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기야 털기야 멀리 가면 죽는다"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7> 잠자리

등록 2002.09.13 09:03수정 2002.09.1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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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잠자리

잠자리 ⓒ 이종찬

"털기야 털기야 멀리 가면 죽는다 제 자리 붙어라"


그랬다. 우리는 잠자리를 털기라 불렀다. 우리뿐만 아니라 당시 창원에 사는 사람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잠자리를 털기라 불렀다. 근데 왜 잠자리를 털기라고 불렀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잠자리가 날개 짓을 할 때 무엇을 터는 것 같은 그런 소리가 들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온몸이 잘 익은 고추 같은 고추잠자리는 고치털기라 불렀고, 몸집이 크고 알록달록한 검은 줄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진 장수잠자리는 장군털기, 주로 냇가에서 사는 온몸이 까만 물잠자리는 물털기 혹은 도둑털기, 온몸이 실처럼 가느다란 실잠자리는 실털기라고 불렀다.

내가 사는 동산마을 앞에는 사시사철 비음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유리구슬 굴리는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더없이 푸른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마을 이름이 된 동산이라고 부르는 오두막집 같이 아담한 산이 마을 중앙에 있었고, 가음정이라는 마을과 우리 마을을 가로막고 있는 나즈막한 앞산이 길게 드러누워 있었다.

자연 환경이 그러하다 보니 털기가 서식하기에 딱 들어맞았을 것이다. 또한 유달리 여러 종류의 털기가 많았다. 방문을 열어 놓으면 방안까지 거리낌없이 날아드는 것이 털기였다. 그리고 이맘 때, 밤송이가 막 입을 벌리고, 추석이 가까워 오는 이맘 때가 되면 티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을 무수히 날아다니는 것이 털기떼들이었다.

우리는 개구리 낚시도 했지만 털기낚시도 했다. 개구리 낚시는 오후 4-5시, 배가 출출해질 때 주로 했고, 털기낚시는 점심을 먹은 뒤에 주로 냇가에 나가 주로 했다. 그래, 그 보리밥. 그 시커먼 보리밥을 물에 말아 볼이 터지도록 가득 채운 뒤 풋고추를 된장에 푹 찍어 몇 번 베어먹으면 그만이었다.


a 사랑을 나누고 있는 잠자리

사랑을 나누고 있는 잠자리 ⓒ 이종찬

털기낚시 역시 개구리 낚시와 비슷했다. 가느다란 대나무나, 길쭉한 나뭇가지에 실을 매다는 것은 같았다. 하지만 미끼가 달랐다. 털기낚시에는 살아 있는 암털기가 필요했다. 암털기가 없으면 털기낚시는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암털기로 숫털기를 유혹하여 숫털기를 잡는 제법 영리하고도 교묘한 수법이었다.

털기낚시를 할 때면 우리는 미리 풀밭 근처나 냇가에 나가 암털기를 산 채로 잡아야만 했다. 암털기를 잡지 못한 아이들은 아예 털기낚시를 한다는 꿈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암털기 또한 너무나 많았고 누구나 쉬이 암털기를 생포했다.


우리는 그렇게 생포한 암털기의 앞다리에 대나무나 긴 나뭇가지에 매단 실을 단단하게 묶었다. 이 때 실을 너무 세게 묶으면 암털기의 다리가 잘려나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또 털기낚시에는 조약돌이 필요 없었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암털기가 상하좌우로 마구 날아다니기 때문에 실의 무게 중심을 잡아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면 끝이었다. 그리고 냇가에 나가 암털기를 날리면서 "털기야 털기야, 멀리 가면 죽는다, 제자리 붙어라"는 노래를 계속해서 부르고 있으면 되었다. 그러면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숫털기가 암털기에게 붙는다. 그때 우리는 잠시 기다린다. 왜냐하면 숫털기가 암털기의 그것에 확실하게 교접을 해야 되었기 때문이었다.

a 비행을 멈추고 나뭇가지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 잠자리

비행을 멈추고 나뭇가지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 잠자리 ⓒ 이종찬

그렇게 한창 교접 중인 숫털기를 잡는 것은 식은 죽먹기보다 더 쉬운 일이었다. 우리는 잡은 숫털기를 아버지께서 마시고 비워둔 한 되짜리 소주병에 잡아넣었다. 그렇게 1-2시간을 보내고 나면 금새 빈 소주병 가득 숫털기를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털기낚시는 낚는 재미에 불과했다. 개구리 낚시처럼 우리들의 간식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낚은 숫털기를 바라보며, 파리를 잡아 먹여보기도 하면서 하루종일 놀다가 저녁 무렵이 되면 털기를 낚은 장소로 가서 날려보내거나, 간혹 집에서 길러보겠다고 한 두 마리 가져가곤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의 국민학교(당시에는 그렇게 불렀다) 시절의 구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해마다 구월이 오면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히히대던 그 동무들, 그 수많은, 가지각색의 털기들, 파리를 입에 물려주면 잘 갉아먹던 그 장군털기, 그 따가운 가을햇살, 그 맑은 물을 S자로 가로지르며 잽싸게 헤엄치던 그 물배암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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