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조리 한 번 만들어 볼까요

복조리 만드느라 바쁜 화순 백아산 "송단마을"

등록 2003.01.13 16:20수정 2003.01.13 19:1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백아산 가는 길

백아산 가는 길 ⓒ 화순군

백아산 자락 복조리 마을 송단리


호남고속도로 동광주요금소를 지나 옥과나들목으로 빠져 나와 우회전 하여 9km 쯤 더 가면 전남 화순군 북면 백아산(810m)이다. 이곳은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의 후유증을 가장 길고도 처절하게 몸으로 느낀 지역이다. 빨치산과 국방군의 밀고 당기는 격전의 고장 백아산! 아직도 '백아산의 메아리'가 들려 오는 듯 적막하기만 하다.

대단히 큰 산도 아닌 이 산이 근거지가 된 까닭이 몇 가지 있다. 백아산은 지리산 전투 이후 줄곧 중산간지대 보급투쟁의 용이함과 '마당바위'라는 천혜의 요새 덕에 한 때 3500명까지 활동했던 빨치산 활동의 최후 격전지다. 노동운동이 활발했던 화순탄광도 든든한 힘이었다. 그 치열함을 말하듯 한 때 미 8함대가 백아산 일대를 토벌하기 위해 다시 한반도로 향하였던 적도 있다.

이 백아산은 빨치산 활동 말고도 몇 가지가 유명하다. 광주 상수원의 최상류라 물이 깨끗하기 때문에 청정 불 미나리 주요 생산지다. 우리가 복조리라 부르는 조리도 여기 '송단마을'에서 만든다. 담양과 지근 거리에 있으면서 복조리를 해 마다 수십 트럭 씩 싣고 나간다.

송단마을에서는 오늘도 조리 만드느라 겨울밤을 잊고 지낸다. 복조리는 송단리 1구 송단마을과 2구 강례마을, 3구 평지마을과 내 고향마을인 방리 등 '골안 7동'이라 불리는 곳이 주 생산지다. 한 때는 무등산 자락 담양쪽에서도 만들었으나 이젠 그 명맥이 백아산 일부 마을에만 이어져 오고 있다.

a 조릿대 산죽

조릿대 산죽 ⓒ 김규환

a 시누대

시누대 ⓒ 김규환

조릿대와 시누대의 구별


통상 산죽(山竹)이라 불리는 조릿대는 조리를 만들기 위한 가느다란 대로서 색연필 심보다도 가늘다. 키는 사람 어깨 높이 쯤 된다. 껍질을 벗기면 파란 대 색상을 띤다. 여러해살이풀로 뿌리로 번식한다. 한 번 자란 키는 거의 자라지 않고 해 묵은 것은 가지가 덕지덕지 나서 조리의 재료로 적당하지 않기 때문에 조리는 1년생 대를 쓴다. 주로 자라는 곳은 깊은 골짜기 응달진 부분이다.

반면, 시누대는 생김새는 조릿대와 비슷하지만 겉면이 대처럼 노출되어 있어 대 자체가 햇볕을 받아 누런빛을 띠고 키는 3~4m나 된다. 신축성과 휨이 뛰어나지 않고 심에 빈 공간이 많고 두꺼워 부실하기 때문에 조리를 만드는 데는 잘 쓰이지 않는다. 또한 매듭이 조릿대는 한 뼘에 미치지 못하여 적당한 탄성과 신축성을 동시에 갖고 있지만 시누대는 20여 센티미터를 넘어 특별한 용도 외에는 적합하지 않다. 시누대는 주로 야산에서 자란다.


a 조릿대 한 다발

조릿대 한 다발 ⓒ 김규환

조릿대 찌기

논농사를 주로 하는 송단마을 일대 사람들은 백로(白露)가 지나 수분이 아래로 향할 즈음 조리대 찌러(베러) 다니느라 쉴 틈이 없다. 가을 추수를 하는 기간을 잠시 제외하고는 산으로 아침 출근을 한다. 다들 김치 쪼가리에 밥을 싸서는 낫을 하나씩 들고 산으로 들어간다. 산죽밭이 지천에 있다고는 하지만 한 번 누구라도 산죽 잎을 잘라낸 곳은 다시 가봐야 허탕이다.

또한 새로운 곳을 개척했다손 치더라도 누런 겉껍질이 살아있는 1년 생 대만 하나 씩 골라 베는 것도 여간 더딘 일이 아니다. 하루 꼬박 실한 사람이 해도 사람 허리만 하게 석 다발 하기도 벅차다. 군데군데 소(小) 묶음을 해서 잊어먹지 않게 산길가로 내뒀다가 이파리 부분 꽁지를 쳐서 버리고 칡넝쿨을 떠서(베어) 여러 번 둘러야 가늘고 미끈한 조릿대가 빠져 나가지 않는다. 부피는 작아도 한 다발 들기가 여간 쉽지 않게 묵신하다. 남자는 석 다발, 여자는 두 다발 지고 내려오기 힘에 겹다.

이렇게 짧은 해질 무렵 산을 내려와서는 저녁 밥 하고 소죽 끓이는 시간 빼고는 침침한 방 안에 온가족이 모여앉아 허리가 휘고 다리가 저릴 때까지 일을 한다. 출출할 때 밤참은 김장김치에 싱건지에 식은 밥이다.

a 조릿대 쪼개기

조릿대 쪼개기 ⓒ 김규환

조릿대 쪼개기

정확히 말해서 담배 중 가장 가늘다는 '장미'보다 가는 굵기의 조릿대를 한 번 "쭉~쭉 쫙~쫙" 소리를 내며 밑둥 부터 꽁지까지 고르게 단번에 쪼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주로 아버지들의 몫이었다.

오른 손에 칼을 잡고 왼손으로 대를 밀어 주면 어른들은 되는 것을 나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손이 연약한 아이들은 반복되는 단순과정에 손이 터지는 것은 물론이고 닳고닳아 피가 터지는 경우가 더러 있을 지경이다. 날카로운 대 가시가 박히는 일도 있다. 그렇다고 이 자잘한 것을 장갑을 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단 한 번 쪼갠 대는 끝부분은 일부 남기고 다시 두 개를 합쳐 한 번 더 쪼개 나가면 네 쪽으로 균등하게 쪼개진다. 바닥엔 보리 까시락 만큼이나 껄끄러운 조리대 껍질이 소복이 쌓인다.

a 조릿대 말리기

조릿대 말리기 ⓒ 김규환

조릿대 말리고 물에 담그기

다 쪼갠 조릿대를 마룻바닥에 대고 탈탈 털어 껍질을 마저 털고 햇볕에 바짝 말린다. 말리는 방법은 가능하면 칡넝쿨로 '마람'(이엉) 엮듯 줄줄이 엮어 고르게 마르도록 해야 한다. 바짝 마르지 않고 설마른 재료를 가지고 조리를 만들었다가는 변색이 쉬 될 수도 있고, 튼실하지도 않다. 덜 마른 걸로 하면 결정적으로 틈새가 많아 쓸모없는 조리가 되고 만다.

최소 사나흘은 볕에 말린 다음에는 쇠스랑이나 괭이를 가지고 가서 얼음장을 툭툭 깨고 냇물에 담가야 한다. 또랑이 가까우면 문제가 아니지만 100여 미터를 넘길 경우 나중에 건져올 때 큰 고역이다. 물이 질질 흐르는 것을 미끄럽고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오기가 쉽기 않기 때문이다. 대개 최소 4시간 이상을 담가야 만들 때 부드럽게 고동을 잘 감고 마치 고무로 만든 것처럼 자유자재로 작업이 가능하며 실한 것이 된다.

a 조리절기 초반전

조리절기 초반전 ⓒ 김규환

a 조리절기 후반전

조리절기 후반전 ⓒ 김규환

조리절기

이제 본격적으로 조리를 만들면 된다. 예년에는 고동 길이를 대체로 다섯치 15cm 길이의 통 조리대를 잘라 만들었으나 요즘은 네치, 다섯치 두가지를 만든다.

고동에 매듭이 하나 있게 양끝이 부서지지 않도록 잘 자르고 껍질을 벗겨 고동 한 쪽에 먼저 짧은 살을 끼우고 날대를 고동에 한 개 붙인다. 어린 아이들이 본 작업에 동참해야 한다. 학교에 갔다와서 무거운 눈꺼풀임에도 밤 1시를 훌쩍 넘긴다.

그 후로는 두 개 씩 반듯한 것을 골라 나란히 놓고 마지막 한 줄은 한 개만 놓는다. 마지막 것은 다 절어 이길 때 묶는데 다시 써 먹는다. 결국 총 6곳에 날대(날줄)를 놓는 셈이다.

날대를 놓고 차례대로 절어 나가면 된다. 먼저, 고동이 시작되기 전에 한 개를 지그재그로 1, 3, 5 번째 날대를 들고 밑둥을 조금 길게 아래에 놓이게 한 후 짧은 꽁지부분을 가지고 날대 고동에서 방향전환을 하여 엄지와 검지만으로 살짝 비틀어 짝수 날대 사이로 끼워 넣어 가면 된다. 이런 과정을 수회 반복하여 날대 끝을 통과하여 마지막 하나까지 해 나가면 채반이나 널찍한 적사 모양이 된다.

절은 과정에서 오른 손 엄지와 검지 손가락 만으로 살짝 비틀어 나가는 과정은 같으나 두 세 개 사이에 한 번 씩은 두 번 휘감는데 모양새를 내기도 하고 튼튼하게도 하며 조릿대 소모량을 줄이기도 한다. 절을 때 가능하면 조릿대 간격을 최대한 밀착시켜야 모양도 좋고 튼튼하여 오래가므로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a 익이기1

익이기1 ⓒ 김규환

a 완성된 조리

완성된 조리 ⓒ 김규환

조리모양을 내기 위해 이기고 마무리하기

이 과정은 좀 복잡하다. 절어 놓은 조리를 이기는 것은 어른들의 차지다. 양쪽 날대를 차례대로 각자 포개서 끼워 넣은 후 양쪽 발에 고정하고 밑둥 부분을 감싸 왼손에 쥐고 6번 째 날대를 뽑아 입에 물고 마저 꽁지 부분을 밑둥지에 갖다 오목하고 고르게 붙인다.

다음으로 휘 담아 뒀던 날대 부분 밑둥을 X자로 꺾어 놓고 6번 째 날대를 꽂아 단단히 고정하여 겉이 밖으로 나오게 하여 연이어 줄줄 감으면 이제 안심해도 된다. 붙잡았던 다리를 풀고 허공에서 둘둘 감아 나가면 된다.

마지막으로 조리채를 잡고 두 개를 더 감아나가면 예쁜 조리, 복을 안고오는 조리, 티끌과 돌 등 쓸모없는 것을 골라내고 알맹이와 복(福)만 골라 일어주는 복조리를 만들 수 있다.

익이기가 끝나면 양쪽으로 다부지게 꿰어 한 덩어리에 50개씩 모으면 한 '저리'가 완성된다. 이 걸로 포장까지 끝난다. 현지에서는 4치짜리 한 저리에 25000원, 5치짜리 한 저리는 30000원 씩 팔린다.

a 한창 익이고 있는 모습

한창 익이고 있는 모습 ⓒ 김규환

한 때는 송단마을 인근에서는 복조리 생산이 논농사 못지 않게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집집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밤이 깊은 줄 모르고 조리만들기에 열을 올렸다. 어떤 집의 경우 한 겨울 동안만 700저리를 하여 2~30여년전 돈으로 천만원에 가까운 소득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는 노인들만 남아 겨우 명맥의 끈만 놓지 않고 있다.

전남 화순군 북면 송단리 신기철(061-372-5394) 씨에게 문의하면 구입이 가능하다.

a 꿰어 놓은 조리(50개가 한 저리)

꿰어 놓은 조리(50개가 한 저리) ⓒ 김규환

덧붙이는 글 | 다음 기사로 복조리 팔러 다니는 글을 쓸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 기사로 복조리 팔러 다니는 글을 쓸 예정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이 기자의 최신기사 역시, 가을엔 추어탕이지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