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2 11:46최종 업데이트 24.05.2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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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5주기를 앞두고 19일 봉하마을 묘소에 참배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윤성효
   
매년 5월 중순은 광주의 시간이고, 하순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시간이다. 내게는 노 대통령의 서거가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15주기다. 그동안 그를 기리는 사업이 획기적으로 발전했고, 그의 삶과 참여정부를 탐구한 책도 여러 권 나왔다. 국민의 평가도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에서 역대 대통령 중 최고로 훌륭한 대통령으로 크게 바뀌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따로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진면목을 충분히 보여주는 책이 출간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에 노 대통령 15주기를 맞아 그간의 아쉬움을 해소하는 책이 나왔다.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교수의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한겨레출판)이 바로 그것이다. 약 2년 반 동안 참여정부 정책의 방향타를 쥐고 있었던 핵심 인사의 회고록이라는 점만으로도 관심을 끌 만한데, 책 서술 방식이 특이해서 더 눈길을 끈다. 


이정우 교수는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을 거의 망라하는 가운데 그 각각의 결정 과정을 날짜·시간·참석자·발언 등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책 내용을 서술한다. 거기에 자신의 평가와 소회를 담담하게 추가한다. 전체적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군데군데 비판적인 견해와 서운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한다. 

국내외에서 과거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인사들의 회고록이 많이 나왔지만, 이 책처럼 소상하고도 생생하게 경험을 묘사한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떻게 이와 같은 서술이 가능했을까. 비밀은 이정우 교수가 청와대에서 일하는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일기를 썼다는 데 있다. 그의 일기는 하루를 간략하게 요약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일종의 실록 같은 것이었다. 

이정우 교수는 일기를 쓸 때 발언하는 인물의 토씨 하나까지 정확하게 적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이렇게 기록한 일기장이 10권이고, 그 외에 업무시간에 쓴 업무일지 노트가 20권 정도 더 있다고 한다. 스스로 작성한 방대한 1차 자료를 바탕으로 책을 썼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마치 현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여러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결정되었는지, 그 정책들에 대해 세상은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리고 그 반응들이 어떻게 피드백되었는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니 그의 말대로 '현대판 징비록'이요, 회고록의 전범(典範)이라고 할 만하다.

이제 이정우 교수가 묘사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 정책의 특징을 중요한 부분 위주로 소개해보자.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장기주의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역사상 최초의 장기주의 대통령이었다. "불경기 때문에 여론이 나쁜데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반짝 경기를 호전시킬 응급치료보다 근본적·장기적 경제정책에 관심을 두었다."(240쪽) 당시 습관처럼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들고 오는 경제부총리가 있었으나 노 대통령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당장 인기를 끌 단기 경기부양책을 마약 요법으로 여겼다.

참여정부 전에도 후에도 이런 대통령과 정치인은 없었다. 특히 여론조사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모든 대통령과 대부분의 정치인은 마치 '지지율 집착증'에 걸린 듯 당장 인기를 끌 단기정책에 집착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말할 나위가 없고, 참여정부를 계승했다고 일컬어지는 문재인 정부조차 국가 장기과제를 제쳐두고 당장 지지율을 끌어올릴 단기정책을 펼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국가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중요한 정책이라도 저항을 초래하고 소란을 일으켜 지지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 같으면 외면했다. 

이런 경향은 지난 대선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몇 년 동안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 한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 정책을 사실상 포기한 채, 50여 개의 '소확행' 공약을 줄줄이 발표하며 여론의 지지를 끌어내려고 했다.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가 저항과 소란을 유발할 것이라는 점을 두려워했던 탓으로 짐작된다. 지난 총선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국가 장기과제에 해당하는 정책공약을 제시한 정당은 없었다(조국혁신당이 당 강령으로 그런 내용을 발표하기는 했으나 매우 추상적이어서 정책공약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국정과제위원회와 정부 부처가 종횡으로 엮이는 매트릭스 조직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 장기과제를 제대로 만드는 것을 대통령의 최고 임무라고 믿고 거기에 집중했다고 한다. 그 일을 추진할 조직으로 12개의 국정과제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이 위원회들은 흔히 생각하는 자문위원회와는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정부조직의 울타리로서 '얼굴마담' 역할을 하는 것이 통상의 자문위원회라면, 참여정부의 국정과제위원회는 실제로 중요한 정책을 만들어서 정부에 건네주었고 정부 부처는 그 정책들을 실행에 옮겼다. 

대통령은 이미 밑에서 다 결정된 것을 최종 추인하는 국무회의를 총리에게 맡기고 국정과제위원회 회의에는 64회나 참석해 중요한 결정을 해나갔다고 한다. 동북아 경제 중심, 균형발전, 신행정수도, 전자정부, 정부 혁신, 보육 확대, 아동 빈곤 해소, 근로장려세제 등 참여정부의 중요 정책들이 바로 이들 위원회에서 결정되어 실행에 옮겨졌다. "12개의 위원회와 약 20개의 정부 부처가 종횡으로 엮이는 일종의 매트릭스 조직"(98쪽)을 만들어 국가 장기과제를 해결한다는 국정 운영 방식이었으니 실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2007년 1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참여정부 4주년 기념 국정과제위원회 합동심포지엄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구적이었던 분배 중시 정책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전 세계 경제학계와 주요 선진국 경제정책을 지배했던 것은 '낙수효과론'이었다. 이는 경제성장률을 높여서 파이를 키우고 대기업과 상류층의 소득을 늘리면 아래쪽으로 '떡고물'이 떨어져 모두가 잘살게 된다는 주장이다. 경제성장률만 높이면 분배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이 낙수효과론자들의 인식이었다. 

그런데 2010년대에 들어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발간되고 불평등 문제가 시대의 화두로 부각하면서 세계 경제학계의 조류도 변했다. 학자들은 낙수효과론이 아무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고, 분배를 개선해야 성장도 된다는 인식이 각종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 가설이 정설로 뿌리내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보다 훨씬 앞서서 2003년부터 분배를 중시하는 견해가 정부 정책의 중심을 차지했고, 그 결과 5년 사이에 중앙정부의 복지예산 비중이 20%에서 28%로 올라가고 경제예산은 28%에서 20%로 낮아졌다. 오늘날 우리나라 복지제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근로장려세제도 이때 도입되었다. 이는 저임금 노동자가 일을 많이 할수록 정부가 더 지원해주는 제도로,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에서 정부가 지원금을 지급하는 공공부조 정책의 한계를 극복하는 효과가 있다. 

이런 성과는 분배 이론을 전공해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정우 교수가 정부 정책의 방향타를 잡고 있었고, 그의 주장을 노무현 대통령이 전폭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기에는 물론 오랜 세월 약자를 우선시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정서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외면당해 온 분배 문제와 복지를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것만 가지고 보수 언론과 상당수의 경제학자들은 '좌파정책이다, 분배주의다'라며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쳤다. 

그 때문에 이정우 교수는 한 언론에 의해 교체 대상 1위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고 한다. 그를 쫓아내려고 기득권층이 동원했던 수단은 기상천외하다. 한 신문이 사설탐정을 고용해서 이 교수를 한 달간 미행했는데 아무 소득이 없어 그만두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부동산 문제와 지역 불균형의 근본적 해결을 꾀하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 정책을 논하면서 부동산 정책과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빼놓을 수는 없다. 참여정부가 펼친 부동산 정책은 보유세 강화정책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정책으로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하고,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해서 서민층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신행정수도를 건설하고 수도권에 집중해 있던 공공기관들을 대거 지방에 분산함으로써 지역균형발전을 추구했던 것도 지역 간 양극화를 해소할 뿐만 아니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 두 가지 또한 역대 정부에서는 꿈도 꾸지 못한 획기적인 정책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정우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할 비책을 노 대통령에게 제공했다. 참여정부 초기의 과표 현실화와 종부세 도입을 통한 보유세 강화가 바로 그 비책이었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와 개발이익 환수제도의 시행은 그것을 보완하는 부차적 정책이었다.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부를 추출해 온 이 땅의 기득권층은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균형발전 정책에 격렬하게 반발했다. 그들이 만들어낸 대항 논리는 '세금폭탄론'과 '관습헌법론'이었다. 조·중·동은 세금폭탄론을 연일 대서특필했고, 헌법재판소는 관습헌법이라는 기상천외한 개념을 내세워 행정수도를 위헌으로 판정했다. 

보수 언론과 기득권층 그리고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보수적 관료들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보유세 강화정책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정책을 끝까지 견지했다. 또 신행정수도가 위헌 판정을 받았음에도 내용을 일부 변경해 행정복합도시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균형발전 정책을 펼쳐나갔다. 수도권에 집중해 있던 공공기관들을 대거 지방에 내려보내는 1차 정책이 성공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의 미래가 걸린 사안을 두고 욕을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는 이정우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계승하기를 주저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국가의 미래를 염려하는 참 정치인과 그 정치인의 문제의식을 정책으로 구현할 능력을 가진 뛰어난 참모의 결합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품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한겨레출판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 비전을 설계하는 데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성품 또한 참으로 훌륭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은 아랫사람에게 하대하는 일이 없었고 보수 언론의 파상 공세를 받던 참모를 자신처럼 여기며 지켜주었다. 그는 끊임없이 책을 읽었고, 지위 고하를 막론한 활발한 토론으로 정책을 결정했으며, 자신에게 반론을 제기하는 참모들을 포용했다. 그러면서도 옳다고 믿는 일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추진력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대통령을 두고 이정우 교수는 '학자 군주', '호학(好學) 군주'라고 명명한다. 이 교수는 책 여러 군데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도와서 일했던 것을 행운이라고 고백하며 노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토로한다. 

이상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 세 가지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했지만, 그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성과가 한둘이 아니다. 부동산 실거래가 제도를 도입해 거짓 가액 신고를 없앴다든지, 신문 가판을 폐지했다든지, 양여금을 폐지하고 균형발전회계를 신설하는 예산제도 개혁을 성공시켰다든지, 금융 계열사의 보유 주식 의결권을 제한했다든지, 대통령 기록물 보관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기록 관례를 정착지켰다든지 하는 것 등이다. 

물론 교육개혁처럼 첫 출발과는 달리 결과적으로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 경우도 있었고, 행정수도 이전처럼 중도반단(中途半斷)에 그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은 이 책을 필독서로 삼아야

오늘날 민주당 정치인들 가운데 노무현을 상찬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는 심지어 국민의힘 쪽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5월 23일 경남 봉하에서 열리는 15주기 추도식에 여야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은 다 참석할 것이다. 그만큼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표상이 되었다. 

이상한 것은 입으로 노무현을 노래하는 정치인들이 노무현의 정책을 탐구하고 그의 정책 마인드를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이 국민의힘의 보유세 완화 정책에 동조하고, 최근에는 박찬대 원내대표가 1가구 1주택자의 종부세를 폐지하자고까지 한 것을 보면 이들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전혀 공부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개혁적 정치인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정책 비전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인재를 기용했으며, 어떤 방법으로 정책을 만들고 펼쳤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안에는 진심으로 이런 역량을 갖추기 원하는 정치인들이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반드시 이정우 교수의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을 꼼꼼히, 여러 번 읽고서 교훈을 얻어야만 한다. 그것이 노무현을 계승하는 올바른 길이다. 

물론 이 책에도 한계는 있다. 객관적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 정책을 평가한다고 하면서도 팔은 한쪽으로 굽어 있다.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또 사소하기는 하지만 주제별로는 시간 순서로 기술했으나 전체 내용은 정책실장 시절과 정책위원장 시절이 뒤섞여 있어서 언제 이야기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전체 내용을 가능한 한 시간 순서로 기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그랬다면 이 책은 명실상부한 참여정부 실록이 됐을 것이다.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을 다룬 '알릴레오 북스 노무현 대통령 서거 15주기 특집방송'에서 유시민 작가는 이정우 교수를 앞에 두고 "나도 일기 쓸 걸"이라며 후회했다. 그만큼 이 책의 가치가 탐나지 않았을까.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경험 측면에서는 이정우 교수 못지않고, 명민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유시민 작가의 부러움을 자아냈으니 이 책의 가치를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 - 초대 정책실장 이정우가 기록한 참여정부의 결정적 순간들

이정우 (지은이), 한겨레출판(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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