있다. 다주택자에게 보유세를 중과하면 그는 보유주택을 매각할 것이다.
이를 두고 임대주택 공급이 줄어드니까 문제라고 진단해서 되겠는가. 다주택자가 주택을 매각하면 매매가격이 하락해서 서민층과 청년층의 내 집 마련이 쉬워지니 이는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 아닌가. 임차인은 언제까지나 임차인으로 머물러야 한다는 법은 없다. 게다가 임대주택 공급이 부족할 듯하면 공공임대주택을 충분히 공급하고 민간 임대주택 사업자를 육성하면 될 일이다.
상속세 완화도 슈퍼리치를 위한 정책
성태윤 정책실장은 종부세만이 아니라 상속세도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이에 대해 <한겨레>는 17일 자 기사('평균 420억 상속하는 955명에게 세금 깎아주자는 대통령실')에서 상속세 완화도 중산층과는 상관없는, 슈퍼리치를 위한 정책임을 명쾌하게 밝혔다. 최고세율 인하(50퍼센트 → 30퍼센트)의 혜택을 입을 과세 대상자가 2022년 기준 955명에 불과하고, 이들의 1인당 평균 상속세 과세가액(상속재산에서 문화재 등 비과세 재산과 공과금·장례비용·채무 등을 제외한 금액)은 무려 420억 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이들은 슈퍼리치다. 이들의 납세액은 전체 상속세액의 90퍼센트를 초과했으니, 현 정권의 상속세 개편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슈퍼리치의 세부담을 줄여주는 일에 골몰하는 성태윤 정책실장에게 세이어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비록 개인소득세를 두고 한 말이기는 하지만 슈퍼리치 감세 일반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
1930년대 이후 한동안 부자에게 적용하는 세율은 치솟았는데, 영국·미국·프랑스·독일에서는 무려 90퍼센트까지 올라갔다. 부자에게 적용하는 세율이 50퍼센트 이하로 떨어진 지금, 이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많은 나라의 정부들은 이를 더 낮추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다. 최고세율이 높았을 때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런 나라들은 오히려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부자에게 과세하면 성장이 저해된다는 말을 늘 들으며 살고 있다(<불로소득 시대 부자들의 정체>, 여문책, 27쪽).
윤석열 정권의 감세 정책이 실현된다면 앤드류 세이어가 걱정하는 불로소득 취득에 따른 불평등 확대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서민·중산층 정당을 표방해 온 민주당이 이런 결과를 초래할 정책을 무슨 이유로 촉발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