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환 일가 가혹행위 사건을 보도한 2004년 11월호 <신동아>.
신동아
이러한 조사과정에서 또 하나의 의혹이 제기됐다. 피해자 김OO씨가 가해 수사관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 김OO씨는 사건 당시 20대로, 부모가 모두 사망하자 작은아버지였던 김익환 집에 양녀로 들어간다. 활달한 성격의 김씨는 마을 잔치 때마다 멋진 노래 솜씨를 뽐내던 예쁜 시골처녀였다. 그러나 사건 이후 김씨는 평생을 고문 후유증과 정신적 고통 속에 살았고 가해자와 비슷한 남자만 보면 기절하고 말았다. 진실위 조사과정에서도 피해자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실신했다.
다행히 초기 진실위는 피해자들의 정신적 피해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1급 심리상담사 자격증이 있는 전문계약직 직원을 채용했다(이후 이명박 정부 초기 관련기관 사업비를 축소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면서 이 직원은 위원회를 떠나야 했다). 이 여성 조사관의 도움을 받아 조사를 했으나 전문의의 정신감정결과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김OO씨의 정신 감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예산이 문제였다. 일반 대학병원에서 정신감정을 받으려면 적어도 한달 정도 입원도 해야 하고, 비용도 1000만 원 정도 든다. 그러나 당시 진실위 운영과는 난색을 표했다. 정신감정비용이 예산과목에도 잡혀 있지 않으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차례 담당 조사관이 예산 담당자를 면담해 정신감정비용도 조사비용 예산과목에 확대해석하여 포함시킬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그 금액은 아주 적었다(결과적으로, 상임위원-차관급까지 나서서야 이 문제가 해결됐다). 이에 담당 조사관이 정신과 의사들을 수소문한 끝에 고문피해에 관심을 갖고 있던 조중근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게 됐다. 한 달여에 걸쳐 피해자를 서울 신도림에서 경기도 일산의 조 전문의의 병원에 데려가 정신감정과 심리검사를 실시했다.
이후 조중근 전문의는 "피해자 김○○와 강○○는 사건이 재경험되는 듯한 느낌과 불안, 공포, 사건에 대한 악몽, 경계심의 증가 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진단기준'에 해당하는 양상을 나타냈다"는 정신감정 보고서를 작성했다.
부끄럽게도 이 피해자 2명의 정신감정을 위해 진실위는 단지 50만 원만을 지출했다. 이 비용도 조중근 전문의에게 지급된 것이 아니라 조 전문의가 피해자 2명에 대한 심리검사를 다른 기관에 의뢰하면서 발행한 심리검사 비용이었다. 심지어 이 금액마저도 두 달여 동안 입금되지 않아 심리검사를 한 기관에서 담당 조사관에게 독촉전화를 할 정도였다.
불법감금기간 짧고 관련기록 없어도... 진실은 살아있다이러한 1년여의 우여곡절 끝에 2006년 11월 28일 진실위는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이 사건에 대해 대부분 국가기관은 "공소시효가 지났다, 조사할 근거가 없다, 관련기록이 없다"며 거부했다. 하지만 진실위는 끝까지 진실을 밝혔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입은 피해와 그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피해는 아무리 피해 규모가 작더라도 국가의 책임은 무한함을 보여주었다.
또, 이 사건은 진실위의 여타 사건 조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진실위는 기본법에 적시된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기준을 어디까지 볼 것인지, 불법감금기간이 짧고, 가해자 사망, 관련기록이 없는 사건 등도 조사대상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으로 "5일간의 불법감금과 가혹행위 주장, 관련기록 없음, 가해자 사망'이라는 최소한의 기준을 갖게 됐고, 이후 대부분 사건들도 이를 기준 삼아 조사를 실시했다. 진실위 결정 이후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해 일부 승소했다.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에서 국가는 소멸시효항변을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건에서 국가가 피해사실, 가해기관을 은폐하면서 소멸시효 항변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해 피해자들의 청구를 일부 인용하였다
진실위 결정문 말미에는 "이 사건은 고립된 섬마을에 거주하는 힘없는 사회적 약자로 분류될 사람들이 당시 정권의 과도한 반공정책에 희생양이 되어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아무런 저항도, 호소도 하지 못한 채 수십 년간 고통을 안고 살아온 것을 외면해 온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적혀 있다.
이렇듯 진실위는 일반 국민들이 부당한 공권력에 대한 피해에 대해 진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사건들이 많고, 그 피해를 평생 안고 가는 국민들이 있다. 국가는 무한 책임을 가지고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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