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행정고시 면접 시험장 모습
진실위
1980년 제24회 행정고시에 응시한 윤○○씨. 2차 시험에서 63점을 얻은 윤씨는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2차 시험 합격선은 57.00으로 합격선을 월등이 뛰어넘었던 윤씨는 합격을 낙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윤씨는 면접에서 탈락했다. 백○○(57.55), 김○(61.22), 배○○(57.22), 박문화(57.61) 모두 합격선을 넘었지만 윤씨처럼 불합격했다.
당시 면접에서 탈락시킨 전례가 없었고 면접은 형식적인 절차로 여겨졌기 때문에 불합격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15회~23회 행정고시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 2차 시험 합격자와 최종 합격자 수가 일치해 면접에서 탈락하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특이하게도 1977년 치러진 21회에서만 3명의 최종 불합격자가 발생했다).
의아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면접 탈락자 중 2차 시험 점수가 가장 낮았던 최○○(57.00) 등은 다음 제25회에 합격한 것이다(1983년까지는 면접 탈락자에 한해 이듬해 면접 재응시 기회를 주었다. 1983년 해당 조항이 삭제돼 84년부터는 2차시험 면제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같은 면접 탈락은 25회에도 이어졌다. 62.33으로 합격선 52.52를 월등히 넘긴 또다른 윤○○씨도 면접에서 고배를 마신 것. 윤씨보다 점수가 낮았던 손○○(52.71) 등 다른 면접 탈락자들은 다음 해 26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24회에 면접에서 탈락했던 박문화씨도 재도전했지만 연거푸 탈락을 맛봤다. 결국 그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윤○○씨와 박문화씨는 어떤 문제가 있었기에 합격선을 넘기고도 면접에서 탈락했을까(25회에 응시한 윤씨의 경우 차석에 해당하는 점수였다고 한다). 또 다른 합격자들은 어떻게 해서 그들보다 낮은 점수를 얻고도 행정고시에 합격했을까.
합격선 넘었는데도 행정고시 탈락, 무슨일이?이처럼 1980년 24회 21명, 1981년 25회 8명 등 행정고시 면접에서 2차 합격생이 대규모로 탈락했다.
당시 행정고시는 공무원임용시험령이 정한 응시연령(20~32세)에 해당하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공개경쟁시험을 통해 최종합격자를 결정하고, 채용 후보자 등록, 신원조사 등 일정한 절차를 거쳐 5급 공무원으로 임용하는 시험이었다.
국가공무원법 일부개정 1978. 12. 5 법률 제3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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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조(결격사유)
① 다음의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공무원에 임용될 수 없다.<개정 1973. 2. 5, 1978. 12. 5> 1. 금치산자 또는 한정치산자 2. 파산자로서 복권되지 아니한 자 3. 금고이상의 형을 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5년을 경과하지 아니한 자 4. 금고이상의 형을 받고 그 집행유예의 기간이 완료된 날로부터 2년을 경과하지 아니한 자 5. 금고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는 경우에 그 선고유예 기간 중에 있는 자 6. 법원의 판결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여 자격이 상실 또는 정지된 자 7. 징계에 의하여 파면의 처분을 받은 때로부터 5년을 경과하지 아니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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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고시는 특별하게 응시 자격 제한을 두지는 않았지만 국가공무원법 제33조 제1항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응시할 수 없었다.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파산자 등이나 집행유예 완료 후 2년이 경과하지 않은 자, 선고유예 중에 있는 자 등이 그 대상이었다. 윤씨 등은 위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행정고시에 응시했고, 때문에 면접에서 탈락하리라곤 생각치도 못했다.
당시 총무처 고시국장을 지낸 이아무개씨의 말을 들어보자.
"제24회 행정고시 2차 시험 합격자 명단을 고시국 계장이 안기부로 가져갔다. 안기부에서는 이들에 대한 신원조회를 해, 시위로 처벌을 받았거나 경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사전에 불합격자로 표시해 명단을 가지고 왔다."이렇게 안기부가 걸러낸 불합격자 명단은 행정고시 면접위원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25회 행정고시 면접위원이던 유아무개씨의 말이다.
"면접시험을 치르는 날 아침에 총무처 고시과 직원들이 들어와 '공안기관(안기부)에서 2차 시험 합격자 중에 데모를 했던 학생 명단이 내려왔으므로 그 사람들은 반드시 고려해 주십시오'라고 말했고, 고시과 직원이 면접과정에서 데모 학생을 지적하면, 면접위원들은 그 데모 학생을 면접에서 탈락시켰다."안기부가 찍어낸 '데모 학생'은 성적에 관계없이 고스란히 탈락했다. 이렇게 해서 24, 25회 행정고시에서 불합격한 사람은 박문화 등 5명에 달한다. 특히 당시 경북대학교 대학원생 박문화(당시 24세)씨는 2회 연속으로 불합격한 것을 비관해 자살하기도 했다.
안기부의 행시 탈락자 찍어내기, 이렇게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